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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범하는 흔한 실수 중 하나가 단지 첫인상이나 이름만으로 진정한 능력을 오판하는 경우다. 무기에도 마찬가지인데, 이를 역이용해서 일부러 오판을 유도하기 위해 엉뚱하게 작명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Tank(전차)’는 개발과 배치를 은밀히 하기 위해 새로운 무기를 물탱크로 위장하였던 과정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반면 그런 의도는 아니었지만 이름으로 인해 그 위력을 제대로 잘못 생각하게 만든 무기도 있다.
결코 작지 않은 무기, 미니건
바로 M134 미니건(Minigun)이다. 단순하게 구경이 작으면 총, 반대로 크면 포라고 부르지만 총과 포를 구분하는 방법은 아직도 격렬하게 논쟁 중일만큼 명확하지 않다. 그렇다 보니 ‘Gun’은 우리말로 총 또는 포로 다양하게 해석이 된다. 그런데 문구 전체를 놓고 해석하다 보면 총을 의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특별히 포를 ‘Cannon’이나 ‘Ordnance’이라 표기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관념적으로 ‘건(Gun)’을 총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무기 체계에 대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미니건’이라고 말하면 그냥 ‘작은 총’ 또는 ‘권총’ 정도로 생각한다. 미니건을 접하지 못한 현역 군인들조차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왕왕 있을 정도니 잘못된 판단이라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어감과 달리 M134 미니건은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총이다. 구경으로 판단하자면 분명히 총이지만 능력으로 보자면 작은 대포로 해석하는 것이 맞을 정도로 강하다.
미니건이 일반인에게 큰 인상을 준 것은 아마 영화 [터미네이터 2]에서였을 것이다. 영화에서 T-800(아놀드 슈왈제네거 분)는 미니건을 난사하여 포위한 경찰 부대를 완전히 제압하는 위력을 보여주었다.
미니건의 원형 - 전투기를 위한 괴물, 벌컨
공대공 미사일의 등장 이전에 기관포(중기관총)는 공중전을 위한 전투기의 유일한 무장이었고 현재 최신 전투기에도 장착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공대공 전투는 목표물이 지나갈 공간에 기관포를 난사하여 탄막을 치는 것이 가장 좋은 요격 방법이었다. 따라서 빠르게 난사할 수 있으면서도 한방만 제대로 맞아도 상대에게 크게 타격을 줄 수 있는 기관포가 전투기에게 필요했다.
하지만 빠른 연사 속도와 파괴력이 강한 대구경을 하나의 무기에 함께 담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였다. 구경이 클수록 파괴력도 비례하지만 난사하기 힘들고 포구 속도가 감소하며 포신 수명도 짧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전투기에 탑재하기 위해서 크기도 제한을 받았다. 결국 연사와 파괴력이 균형을 이루고 크기도 적당한 기관포들이 사용되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미국은 구경 12.7mm의 M2 브라우닝 기관포를 주로 사용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전후 고속 비행이 가능한 제트기가 주력이 되자 전혀 다른 형태의 무기가 필요하게 되었다. 예전보다 더 빠른 발사 속도를 가진 새로운 화기가 요구된 것이었다. 미국은 1950년부터 제너럴 일렉트릭(이하 GE)의 주도로 전투기용 신형 화기 개발에 착수했지만 발사 속도를 무작정 늘리기가 곤란하다는 한계에 봉착했다. 개발팀은 다수의 총구를 회전시켜 교대로 사용했던 개틀링건(Gatling Gun)에 주목하여 이를 응용하여 난제를 해결했다.
그렇게 탄생한 괴물이 바로 M61 벌컨(Vulcan)이다. 벌컨은 총열마다 노리쇠가 별도로 장착되어 총열이 회전하면서 지정된 위치에 오면 발사가 되는 방식이다. 따라서 총신이 6개라고 한 번에 모두 총알이 발사 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의 총신에서 총알을 발사하는 동안 나머지 5개의 총신은 냉각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겨 총열 교환을 거의 필요 없다는 것이 장점이다.
새로운 전쟁과 새로운 무기
이후 벌컨은 미제 전투기의 고정무장으로 급속히 제식화되었고 방공포를 비롯한 지상용 화기로도 사용되었다. 하지만 뛰어난 성능 못지않게 발사를 위한 부가 장비 등으로 인하여 상당히 무겁고 커다란 무기이기도 했다. 제트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전술 작전기의 동체가 커지면서 벌컨을 그나마 전투기에 탑재할 수 있었지만 작은 전투기나 지상 이동 장비에 탑재하는 데에도 애로가 많았다.
바로 그때 베트남 전쟁이 발발했고 헬리콥터가 새로운 전쟁 수단으로 급속히 대두되었다. 전선이 애매모호하고 이동로가 극히 제한된 베트남에서 헬리콥터를 이용해 병력을 신속 전개하여 적의 거점을 타격하고 즉시 철수하는 형태의 전혀 새로운 전쟁 기법이 도입된 것이다. 그런데 헬리콥터를 병력 수송용 또는 기관총을 장착하여 방어용 및 화력지원용으로 사용하기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GE는 M61을 소형화하는데 착수했다. 벌컨이 사용하는 20mm탄 대신 당시 총기의 표준이라 할 수 있는 7.62x51mm NATO탄을 사용하면 경량화 된 작은 벌컨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었다. 그 정도면 헬리콥터 등에 충분히 장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고 벌컨보다 약할지 모르지만 엄청난 연사력을 그대로 구현한다면 기관총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화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무서운 악마
‘미니건’으로 명명된 소형 벌컨은 미 공군을 시작으로 1963년부터 납품이 개시되었다. 대 지상공격기인 AC-47에 최초로 장착되어 무시무시한 위력을 선보였고 그 소문은 전군에 곧바로 퍼져 나갔다. 분당 최대 4,000발을 난사하는 엄청난 연사능력은 공격 당하는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트럭 같은 장비가 순식간 화염에 휩싸여 터져나가곤 했는데 이는 같은 구경의 탄을 사용하는 기관총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수준이었다.
단순히 생각한다면 M60 기관총 6정을 한 곳에 집중하여 사격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지만 위력과 효과는 그 이상이었다. 미니건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곧바로 미 육군에서도 M134라는 이름으로 이를 채용하여 헬리콥터에 장착하기 시작했다. AH-1 같은 공격헬리콥터는 물론 UH-1, OH-58 같은 다양한 종류의 헬리콥터에 탑재한 미니건은 밀림 속에 적들이 숨어 있을 만한 곳이라면 무지막지한 총탄의 불벼락을 날렸다.
밀림은 교전 중에 좋은 방어막이 되어 주었다. 이론적으로 기관총이나 자동소총의 화력은 나무를 관통하여 숨어 있는 상대를 공격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미니건으로부터 보호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재미를 본 육군은 미니건을 트럭이나 지프 같은 기동차량에 장착하여 보병을 근접에서 지원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야말로 하늘이건 땅이건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돌아다니며 불을 토해내는 무서운 악마였다.
많이 사용하기에는 너무 과한 무기
하지만 모든 총기가 그렇듯이 미니건 또한 장점만 있을 수는 없었다. 처음 언급한 것처럼 작은 대포를 표방했지만 결국 기관총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던 것이다. 12.7mm탄을 사용하는 M2 중기관총보다 화력이 약하여 장갑차량이나 엄폐물을 완벽히 제압할 수 없었다. 한마디로 밀집된 대규모 보병부대나 밀림처럼 대략적인 목표지점을 난사하는 용도 외에는 사용하기 힘들었다. 대인 공격용으로만 사용하기에는 너무 사치스러운 무기였다.
미니건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무지막지한 발사 능력은 사실 치명적인 단점이기도 했다. 불과 5분이면 보병 1개 대대가 사용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기관총탄을 소비해버리니 지상군이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헬리콥터 같은 경우는 작전을 마치고 기지로 귀대하여 즉시 보급이 가능하지만 전선을 옮겨 다니는 지상군에게는 이 정도의 탄 보급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탄 보급이 이루어지지 않은 미니건은 그냥 무거운 쇳덩어리에 불과했다.
더불어 전기 동력을 이용한 발사 시스템도 문제여서, 탄이 있다 하더라도 전기가 소모되거나 동력 계통이 고장 나면 사용할 수 없었다. 소말리아 내전 당시 반군 지역에 블랙호크가 추락하면서 동력 계통이 고장이 났는데 이 때문에 몰려오는 적들을 보면서 미니건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까지 발생했을 정도였다. 대인저지용으로 특화된 무기가 정작 가장 중요한 순간에 사용할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M134에 고무된 GE가 보병부대가 휴대하고 다닐 정도로 축소한 XM214 마이크로건(Microgun)을 개발했지만 군 당국에서 채용을 거부한 이유도 이런 단점 때문이었다. 그렇다 보니 현재 미니건은 헬리콥터의 지상 제압용도 외에 요새화된 참호나 특수부대의 지원화기 등의 극히 제한적인 임무에만 투입되는 신세로 입지가 바뀌었다. 아무리 좋은 무기라도 성능이 필요 이상으로 과하면 많이 사용되기 어렵다는 점을 M134 미니건은 보여주고 있다.
제원
탄약 7.62×51mm NATO / 급탄 벨트급탄 / 작동방식 전기 동력식 / 중량 25kg / 발사속도 분당 4,000발 / 총구속도 853m/s / 유효사거리 1,000m
글 남도현 / 군사저술가,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히틀러의 장군들》 등 군사 관련 서적 저술 http://blog.naver.com/xqon1.do
자료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