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을 보라. 앙상한 나목(裸木)의 가지 바람에 흔들린다. 12월 들어 서재의 보스 오디오에 크리스마스 캐럴 CD를 갈아 끼웠다. 대니 라이트(Danny Wright)가 연주한 피아노 캐럴. 대니 라이트는 미국 출신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 빌보드 매거진이 선정한 '뉴에이지 TOP 10 아티스트'다. 대니 라이트의 앨범에는 ’White Christmass'와 ‘The First Noel' 등 13곡의 서정적인 크리스마스 캐럴이 감미롭게 이어진다. 함박눈 내리고 처마 끝에 고드름 매달릴 풍경에 안성맞춤이다. 저마다 이야기를 간직한 크리스마스 트리의 속삭임과 캐럴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솔깃해질 때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찬바람 휘몰아치는 새벽 거리에 울려 퍼지던 거리의 찬양대 목소리를 떠올린다. 그때의 기억이 흥겨운 운율(韻律)을 탄다.
크리스마스 캐럴은 나라마다 다양하다. 북반부 설국(雪國)으로부터 우리와 계절이 반대로 여름인 남반부 대양주와 사철 더운 열대지방 아프리카에서도 크리스마스를 맞는다. 크리스마스 캐럴(Carol)은 원래 크리스마스 때 신을 찬송하던 민중들의 노래다. 캐럴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민중이 야외행사 때 불렀던 노래다. 북한과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에서는 사상과 종교적 이유로 크리스마스 캐럴을 마음대로 부를 수 없고 들을 수도 없다. 남태평양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캐럴을 여름철에 어울리는 가사로 바꿔 부르거나 고유의 전통적인 리듬으로 부른다. 누구나 성탄절이 가까워 오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떠올리며 아기 예수의 오심을 기다릴 것이다. 대림절은 자신을 재발견 하는 시기다.
오스트리아 수도 빈 서쪽의 잘츠부르크는 알프스 북쪽 산허리와 잘자흐 강기슭에 자리 잡은 조용한 도시다. 흰 눈 덮인 ‘소금의 성’과 모차르트의 집,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촬영지로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고풍스러운 중세도시의 미라벨 정원과 게트라이데 거리, 깜찍한 인형극과 상점의 쇼윈도우를 장식한 인형들이 흥미롭다. 지난 날 독일 로맨틱가도를 달린 끝에 들른 아름다운 성(城)들, 모차르트의 선율을 들으며 잘츠부르크의 로맨틱한 분위기가 기억에 새롭다. 아름다운 잘츠부르크의 중세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 잘츠부르크 근교의 마을 오베른도르프의 성 니콜라스 성당에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맨 처음 울려 퍼졌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Stille Nacht Heilige Nacht)’은 잘츠부르크로부터 20km쯤 떨어진 산마을에서 처음 불렀다. 그곳에는 요제프 모어(Joseph Mohr) 신부님과 이웃 마을 아른스도르프의 학교에서 근무하는 프란츠 그뤼버(Frantz Gruber) 선생님이 성당 오르간을 연주하며 살고 있었다. 1818년 성탄절을 앞둔 어느 날. 성 니콜라스 성당의 오르간이 갑자기 고장이 나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 궁리 끝에 모어 신부님의 시에 그루버 선생님이 작곡한 곡으로 서둘러 성가곡을 만들었다. 그 곡이 바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다. 그 해 성탄전야미사에서 신부님이 테너를 맡아 기타를 연주하고 선생님은 바리톤을 맡아 이중창으로 노래했다. 그리고 신자들은 후렴을 넣었다. 훗날 성 니콜라스 성당은 이를 기념하여 성당 이름을 ‘고요한 밤 성당’으로 바꾸었다.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Christ)와 미사(mass)를 합친 말이다. 오늘날 크리스마스는 원래의 뜻은 사라지고 상업적 흥행만 남았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외로운 동심은 홀로 가난하다. 올해도 아이들은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리며 ‘우는 아이’가 되지 않기 위해 애쓸 때다. 300여 개 나랏말로 번역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겨울이면 온돌방 아랫목에서 전설적인 유령 이야기와 톨스토이와 도스토에프스키의 소설을 읽던 때가 좋았다. 성탄절을 맞아 착한 사람들은 잘츠부르크 근교의 산마을 오베른도르프의 성 니콜라스 성당에서 처음 울려 퍼졌던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전설을 되새기며 아기예수의 오심을 손꼽아 기다릴 것이다. 대림(待臨)은 ‘오심’, ‘도착'을 뜻하는 라틴어 ‘앗벤투스(Adventus)에서 유래한 말이다.
먼동이 트면 길 건너 수녀원의 종탑에서 기준종이 울려 퍼지리라. 종소리 따라 광안리 앞바다에는 눈부신 해돋이로부터 만종(晩鐘)이 여는 해넘이까지 거룩한 꿈이 피어난다. 2014년 6월 24일에 투석치료를 시작한 나는 일주일에 세 번, 한 번에 4시간씩 치료를 받는 감사의 은총을 누린다. 12월 들어 646번째 치료를 받기까지 응급에 대비한 아내의 각별한 보살핌으로 연명(延命)하고 있다. 그 간절한 마음과 정성어린 간병이 올해도 기쁜 성탄을 맞게 한다. 나에게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이 믿음이다. 사랑하는 손녀들이 아무 탈 없이 자라는 일 또한 고맙기 그지없다. 매일 같이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 일주일에 한두 편의 영화와 연주회를 즐기며 글쓰기를 계속한다. 치열한 삶이 이어지는 동안 저녁이면 외손녀 유나와 옹알이를 나누고 친손녀 리아에게 사랑의 카톡을 날린다. 지금 겪고 있는 이 모든 시간이 나의 인생을 잇는다. 지금 이 순간도 다 지나가는 것. 이 얼마나 신(神)적인가.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만상이 잠든 때
홀로 양친은 깨어있고 평화 주시러 오신 아기
평안히 자고 있네 평안히 자고 있네
고요한 밤 거룩한 밤하늘의 천사가
기쁜 소식을 알려주니 착한 목동은 기뻐하네
구세주 나셨도다 구세주 나셨도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천주의 성자가
인간 모습을 취하시니 우리 구원을 알림인가
우리 주 강생했네 우리 주 강생했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하느님 사랑을
오늘 우리게 베푸시니 천하 만민은 화해하네
지극한 사랑이여 지극한 사랑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