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韓國, 韓國人
(이 글은 1999년 4월 23일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열린 한국발전연구원 주최 제85회 조찬강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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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韓 佑 (신한경영연구소 고문)
演士 略歷
이 참(옛 이름 이한우)
■1954년 독일 출생(1986년 귀화)/독일 구텐베르그 대학 불문학·신학과 졸업/미국 트리니티 신학대학원 상담학석사 및 同대학원 박사과정 수료/국제문화재단 독일지부장/주한 독일문화원 강사/성화대학 교수/한독 상공회의소 이사/환경운동연합 지도위원, 문화관광부 한국방문의 해 추진위원회 위원, 방송·언론 활동, 신한경영연구소 고문(現) 자연에서부터 느낀 한국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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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십니까? 역시 우리 한국사람 급하긴 급해요. 일곱시 반부터 시작하는데 일곱시 반에 벌써 아침 식사가 다 끝났어요.
여러분들이 보실 때 제가 외국사람 같습니까? 한국사람 같습니까? 한국사람 같아요? 그건 정답입니다. 제가 지금 한국에 온지 21년 됐고 또 한국으로 歸化한지 벌써 14년째입니다. 14년 동안에 제가 주민등록증도 가지고 있고 떳떳한 한국국민으로 살고 있는데, 그동안에 세 번이나 우리나라 대통령을 내손으로 뽑으려다가 잘못찍어 안됐는데 그중에 한 번은 제가 찍은 사람이 됐습니다. 한국사람된지 14년밖에 안됐기 때문에 열네살짜리가 여러분 앞에서 강의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제가 그동안 한국에 대한 여러가지 느낌과 보았던 것을 제가 자라왔던 독일과 또 여행한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40~50분만에 다 얘기하려면 너무 시간이 짧아 몇가지 생각나는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많은 외국분들을 보면 한국에 오래 살고있다 하더라도 어딘가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여 거부감 같은 것을 느끼는 분이 많습니다. 40년 동안살면서도 한국말을 완전히 배우지 못하는 분들을 보면 대부분 거부감이 있거나 배우기 싫어서 그래요. 외국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한국문화, 한국사람들을 좋아하는 것이 쉽질 않아요. 한국사람들 워낙 손님들을 잘 대접하니까 그냥 표면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문제없지만 조금만 깊이 가려면 어려워요.
저는 처음부터 무언가 동질감을 느끼고 마음에 와 닿는게 있었어요.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 한국말 한마디도 못했지만 자연환경으로부터 매력을 느꼈습니다. 한국의 자연환경은 참 아름답습니다. 한반도 어디를 가도 산이 안보이는 데가 없습니다. 산이 하나만 보이는게 아니라 여러 산들, 산너머 산이 보이고 앞에 있는 산은 또렷하게 보이고, 뒤로 가면 갈수록 흐리게 보이고, 맨뒤에 있는 것이 구름인지, 산인지 구별이 안될 정도로 하늘과 땅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이 하나된 그런 기분입니다. 거기서 어떤 思想的인 배경이 나오죠. 한국사람들 이렇게 딱 갈라지는게 없잖아요? 物質과 精神이 서로 주고 받는, 陰과 陽의 사고방식이 사실 그러한 自然環境에서부터 시작한 것 같습니다.
하여튼 한국을 여행하면 싱거운 경치는 없어요. 어디든지 조금만 가면 변하면서 섬세한 자연환경이 보이고 멋있습니다. 지난번에 어떤 사람이 독일에 가서 실망했다고 해요. 로렐라이 언덕에 갔는데, 노래를 들을 땐 너무 멋있는 것 같았는데 거기 가보니까 별거아니라는 거예요. 한국에는 훨씬 더 멋있는 장면이 많은데 독일 사람들이 뭐 이렇게 자랑을 하느냐고 했습니다.
그것은 文化的인 몰이해에서 나온 말입니다. 로렐라이 언덕을 멋있다고 생각하는 독일사람 하나도 없어요. 로렐라이 앞에 있는 라인강의 물살이 세어서 거기서 옛날부터 많은 배들이 침몰했습니다. 그래서 선원들이 물에 신경쓰지 않고, 바위 위에서 옷을 벗고 앉아 선원을 유혹하는 여자에게 정신이 팔려서 침몰했다는 얘기가 나왔거든요. 그런 옛날 얘기를 하이네가 詩로 지어서 노래가 나왔는데, 거기에 멋있다는 말은 없습니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조금이라도 연구를 하면 그런 기대는 안하고 갑니다. 부여에 있는 낙화암도 그전에 얘기를 듣고 대단한 바위인줄 알았는데 가보니까 별거아니예요. 몇 미터밖에 안돼요.
그러나 한국자연환경이 확실하게 싱거운 데는 없어요. 그것은 사실입니다. 독일은 멋있는 면이 많고 자연을 잘가꾸어 정돈돼 있지만, 독일에도 가보면 싱거운 환경이 많아요. 그런데 한국을 유심히 보면서 다니면 산들의 모양과 전체적인 그림이 섬세하고 매력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한반도의 자연환경에 남성적인 매력이 있습니다. 남자가 며칠간 면도 안하고 수염이 나있는 그런 환경인 것 같아요. 거칠은 면도 있지만 또 섬세한 멋이 있습니다. 그런 자연환경에서부터 한국의 매력을 느꼈고 또 사람들이 情이 많습니다.
- 6개월 있으려다 한국인으로 정착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따뜻하게 대해주던 사람들에게 상당히 감동을 많이 받았어요. 가족들끼리 깊은 정을 나누면서 살고 있다는 것도 그렇고. 한국 생활 초기에 저와 동갑인 한국인 친구가 있었어요. 결혼해서 와이프와 아이들도 있었는데,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었어요. 그사람 집에 가보니까, 늘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면 먼저 부모님께 “다녀왔습니다”하고 인사를 합니다. 외국여행이나 좀 멀리 갔다오면 큰 절 올리는 것을 옆에서 보았을 때 참 부럽더라구요. 독일이나 유럽에는 아주 옛날에 이런 예의가 있었는데 한국에는 아직도 살아있는 것이죠. 그것을 저는 정말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결혼해서 와이프 데리고 독일에 가서 부모님께 소개했어요. 독일에서는 결혼하기전에 부모님의 허락을 거의 받지 않습니다. 18세가 되면 자기인생에 대한 모든 결정을 본인이 합니다. 부모는 간섭해보았자 소용없으니까 간섭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한국에 간 것 자체도 제 부모님은 반대했지만 간섭 안했습니다. 결혼도 제가 하고 나서 통보하는 식으로 됐었어요. 결혼하고 나서 제 아내와 같이 독일에 가서 부모님께 인사하는데, 한국식으로 인사올리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선 아내는 한복을 차려입고 저는 양복을 입은 채로 의자에 앉아계시는 부모님께 큰 절을 올렸어요. 아내가 부모님께 독일말로 “아버님, 어머님, 딸로 받아주십시오”하고 일어나니까 부모님이 울고 계시더라고요. 사실은 제가 장남이고, 제 밑에 남동생이 넷 있어요. 제 부모님은 며느리가 다섯입니다. 네 명이 독일인 며느리이고 한국 사람은 제 아내 한 사람밖에 없죠. 그런데 며느리한테 아버님, 어머님이란 말을 처음 들어보았대요.
지금 독일에서는 장인·장모나 시아버지·시어머니를 부를 때 이름을 부릅니다. 철수는 “철수”, 순자는 “순자”로 부릅니다. 어떻게 보면 좋은 거죠. 자율적이고 친구처럼 부담없이 대하는 것인데, 부모의 마음은 부모대접을 받고 싶은 마음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며느리가 “아버님, 어머님”하고 땅에까지 자기 자신을 낮추고 인사한다는 것이 부모의 마음을 그냥 감동시킨 것입니다.
저는 살아있는 한국의 이런 예절이 세계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처음에 와서 여러 가지로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한국말을 꼭 배우고 말겠다”고 결정했고, 원래는 6개월만 있으려고 했는데 지금까지 21년간을 살았어요. 아직도 한국말 배우는 중입니다.
- 한국인의 무한한 잠재력
한국사람들의 잠재력이 엄청 많아요. 한국사람들은 할 수 있는 餘力이 눈에 보입니다. 瞬發力이 있습니다. 물론 반면에 거기엔 너무 급한 마음도 있긴 하지만…. 한국사람과 식사할 때 갈비탕 같은 것 주문하면 종업원이 깍두기를 가져다 줍니다. 그런데 깍두기는 반찬으로서 밥이 싱거워서 먹는 것인데, 제가 한국에 21년간 있으면서 한번도 밥이 나올때까지 깍두기가 남아있는 것을 못보았어요. 급해가지고 얼른 깍두기부터 먹기 시작합니다. 기다리는 것을 이렇게 싫어해요. 이제는 저도 완전히 전염됐어요. 하지만 이것은 추진력입니다. 무언가 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그냥 밀고 나가고, 빨리빨리 이루어지고…, 그것은 엄청난 잠재력입니다.
또 한국사람은 인내심이 상당히 많죠. 독일 사람들은 술먹을 때 1차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1차로 끝나는 술자리가 없죠. 3차까지 갑니다. 지난번에 우리 사무실 친구들과 밤새도록 3차까지 가서 실컷 먹었습니다. 우리 파트너 중에 회계사가 있는데 그사람이 여기까지(목까지) 먹고는 대리 운전사 시켜서 집에 가는 길에 그 운전사까지 꼬셔가지고 또 4차까지 갔어요. 그렇게 인내심이 많고 끈질깁니다. 하여튼 그러한 인내심이 잠재력입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무언가 꼭 해내겠다는 그런 기분은 갖고 있는데 지금까지 해낸게 없어요. 자신감이 만만하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보면 해낸 게 없습니다. 물론 경제성장은 해놨습니다. 그러나 경제성장이라는 것은 따져보면 당연한 거예요. 한국같은 교육수준의 나라가 그정도 경제성장 안하면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나는 한강의 기적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아요. 물론 열심히 하니까 그렇고, 교육수준이 있고, 승부욕이 있으니까 그렇죠. 그러니 그런 조건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그런 성공을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것밖에 못했다는 것이 문제죠.
한국사람들의 머리가 굉장히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국사람 스스로도 우수성을 믿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우수한 머리를 가지고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느냐입니다. 노벨상 수상자 한 사람도 없고…. 왜 그럴까요?한국사람은 潛在力에 비해서 정말 아까운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어요. 솔직히 말해서 독일이나 일본이나 미국에 가보면 그민족, 그나라의 잠재력이 100이라면 벌써 90이상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모든 분야에서 제 잠재력의 20%도 안쓰고 있다고 나는 생각해요.
- 개인의 천재성을 계발하지 못하는 교육제도
왜 그런가?를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지금 노벨상 수상자가 없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敎育制度의 문제이죠. 교육제도에서 사실은 이런 우수한 머리, 天才性 있는 머리를 제대로 啓發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나는 기본적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21년간 한국사람과 얘기하면서 우리나라 교육제도가 이대로 좋다하는 사람 한 사람도 못만났어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교육제도, 이대로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사람 없죠. 그런데 21년 동안 기본적으로 달라진 게 하나도 없어요. 入試制度가 조금 왔다갔다 했지만…, 試驗을 위주로 한 교육,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교육 등 달라진게 하나도 없습니다. 한국교육제도를 보면 모든 과목을 잘해야만 1등을 합니다.
그런데 모든 과목을 똑같이 잘할 수 있는 사람은 가장 평범한 사람이에요. 천재성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엄마말을 가장 잘 듣고, 선생님이나 교수의 말을 잘 듣고 잘 따라 하고, 대부분의 자기 시간을 공부에 빼앗겼던 사람이 1등하고, 좋은 학교와 좋은 기업에 들어가든가 아니면 관료가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튀는 사람이나 劃期的인 發想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예요. 사회가 별로 개혁되지 않고 큰 변화나 새로운 발전이 없다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닙니까? 교육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바뀌지 않는 것이에요. 우리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사회·정치·교육·부패·비리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런데 왜 변하질 않습니까? 그것이 문제입니다.
- 의식의 변화는 제도의 개선으로
사람이 바뀌려면 意識부터 바뀌어야 하는데 저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의식은 먼저 制度에서 부터 달라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독일에 가면 交通秩序를 잘 지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교통질서를 왜 잘지키냐 하면 거기엔 제도가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그렇습니다. 독일에서 교통질서를 너무나 잘 지키는 사람이 한국에 와서 1주일만 운전하면 한국사람 이상으로 違反합니다.
제가 얼마전에 한·독 상공회의소에 근무했었습니다. 그곳에 근무할 때 가끔 ‘지구촌 파노라마’라는 TV프로에 출연했는데 어떤 분이 저를 만나서는 “TV에서 이한우 씨에 대한 인상이 너무 좋았는데 운전하는 것을 보고 참 실망했다. 위반하면서 운전하더라”고 하길래 언제 봤느냐고 물었더니 “상공회의소에서 나오면서 불법회전하고 과속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어떤 차였냐고 물으니까 대우차라고 말해요. 저는 대우차가 없고 현대차를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한·독상공회의소에 나하고 닮은 사람으로 변호사인 ‘포겔’씨가 있는데 그 사람도 곱슬머리고 키도 나와 비슷하고 안경도 썼는데 바로 그 사람이 대우차를 운전했었어요. 저도 그사람의 차를 타면 무서워요. 운전습관이 너무 나빠요. 그런데 독일에서는 아주 100% 잘지키는데 한국에만 오면 사람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독일에서는 자꾸 위반을 하면 80%는 걸리게 되어 있어요. 물론 감시카메라 같은 것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고발합니다. 옆에서 위반하는 것을 보면 곧바로 번호를 적습니다. 어떤 할머니는 하루종일 자기집 창문에 앉아서 위반하는 차량의 번호를 적습니다. 그러니까 독일에서는 위반하게 되면 걸려서 벌금내게 되고 벌점을 받게 되니까 위반을 안하죠.
그런데 한국에서는 거의 안걸립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다 위반하는데 나만 지켜? 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가끔 나이드신 한국기업인과 용산에 있는 美 8軍에 점심 먹으러 가는데 그분이 운전을 해요. 그런데 8군 게이트(정문)를 들어가기 전의 운전습관과 들어가자마자 습관이 완전히 180도 달라집니다. 그안에서는 團束을 많이 하거든요. 25㎞ 제한속도라든가, 횡단보도 앞에서 100% 멈추고 보행자에게 먼저 양보해야 합니다. 그렇게 안하면 걸려서 패스(출입증)를 뺏깁니다. 그런데 그안에서는 아주 얌전하게 운전하다가 게이트만 벗어나면 벌써 붕!하며 과속하고 위반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제도가 사람을 만든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그 제도를 만들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볼 때 사고가 많이 나는 安全不感症도 문제예요.
우리 航空社들의 사고가 아마 세계적으로 제일 많을지 모르겠는데 통계는 정확히 모르지만 외국에서는 아주 안좋게 보고 있어요. 그 원인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인 항공사의 조종사 및 승무원들의 근무조건인데, 한 번 비행을 다녀 오면 며칠 쉬었다가 가야 됩니다. 그런데 한국 승무원들은 독일에 갔다가 하루도 안돼 다시 돌아와요. 미국, 독일 등 다른 선진국에서 보면 걸려요. 그건 안됩니다. 한 번 10시간 이상 운항했으면 그뒤에 48시간을 쉬어야 돼요. 한국은 그러한 룰(rule)없이 무리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고가 나기 마련이에요.
지난번 ‘씨랜드’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에서의 건축허가 과정을 보면, 지방자치단체에 허가신청을 내는데 한 사람이 혼자 책상에 앉아서 도장 찍는 것이 아니고 공개적으로 허가내는 과정을 만듭니다. 담당 공무원과 의원들, 그리고 신청하는 사람들이 함께 공개적인 미팅(회합)을 하는데 조건을 모두 갖췄으면 허가해 주는 것이고 아니면 안주는 것이죠. 공개적으로 하게 되면 뒤에서 압력넣는 것이 안되거든요. 다 보이니까. 그런데 제도적으로 한 사람이 도장만 찍으면 되니까 그 사람에게 압력을 넣게 돼 있어요. 모든 腐敗, 非理는 제도적인 거예요. 그것은 한사람한테 결정권을 너무 많이 주면 당연히 그사람한테 어떻게든 허가를 얻어내려고 노력하게 돼 있죠. 그러한 제도를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의식부터 바뀌는 것이 안되고 제도부터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잠재력 발휘 위한 사회환경 조성돼야
저는 우리 한국사람들이 잠재력과 실력과 발전성이 너무 많은데 결국은 그런 것을 발휘하려면 기본적인 社會的 雰圍氣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개인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역사를 보면 아주 위대한 개인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그 개인들이 사실 세계적으로 인정받거나, 칭찬받고 각광받을 수 없다는 것은 국내에서 못받으니까 그렇습니다. 얼마전에 엘리자벳 영국 여왕이 한국에 왔다가 안동에 한 번 가니까 그뒤에 안동의 관광사업이 배로 늘었어요. 여왕이 어디가면 세계언론들이 따라다니면서 세계적인 쇼를 벌입니다. 그사람이 미모도 별로이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이유는 영국사람들이 그런 자리를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영국사람들이 잘 모시고 영웅시 하니까 세계사람들이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죠. 그나라 안에서 먼저 스타가 되고, 영웅이 되고, 그래야 세계적인 스타가 될 수 있어요. 한국의 세계적인 스타들을 보면 한국내에서 스타가 된 게 아니예요. 박세리가 한국내에서 스타가 됐습니까? 한국내에서 먼저 그 사람들을 스타나 영웅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옛날에 회화시간에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가끔 질문을 했어요. 한국역사상 존경할 사람이 누구이며, 한국문화의 자랑이나 업적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이순신 장군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댑니다. 제가 한국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이순신 장군입니다. 그래서 ‘李’씨라는 姓도 제가 택했습니다. 귀화하면서 독일이름과 비슷한 소리를 나타내는 한글 이름을 만들 수도 있었지만 이왕 새로운 이름을 만들 수 있으니까 제 마음에 드는 이름을 골랐죠. 그래서 李舜臣 장군 때문에 이(李)가가 됐어요. 이순신 장군이 만든 거북선은 그당시에 상당히 앞서간 기술인데, 만약에 그때 그것을 인정하고, 박수치고 칭찬하고, 그 기술을 받아들여서 개발하고 계속 발전시켰으면 지금 한국은 强大國이 됐겠죠.
그런데 그때 잠시 썼다가 그다음에 잊어버린 거죠. 한글도 얼마나 훌륭한 發音記號입니까? 한글처럼 이렇게 효율적이고 멋있는 발음기호 없어요. A·B·C·도 발음기호인데 A를 보면 대문자 A에다가 소문자 a, 필기체 a로 간단히 줄일 수 있죠. 그런데 ㄱ을 보세요. 더이상 줄일 수 있습니까?한글은 한 글자씩 보면 더이상 줄일 것이 없어요. 불필요한 요소가 없습니다. 상당히 효율적인 발음기호이고 거기다가 금방 배워요.
제가 외국사람들에게 한글을 많이 가르쳤는데 한 시간만에 읽기를 시작합니다. A B C는 몇주일간 배워야 읽기 시작하는데 한글은 너무 논리적이예요. ‘ㄱ’을 보면 혀의 모양이 입천장에 가까이 세워서 발음할 때의 모양이고 ‘ㄴ’을 보면 혀가 밑으로 누워서 발음되는 모양이고, ‘ㄷ’하면 밑에 누운데서부터 위 이빨에 대고 발음하면 ‘ㄷ’모양이 나옵니다. 앞으로 나가는 소리가 ‘ㅏ’입니다. ‘ㅓ’는 소리가 안으로(뒤로) 가죠. ‘ㅗ’는 위로 올라가는 소리예요. 어떤 언어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영어의 over할 때 o도 마찬가지입니다. ‘ㅜ’는 소리가 내려가요. ‘ㅡ’는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습니다. ‘ㅣ’는 목젖을 아주 좁게 만들어서 나옵니다. 이것을 한 번만 설명들으면 다음에 볼 때 금방 알아보아요. 그래서 외국사람들이 한시간만에 읽기 시작한 것입니다. 거기다가 디자인이 멋있잖아요. 600년 전에 만든 것인데 아직도 현대적인 감각이죠.
한글은 이렇게 멋있는 작품인데 600년전에 만들었다가 한참 동안 안썼어요. 한글이 실질적으로 大衆化 되어서 普遍的으로 쓰이게 된 것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성경책을 번역하여 그때부터 한글책으로 많이 쓰게 된 이후 입니다. 한국사람들은 한글이 좋은 것을 몰라요.
제가 독일 구텐베르그 대학에서 공부했는데 구텐베르그라는 사람이 금속활자를 발명한 사람이에요. 금속활자를 만듦으로써 책을 대량으로 생산하게 됐죠. 지식이라는 것은 작은 수의 몇 명만 접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책을 대량으로 인쇄할 수 있게 되자 그때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많은 정보를 접하게 되고 거기서 부터 과학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모든 현대의 과학기술은 독일에서 부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이 구텐베르그 같은 사람이 있어서 역시 독일사람들의 우수성이 보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보니까 똑같은 금속활자 기술이 구텐베르그보다 200년 전에 한국에서 만들었음을 알았어요. 만들었지만 사용하지는 않았어요. 어떤 사람(들)이 무언가를 만들면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여서 상품화하여 크게 대중화 시켜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내버려 두었어요. 그래서 썩게 했습니다.
- “독속의 게” 같은 한국사회
한국역사를 보면 다 그래요. 한 사람이 훌륭한 업적을 올리면 사회에서 그것을 받아서 발전시켜야 될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한국사람들은 독속의 게였다”라는 말이 있어요. 제가 어떤 한국책에서 보았는데 참게(민물게)는 털이 있고 발톱이 매우 날카롭습니다. 게 한 마리를 아무리 높은 항아리나 독안에 집어넣어도 다시 기어나와요. 조그맣고 울퉁불퉁한 면과 미세한 구멍을 타고 올라옵니다. 그런데 6~7마리를 함께 넣으면 도저히 못나와요. 뚜껑을 안덮어도 됩니다. 한 놈이 올라타기 시작하면 그뒤에 다른 놈이 잡아요. 두번째 놈이 어느정도 올라가면 세번째 놈이 뒤에서 잡으니까 셋 다 떨어집니다. 그래서 한국사회는 독속의 게 같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튀기 시작하면 밑에서 끌어내려요. 우리가 그런 것을 많이 보지 않습니까? 그렇게 안하고 한 사람이 좀 튀면 그 사람을 잘 세워주고 영웅만들면 전체적인 사회가 발전하죠.
저는 한국사람 개개인의 아이디어와 창의력을 啓發하고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면 일단은 個性的인 表現부터 허용하고, 튀는 사람을 허용하며 박수쳐 주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튀는 사람들이 劃期的인 아이디어를 내고 획기적인 발전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사회에는 아직도 다 똑같이 만들려고 하는, 그런 것이 너무 많죠. 먹으러 갈때도 “통일하자”하지 않습니까? 가끔 사무실의 친구들과 식사하러 가서 세 사람은 갈비탕, 두 사람은 된장찌개, 그러면 나는 순두부로 합니다. 그런데 내가 순두부를 주문하자마자 옆에 있는 사람이 “그럼, 나도 순두부 하지요”합니다. 그사람은 내가 혼자 순두부를 먹으면 외로울까봐, 소외감을 느낄까봐 배려하는 마음에서 하는 것이죠. 그런데 내가 혼자 다른 것을 먹거나, 각자 다른 것을 먹으면 어떻습니까?한국사람들과 가끔 유럽여행을 하는데, 그럴때면 좋은 식당에도 가게 됩니다. 유럽에서 좋은 식당이면 메뉴가 상당히 다양하죠. 에피 타이저가 열다섯 가지나 있는데 웨이터가 메뉴이외의 추천할만한 것도 말해줍니다. 제가 옆의 한국친구에게 설명하면서 무엇을 하겠냐고 하면 친구는 에피 타이저 정도는 고릅니다. 그다음에 스프도 메뉴이외에 다섯 가지가 있다는 것을 웨이터가 설명하면서 권하면 선택을 하고, 그다음에 앙트레 등이 계속되면 벌써 한국친구의 긴장감이 시작되는 겁니다. 세번째 코스 정도가 되면 “이한우 씨 하는 대로 따라 할게요. 대신 시켜 주세요”합니다. 자기가 이렇게 많은 선택을 하는 것이 괴롭고 귀찮다는 거예요.
유럽사람들은 완전히 다르죠. 자기만의 메뉴를 짜고 자기가 생각해서 그전에 자기가 먹지 않았던 것을 선택하고 구성하는 것을 즐깁니다. 주문하는 과정이 15분 걸려도 그것을 즐겨요. 그런데 한국사람들은 이렇게 많은 옵션(option;선택)이 귀찮다는 것이죠.
- 창의력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개성적인, 나만의 어떤 것을 만드는 것이 사회적으로 별로 좋지 않은 것처럼 되어 있단 말이예요. “너무 튀지 않고 좀 비슷비슷하게 해야 되겠지”하는 것부터 달라져야 된다고 봅니다. 가정, 학교, 기업에서 부터 즉 모든 사회적인 환경에서 부터 개개인의 선택을 인정해야 됩니다. 그래야 창의력이 나올 수 있고 새로운 발상이 나올 수 있고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나올수가 있는 것이죠.
첫째는 이런 창의력을 정말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돼요. 창의력이라는 것을 좋게 생각해야 합니다. 창의력이란 대부분 보면 엉뚱한 아이디어예요. 지금까지 했던 것과는 다르게 하는 것, 즉 새로운 발상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하고 자기가 한 번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자유를 주어야 합니다. 우리와 똑같이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사람이 아니라고 하는 일이 많이 있죠. 한국말로 ‘우리’라고 하는 단어 자체가 상당히 좁은 의미가 있어요. 辭典에 보면 ‘우리’라는 낱말 밑에 ‘우리말’, ‘우리나라’ 같은 말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 사전에는 그런 말이 없어요. 영어·독일어 등 다른 나라 사전에 보면 ‘우리’, 즉 ‘we’라는 낱말 밑에 our langua-ge(우리말)가 없어요.
L자 부분에 language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말’의 定義를 보면 “한국인들만이 사용하고 있는 고유의 언어, 즉 한국말”로 되어 있어요. 그러면 외국인이 우리말을 쓰면 우리말이 아니겠군요?‘우리’라는 개념이 ‘우리만’이라는 개념인 것 같아요. 아주 폐쇄주의적이예요. 그런 것을 우리가 풀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나하고 달리 생각해도 우리사람입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죠. 취미도 다를 수 있는데 그래도 우리사람이죠.
이렇게 생겼어도(자신을 가리키며) 우리나라 사람될 수 있어요? 아직도 많은 한국사람들이 “아무리 한국말 잘하고 한국문화 잘 알고 국적을 취득했다 하더라도 완벽한 한국사람이 될수는 없다”라고 합니다. 왜요? 내가 그 문화를 좋아하고 그나라를 좋아하면 그나라 사람되는 것입니다. 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많은 한국사람들은 그나라 사람들입니다. 떳떳하게 그 사회에서 역할을 하고 국회의원도 합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불가능합니까? 어떻게 생각하세요? 외국인이 한국에서 정치할 수 있을까요?외국인 출신의 한국사람이…, 아직까지는 좀 그렇잖아요? ‘우리'라는 개념을 넓히고, 폐쇄적인 것을 빼고 함께, 더불어 산다는 개념이 얼마나 좋습니까?제이름도 영어식으로 발음하면 ‘한우리’인데 ‘한우리’라는 한국적 개념이 아주 좋아요. 많은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한 울타리 안에 같은 식구처럼 산다는 것이 상당히 좋은 개념이에요.
홍익사상의 개념은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아직도 우리에게 親近感가는 사상인데, 그 사상에 각자의 權利, 個性, 생각을 존중하고, 허용하는 그런 분위기로 우리가 바꾸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일한 만큼 대우받는 공평한 환경을
그다음에는 公平한 環境을 만들어야 됩니다. 한국사회가 너무 불공평해요. 차별이 너무 많은 사회입니다. 차별해도 된다는 기본적 사고방식이 문제예요. 이 세상에 완전히 공평한 사회는 없어요. 그러나 공평하지는 않아도 불공평한 것이 나쁘다는 의식정도는 있어야죠. 그런데 한국에는 그것조차 없어서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수십만 명의 외국인 근로자가 한국에 와 있는데 한국근로자와 똑같은 일을 하면서 대우는 똑같이 받습니까? 공평하게 받습니까? 차별이 있습니다. 그것은 큰 문제예요. 그것은 “가난한 나라의 외국인이라서 차별해도 된다”라는 의식이거든요. 길게 봐서 나라에 큰 손해입니다. 20~30년 전에 독일에 수많은 한국근로자들이 가서 광부나 간호원으로 일했어요. 그사람들은 100% 독일을 좋아합니다. 독일에 남아 있는 사람이 많고 돌아와서도 독일을 칭찬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사람들이 독일에 갔을 때 분명히 어려웠을 거예요. 문화와 언어도 다르고 독일사람들이 외국인들을 좋아하지도 않는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을텐데, 그러나 대우는 공평하게 받았어요. 독일사람과 같은 일을 해도 똑같은 대우받고 사회복지,보험, 아이들의 교육비도 똑같이 받는 거예요. 그래서 감동된 거죠.
그사람들이 돌아올 때 독일 칼, 냄비를 가져와서 좋다고 선전하였는데 지금 한국에서 독일 칼, 냄비가 가장 비싸게 팔리는 것은 그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독일 경제는 상당히 혜택을 본거예요. 지금 한국에서 근무하는 외국근로자들이 자기나라로 돌아가서 한국을 칭찬하겠어요? 한국물건 사자고 하겠어요? 따라서 나라로서도 큰 피해인데, 그것은 몇 명의 외국인의 문제가 아니고 한국사회의 문제입니다. 어떤 이유 때문에 차별해도 된다는 의식이 문제예요. 여자라서, 어떤 지역출신이라서, 학력 때문에 차별해도 된다는 사고방식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평한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불공평한 것을 보면 지적하고 없애야 합니다.
- 개방적인 대화 문화 시급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開放的인 對話의 文化를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사람들은 자유롭게 대화를 하고 情報交流 하는 것이 잘 안되어 있어요.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자기 所有인 것처럼 생각하고 다른 사람한테 쉽게 말하지 않는 것이죠. 기업으로 봤을때는 한국기업들이 아무리 硏究開發費를 많이 써도 외국기업만큼의 새로운 기술이 나오질 않아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 하나가 정보교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래요.
한 部署에서 알고 있는 것을 다른 부서에 개방하고 쓰라고 하지는 않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헤프게 다른 곳에 알리면 손해보는 것 같아 알리지 않는 것입니다. 개방적인 정보교류가 자유롭게 이루어져야만이 시너지효과가 일어날 수 있죠.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상대방이 알고 있는 것과 플러스되면서 큰 발전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문화를 만들어야 된다는 얘기죠. 그것은 일상생활과 교육에서 부터 시작해야 돼요. 한 집안에서도 대화의 문화를 만들어야 됩니다. 부부간의 대화, 부모·자식간의 대화의 시간과 공간이 있어야 되고 거기에서부터 정보교류의 문화가 시작하는 것이죠.
우리집에서도 제아내는 국산 한국사람이고 저는 외제한국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요리가 제 취미인데 요리할 때 필요한 도구라든가 양념이 어디 있는지 물을 때가 있어요. 제가 “양념 통 어디 있지?”하고 물으면 제 아내의 대답은 “찾아봐”입니다. 그런데 자기는 어디 있는지 알거든요. “거기 두번째 서랍에 있다”라는 말과 “찾아봐”하는 말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귀찮아서 입니다. 또 의식적으로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헤프게 남에게 알리면 손해보는 것 같은 의식이예요.
한국의 음주문화를 보면 사람들이 술이 좀 들어가야 대화가 잘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폭탄주로 빨리빨리 취하면 분위기가 풀리고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착각이예요. 제가 볼 때 술자리에서는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아요. 술자리에서 하는 대화는 독창(獨唱)이지요. 한 사람이 떠들고 다른 사람은 다른 얘기합니다. 폭탄주라도 들어가면 대화는 끝이죠. 거기에서는 실질적인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아요. 농담 또는 욕이나 하는 것이죠. 대화라는 것은 내가 상대방의 얘기를 듣고 거기에 대한 내 의견과 代案을 내고 提案하면서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조절하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떠드는 것은 아니죠. 일상생활에서부터, 가족에서부터, 주변환경에서부터 활발하게 연습되고 구성돼야 문화와 의식이 달라질 수 있으며 그래야만이 시너지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는 거죠.
- 역사의 시련을 나라발전의 기반으로
이 세 가지, 즉 개개인의 창의력을 존중하고 가능하게 하는 환경과 공평한 환경, 그리고 개방적인 대화의 문화를 만들기만 하면 한국사람들의 잠재력은 폭발적으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은 정말 기대할 게 많습니다. 5천년의 歷史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그냥 평범하게 선진국이나 따라가면서 경제적으로 발전만 해야되겠어요? 그런 나라가 되기 위해서 5천년 동안 고생했습니까? 5천년의 역사가 恨많은 역사라면 보람이 있어야 될 것이 아닙니까?제가 볼 때 이 試鍊많은 역사가 어떤 模範的인 나라가 되기 위한 준비과정이었지, 그냥 넘어가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봐요. 지금 우리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무엇인지는 누구나 다 압니다.
정치·사회·경제나 모든 조직에 있어서 다 알고 있어요. 알고 있으면서 새로운 대안, 새로운 변화를 만들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이죠. 그것을 만들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부터 이래서는 안된다는 의식개혁을 하면 되게 되어 있어요. 한국은 정말 큰 발전을 할 수 있는 나라이고 모범적인 나라가 될 수 있는가능성이 있고 잠재력이 있는 등 모든 조건을 갖고 있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가 한국 사람이 된 것이 잘한 거예요, 잘못한 거예요? (청중: 잘한 것이요! 박수)그러면 후회하지 않도록 한번 잘 해봅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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