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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이름으로 보는 예수님 이야기
본문 : 히브리서 13장 15절
그러니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립시다. 이것은 곧 그의 이름을 고백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새번역>
속담 중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한 사람에 대하여 이해한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모두는 딱 한 마디로 ‘나는 이런 사람이야’ 라고 정의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존재입니다. 아무리 단순화 시키려고 해도, 그 단순함이 세포분열을 일으켜 너무도 많은 내가 잠재되어 있는 것이 바로 ‘나’라는 존재라는 사실을 모두가 인정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에 대해서 알아갈 마음이 생기고, 그 사람과 친해지고 싶다면, 더더욱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면, 점점 그 사람에 대해서 ‘앎’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 스스로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가려놓은 복잡한 숲을 지나 드디어 마음과 마음이 만나게 되면 ‘아,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었구나!’ 라고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너무 신기한 일이 한 가지 벌어집니다. 바로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과 닮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알아가고자 했던 것인 대, 그 사람과 친해지고 싶었던 것인 대,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던 것인 대, 어느 순간 나의 모습 속에서 상대방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신기한 일이 벌어집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자주 발견됩니다. 그래서 가족은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서 더욱 뚜렷하게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연인 사이를 지나 부부가 되면 가장 많이 발견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부는 닮아간다’라는 말도 생긴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서 전혀 몰랐던 나라였습니다. 사실 우리가 가진 인식으로는 이해하기 너무도 어려운 신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고유 종교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접한 지 길어야 200년의 역사도 채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단군할아버지가 가깝고, 불교나 유교가 가까운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우리나라를 복음의 불모지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가장 큰 부흥을 이룬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수많은 선교사님들의 피, 땀, 눈물이 있었고, 그 사랑에 감격하여 예수에 대해서 알고자 했던 열망은 고스란히 부흥이란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에 대해서 알아갈 마음이 생기고, 예수님과 친해지고 싶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마치 비밀의 문이 열리듯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조금씩 우리로 알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분에 대해서 더 알려고 노력할수록, 한 가지 우리에게 찾아오는 변화가 있을 것을 말씀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듯이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되면 점점 더한 영광으로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게 됩니다. 그 영광은 영이신 주님에게서 나옵니다. <고린도후서 3장 18절, 현대인의 성경>
바로 예수님을 닮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예수님에 대해서 배운 이들은 예수님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본받았기에 자연스레 삶이 된 것입니다.
저는 성경공부를 할 때 꼭 이 말씀부터 드리고 시작합니다. “배우시면 사셔야 합니다.” 모를 때는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누구인지 배우게 된다면, 그 배움은 앎에서 멈추지 않고 삶으로 반드시 이어져야 하는 것이 말씀을 배운다는 것입니다. 공부로 끝나지 않도록 반드시 ‘작은 예수’로 살아갈 결심을 하자고 다짐하면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 그 다짐을 여러분들과 새롭게 하려고 합니다. 저는 오늘 예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런데 공부 시간이 아닙니다. 이름으로 배우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통해 지식을 쌓고자 함이 아닙니다. 모든 예수님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되도록 'Copy'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 복사기가 되어 그대로 예수님을 복사하는 시간이 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장 예수님처럼 살지도 못 하는데 그럼 배우지도 말아야지’라고 두려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도 30년간의 시간이 필요하셨음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결심이 너무도 중요합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지식으로 끝나지 않고, 삶으로, 신앙으로, 내 생활 속으로 스며들기를 기도하며 배워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결심 속에서 배우게 된다면 언젠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습관처럼 흘러나와 ‘예수의 삶’을 실천하게 되실 것을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축복합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는 예수님 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이름은 ‘성자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중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참 인간으로 이 땅에 성육신 하셨지만, 예수님은 분명히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참 인간이며,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장 6~8절, 개역개정>
예수님께서도 스스로 하나님이심을 조금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특별히 시대적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면서 인간이심에 대해 믿지 못하는 의심으로 공격을 받았던 요한공동체를 위해 요한복음에서 특히 그 구절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유대 사람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당신은 아직 나이가 쉰도 안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다는 말이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내가 있다." <요한복음 8장 57~58절, 새번역>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의 권능을 힘입어서, 선한 일을 많이 하여 너희에게 보여 주었는데, 그 가운데서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고 하느냐?" 유대 사람들이 대답하였다. "우리가 당신을 돌로 치려고 하는 것은, 선한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이오. 당신은 사람이면서,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하였소." <요한복음 10장 32~33절, 새번역>
빌립이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좋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느냐? <요한복음 14장 8~9절, 새번역>
그래서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는 고백도 멋지지만 도마의 고백이 오히려 더욱 의미가 있다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한복음 20장 28절, 개역개정>
예수님은 분명히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알기 원하는 이들은 가장 먼저 이 기초를 가지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이름은, ‘메시아(그리스도)’입니다.
참고로 ‘메시아’는 아람어이자 영어 발음이며, 히브리어로는 ‘마쉬하’로 읽으며, ‘그리스도’는 헬라어로, 모두 다 ‘기름부음 받은 사람’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유대교에서 가장 흔하게 이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흔히 ‘구원자’, ‘해방자’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지위가 높은 사람, 유대 사람의 지도자를 메시아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너무도 좋아했던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후손이나, 이스라엘의 2대 왕이었던 ‘다윗’과 같은 메시아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을 위한 복음서로 알려져 있는 마태복음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는 이러하다. <마태복음 1장 1절, 새번역>
예수님은 이 땅에 메시아로 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이나 모세, 다윗은 절대 해결할 수 없는 것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자 이 이름으로 오셨습니다.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 막고 있던 ‘죄의 담’을 허물기 위해 오셨습니다. 죄로부터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죄를 죽이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자기의 피로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여 주셨고, 우리로 하여금 나라가 되게 하시어 자기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에게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 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요한계시록 1장 5절B~6절, 새번역>
우리 인생의 참 구원자가 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하나님과 함께 살 길을 열어주신 해방자이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특별히 ‘메시아(그리스도)’라는 이름은 예수님의 직책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기름 부음을 받는 사람은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3가지 직책을 모두 다 수행하셨습니다.
세 번째 이름은, ‘예수(여호수아)’입니다.
예수는 헬라어이고, ‘주님께서 구원하신다.’ 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이름 여호수아와 같은 이름이기도 합니다. 또 같은 이름으로는 호세아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예수’라는 이름이 가장 흔히 쓰이는 이름이기에 우리와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이름일 수 있습니다. 성자 하나님이나, 메시아나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것보다 우리는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부르는 것에 더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예수’라는 이름은 예수님의 탄생에서부터 주어진 이름입니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너는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마태복음 1장 21절, 새번역>
이름에서부터 탄생의 이유가 등장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가장 뚜렷한 목적을 설명해 주시는 이름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합쳐져서 많은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불리며 ‘구원자’로서의 공생애를 사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모든 인류를 위하여,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이 땅에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완성하기 위해 보내심을 받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지를 드러내는 이름이며,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네 번째 이름, ‘임마누엘’입니다.
주님의 천사가 ‘예수’라는 이름을 주신 후 이사야서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이신 하나님이 친히 이 땅에 오시게 된 일의 연유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하여 사용한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친히 다윗 왕실에 한 징조를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가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사야 7장 14절, 새번역>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이름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 수 있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난 너희와 함께 하고 있어’라는 말을 말로 끝내신 것이 아니라 직접 보여주신 이름인 것입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감정을 동행이라는 언어로 풀어내고 계신 이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공생애를 통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이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없는 존재가 아닌 우리와 함께 계심을 가르쳐 주시며, 더욱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를 소망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위엄 있고, 두려운 존재로서의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로서 자리 잡도록 도와주신 이름이기도 합니다. 또한 언제나 동행하시는, 세상 끝 날까지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서 가장 잘 설명해 주고 있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임마누엘 하나님은 예수님이 약속하신대로 또 하나의 보혜사 ‘성령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 가운데 동행하고 계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다. 그리하면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계시게 하실 것이다. <요한복음 14장 16절, 새번역>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잊지 마십시오. 단 한 사람도, 그 누구도 외딴 섬이 아닙니다.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임마누엘! 이 이름의 비밀이 바로 그 것입니다.
다섯 번째 이름, ‘주’, ‘주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인생의 주인이시라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주인이었다면 이제 예수님을 믿고 난 후로는 내 인생의 주인이 ‘예수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이름입니다. 자연스럽게 우리 스스로가 ‘종’이 되는 것입니다. 종은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종은 주인의 뒤를 따라 갑니다. 종은 자연스럽게 주인이 원하는 삶을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삶의 변화를 보여주는 이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이지만 반드시 우리가 고백해 드려야 할 이름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만일 예수는 주님이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9절, 새번역>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메시아,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아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이십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임마누엘이십니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은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삶의 주인이시며, 인도자이시며, 푯대가 되어 주십니다.
우리는 9월 한 달 동안 바로 이 예수님에 대해서 닮아가고자 합니다. 그런데 억지로 닮아가고자 하는 것보다 알아가고자 하고, 친해지려고 하고, 사랑하려고 할 때 자연스럽게 닮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한 달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위해 친히 보여주셨던 성령의 9가지 열매를 한 가지 한 가지 성품으로 배워보고 나의 성품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삶 속에서 예수를 닮은 이들이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열매를 맺는 삶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당연한 일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모든 예배자들을 ‘예수님의 자리’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이 위대한 초대에 여러분 모두가 초청 되었습니다. 예수를 깊이 알고, 배우고, 닮아가고, 살아가게 되는 시간이 될 것을 함께 기다리며, 기도하며, 기대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부르심을 함께 받은 거룩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의 사도요,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십시오. <히브리서 3장 1절, 새번역>
결단 찬양 - 예수 닮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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