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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의 〈아우라〉이론에 관한 연구
윤미애(서울대)
I. 들어가는 말
아우라 Aura는 벤야민의 논문「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Reproduzierbarkeit」과 더불어 유명해진 개념이다. 유물론적 예술이론을 표방하고 있는 이 논문에서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 일어난 결정적 변화를 아우라의 붕괴라는 현상으로 설명한다. 벤야민의 주장에 따르면, 아우라는 유일무이하게 존재하는 대상에서만 나타나기 때문에 사진이나 영화와 같이 복제되는 작품과 아우라는 결합될 수 없다. 아우라 붕괴 현상은 이 논문에서 주로 예술작품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지만 실은 인간의 지각구조 일반에 일어난 변화를 가리킨다. 겁대상을 그것을 감싸고 있는 껍질로부터 벗겨내는 일, 다시 말해 아우라를 파괴하는 일은 현대의 지각방식이 지닌 특징이다겂(I, 479f.). 이러한 변화를 부정적으로 보는 보수적 문화비판에서와는 달리 벤야민은 이로부터 새로운 예술개념을 도출하고자 한다. 아우라적 예술이 고독한 개인의 관조적 침잠을 요구한다면 아우라 없는 예술작품은 산만한 태도 Zerstreuung로 특징지어지는 집단적 수용에 적합하다. 벤야민은 전자의 탈사회적 태도가 아우라 없는 예술에 대한 집단적 수용태도를 통해 극복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수용태도의 이러한 변화로부터 벤야민은 예술의 정치화 테제를 제시한다.
전통적인 예술에서와는 다른 예술개념을 제시하고 있는 벤야민의 테제들은 70년대 벤야민 연구의 집중적 토론대상이었다. 유토피아적, 기술주의적 사고의 소산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당시 벤야민 연구의 주류를 이루었던 맑시즘적 문예학자들은 벤야민의 논문을 자본주의적 문화에 대항하는 문화정치의 이론서로 환영했다. 70년대 연구는 벤야민의 아우라 이론을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 국한하여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예술작품 논문에서 제시된 아우라 붕괴 테제는 아우라 개념에 대한 벤야민의 복합적 사고를 포괄하지 못한다. 벤야민은 예술작품 논문에서 아우라를 특정대상에서만 감지되는 객관적 현상으로 소개하고 있지만 아우라를 처음으로 언급되고 있는 환각제 체험담에서는 관찰주체에 따라 아주 사소한 대상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현상으로 설명한바 있다. 아우라는 대상에 귀속되는 객관적 현상인가? 아니면 관찰자의 주관적 조건에 기인하는 미학적 경험의 일종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은 분명한 대답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벤야민의 아우라 이론의 또 다른 문제점은 과연 아우라가 극복되어야 마땅한 구시대의 유물인지 아니면 새로운 예술체험의 잠재적 가능성을 지닌 것인지 확실치 않다는 것이다. 아우라에 관한 사고가 전개되고 있는 논문으로는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외에도 「사진의 작은 역사 Kleine Geschichte der Photographie」와「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브에 관하여 곜ber einige Motive bei Baudelaire」를 들 수 있다. 이 두 논문에서도 벤야민은 현대사회에 일어난 지각구조의 변화를 아우라 붕괴 현상으로 기술하고 있지만 아우라에 대한 태도를 분명하게 규정짓기는 어렵다.
하버마스는 그의 대표적인 벤야민 연구 논문인「의식 비평인가 구제비평인가」에서 벤야민의 아우라 이론을 유물론적 예술이론만을 근거로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하버마스에 의하면 벤야민은 아우라를 극복대상으로 보지만 아우라 경험 그 자체를 부정한 것이라기보다는 아우라 개념 중에서 신비주의적, 비의적 요소만을 비판한 것이다. 왜냐하면 자아와 타자, 인간과 자연과의 일체감 또는 미메시스 경험이라고 할 수 있는 아우라 경험은 다시 회복해야 할 인류학적 경험포텐셜에 속하기 때문이다. 하버마스는 이런 의미에서의 긍정적 아우라 개념을 벤야민의 언어이론과 경험이론에 연결시킨다. 하버마스의 해석을 받아들이는 최근의 연구는 벤야민의 아우라 이론을 유물론적 예술이론의 테두리를 벗어나 그의 사상체계 안에서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벤야민은 아우라를 여러 각도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우선 아우라는 종교의식에서 기원하는 현상으로 겁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먼 것의 일회적 현상 einmalige Erscheinung einer Ferne, so nah sie sein mag겂(I, 479)으로 정의된다. 또한 다음 문장에서 아우라는 독특한 시선의 교환에서 이루어지는 경험으로 규정되고 있다. 겁어떤 현상의 아우라를 경험한다는 것은 시선을 되돌려주는 능력을 그 현상에 부여하는 것이다겂(I,646). 다음의 정의는 아우라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 기억이론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여기서 아우라는 겁무의지적 기억에 자리잡고 있는 지각대상의 주위에 모여드는 표상들겂(I, 644)을 가리킨다. 아우라에 대한 이러한 다양한 규정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우라 개념과 벤야민의 언어철학적, 역사철학적 사고 모티브들은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벤야민의 아우라 이론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아우라 규정들에 숨어 있는 언어철학적, 역사철학적 사고모티브들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아우라 개념을 벤야민의 사상체계 안에서 폭넓게 다룸과 동시에 아우라에 대한 단순히 부정적 태도로 환원되지 않는 벤야민의 이율배반적 태도를 규명하고자 한다.
II. 기술복제시대의 아우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유물론적 예술이론에 대한 테제들을 담고 있는 벤야민의 대표적 논문으로 이 논문에서 아우라에 대한 벤야민의 태도는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 분명하게 보인다. 즉 벤야민은 아우라를 단지 부정적으로, 던져버려야 할 이데올로기 짐으로 제시하고 있다. 아우라에 대한 이와 같은 단호한 입장은 역사에서 진보적 역할을 다한 시민계급의 반(反)사회적 태도와 아우라를 밀접하게 연관시키고 있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주로 예술작품에서 나타나는 아우라를 언급하고 있는 이 논문에서 벤야민은 아우라를 예술작품의 종교적 기원과 관련된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겁예술작품의 아우라적 존재양식은 그 작품의 종교적 기능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겂(I, 480). 종교적 의식에 기원을 둔 예술작품은 감히 근접할 수 없게 하는 어떤 분위기를 지니는데 이를 벤야민은 아우라라고 부른다. 종교의식에 쓰이는 상(像)의 특징은 접근할 수 없다는데 있다. 종교적 제식가치 Kultwert를 지닌 예술작품로부터 벤야민은 겁아무리 가까이 있더라고 먼 것의 일회적 현상겂(Ebd.)이라는 아우라 정의를 도출한다.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한 가치는 이처럼 겁예술작품에 대해 최초로 본래적 사용가치를 부여했던 종교적 의식에 근거한다겂(Ebd.). 예술작품이 종교적 제식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유일무이한 작품이어야 하는데 고대의 비너스 상은 그 상을 제례의식의 대상으로 보았던 고대 그리스인이나, 재앙을 가져오는 우상으로 본 중세의 수도사들이 똑같이 마주 대했던 유일무이한 작품이었던 것이다. 유일무이하게 존재하는 예술작품에 적합한 태도는 관조적 침잠이다.
르네상스 이후 예술은 점차로 종교적 기능에서 벗어나 세속화되기 시작하는데 벤야민은 이 과정에서 유일무이성 개념의 토대가 흔들리기 시작한다고 보았다. 과거에는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한 가치가 종교의식에 근거하고 있었던 반면, 세속화된 예술의 유일무이성은 예술가 혹은 예술가적 업적의 유일무이성을 의미하게 된다. 즉 예술가의 독창적 업적이라는 새로운 가치기준이 등장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예술이 본래 지녔던 종교적 제식가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벤야민은 종교의식에 근거한 예술의 아우라적 존재방식이 세속화된 예술에도 여전히 적용된다고 보고 있는데 르네상스 이후의 예술에서 과거의 종교적 숭배가 세속적인 미의 숭배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근대의 세속적 예술은 중세의 종교적 권위로부터는 해방되었지만 여전히 제식가치와 아우라를 본질적 속성으로 한다는 점에서 중세의 종교적 예술과 구분되지 않는다. 벤야민에 의하면 세속적 예술의 이러한 아우라적 존재방식은 그것이 위기에 처할수록 더욱 더 표면화되기 시작한다. 당시의 순수예술 운동과 유미주의가 사진의 도전에 직면하여 일종의 예술종교를 세우고자 했던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파악된다.
벤야민은 중세의 종교예술과 근대이후의 자율적 예술을 통틀어 아우라적 예술에 포함시킨다. 예술작품의 아우라적 존재방식에 결정적 변화가 일어난 것은 19세기 중반이후 사진을 비롯한 새로운 복제기술이 발명되면서부터이다. 복제품은 그것이 전통적 예술작품의 복제품이든 아니면 새로운 복제기술에 의해 생산된 복제품이든 간에 더이상 아우라를 지닐 수 없는데 아우라는 겁지금, 여기겂로 표현되는 원본의 유일무이한 현존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복제품은 원본과의 관계에 있어 과거의 수공적 모조품보다는 더 큰 독자성을 지니지만 아무리 완벽한 복제품이라고 해도 거기에는 시간과 공간에서 예술작품의 원본이 지니는 유일무이한 현존성이 빠지게 된다.
유일무이한 현존성을 결여하는 대상은 진품성 역시 결여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물의 진품성이란 겁그 사물이 존재하게 된 이래 그 사물을 중심으로 전승될 수 있는 모든 것, 그것의 물질적 지속과 함께 역사적 증언가치를 총괄하는 개념겂(I, 477) 인데 이러한 진품성의 모든 영역은 복제가능성을 배제한다. 따라서 겁유일무이한 예술작품은 전통의 상관관계에 깊숙이 들어가 있는겂(I, 480) 반면, 복제품은 전통으로부터 분리된다. 원본이 지니는 역사적 증언가치는 겁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예술작품이 지니는 물리적 구조의 변화와 소유관계의 변화겂(I, 475f.) 뿐 아니라 작품의 발생사와 수용사를 포함한다. 역사적 증언가치가 결여된 복제품은 전통적 권위와는 거리가 멀다.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에 일어난 예술의 생산과 수용의 변화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겁복제기술은 복제품을 대량생산함으로서 일회적 산물을 대량 제조된 산물로 대치시킨다. 복제기술은 복제품으로 하여금 개별적 상황에 있는 수용자에게 다가가도록 함으로써 복제품을 현재화시킨다겂(I, 477). 복제품은 원본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원본의 모상을 옮겨 놓는데 이는 겁사물을 공간적으로나 인간적으로 가까이 두고 싶어하는겂(Ebd.) 대중의 욕구에 부합한다. 이처럼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간 작품을 대하는 태도는 과거와 다르다. 대중은 연주장을 떠나 음반이나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전파된 베토벤의 소나타 연주나, 가정이나 사무실의 벽에 걸린 모나리자 사진판에 대해 지속적인 관계를 맺기보다는 일시적이고 반복적인 관계를 맺는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가까이 다가오는 대상에 대해 관조적 거리를 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독특한 거리감을 지닌 사물에서만 가능한 아우라는 복제품이나 대량생산된 상품에서는 경험될 수 없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아우라 붕괴를 복제기술의 발달로 설명하고 있는 벤야민의 테제들은 기술주의적 사고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 기본적으로 벤야민은 기술혁명이란 사회의 역사적 기본추세와 맞물린다는 입장에서 출발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 입장에 따르면 아우라 붕괴는 표면적으로는 복제기술로 인한 변화이지만, 아우라 붕괴로 표현된 인간의 지각방식의 변화에는 전 사회적 변혁이 반영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대에는 사물의 유일무이성보다는 동질성에 대한 지각이, 사물을 먼 곳에서 관조하기보다는 손으로 직접 만져보려는 욕구가 발달한다. 벤야민은 이러한 지각구조의 변화를 겁긍정적 야만의 개념겂(II, 215)을 빌어 설명하고 있는데 이 개념에는 일견 부정적으로 보이는 현상이 새로운 경험포텐셜로 전환될 수 있다는 기대가 깔려있다.
예술작품 논문에서 제시된 아우라 붕괴 테제는 두 가지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우선 아우라는 유일무이한 예술작품과 같은 역사적 현상에만 국한되는 개념인가? 이 문제에 대한 벤야민의 입장은 명확하지 않다. 왜냐하면 벤야민은 아우라를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뿐 아니라 인간의 자연체험에서도 가능한 것으로 규정한 바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제기되는 질문은 아우라에 대한 벤야민의 기본적 태도에 관한 것이다. 예술작품 논문에서 벤야민은 아우라 붕괴 현상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면서 아우라를 극복되어야 할 경험양식으로 간주한다. 벤야민이 극복대상으로 생각했던 것은 부정적 세계와 쉽사리 화해하는 미적 가상의 아우라 혹은 키치로 전락한 아우라이다. 그러나 벤야민의 아우라 이론은 이처럼 부정적 의미의 아우라 뿐 아니라 인류학적 경험포텐셜로서의 아우라 개념을 포괄하고 있다. 다음 장에서는 아우라 개념의 긍정적 측면을 언어철학적 사고와의 연관 속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III. 아우라 시선과 미메시스
「보들레르의 모티브에 관하여」에서 벤야민은 아우라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겁어떤 현상의 아우라를 경험한다는 것은 시선을 되돌려주는 능력을 그 현상에 부여하는 것이다겂(I, 646). 이러한 설명에 따르면 아우라의 경험에서 중요한 것은 대상 자체가 아니라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여기서 아우라는 무엇보다도 시선의 경험으로 규정되고 있는데 아우라는 예술작품에서 뿐 아니라 자연이나 인간, 심지어 단어를 바라보는 시선에 주어지는 특이한 경험을 말한다. 어떤 대상을 바라보면서 그 대상이 우리의 시선에 응답해주리라는 겁기대가 충족되는 곳에서 우리의 시선에는 아우라의 경험이 풍요롭게 주어진다겂(Ebd.). 응답에 대한 기대가 채워지는 곳에서 마주친 눈길은 은밀한 시선이 되지만 상대와의 아우라적 거리는 여전히 유지된다. 벤야민은 아우라 경험이 주어지는 시선은 원래적 의미에서의 시선이 될 수도 있지만 주의력이라는 비유적 의미에서의 시선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아우라의 경험이 풍요롭게 주어지는 시선은 가까움과 멈의 변증법이 실현되는 시선이기도 하다. 즉 아우라 시선은 어떤 대상을 보면서 그 대상이 자기 앞에 가깝게 다가오는 듯하면서도 그 대상에 의해 어딘가 먼 곳으로 끌려가는 이율배반적 경험으로 특징지어지는 시선이다.
시선의 경험으로 정의되는 아우라 개념은 벤야민의 미메시스 이론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미메시스 논문을 위한 메모집에서 인용한 다음 구절은 아우라 개념을 미메시스 이론의 테두리에서 규정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겁아우라의 경험과 점성술의 경험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성립하지 않을까? (...) 먼 곳에서 우리를 쳐다보는 별들이야말로 아우라의 원초적 현상 das Urph곤nomen der Aura이 아닐까? 시선이야말로 미메시스 능력을 가르쳐준 최초의 가정교사로서, 최초의 닮기 An곤hnlichung가 완수되는 곳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겂(II, 958). 벤야민은 미메시스를 겁유사성 계hnlichkeiten을 생산겂(II, 211)하거나 겁유사성을 인식겂(Ebd.)하는 능력으로 정의한다. 미메시스는 태초의 인간에게 주변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요구된, 생존을 좌우하는 결정적 능력을 말한다. 별자리에서 인간의 운명을 읽는 점성술은 인간이 그가 태어난 순간의 별자리와 스스로 닮는 능력, 다시 말해 별자리와 유사성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지닌다는 가정에 근거한다. 우주의 모방은 막 출생한 아이가 겁눈을 뜨는겂 겁순간겂 에 완수되고 이 순간 우주와 아이 사이에는 겁비감각적 유사성 unsinnliche 계hnlichkeit겂(II, 211)이 성립한다. 시선이야말로 미메시스 능력의 최초의 가정교사라면 이 능력이 발휘되는 시간적 계기는 순간이다. 시선에서 순간적으로 발휘되는 미메시스 능력은 순간을 의미하는 동시에 시선 Augen-Blick 이라는 뜻을 지니는 독일어 Augenblick이라는 단어로 설명될 수 있다.
비감각적 유사성은 벤야민의 미메시스 이론의 핵심개념이다. 흔히 사람들이나 사물들이 서로 닮아 보이는 경우와 달리, 점성술에서 별자리와 인간운명 사이에 부여한 유사성이나 필적 감정학에서 글씨와 그 글씨를 쓴 사람의 성격 사이의 유사성은 감각적으로는 증명되지 않는다. 감각적 유사성의 영역을 벗어나기 때문에 흔히 신비적으로 보이는 유사성을 벤야민은 겂비감각적 유사성겁이라고 부른다. 태고의 인간은 소우주와 대우주에서 이러한 비감각적 유사성을 인식하거나 생산하는 원초적 미메시스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오늘날 겁유사성의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생활반경겂(II, 205)은 옛날보다 훨씬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옛날 사람들의 지각세계를 채웠던 유사성 혹은 겁마술적 교감겂 (II, 206)은 현대인의 지각세계를 극히 일부만 차지한다. 그러나 벤야민은 실제로 유사성이 적용되는 영역은 우리가 감각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영역보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넓다고 가정한다. 나아가 태고의 인간이 지녔던 미메시스 능력은 역사 속에서 감퇴한 것처럼 보이나 실은 변형되었을 뿐이라고 보고 있다. 미메시스 능력의 역사적 변천사에서 언어는 가장 발달된 단계를 의미한다. 벤야민은 언어를 겂비감각적 유사성이 결집된 완벽한 서고 Archiv겂(II, 213)라고 정의하는데 여기서 언어는 의미전달의 도구로서의 언어가 아니라 표현의 매체로서의 언어를 말한다. 그러나 언어가 점점 도구화되고 표현매체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리게 되면 언어가 아닌 다른 미메시스 능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는데 벤야민을 비롯하여 당시 언어비판적 학자들이 신체동작 언어인 게스테에 보인 관심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태고인간이 지녔던 원초적 미메시스 능력은 계통발생학적으로 퇴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개체발생학적으로 보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아이들의 놀이는 이 점을 잘 보여주는데 예를 들면 상인이나 교사놀이 뿐 아니라 풍차나 기차 흉내를 내면서 노는 아이들의 놀이에는 우주의 모든 사물과 닮으려는 원초적 미메시스 능력의 잔재가 들어있다. 벤야민은 그의 자서전인 「19세기 베를린의 유년기 Berliner Kindheit um neunzehnhundert」에서 어린 시절의 숨바꼭질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 놀이에서 어린이는 자신의 몸을 숨겨주는 대상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이러한 동일화가 자아를 위협할 정도로 진행될 때 주체는 미메시스 대상에 압도될 수 있다. 그러나 어린이는 놀이에서 이러한 미메시스적 강압으로부터 벗어나 다시 자신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배우는데 미메시스적 태도의 궁극적 목표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인용한 것처럼 벤야민은 시선이야말로 인간이 미메시스 능력을 배운 최초의 지각작용이라고 보았다. 벤야민에 의하면 눈은 주체와 객체 사이의 경계가 가장 느슨해지는 감각기관이다. 미메시스론의 핵심개념인 유사성을 아우라의 시각적 경험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즉 내가 보고 있는 사물이 내가 그 사물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다면 나와 그 사물은 유사성의 관계에 놓인다. 유사성은 동일성과는 다른 개념이다. 유사성의 관계에 놓인 양자는 시선을 서로 나누는 과정에서 동시에 자신의 경계를 허물고 스스로 의식하는 자아와는 다른 모습으로 변형되는 것을 경험한다. 주체는 자신의 시선에 응답하는 시선에서 자신이 스스로 의식하는 자아와는 다른 모습으로 변형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마찬가지로 주체의 눈에 비친 상대방의 상 역시 변형되어 주체의 내부로 용해되어 들어간다. 이러한 상호과정에서 각자의 자아동일성이 해체되면서 변형되는 것을 경험할 때 주체와 주체가 바라보는 대상의 사이에는 유사성의 관계가 성립하는 것이다. 이처럼 유사성의 경험에서 전제가 되는 것은 겁자아라는 올가미를 일거에 떨쳐버리는 것겂(II, 314)이다. 시선을 통해 내가 바라보고 있는 사물과 나와의 유사성이 성립할 때 우리의 시선에는 충만한 아우라의 경험이 주어진다.
자아와 대상을 엄밀히 구분하는데 익숙한 현대인의 눈은 이러한 아우라 시선과는 거리가 멀다. 복잡한 대도시의 한가운데에서 현대인의 눈은 방어적 기능에 익숙해있기 때문이다. 대도시인의 심리 및 경험구조를 날카롭게 분석한 20세기 초 사회학자라면 짐멜을 꼽을 수 있는데, 보들레르 에세이에서 벤야민은 다음과 같이 짐멜을 인용하고 있다. 겁듣지 못하고 보기만 하는 자는 보지 못하고 듣기만 하는 자보다 훨씬 더 불안하다. 대도시 사람들의 제반 상호관계의 특징적인 점은, 시각의 활동이 청각의 활동보다 현저하게 우위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이의 주된 원인은 공공 교통수단에서 비롯된다. 대형버스, 지하철 및 전차 등이 19세기에 등장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말 한마디 주고받음이 없이 서로를 몇 분 동안, 심지어 몇 시간 동안 빤히 쳐다보아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지는 않았다겂(I, 649f). 현대인에게 특징적인 방어적인 눈에는 겁꿈꾸듯 먼 곳에 망연자실한 채 빠져드는 면이 없다겂(I, 650). 또한 이러한 눈들은 상대방의 시선에 응답할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상대방의 상을 거울처럼 반영할 뿐이지 시선을 되돌려주지 않는다. 즉 사회적, 역사적 필요에 따라 조직화된 대도시인들의 눈은 사물의 모습을 거울처럼 그대로 비출 뿐이다.
벤야민은 아우라를 결여한 시선에서 시적 영감을 얻은 시인으로 보들레르를 들고 있다. 보들레르는 시선에 응답하지 않는 눈들을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그 눈들에 어떤 매력을 부여했던 시인이다. 시선에 응답하지 않는 눈에 매력을 부여하는 거리 산보자는 「지나가는 여인에게 A une passante」라는 소네트에서 보듯이 낯선 여인의 응답하지 않는 시선에서도 황홀감을 느낀다. 이 소네트에서 시인을 한 순간 반짝하고 되살린 여인의 눈길은 영원히 지속되지 못하고 덧없이 사라지는 눈길로 묘사된다. 벤야민은 거리산보자의 체험을 아우라보다는 환상 Phantasmagorie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는데, 환상은 주관적 도취상태에 가깝다. 거리 산보자는 짧고 우연적인 만남에서 은밀한 사랑의 환상을, 또는 한줄기 섬광과도 같은 찰나적인 미를 끌어내고 있다. 벤야민에 의하면 보들레르의 현대성은 이처럼 시선에 응답하지 않는 눈들을 시적으로 묘사하는 시도에 있다. 이 시도는 시선을 주지 않는 지각 대상을 주관적으로 해석하여 무한한 의미구도 안에 끌어들이는데 있다. 현대의 환상에서는 이 소네트에서처럼 지극히 우연적인 대상까지도 감정이입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환상과 아우라의 차이는 그렇게 분명해보이지 않는다. 아우라는 대상에 영혼을 불어 넣어서 그 대상이 단순한 객체이기를 그치는 경험을 말하는데 아우라 경험에서 주관적, 상상적 요인의 비중이 클수록 환상과의 차이는 모호해진다. 벤야민은 겁군중이라는 베일을 통해겂(V, 54) 현실을 보는 거리 산보자의 환상을 겁상품에 고유한 아우라겂(I, 671)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 언급된 아우라 개념은 상품의 교환가치로부터 변용된 상품 가상 Warenschein과 동의어로 볼 수 있는데 미메시스론을 토대로 앞에서 설명된 아우라 개념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IV. 사진의 아우라
겁사진은 아우라의 붕괴라는 현상에 결정적 몫을 하고 있다겂(I, 646). 단정적 어조로 진술된 이 문장은 사진과 아우라의 관계에 대한 벤야민의 분명한 입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벤야민에 의하면 사진에서 일어나는 아우라 붕괴는 카메라와 카메라가 찍는 대상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사진과 사진의 관찰자의 관계에서 모두 관찰되는 현상이다. 카메라의 시선은 아우라 경험으로 충만한 시선과 정반대 되는 시선인데 이는 카메라가 찍는 대상의 시선에 응답하지 않기 때문이다. 카메라에 의해 응답 받지 못한 피사체의 시선 역시 경직되기 마련이다. 겁카메라를 찍을 때 어색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카메라가 우리의 시선을 되받아 주지 않으면서 우리의 모습을 찍기 때문이다겂(I, 646). 시선에 응답하지 않는 카메라의 시각은 아우라 시선과 배치된다. 사진과 사진의 관찰자의 관계에서도 아우라 경험이 불가능한 이유는 사진이 의도적으로 사건을 고정시킴으로서 의지적 기억의 영역을 확대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창기의 초상화 사진에 대해서 벤야민은 아우라를 인정한다.
예를 들어 힐과 같은 초기 사진사의 사진은 겁그 주위에 미묘한 아우라, 다시 말해 그 사진을 보는 사람의 시선에 충만함과 안정감을 부여하는 어떤 매질이 있었다겂(II, 376).「사진의 작은 역사」에서 초기 사진의 아우라는 긴 노출시간을 필요로 했던 초기 카메라의 기술적 조건과 사진에 등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설명된다. 초기의 사진판은 감광작용이 약했기 때문에 사진의 모델은 오랜 촬영시간 동안에 사진과 친숙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초기 사진의 모델들은 오늘날의 스냅식 촬영에서 포착되는 모습과는 전혀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초창기 사진사의 고객들은 겁저고리의 주름이나 목도리에까지 속속들이 스며들어 있던 아우라를 지닌겂(II, 376) 상승일로의 시민계급의 구성원들이었다. 사진에서 아우라가 붕괴되기 시작한 것은 강한 대물렌즈의 도입으로 인한 기술발전에 기인한다. 그러나 탈아우라 과정은 기술발달로만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사진사의 단골고객이었던 시민계급 자체의 변화에도 원인이 있다. 다시 말해서 사진기술의 발달과 제국주의 시대의 부르주아지 계급의 도덕적 쇠락이 맞물리면서 아우라의 붕괴를 가져온다. 벤야민은 이처럼 사진기술의 발달과 사진의 단골고객이었던 시민계급 자체의 변화를 통해 사진의 변천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사진에서 아우라가 추방되는 결정적 변수는 대상을 보는 카메라 맨의 시각이다. 벤야민은 카매라의 시선과 카메라 맨의 시선을 동일시하면서 이를 화가의 시각과 비교하고 있다. 카메라맨과 화가의 차이를 외과의사와 마술사의 차이로 설명하면서 벤야민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겁화가는 주어진 대상으로부터 자연스러운 거리를 유지하는데 반해 카메라맨은 주어진 대상의 조직에까지 깊숙하게 침투한다겂(I,496). 외과의사가 수술에서 그의 환자를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 대신 수술을 통하여 환자의 내부로 파고 들어가듯이 카메라맨의 시각은 대상과의 거리감을 포기하고 대상의 숨겨진 세부사항에 초점을 맞춘다. 이처럼 대상의 내부로 깊숙이 파고 들어가는 시각을 선구적으로 보여준 사진작가는 아뜨제 Atget였다. 벤야민에 의하면 아뜨제의 공적은 겁대상을 아우라로부터 해방겂(II, 378)시켰다는 점에 있다. 아뜨제에 의해서 추방된 아우라는 쇠퇴기의 초상화 사진술이 인위적 광선을 통해 조작한, 대상을 둘러싼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를 말한다. 아뜨제는 거창한 광경 대신에 길게 줄지어 있는 구두, 미처 치우지 못한 식탁 위에 놓인 수백 개의 그릇들과 같은 장면을 찍고 철저하게 인물사진을 배제한다. 현실에서 사라져가는 것, 못쓰게 된 것, 눈에 띄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아뜨제는 새로운 공간을 열어 보이는데 이 공간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것 대신에 낯선 것이 들어선다. 낯설게 보이는 이유는 일상과 동떨어진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일상적 공간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지만 다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지냈기 때문이다. 아뜨제의 사진에서 일어나는 효과를 벤야민은 겁인간과 세계 사이의 유익한 소외 heilsame Entfremdung zwischen Umwelt und Mensch겂(II, 379)라고 부른다.
카메라 렌즈를 육안과 구분하는 곳에서 벤야민은 겁시각적 무의식의 공간겂(I, 500)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카메라 렌즈는 인간의 육안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이 세계에 대한 인상학적 감수성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한다. 벤야민은 영화와 관련하여 카메라에 의해서 열려진 시각적 무의식의 공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겁영화는 사물을 확대하여 보여주고, 우리에게 익숙한 사물의 숨겨진 세부적 사항에 초점을 맞추고, 카메라렌즈의 뛰어난 방향조정에 따라 진부한 주위환경을 천착함으로서 한편으로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필연성에 대한 인식을 증가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유희공간을 확보해주는 것이다겂(I, 499). 사진의 발달된 촬영기법은 육안으로는 파악되지 않는 가장 미세한 것 가운데 존재하는 형상의 세계를 확대시키거나 육안으로 포착되지 않는 거시적 세계를 축소하여 보여준다. 사진은 겁10배로 확대된 밤나무와 단풍나무의 새싹겂(II, 372)과 같은 식물학의 세계를 보여주거나 겁집과 대도시의 거리, 사무실과 가구가 있는 방, 정거장, 공장, 우리가 구제할 길 없이 갇혀 있는 공간겂(I, 499)처럼 소외된 사회현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카메라의 시각에 의해 열리는 공간은 제 1의 자연 뿐 아니라 제 2의 자연에 이르는,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공간이다. 카메라의 시각은 일반적으로 의식되는 세계 - 미시적 세계이든 거시적 세계이든 - 를 넘어서는 이미지 세계를 재현한다고 할 수 있다.
사진의 이러한 측면은 기술의 이미지 공간에서 실현된 미메시스를 잘 보여준다. 미메시스 논문에서 벤야민은 미메시스의 궁극적 목표를 겁마법의 청산겂(II, 213)에 두었다. 이 목표에 따르면 미메시스가 이상적으로 실현된 언어는 더 이상 마법적 기능과 세속적 기능을 구분할 필요가 없게 된 언어이다. 마법의 소멸이라는 미메시스의 목표는 세속적 기능만을 강조한 것이라기 보다는 세속적 기능과 마법적 기능을 구분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언어의 마법적 요소가 전달 가능한 언어로 번역된 언어를 가리킨다. 미메시스에 대한 이러한 성찰은 언어에 대한 것이지만 이는 사진에 의해 열린 이미지 공간에도 적용될 수 있다. 즉 사진은 지금까지 은폐되어 있던 비밀스러운 세계를 영상화함으로써 마법의 영역을 기술의 영역으로 전환하는 데 기여한다. 사진의 세속적 기능은 의학적, 심리학적, 혹은 범행수사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사진에 해당된다.
그러나 학문적, 정보적 가치와 예술적 가치는 서로 엄격히 구분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호전환의 관계에 있다. 예를 들면 일상적 지각을 넘어서는 정확성을 지니고 세부적으로 재현된 장면을 보면 겁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 그 예술적 가치인지 아니면 그 학문적 유용성인지 분간하기 힘들다겂(I, 499). 고도의 학문적 가치를 지닌 사진의 영상이 동시에 신비체험과 마술적 체험을 가능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는 사진에 의해 재현된 현실에서 예기치 않았던 유사성의 세계와 만날 수도 있다. 벤야민에 의하면 우리는 블로스펠프의 속새풀 사진에서 고대의 원주들을 보거나, 밀추화 사진에서 추기경의 은장(銀杖)을 발견할 수 있다.
사진에 대한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벤야민은 한편에서 사진에 대해 아우라를 부인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 사진의 이미지 공간에서 실현된 미메시스에 주목하고 있다. 미메시스라는 관점에서 사진은 학술적, 정보적 가치로 환원되지 않는 비감각적 유사성의 세계를 열어 보인다. 그러나 아뜨제의 사진에서 보듯이 사진의 이미지 공간과 관찰자의 관계는 아우라를 지닌 전통적 예술작품에서와 같은 관조적 침잠을 배제한다. 왜냐하면 사진의 영상은 충격처럼 관찰자에게 다가오면서 관찰자의 겁연상 메커니즘을 정지겂(II, 385)시키기 때문이다. 충격적으로 밀려오는 영상은 마치 눈 표면에 직접 부딪히는 것과도 같은 효과를 지니는데 충격체험에 익숙해진 눈은 촉각과 유사한 기능을 지니게 된다. 벤야민에 의하면 오늘날의 경험세계는 충격적 인상이 우세하기 때문에 겁우리의 지각구조에 부과된 과제는 더이상 관조에 의해서는 해결될 수 없다겁(I, 505).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상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자세가 아니라 충격적 이미지를 재빠르게 정복하는 정신집중 Geistesgegenwart이 필요하다.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갑작스러운 현상을 포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바이올리니스트가 번개처럼 빠른 솜씨로 현을 골라잡는 순간처럼 사진사는 대상과, 관찰자는 사진의 영상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충격적 영상을 통해 시각에서 촉각적 요소를 강화시키는데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사진은 아우라 개념의 새로운 변형을 암시한다. 벤야민에 의하면 새로운 기술매체는 종교적 가상이나 미학적 가상이 물러난 자리에 들어선 엄청난 유희공간을 통해 아우라 개념의 변형을 가능하게 한다.
V.묀아우라 경험과 무의지적 기억
아우라 경험의 가장 본질적인 규정은 멀고도 가까운 관계로 나타나는 독특한 거리감이다. 이때 거리감은 단순히 공간적 차원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 차원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시각에서 벤야민은 아우라를 겁공간과 시간이 교묘하게 얽혀 있는 거미줄 같은 것겂(II, 378) 이라고 규정한다. 멀다는 것은 단지 공간적 거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과거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기도 하다. 다음 문장은 아우라에 대한 지금까지의 정의들이 기억의 본질에 대한 통찰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겁한 현상의 아우라를 경험한다는 것은 그 현상에 눈을 뜨는 능력을 부여하는 것과 동일하다. 이러한 경험은 무의지적 기억의 자료들과 일치한다. 또한 무의지적 기억의 자료들은 일회적인데, 다시 말해 이러한 자료들은 그것을 붙잡아 두려는 기억으로부터 빠져나간다. 따라서 무의지적 기억의 자료들은 기억 속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의 일회적 현상이라는 아우라의 개념을 뒷받침하고 있다겂(I, 647).
기억의 이론에 근거한 벤야민의 아우라 이론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사람은 프루스트이다. 벤야민은 무의지적 기억이라는 프루스트의 개념을 빌려 아우라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겁우리는 무의지적 기억에 자리잡고 있는 지각대상의 주위에 모여드는 표상들을 그 대상의 아우라라고 부른다겂(I, 644) 우리에 의해 눈을 뜨게된 현상이 우리에게 보내는 시선은 다름 아닌 무의지적 기억의 자료들로 충만해 있는 시선이다. 벤야민에 의하면 프루스트는 아우라 경험에 정통한 작가로서 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A la recherche du temps perdu」는 아우라 경험의 거의 완벽한 모음집이라 할 수 있다. 프루스트는 아우라 경험을 미학적 현실로 표현했을 뿐 아니라 아우라 이론을 담고 있는 중요한 개념을 제시하는데 무의지적 기억 m곩moire involontaire이 그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 권에서 프루스트는 그가 어떻게 잃어버린 유년시절을 되찾을 수 있었는지를 무의지적 기억이라는 개념을 빌어 설명한다. 그는 아무리 애써도 떠올릴 수 없었던 꽁브레 마을에서의 유년시절을 어느 날 오후 마들렌느라는 과자를 차에 적셔 먹다가 갑자기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이처럼 우연한 기회에 느닷없이 떠오른 기억이야말로 무의지적 기억의 개념에 부합한다. 프루스트에 의하면 시간 저편에 있는 잊혀진 과거가 생생하게 재현될 수 있는가의 문제는 과거를 기억하려는 의식적 노력이 아니라 순전히 우연에 달려 있다. 프루스트는 이처럼 전적으로 우연에 달려있는 무의지적 기억을 의지적 기억과 구분한다.
벤야민은 보들레르 에세이에서 프루스트의 기억 이론을 프로이트에 의거하여 보완하고 있다. 프로이트의 이론에 따르면 의식적으로 체험되지 않았던 것만이 무의지적 기억의 내용이 될 수 있는데 의식화한다는 것과 기억의 흔적을 남긴다는 것은 서로 상치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의식에 기록되지 않은 과거의 기억은 의식이 아닌 다른 신체조직이 떠맡는다. 프루스트는 겁사지(四肢)에 저장된 기억겂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부지불식간에 언젠가 예전에 한번 취했던 자세를 다시 취하게 될 경우에 일어나는 기억이다. 이러한 우연한 신체동작 이외에도 무의지적 기억의 우연성은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즉 무의지적 기억은 어떤 구체적 대상의 경험에서 떠오르는데 우리가 그 대상과 부딪치게 될지 아니면 한번도 만나지 못하게 될지는 전적으로 우연의 문제이다. 프루스트의 경우 유년시절의 기억은 우연히 맛본 마들레느라는 과자 안에 숨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벤야민은 「프루스트의 이미지 Zum Bilde Prousts」에서 프루스트가 그렇게 열광적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나선 것은 겁행복을 향한 의지겂(II, 313)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겁행복을 향한 의지에는 행복의 변증법이라고 할 수 있는 이중적인 면이 있는데 이는 송가(頌歌)적 행복과 비가(悲歌)적 행복의 두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전자는 지금까지 한번도 들어보지 못하고 또 지금까지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 즉 열락의 절정이고, 후자는 원천적인 최초의 행복을 영속적으로 복원하려는, 영원히 거듭되는 반복이다. 프루스트의 경우, 현재의 삶을 기억이라는 마술의 숲으로 변형시키는 것은 바로 이러한 비가적 행복의 이념 (...)이다겂(II, 313). 무의지적 기억은 잊혀진 어린 시절에 숨겨져 있는 겁우리의 최초의 행복겂(III, 131)의 회상으로 나타나는데 여기에는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것처럼, 혹은 꿈에서처럼, 유사성의 상태 속에서 변형된 세계에 대한 향수 Heimweh nach der im Stand der 계hnlichkeit entstellten Welt겂(II, 314)가 깔려있다. 프루스트는 겁언젠가 경험했던 행복겂에 대한, 또는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향수에 시달리고 있었다. 벤야민은 프루스트의 이러한 복고적 의지에는 겁잃어버린 시간의 바다에 내던져진 그물을 걷어올리려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엄청난 노력겂(II, 324)이 뒤따르고 있음을 강조한다.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이유는 무의지적 기억의 우연성과 순간성 때문이다. 이 그물을 걷어올리기 위해서는 겁사유하는 육체의 전 근육적 활동 das ganze Muskelspiel des intelligiblen Leibes겂(Ebd.)이 필요하다.
벤야민은 「프루스트의 이미지」를 쓴지 10년 뒤 보들레르 에세이에서 프루스트를 다시 언급하고 있는데 주목할 것은 프루스트를 이전보다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프루스트의 작품은 겁문명화된 대중의 규범화하고 변질되어버린 삶 속에서 쌓인 경험과는 정반대되는, 이른바 진정한 경험을 획득하려는겂(I, 606) 수상쩍은 시도에 포함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무의지적 기억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벤야민에 의하면 프루스트에 의해 도입된 무의지적 기억의 개념은 그 개념이 생겨나게 된 상황의 흔적을 지닌다. 즉 무의지적 기억의 개념은 정보가 지배적인 의사소통형식이 된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정보화되어 전달되는 사건은 의식적으로 처리되어 머리에 기록될 수는 있지만 경험의 내용이 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경험이란 겁기억 속에 엄격히 고정되어 기록된 개개 사실들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종종 의식조차 되지 않는 자료들로 이루어진 종합적 기억의 산물겂(I, 608)이기 때문이다. 외부적 사건이 정보의 형식으로 전달되면 될수록 그 사건은 의식적 체험의 내용이 될 수 있을 뿐 무의지적 기억의 내용이 될 수 없다. 의식적 체험의 비중이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프루스트가 말한 무의지적 기억의 개념이 적용될 수 있는 영역은 사적 영역에 국한된다. 따라서 벤야민은 프루스트의 무의지적 기억이라는 개념은 겁여러 면에서 고립되어 있는 사적 개인의 재산목록겂(I, 611)이라고 결론짓는다.
벤야민은 개인사의 기억을 통해 아우라 경험을 탈환하려고 시도한 프루스트를 보들레르 에세이에서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프루스트에 대한 벤야민의 관계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벤야민은 한때 프루스트의 작품세계에 깊이 빠지기도 했으나 동시에 프루스트가 자신에게 미치는 위험을 명확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벤야민의 사고에는 프루스트에게서 유래하는 모티브가 깊이 뿌리박고 있다는 점인데 이는 무의지적 기억이라는 개념에 해당된다. 벤야민은 프루스트가 무의지적 기억을 개인사에 국한시킨다고 비판하고 있는데 그가 비판하고 있는 것은 무의지적 기억 그 자체가 아니라 무의지적 기억의 개인화이다. 벤야민의 비판을 요약하면 프루스트에게 있어서 무의지적 기억이 우연에 좌우되고 그 내용이 개인사에 국한되고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벤야민은 여기서 프루스트에서와는 다른 양식의 무의지적 기억, 다시 말해 겁사적 개인의 재산목록겂이 아닌 무의지적 기억의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벤야민이 프루스트의 무의지적 기억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있는지는「역사의 개념에 관하여 곜ber den Begriff der Geschichte」를 위한 메모집에 들어 있는 다음 문장에서 잘 나타난다. 겁인식의 순간에 휙 스쳐 지나가는 과거의 이미지는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기억의 이미지에 해당한다. 이 이미지는 위험의 순간에 처한 사람들에게 떠오른 그들 자신의 고유한 과거의 이미지들과 유사하다. 알다시피 이 이미지들은 무의지적으로 나타난다. 엄밀한 의미에서의 역사 또한 무의지적 회상에서 출현한 이미지이다겂(I, 1243). 이 인용문에서 보듯이 벤야민은 무의지적 기억을 역사의식의 범주로 도입하고 있다. 역사의식에 무의지적 회상의 범주가 적용될 수 있는 것은 모든 역사가 의식적으로 수행될 수도, 의식적으로 체험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역사는 의식적으로 행동하는 주체에게 귀속되지 않는 무의식적 차원을 포함하는데 어떠한 역사의 논리에 의해서도 수렴되지 않는 무의식적 차원이 인식될 수 있는 유일한 지각양식은 무의지적 회상이다. 19세기 문화사에 관한 연구서였던 『빠싸쥐 작품 Passagenwerk』을 구상하면서 벤야민은 역사에 있어서의 겁집단적 무의식겂(V, 47)을 가정하고 있다.
벤야민의 역사이론에는 프루스트의 깊은 영향력과 동시에 프루스트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의도가 발견된다. 프루스트는 자신의 전 생애를 기억된 삶으로 변형시키면서 개인적 과거를 집단적 과거로부터 분리시키는데 반해 벤야민은 자신의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을 지나간 시대에 대한 기억과 결부시킨다. 프루스트과 벤야민의 차이는 기억의 우연성에 관한 문제에서도 나타난다. 벤야민은 지나간 과거가 무의지적 회상을 통해 인식되는 것은 순전히 우연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특정한 역사적 순간에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즉 과거가 현재의 의식에 갑자기 떠오를 수 있는 것은 현재의 특수한 상황에 근거한다. 벤야민은 현재가 특정한 과거와 이루는 역사적 배열구도에서 섬광처럼 떠오르는 이미지를 변증법적 이미지 dialektisches Bild라고 부른다. 변증법적 이미지가 섬광처럼 떠오르는 무의지적 회상의 순간은 신학적 의미와 정치적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역사적 기억에서 중요한 것은 지난 과거를 원래 모습대로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와는 다른 유일무이한 의미로 경험하는 것이다. 진정한 역사인식은 어떤 역사적 논리에 의해 도출된 인식이 아니라 오히려 무의지적 기억 속에서 이루어지는 역사 경험을 말한다. 엄밀한 의미의 경험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겁종합적 기억 속에서 개인적 과거의 내용들과 집단적 과거의 내용들은 하나로 결합되어 있다겁(I, 611). 벤야민의 역사이론은 이처럼 엄밀한 의미에서의 경험을 회복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벤야민은 겁아무리 눈에 잘 띄지 않는 조그만 문이라도 이를 통해 꿈으로 나아갔던겂(II, 313) 프루스트처럼 19세기가 품었던 꿈의 자취를 찾아 나선다. 그는 겁건축에서부터 일시적 유행에 이르기까지 삶의 수많은 형태들겂(V, 47)에서 19세기의 자취를 읽는다. 지나간 시대는 이 자취를 통해 어느 한 순간 역사가 앞에 가까이 다가오지만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역사가의 의도를 벗어난다. 과거가 어느 순간 생생하게 재현된다고 해도 현재와의 거리는 지양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역사의 경험은 겁먼 것의 일회적 현상겂으로 정의되는 아우라의 경험과 유사하다. 겁과거의 진정한 이미지는 휙 스쳐 지나가 버린다. 과거는 그것이 인식되는 순간에 다시 영원히 사라져버리는,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로만 포착될 수 있다겂(I, 345). 현상의 갑작스러움, 순간성은 아우라 경험의 패러다임에 속한다. 아우라 경험의 순간성은 「사진의 작은 역사」에 들어있는 다음과 같은 아우라 정의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겁어느 여름날 한낮에 휴식을 취하면서 지평선 상의 산맥 아니면 우리에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나뭇가지를 바라보고 있다가 어느 한 순간 이들 현상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될 때 우리는 이 산이나 나뭇가지의 아우라를 숨쉬는 것이다겂(II, 378). 이 정의는 아우라 경험의 순간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순간성, 일회성은 경험주체의 의식적 의도에 의해 고착될 수도 반복될 수도 없는 아우라의 지각양식을 특징짓는다. 이처럼 벤야민의 역사경험에서 아우라적 계기가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은 아우라 경험을 역사적 경험으로서 구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VI. 맺음말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벤야민이 브레히트에게 가장 접근한 글로 알려져 있다. 흥미로운 것은 정작 이 논문을 읽고 난 브레히트는 논문에서 제시된 유물론적 테제들은 다 제쳐놓고 유독 아우라 개념에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벤야민의 아우라 이론에 대해 브레히트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겁모든 것이 신비주의일 따름이다. 유물론이 그런 식으로 소화될 수 있다니 놀랍다겂. 많은 점에서 브레히트의 예술개념에 접근하고 있는 벤야민의 테제들을 브레히트가 간과했을 리는 없다. 그의 반박은 예술의 역사적 변화를 아우라처럼 모호한 개념을 빌어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벤야민이 극복하지 못한 신비주의적, 신학적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벤야민 사고의 특징을 아도르노 못지 않게 꿰뚫어 본 브레히트의 이러한 의혹은 아우라에 대한 벤야민의 이율배반적 태도에 비추어 어느 정도 타당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벤야민은 아우라 붕괴 현상을 전체 사회적 규모로 나타나는 경향으로 분석하면서 현대에 미학적 양식 Modus으로 나타난 아우라와 키치로 전락한 아우라를 극복대상으로 보고 있다. 가상에 의존하는 아우라를 비판하면서 벤야민은 아우라적 경험과 단절한 새로운 경험양식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우라에 대한 벤야민의 성찰이 그의 미메시스론 및 역사인식에 관한 이론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은 아우라 개념을 긍정적인 의미로 재구성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벤야민의 아우라 이론은 지금까지 가상에 의존하던 아우라 대신에 유희적 태도가 우세한 새로운 개념의 아우라를 지향하고 있다. 또한 벤야민은 무의지적 기억을 역사이론에 끌어들임으로써 지금까지 개인적 과거에 국한하던 인식양식을 집단적 과거의 경험양식으로 구제하고 있다.
벤야민은 환각제 체험의 기록에서 아우라를 겁어떤 사물이나 존재를 마치 주머니처럼 폭 감싸고 있는 장식겂(VI, 588)에 비유한 바 있다. 여기서 아우라는 대상에 귀속되는 현상으로 규정되고 있지만 객관적 현상으로 보든 주관적 경험의 요소로 보든 간에 아우라는 모든 대상이 - 사람, 자연의 대상, 예술작품, 심지어 단어를 포함하여 - 단순한 대상성으로 환원되는 것을 막는 요소이다. 현대 사회에서 대상을 독특한 의미로 경험하는 가능성은 현저하게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예술작품 논문에서 제시된 아우라 붕괴 테제에 따르면 아우라는 극복되어야 할 과거의 경험양식에 속한다. 그러나 벤야민은 한편으로 아우라 붕괴 현상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아우라를 인류의 기술생산력 수준에 따라 변형가능한 경험양식으로 보았다. 후자의 관점에 따르면 아우라에 대한 벤야민의 복합적 성찰은 아우라 경험과 전적으로 다른 새로운 경험양식이 아니라 신비주의적, 가상적 요소를 배제한 새로운 아우라 경험으로의 변형을 지향하고 있다. 결국 아우라에 대한 벤야민의 이율배반적 입장은 겁파괴적 충동과 유토피아적 충동 간의 긴장겂으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