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3년시묘? 득량서교 총동창회에서 만난 효자
벌써 11회째 득량서교 총동창회현장에서 여러 동창회원들을 만나서 인사를 나누다가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수염을 길게 기르고 덥수룩한 얼굴로 나타난 이 친구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 젊은 나이에 분명 무엇인가 수염을 기를만한 이유가 있을 것인데 그게 어떤 연유일까?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8회 졸업생이라면 우리 집의 막내 남동생과 동기동창인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8회 내가 부임하는 해에 졸업을 하고 나간 학생들이 아닌가? 그런데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채 온 얼굴이 수염투성이가 되어서 나타난 것이 수상하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인가? 오늘 같은 날에 이런 모습으로 나타난 연유가 무엇일까?’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오랜만에 만난 이 후배의 모습에 무슨 사연이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함께 사진을 좀 찍자고 하였다. 바로 이런 기사를 쓸 만한 자료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아니 참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데 도대체 왜 저런 차림으로 나타난 것인가?”
난 곁에 앉은 동창회 사람들에게 살짝 물어 보았다.
“저 친구 어머니 시묘살이를 대신하여 집에서 시묘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나는 무엇인가에 머리통을 세게 얻어맞는 그런 심정이었다.
‘요즘도 시묘살이를 해?’ 이런 생각에 나는 다시 한 번 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어졌다.
[상례는 조상을 모시는 뜻이 강하게 있어서 관혼상제 중 가장 까다롭습니다. 장례를 치르는 유족들은 베로 만든 상복을 입었습니다. 부모가 돌아가신 경우 자식은 3년 동안 상복을 입고 무덤 옆에 허름한 집을 짓고 아침저녁으로 제사를 지내며 부모를 기리는 시묘살이를 했습니다. 요즘에는 보통 3일 동안 장례를 지내고 상복도 장례식 기간 동안에만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삼베옷이 아닌 검은 양복으로 상복을 대신하기도 합니다. 장례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장례식장으로 가서 유족들과 함께 슬퍼하며 죽은 이가 좋은 곳으로 떠나기를 빕니다.
옛날에는 집에서 장례를 지낸 뒤 여러 사람들이 관을 넣은 상여를 메고 묏자리까지 갔습니다. 죽은 이의 무덤이 될 자리는 산중턱 햇볕이 잘 드는 좋은 자리를 골랐는데 그래야 죽은 이가 좋은 곳으로 가고 남은 후손들에게 좋은 일이 생긴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관을 땅에 묻은 다음에는 둥그렇게 흙을 쌓아올려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장례문화가 완성된 것은 조선시대, 성리학이 우리나라의 생활에 중심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이후입니다. 그 이전에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장례문화가 있었습니다]
시묘를 검색하니 겨우 이런 정도의 정보가 뜰 정도로 이제는 잊혀진 풍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오늘 이런 자리에서 시묘란 말을 듣고 어떤 방법으로든 실천을 하는 친구를 만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요즘 흔히 3일장도 지루하다고 하고 단 하루라도 빨리 치르고 떠나고 싶어 하는 세상인데 말이다.
“자네가 8회라고 하니까 내 동생의 동기생이네 그려? 그런데 요즘 같은 세상에 시묘살이를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한단 말인가?”
“동생이 누구인데요?”
“승태 형일세..”
“아 그러세요. 난 모교 선생님이신줄로 만 알았는데 동기생의 형님이 되시는군요?”
“그런데 그 어려운 시묘살이를 지금도 하고 있다니 도저히 믿겨지지 않아서 도무지 어떻게 하고 있단 말인가? 그 어려운 일을.....” 하고 물으니
“부끄럽습니다. 매장을 하였으면 시묘살이를 해보려고 하였으나, 요즘 매장이 어디 쉽습니까? 화장을 하여 모셨으니 시묘살이를 할 곳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냥 이렇게 수염도 안 깎고 시묘살이 흉내를 내고 있답니다.”
“그냥 집에서 살면서 함부로 살지 않고 100일마다 찾아가서 간단하게 제를 모시는 생활을 하는데 시묘살이 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1000일을 채우려고 하는데 이제 800일이 조금 지났습니다. 그 땐 깎아야죠.”
“세상에 이런 효자를 만나다니? 정말 반갑네. 요즘 세상에 이런 마음가짐으로 부모를 모시는 친구가 어디 있을라구?”하는 나의 말에
“아이구 선배님, 아니 선생님. 이게 어디 제대로 된 시묘살이를 하는 것입니까? 이런 자리도 나오고 이건 시묘 살이 흉내만 내는 것이지요.”
하는 그 친구의 표정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닌 진지함이 묻어나는 것이었다.
오히려 제대로 시묘살이를 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요즘 시대에서 보기 어려운 기인<? 실례의 말 : 요즘에 보기 드문 사람이란 뜻임>을 만난 느낌이어서 내 자신의 불효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는 이 친구의 이름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 앞으로 나왔을 때에 다시 한 번 명찰이 잘 나오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였다.
[5회 유병욱] 이란 이름이 선명하게 찍혀서 다행이다.
이름을 따로 묻지 않았기에 포샵처리한 사진에선 이름을 알아보기 어려운데..... 다행스럽게도 원판사진에서 확인이 되었다.
유병욱 친구의 갸륵한 효심에 박수를 보내면서 득량서교 총동문회원 중에서 이런 효자가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칭찬하고 싶고, 크게 선전하여 주고 싶어진다.
2016.11.27.18:07‘<15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