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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계1:17-20절
제목 : 일곱 별, 일곱 금 촛대의 비밀
1: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1: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1:19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1: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강론 (너무나 영광스럽고 은혜가 되어 수정 보완해서 올립니다)
계시록하면 우선적으로 난해하다는 선입감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암호를 해득한 사람만이 해석할 수 있는 비밀문서처럼 여깁니다. 주님은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마 22:29)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 66권 중 가장 곡해하고 있는 성경이 “계시록”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단들의 발생지가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도 바울은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고전 2:16)고 묻습니다. 그러므로 우선적으로 계시록을 기록하여 7교회에 보내라 하신 주님의 마음, 즉 기록목적에 확고해야만 하겠습니다. 당시 초대교회는 “환난”중에 있었고 계시록을 기록한 요한도 복음을 증언하다가 “밧모”라 하는 섬에 유배되어(1:9) 있는 상황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지금 무엇을 이루어나가고 계시는가? 하나님께서 가장 귀중하게 여기시는 것이 무엇인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관심은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보여주심으로 현재는 고난이지만 장래는 영광이라는 점을 깨닫게 하심으로 격려와 소망과 승리에 대한 확신을 주시려는 것이 기록목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에는 “내가 보니” 등 “보았다”는 말이 무려 54번이나 등장합니다. “계시”(啓示)란 하나님께서 열어서 보여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계시록에서 보여주신 절정이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하면서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21:9-10)한 장면입니다. 요한을 “높은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여주신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이겠습니까?
이점에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신구약이 동일하다는 점입니다. 에스겔서를 보면 구약교회가 바벨론에 “사로잡힌 지 스물다섯째 해”, 그러니까 환난의 한 가운데 있는 상황일 때 에스겔 선지자를 “매우 높은 산 위”로 데리고 가셔서 한 “성읍”(城邑)을 보여주시면서 “인자야 내가 네게 보이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네 마음으로 생각할지어다 내가 이것을 네게 보이려고 이리로 데리고 왔나니 너는 본 것을 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전할지어다”(겔 40:1-4)하고 동일하게 포로 중에 있는 구약교회를 격려하시고 소망을 주십니다.
사도 요한에게 보여주신 “거룩한 성 예루살렘”과 선지자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성읍”(城邑)은 동일한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계 21:3)하고 성취하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미지인 것입니다.
이점을 에스겔 선지자에게는 “너는 본 것을 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전할지어다”하셨고 사도 요한에게는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일곱 교회에 “보내라”(1:11)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에서 열어서 보여주신 계시는 사도 요한만의 것도 아니요, 특별한 사람만의 전매특허가 아니라 모든 교회가 공유해야만 하는 내용인 것입니다.
첫 단추를 바르게 꿰어야만 뒤틀리지 않듯이 계시록 1장을 올바로 인식해야만 계시록을 바르게 접근할 수가 있습니다. 1장만 바르게 깨닫는다면 계시록을 통해서 말씀하시려는 주 성령님의 의도를 절반은 깨달았다 할 것입니다. 그런데 계시록을 해석할 때에 1:19절의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하신 말씀에 근거하여 “본 것”은 1장이고, “지금 있는 일”은 2-3장이고, “장차 될 일”은 4장 이하로 여기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그러나 요한에게 열어서 보여주심으로 “본 것”은 1장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요한이 보고 기록하여 7교회에게 보낸 것은 1장만이 아닌 것입니다.
㉠ 4장에서는 “이 일 후에 내가 보니”(1)하고 하늘 문을 열어서 보좌와 앉으신 이를 보여주시고,
㉡ 5장은 “내가 또 보니”하고 시작이 되는데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6)고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7:10절에서는 큰 소리로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합니다.
㉢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19:11)고, “심판하며 싸우시는” 주님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요한이 보고 기록하여 7교회에 보낸 “네가 본 것”은 계시록 전체요, “지금 있는 일”은 환난 중에 있는 교회요, “장차 될 일”은 성취하실 하나님의 영광으로 보는 것이 계시록의 기록목적과 부합한다 하겠습니다.
이점이 “네가 보는 것을, 일곱 교회에 보내라”(1:11)하고 계시록이 “교회”로 시작하여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22:16)고 “교회”로 마치고 있는 구조에서도 드러납니다. 이처럼 계시록의 중심은 “교회”라는 점에 확고해야만합니다.
성경을 구속사라는 맥락으로 보게 되면 “교회”는 계시록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신구약성경 전체의 중심이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교회가 곧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창 2:8)고 말씀하는데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신”, 이것이 최초의 교회요 하나님의 나라였던 것입니다.
㉡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출 3:8)고 말씀하셨는데 “구속하여 자기 백성”(출 6:7)을 삼으신 자들을 두신 곳이 구약교회요,
㉢ 그리고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 20:28, 16:18)하신 것이 신약교회인 것입니다.
㉣ 그리고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계 21:3)하는 것이 완성이 될 교회요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주님을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이시며”(1:4)라고 증언합니다. 증언하는 시제(時制)가 중요한데 “이제도 계시고”라고 각 시대마다 이제도 계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계시록의 내용이 주님 재림 직전에 되어 질 일들이 아니라 “이제도 계시고”한 모든 시대 모든 교회에 적실성이 있는 말씀이 계시록인 것입니다.
그러면 1장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장은 3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1-9절은 “요한 자신의 증언”이요, 10-16절은 주님께서 “보여주신 계시”요, 17-20절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계시”로 되어 있습니다.
① 첫째로 사도 요한의 증언(1-8)인데 무엇이라고 증언하고 있는가?
㉠ 1:5절에서는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즉 부활하심으로 “첫 열매”(고전 15:20)가 되셨다고 증언합니다. “먼저 나시고, 즉 첫 열매”가 되셨다는 점이 중요한데 왜냐하면 그를 믿는 자들의 부활을 보증(保證)하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셨다”고 증언합니다. “그의 피”란 십자가에서 흘린 피, 곧 우리 죄를 위해서 대신 죽으셨다는 의미입니다.
㉢ 1:6절에서는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증언합니다.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신 것만이 아니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아주셨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하신 목적이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라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창 3:24)한 때에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잃어버리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잃어버렸던 자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시고 그들로 하나님을 섬길 “제사장”으로 삼아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라 하는 것입니다.
㉣ 1:7절에서는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고 증언합니다. 부활 승천이 끝이 아니라 우리를 영접하러 재림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애곡하리니”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을 박았기 때문이요, 끝내 그를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 그리고 요한의 증언은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1:9)하고 마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도 요한의 증언”입니다.
② 둘째로 주님께서 “보여주신 계시”(10-16)인데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11) 7교회에 보내라 하십니다. 그러면 우선적으로 보여주신 것이 무엇인가를 주목해야만합니다.
㉠ 1:12절입니다. 첫째로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즉 제일 먼저 교회를 보여주셨다는 점을 유념해야만합니다.
㉡ 둘째로 그런데 교회만이 아니라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1:13)가 계시는 광경을 보여주셨다는 점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환난 중에 있는 교회에게 주님께서 “촛대 사이”, 즉 교회 중에 계신다는 점을 보여주신 것은 사활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점은 신구약이 동일하다는 점입니다. 출애굽기 3:2절에 보면 하나님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모세에게 나타내셨습니다. 그래서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합니다.
㉢ 그런데 주님의 모습이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13하) 있는 모습으로 계시하시는데 이는 다름 아닌 “제사장”의 복장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제사장으로 자신을 제물로 드려주심으로 우리를 “피로 사셔서,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아주셨던 것입니다.
㉣ 그런데 1:14-15절의 묘사는 제사장의 모습이 아닌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야전군 사령관에 대한 묘사인 것입니다. 왜 이렇게 두 방면으로 묘사하고 있는가? “제사장”은 요한복음의 주님이요, “야전군 사령관”은 “이제도 계시고”한 계시록의 주님이시라는 점을 7교회가 깨닫기를 원해서입니다.
㉤ 이점이 1:16절에서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하는 데서 분명해집니다.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온다”한 것은 복음진리로 싸워주시는 주님이심을 나타냅니다.
“싸워주신다”는 주제도 신구약이 동일합니다. 모세는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신 3:22)고 말하고, 여호수아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이시니라”(수 23:3)고 격려합니다.
계시록 17:14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고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하심은 우리와 함께 싸워주시겠다는 뜻인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7교회에 “보여주신 계시”입니다.
③ 셋째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계시”(17-20)인데 말씀하신 바가 무엇인가?
㉠ 1:17절입니다. 요한은 보여주신 계시를 받고는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오른손을 내게 얹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합니다. 첫 말씀이,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환난 중에 있는 교회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 순교를 당하는 환난 중에도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 “곧 살아 있는 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하시는데 이것이 요한복음입니다.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1:18)하십니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여”(1:19), 7교회에 보내어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하라 하십니다.
㉢ 그러면 요한이 기록해서 7교회에 보낸 핵심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1:20)하십니다. 그러면 “일곱 별과, 일곱 금 촛대”가 무엇인가 하고 묻게 되는데 주님은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계시”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일곱 별, 일곱 금 촛대”를 “비밀”(秘密)이라고 말씀하신다는 점을 유념해야만합니다. 왜냐하면 이점이 계시록의 중심점이요, 해석하는 열쇠와도 같은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① 그러면 교회를 어찌하여 “비밀”이라하시는지 이를 추적해보아야만 하겠습니다. 질문합니다. “교회”는 누구에 의해서 세워지는 것입니까?
㉠ 신약성경에는 “교회”라는 말이 116번 등장하는데 제일 처음 등장하는 것이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주님께서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하신 마태복음 16:18절입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하신 “그리스도”께서 세우시는 것이 교회입니다.
㉡ 그러면 둘째로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어떤 방도로 세우셨는가 하는 점입니다. 요한복음 12:24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하십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자기 피로”로 세우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20:28절에서는 놀라운 말씀을 대하게 되는데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고, 교회가 “하나님의 피로 사신 교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복음서에서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고 증언했는데, “독생하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나타나셔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피로” 세우신 경이롭고 신비한 것이 교회이기에 “일곱 금 촛대의 비밀”이라 하시는 것입니다.
㉢ 그러면 셋째로 이런 “교회”가 누구들로 세워지는가 하는 점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엡 2:14), 즉 유대인과 이방인의 담을 십자가로 헐어버리셨다고 증언합니다.
그리하여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8)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유대인만이 아니라 택함을 받은 이방인들로 세우신다고 증언합니다. 교회를 박해하던 바울 자신도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엡 3:6)가 되리라는 점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② 그러면 “교회”가 왜 필요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 세상에 죄가 들어오지 않았어도, 그리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잃어버리시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어도 임마누엘 하셔서 자기 피로 교회를 세우셔야 했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파괴당했기 때문에 교회가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 그러면 “교회”의 용도가 무엇인가 하는 점은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22절은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일곱 금 촛대”, 즉 교회는 계시록의 비밀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의 “비밀”이라는 점을 인식해야만 교회를 “비밀”이라 하신 뜻을 온전히 이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창세기 3:15절을 원 복음(福音)이라고 말하는데 내용은 사탄에게 하신 선고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복음”이 되는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파괴한 사탄의 머리를 “여자의 후손”으로 하여금 상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시겠다는 뜻이기 때문에 “원복음”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 복음은 “내가--하리라”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하리라”하시는가? 자기 아들을 여자의 후손으로 이 땅에 보내셔서 죽으시고 다시 사심을 통해서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거하실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구약교회는 물론이요, 천사들이라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런데 주 성령께서는 이 비밀을 바울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어 증언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엡 3:3-4)합니다. 그리고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다”(5), 즉 감추었던 비밀이었다고 말씀합니다.
㉮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엡 3:9)이라고 말씀합니다.
㉯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가능해지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비밀”(골 2:2)이라고 증언하고,
㉰ 복음 전파를 통해서 이루실 것이기에 “복음의 비밀”(엡 6:19)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하신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까?
③ “일곱 촛대의 비밀”을 깨달았다면 다음은 “일곱 별”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하는 점입니다. 여기에는 계시록적인 의미와 구속사적인 넓은 의미가 있다 하겠습니다.
㉠ 먼저 계시록적인 의미인데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1:20)하신 교회 지도자를 가리킵니다. 계시록은 다름 아닌 7교회를 향해서 “이기는 자는, 이기는 자는”하고 독려하신 전투하는 교회에 보내진 병법과 같은 문서입니다. 전투하는 교회에는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하시는 것입니다.
㉡ 그런데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하신 뜻을 구속사라는 맥락으로 보게 되면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하신 모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곱 금 촛대”라 하신 교회는 예배당 건물이 아니라 주님의 피로 사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고전 1:2)의 공동체인 것입니다.
㉢ 그러므로 “일곱 금 촛대”를 “비밀”이라고 말씀하신다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비밀이라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5-6절을 보십시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합니다. 얼마나 신비(神秘)합니까!
또한 골로새서 3:3절에서는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하십니다. 성도들이 얼마나 귀한 비밀입니까! 이점을 시편 16:3절에서는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하시고, 이사야서에서는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사 62:3)하십니다. 그래서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1:20)하신 것입니다.
④ 이점에서 교회를 어찌하여 “일곱 금촛대”라 하시는지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아야만 하겠습니다. 계시록은 “모형, 그림자, 예표”로 보여주신 구약성경의 대단원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 “금 촛대”는 스가랴서 4장에서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잔대가 있는데 그 위에는 기름 그릇이 있고 또 그 기름 그릇 위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기름 그릇 위에 있는 등잔을 위해서 일곱 관이 있고”(2)한 반영입니다.
㉡ 이점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일곱 “등잔을 위해서 일곱 관”(管), 즉 파이프가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어디로 연결이 되어 있는가? “금 기름을 흘리는”(12) 감람나무에 연결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말씀하시려는 의미는 분명합니다. 7교회(등잔)에 “금 기름”, 즉 성령을 얼마든지 공급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는 마치 달리는 "자동차"와 같은 데 기름이 떨어질 염려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유소에 연결이 되어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이에 근거하여 교회를 “일곱 금촛대”라 하신 것입니다. 그래도 부족합니까? 그래도 못한다 할 것입니까?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들이 심각하게 명심해야 할 말씀이 남았습니다. 주님은 에베소교회를 향해서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2:5)하십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 즉 촛대를 왜 옮기리라 하시는가?
라오디게아교회에게는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3:20)하십니다. 주님은 “금 촛대 사이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쫓겨난 모습입니다. 그리하여 문 밖에서 서서 문을 두드리시면서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호소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여주신” 주님을 문 밖으로 추방한 원인과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 것입니까? 바로 그 교회 “사자”의 책임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님을 쫓아내고도 쫓아낸 줄도 모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3:17)고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향해서 “촛대를 옮기리라, 토해 내리라”하시는 주님의 심정이 어떠하시겠는 지를 생각해보셨습니까?
그런데 이런 일이 구약교회 당시도 있었다는 점입니다. 바로의 노예였던 자들을 출애굽시키신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출애굽기 29:46절을 보겠습니다.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에스겔 8:6절에서는 “나로 내 성소를 멀리 떠나게 하느니라”고 하나님을 교회 밖으로 떠나게 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 12:7절에서는 “내가 내 집을 버리며 내 소유를 내던져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을 그 원수의 손에 넘겼나니”하십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택하신 예루살렘은 멸망을 하고 영광으로 충만하던 솔로몬의 성전은 불에 탔던 것입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으며 이렇게 한 것이 누구의 책임입니까? 이사야 56:10절에서는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옛날이야기로만 들리십니까?
그러나 주님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선언하십니다. 보십시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2:9)하신 서머나교회가 있고,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3:8)하신 빌라델비아교회와 같은 남은 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 11:5).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하는 교회가 반드시 좋은 교회는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건설이 어떤 방도로 이루어지는지, 하나님께서 가장 귀히 여기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하나님의 비밀인 “교회, 그리스도, 복음”을 보수하는 교회가 이 시대에 남은 자인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우리는 "일곱 금촛대의 비밀과" 영광스러움을 너무나 모르고, "일곱 별"의 영광스러움과 사명의 막중함을 너무나 모르고 있었다는 자책입니다. 그리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금관과 같은 귀중성을 너무나 등한이 여겼다는 점입니다. “교회의 사자” 한 사람이 바로 서면 교회가 바로 서게 됩니다. 그래서 목회자를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이라 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목회자가 주님의 “오른손의 일곱 별”이 되시고 모든 교회가 “일곱 금 촛대의 비밀”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이 교회 위하여 눈물과 기도로
내 생명 다하기까지 늘 봉사합니다. (208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