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귀와 영화를 누렸던 조선 제1의 갑부 윤덕영 님이
1935년 세계홍만자회 조선지부를 창립하면 발행한 홍만자회의 세계관 등이
싣린 책입니다.
세계홍만자회는 1921년 중국에서 신생한 종교인데
이 종교는 당시 유럽의 제1차 세계대전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자 사회구제의 일환으로 자생된 종교입니다,
홍만자회란 세계적십자회를 모방해서 만든 이름인데
이 종교는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 힌두교를 합한 종교로
사회구제가 이 종교의 목적이었습니다.
윤덕영 님은 고종비 명성왕후가 시해되자 자신의 사돈의
따님 민아무개 처녀를 왕비에 간택케하고 순종비에 자신의 조카를
간택케 해 조카로 하여금 황비에 오르게 했던 인물입니다.
이 분은 이완용에 의해 조선 한일합방 조약이 체결되자, 옥새를 탈취,
이완용이 체결한 조약에 옥새를 찍었다고 역사가 전하는 분입니다.
고종황제가 시해될 당시 바로 이 분이 시해했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조선의 동일성과는 소원한 분이었습니다.
이 분은 옥인동 즉 세금정이 있는 지금의 평창동 계곡, 정조대왕이 풍월을 즐겼다는
송석원 수십만평에 별장을 짓고 살았다고 전합니다.
또 이 분은 경부선 철도를 부설하고 조흥은행을 설립하기도했습니다.
1940년 이 분이 돌아가시자 이 분의 장례행렬이 지나는 평창동에서 종로통을 지나
동대문까지의 거리 교통이 차단됐습니다.
또 상여가 지날 이 거리의 전깃줄에 만장이 닿는다는 이유로 상여가 지나는 길의
전깃줄을 모두 잘라냈다는 말이 전합니다.
드디어 이 분의 상여가 종로통을 지나 동대문으로 빠져나갔는데
그 상여가 이 분의 땅만 밟고 지났다는고 전해집니다.
물론 이 분의 상여가 자신의 땅만을 밟고 동대문을 빠져나갔다는 말에는
과장된 점이 있겠지요.
하여튼 이 분은 많은 돈을 가진 분으로 조선 거부였습니다.
더우기 조선 거부이자 모 은행 설립자인 왕실외척 김종한 선생과 사돈을 맺고 있었습니다.
이 분이 1935년 옥인동 자신의 별장 안에 대리석으로 건축을 짓고
사회구제를 기치로 내걸고 중국에서 자생한 세계홍만자회 조선지부
현판을 내걸었습니다.
그리고 윤덕영 님 자신은 이 지부 총재에 올랐습니다.
나라를 일본에 팔고 가진 것이라고는 돈과 땅밖에 없었던 윤덕영님이
도탄에 빠진 조선사회를 구제하겠다고 세계홍만자회 간판을 걸고
이 책을 발행했습니다.
윤덕영 님의 다른 여러 얘기는 많이 연구돼 밝혀졌지만
세계홍만자회 지부 개설과 조선지부 총재 직책에 대해서는
국내에서 연구된 바 없습니다.
이런 연유로 이 물건을 올리는 이 사람도 이 책을 앞에서부터 끝까지 읽었습니다.
1935년에 발행된 이 책은 여러 동양고전에 나오는 도와 관련된
형이상학 변증법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서양의 생물 물리 등 기초 과학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강점과 착취 및 수탈로 도탄에 빠진 조선사회 조선민중을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
심심하신 분들은 한 번 구입해서 읽어 보세요.
참고로 이 종교건물은 대리석으로 지었는데 이 건물과 관련, 서울육백사 등은
프랑스에서 이 건물을 설계를 했다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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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이 책 전문을 이미지에 싣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