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약한자를
돌아보는자 | 1-4 1 ① 빈약한 자를 권고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저를 건지시리로다
2 ② 여호와께서 저를 보호하사 살게 하시리니 저가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저를 그 원수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3 여호와께서 쇠약한 병상에서 저를 붙드시고 저의 병중 그 자리를 다 고쳐 펴시나이다 4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내 영혼을 고치소서 하였나이다
|
가까운
친구의배신 | 5-9 5 ③ 나의 원수가 내게 대하여 악담하기를 저가 어느 때에나 죽고 그 이름이 언제나 멸망할꼬 하며 6 나를 보러 와서는 거짓을 말하고 그 중심에 간악을 쌓았다가 나가서는 이를 광포하오며
7 나를 미워하는 자가 다 내게 대하여 수군거리고 나를 해하려고 꾀하며 8 이르기를 악한 병이 저에게 들었으니 이제 저가 눕고 다시 일지 못하리라 하오며
9 ④ 나의 신뢰하는바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
최후
승리 | 10-13 10 ⑤ 그러하오나 주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일으키사 나로 저희에게 보복하게 하소서 11 나의 원수가 승리치 못하므로 주께서 나를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12 ⑥ 주께서 나를 나의 완전한 중에 붙드시고 영영히 주의 앞에 세우시나이다 13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송할 지로다 아멘 아멘
|
41편, 빈약한 자를 돌아보는 자
요절 : 1절, 빈약한 자를 권고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저를 건지시리로다.
41편도 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시인데, 9절 말씀을 중심으로 해석되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본문을 인용을 하셔서,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요 13:18) 하고, 이 예언적인 말씀이 가룟 유다로 응하여졌음을 지적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빈약한 자를 권고하는 자”(1)란 그리스도께서 모든 이로부터 배척을 당하셨을 때에 돌아본 자를 가리키는 것이 됩니다. 성령께서 이를 기록케 하심은 다윗이나 가룟 유다를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이 이룰 때에 내가 그 인줄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요 13:19) 하신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41편을 통해서도 그리스도를 만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41편의 역사적인 배경은 압살롬의 반역사건 때에 다윗의 모사였던 아히도벨이 다윗을 배반하고 반역에 가담한데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아히도벨도 가룟 유다의 종말처럼 “스스로 목매어”(삼하 17:23)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첫째 단원(1-4) 빈약한 자를 돌아보는 자의 복
둘째 단원(5-9) 가까운 친구의 배신
셋째 단원(10-13) 원수의 패망과 최후 승리
첫째 단원(1-4) 빈약한 자를 돌아보는 자의 복
① 첫째 단원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자를 돌아보는 자가 받을 축복인데, “빈약한 자를 권고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1상) 합니다.
㉠ “빈약한 자”가 누구를 가리키는가? 1차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다윗을 가리킵니다. 사무엘하 15:30절에 보면,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행하였다” 하고 말씀합니다.
아들도 반역하고, 모사도 배신하는 “빈약”한 처지에 있는 다윗을 “권고한 자”가 친구 후새인데,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 하는 상황에서도, “후세가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무릅쓰고 다윗을 맞으러 온지라”(삼하 15:13, 32) 합니다. 후새는 연약한 자를 돌아보아 다윗이 왕위를 회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것입니다. 그를 “아렉 사람 후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는 이방인이었던 것입니다.
㉡ 그런데 가장 빈약(貧弱)하게 되신 분이 누군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본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종의 몸을 입으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성경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 하고, 그리스도께서 가난한 자의 대표자가 되셨다고 말씀합니다.
㉢ “빈약한 자를 권고하는 자”라는 주제를 구속사라는 맥락에서 보면 어떤 의미가 되는가?
㉮ 여리고의 기생 라합이 정탐꾼을 영접함으로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르는 축복을 받음과 같이, 후세가 빈약한 다윗에게 한 것이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에게 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 신약성경에서는 주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요 12:7) 향유를 붓던 마리아,
㉰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막 15:43) 하여 자기 무덤에 장사한 아리마대 요셉 등은 빈약한 자를 권고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시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가리켜 “가난하고 궁핍한 자”(37:14)라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니라” 말씀하십니다.
②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저를 건지시리로다”(1하) 합니다.
㉠ 1하-3절은 빈약한 자를 돌아보는 자가 받을 축복인데, 이는 마치 사도 요한이 빈약한 자를 돌아본 가이오에게 한 축복(요삼 1:2)과 상통합니다.
㉮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저를 건지시리로다 여호와께서 저를 보호하사 살게 하시리니”(1하-2상) 한 것은, “네 영혼이 잘 됨같이”에 해당이 되고,
㉯ “저가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2하) 한 복은, “네가 범사에 잘 되고”에 해당이 되고,
㉰ “여호와께서 쇠약한 병상에서 저를 붙드시고 저의 병중 그 자리를 다 고쳐 펴시나이다”(3) 한 것은,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한 축복에 해당이 된다 하겠습니다. 얼마나 자상하고도 모자람이 없는 축복인가? 이것이 “빈약한 자를 권고하는 자”가 받을 복입니다.
㉡ 4절에서 다윗은,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내 영혼을 고치소서 하였나이다”(4) 합니다. 다윗이 “빈약한 자”의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은 자신의 죄로 말미암은 것이나, 그리스도께서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죽기까지 복종”(빌 2:7-8)하신 “빈약한 자”가 되심은 전적으로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기 위한 “빈약”함이었던 것입니다.
둘째 단원(5-9) 가까운 친구의 배신
둘째 단원 안에는 “원수(5), 간악한 자(6), 미워하는 자(7), 가까운 친구”(9) 등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빈약한 자를 권고하는 자들”이 아니라, “저가 어느 때에나 멸망 할꼬”(5) 하는, 대적하는 자들입니다.
③ “나의 원수가 내게 대하여 악담하기를 저가 어느 때에나 죽고 그 이름이 언제나 멸망 할꼬 하며”(5),
㉠ “나를 보러 와서는 거짓을 말하고”, 즉 목전에서는 입에 발린 아첨하는 말을 하고, “그 중심에 간악을 쌓았다가 나가서는 이를 광포하오며”(6), 즉 악담을 한다는 것입니다.
㉡ 또한 “나를 미워하는 자가 다 내게 대하여 수군거리고 나를 해하려고 꾀하며 이르기를 악한 병이 저에게 들었으니 이제 저가 눕고 다시 일지 못하리라 하오며”(7-8),
④ “나의 신뢰하는바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9) 합니다.
㉠ 이런 모함과 악담과 배신을 다윗이 당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다윗이 당한 이런 고난을 예표로 하여 그리스도께서 당하실 수난을 예언케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경건히 살고자 하는 성도들에게도 이런 고난이 따르게 될 터인데, “믿음의 주여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말씀합니다.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 12:2-3) 하십니다. 이것이 “가까운 친구의 배신”입니다.
셋째 단원10-13) 원수의 패망과 최후 승리
셋째 단원은 결론적인 말씀인데 중심사상은 “불의는 패망하고, 의가 승리한다”는데 있습니다.
⑤ “그러하오나 주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일으키사”(10상) 합니다.
㉠ “그러하오나” 하는 것은 온 세상이 그를 배척하고 대적하는 절망적인 상황을 가리킵니다. 그런 극한적인 상황이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이고 장사지낸 무덤을 인봉하고 수직하는 자를 세워 지키게 한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 “그러하오나” 하나님이 그를 “일으키사”, 즉 “사망(死亡)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다”(행 2:24) 하고 말씀합니다. 그리하여 “나로 저희에게 보복하게 하소서”(10하), 즉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보복하게 하셨고, 장차는 심판주로 다시 오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다름 아닌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하신 원복음의 성취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원수가 승리(勝利)치 못하므로 주께서 나를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11) 하는 것입니다.
㉢ 전부가 열 세절에 불과한 41편 안에는 “원수”라는 말이 3번(2, 5, 11)이나 등장합니다. “저가 어느 때에나 죽고 그 이름이 언제나 멸망 할꼬”(5) 하는 말이 1차적으로는 다윗을 가리키는 것이라 해도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에 대한 적대감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여자의 후손”에 의하여 멸망당하리라는 선고를 창세기 3:15절에서 선고(宣告)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가룟 유다 속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집어넣은 자는 마귀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 편은 “원수” 사탄과의 영적인 싸움인 것입니다.
㉣ 영적인 전쟁에서 군사들이 붙들고 확신하는 중에 선언(宣言)해야 할 무기는 “그러하오나, 그러나”(10) 하는 말입니다. 성경 역사를 보면 언제나 대적이 승리하는 듯한 상황이 전개됩니다.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 5:20) 하고, 그때마다 은혜로 막아주심으로 의가 승리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 절정이 십자가 사건이요, 온전한 완성(完成)이 “이루었도다”(계 21:6) 하시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인 것입니다.
⑥ “주께서 나를 나의 완전한 중에 붙드시고 영영히 주의 앞에 세우시나이다”(12) 합니다.
㉠ 여기 “붙드시고, 세우시나이다” 하고 말씀하는데,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을 당하여 피난할 때에,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얻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그러나 저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삼하 15:25-26) 하고 말했습니다.
㉡ 그런 다윗을 하나님께서는 다시 일으켜서 세워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완전한 중에 붙드시고, 세우심”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성취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대속과 승리로 말미암아,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서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 20:32) 하고, 성도들을 든든히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우리들도,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송할 지로다” 하고 찬양을 하고, “아멘, 아멘”(13), “진실로, 진실로” 할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수의 패망과 최후 승리”요, “빈약한 자를 돌아보는 자”가 받을 축복입니다.
적용 : 우리들도 빈약한 자들을 돌아봄이 마땅합니다. 그 날에 “주여 내가 어느 때에 이렇게 하였나이까” 하고 묻는다면,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마 25:31-40) 하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묵상
㉠ 41편의 1차적인 배경에 대해서,
㉡ 어떤 구절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적인 말씀인가에 대해서,
㉢ 빈약한 자를 권고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