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수필(참고입니다. 102호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야구장에서 애국가를 선창하고 싶습니다.
한갓 필부필부(匹夫匹婦), 나이까지 들어 여든을 넘겼으나 군을 잊지 못하는 노병 이원우입니다. 저는 전직 초등학교장임을 아룁니다. 코로나가 엄습하기 전만 하여도 군부대에서 장병들을 대상으로 안보 강연을 하면서 '애국가' 바로 부르기를 지도했었습니다. 그것도 제대 60주년 가까운 시점에서 말입니다. 모부대 26사단에서 말입니다.
저는 '애국가'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 있습니다. 창군 이래 처음인 ‘제대 50주년 기념 모부대(母部隊) 장병 초청 콘서트장에서 그들(장병) 30여 명과 함께 '애국가' 제창을 하기도 했습니다. 국방 TV ’우리는 전우‘에서도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제가 교직 생활중 무료로 운영하던(토요 오후) 노인학교와 공군 5전투비행단의 교류 기간에도 그랬지요. ’장병들과 4절까지‘의 그 약속을 어긴 적이 없었지요. 전 국립현충원에 들러 '애국가' 독창도 합니다.
학교에서도 '애국가' 선창은 제 전유물이다시피 했습니다. 초임 교사 시절부터 시작한' 애국가' 선창 겸 지휘는 정년 퇴임 기념 문집 출판 기념회까지 이어졌으니까요.
노인학교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21년 동안 그런 일을 한 사람은 전무후무합니다. 거기서 노인 학생들은 매회 '애국가'를 4절까지 불렀습니다, 딘 한 번의 거름도 없이…. 저와 노인 학생들은 동남아 다섯 개국 여행 시(3회), 그곳 교민회나 한국인 학교, 교민학교 등에서도 '애국가' 4절까지를 목청에 실음으로써 혼연일체가 된 바 있습니다.
게다가 저는 사직 야구장에서 수년 전 극찬리에 '애국가'를 선창했으니, 그게 압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한번 마운드의 마이크 앞에 서고 싶은 간절한 충정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구장에서의 '애국가' 선창이 마치 콘서트장에서 독창하듯 하니 뜻있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정황이 펼쳐지는 즈음입니다. 나머지 일정에 단 한 번이라도 제가 사직 구장에서의 흉내를 내게 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불러만 언제 어디서든 좋습니다. 엎드려 간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