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내용은 해동야언(海東野言)에 전하는 것으로서 성종대왕과 그의 친형 월산대군과의 우애를 보여주는
한 단면으로서 짧막하지만 소개할만 하다 생각되어 추려 보았다.
한 궁인(宮人)이 궁에서 나왔는데 그가 상자 속에 간직해 둔 편지가 보통이 아니었다.
거기에 쓰기를
幽亭瞰流水 (유정감유수) 그윽한 정자는 흐르는 물굽이가 보이고
高樹俯潺溪 (고수부잔계) 높다란 나무는 잔잔한 시냇물 굽어보네
화유嘶靑草 (화유시청초) 준마가 푸른 풀 언덕에 우니 <화=馬+華 준마화, 유=馬+留검은갈기 붉은말유 >
春在翠微間 (춘재취미간) 봄은 저 푸른 아지랭이 속에 있네
했다. 또 쓰기를
絶壁立千인 (절벽입천인) 절벽은 천 길이나 솟아 있는데 <인=人+刃, 여덟자 인>
松風鳴末休 (송풍명말휴) 솔바람 울어 쉬지를 않네
憑欄無限意 (빙난무한의) 난간 의지한 한없는 회포
依約故山秋 (의약고산추) 고향 산과 물에도 가을은 왔으리
했다. 거기에 또
新瓜初嚼水精寒 (신과초작수정한) 새로 난 외 처음 맛보니 수정같이 차갑고
兄弟情親忍獨看 (형제정친인독간) 형제끼리 정 두터우니 어찌 차마 홀로 보리
했고. 또 쓰기를
問兄何事送羲娥 (문형하사송희아) 묻노니 형은 무슨 일로 세월을 보내는가
遙想洋琴與渭歌 (요상양금여위가) 멀리 생각하니 양금(洋琴)과 위가(渭歌)를 즐기리
했고. 또
期會親戚 (기회친척) 친척과 모이기 기약하고
聘招佳妓 (빙초가기) 아름다운 기생 불러 맞이하니
義雖君臣 (의수군신) 의리는 비록 임금과 신하이지만
恩則兄弟 (은칙형제) 은혜는 형과 아우일세
했다.
이것을 보는 자들은 이것이 성종이 장난으로 썼다가 버린 것임을 알았다.
두 절귀는 필경 그림에 화제(畵題)로 쓴 것인데 누가 지은 것인지 알 수가 없고 나머지는 모두 월산대군(月山大君)
에게 준 편지이다.
성종은 매양 월산대군을 내전으로 불러다가 조그만 잔치를 열었고 또 나가서는 편지로 수창(酬唱)하여 하루도
그대로 보내는 날이 없었으니 대개 그 우애가 지극했던것이다.
< 海東野言 >
참고로 월산대군의 부인 박씨(큰어머니)를 훗날 연산군이 겁탈하는 패륜을 저질렀다는 설이 있고 그로 인하여 박원종
(박씨부인의 동생) 이 중종반정을 일으키게 된 동기가 되었다 하는데 그 진의 여부는 아직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