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동 벼룩시장과 신설동 풍물시장
“체면 차리지 말고 들어와서 신어 봐요!”포대용 비닐 위에 옷과 신발을 수북이 쌓아놓은 아저씨가 소리
친다. 몇 사람이 물건을 살펴보다 돌아서지만 아저씨는 아무렇지 않게“어이~ 잘 가요. 멀리 못 나가요”라며
너스레를 떤다.
이곳에서는 100년은 족히 됐을 법한 축음기부터 최신형 DMB, 외할머니 댁 아랫목에 놓여 있었을 법한
화로와 터키의 세밀화가 그려진 접시까지 모두 구경할 수 있다. 과거와 현재, 이국의 정취까지 우리네
푸근한 정서로 감싸 안은 곳. 바로 황학동 벼룩시장과 신설동 서울풍물시장이다.
글 정민정 사진 김은주
모든 것, 여기에 있다!
없는 게 없다는 황학동 벼룩시장. 그곳에 유일하게 없는 것이 있다. 정답은“장르(genre)”. 골목마다 형성된 좌판에는
이태원에서 비싸게 팔릴 법한 앤티크 소품과 녹이 쓴 철모, 어린시절 가지고 놀던 유리구슬, 고전영화에서 본 듯한
트렁크와 한 장에 천 원 하는 옷가지, 외국서적과 유명 브랜드의 잡화 등 생각지도 못한 물건들이 뒤죽박죽 섞인 채
즐비해 있다. 한 상인의 말처럼 “세상의 모든 물건이 종류별로 하나씩은 있는 셈”이다.
중후한 주인아저씨가 LP판을 정리하고 있다.
황학동의 매력은 그곳에서 볼 수 있는 물건들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하다. 상도동과 상수동에서 왔다는 한 커플은
“사진과 그림을 공부하고 있어서 참고용 서적을 많이 봐야 해요. 그런데 원하는 책이 대부분 외국산이라 비싸요.
그래서 데이트 겸 들러 헌책을 파는 곳 등을 샅샅이 뒤져보기도 하는데 가끔 득템(‘좋은 물건 등을 주웠다’는 의미
의 게임용어)해요”라고 밝힌다. 발품을 팔며 찬찬히 살펴보면 숨은 보물을 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군화에서 오래된 필름 카메라까지 장르구분 없이 다양한 물품들이 구석구석 자리잡고 있다.
또 다른 매력은 착한 가격. 만 원짜리 한 장으로 양손이 가득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가전제품이나 가구 같은 품목을 구입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옷가지는 한 장에 천원~삼천원, 노래 테이프와
CD가 각각 두 개에 천원, 한 장에 천원에 구입 할 수 있고 잔치국수처럼 간편한 요기 거리도 이천원을 넘지않는다.
다양함과 착한 가격은 차치하고, 넉넉하고 여유로운 인심만으로도 황학동을 찾을 이유는 충분하다.
한 상인이 필름카메라를 들고 사진기자를 향해 달려오더니“얼마 받으면 좋을까?” 하고 물었다.
기자가 꼼꼼히 살펴본 후“적어도 6만원은 받아야겠는데요”라고 답하자“그럼 4만원만 받지”라며 돌아서는것이다.
조금 덜 받고 기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이란다. 등단한 지 얼마 안 됐다며 이름을 밝히지 않은
40대 초반의 한 시인은“이곳에 자주 옵니다. 사람들도 풍경도 따뜻해 글을 쓰는 데에 많은 영감을 줘요”라고 전한다.
황학동 벼룩시장은 전통문화의 거리라는 점에서 인사동과 비교되기도 하지만 인사동이 한국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개발에 따라 다소 상업적으로 다듬어져 젊은 세대들이 많이 찾는 반면 황학동은 나이 지긋한
어르신 또는 독특한 것을 찾는 이들의 놀이터로써 전통에 이국적 요소가 녹아든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대형할인마트 같은 신설동 서울풍물시장의 내부
현대의 만물상, 과거를 담다
각종 조각을 판매하는 곳도 있다. 야릇한 불상이 눈에 띈다.
존 레논 같은 헤어 스타일의 아저씨. 감각적인 잡화와 디지털 음향통신기기, 시계 등을 판매하고 있다.
옛날 교과서와 추억의 책받침‘. 이런 걸 누가 사나’싶지만 테마카페 주인과 수집가들에겐 인기만점이라고.
세월이 더해져 더욱 멋있어진 추억의 타자기
신설동 서울풍물시장은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사업을 위해 동대문운동장 내 풍물벼룩시장을 옛 숭인여중
부지로 이주시키며 2008년 3월에 조성되었다. 1층에서는 주로 골동품, 전통가구와 목기, 수석 및 석물,
칠보공예, 금속장신구 및 은제품, 잡화류, 도자기 및 다기를, 2층에서는 음반, 동129;서양화, 서화 및 필방,
인테리어 소품, 화폐 및 우표, 섬유공예품과 성인용품, 명품 재고의류와 브랜드 이월상품 등을 판매하고 있다.
유사 제품군별로 모여 있고, 잘 정돈되어 있어 황학동보다 원하는 물건을 찾거나 구경하기가 편한 것이 장점.
풍물시장 하면 흔히 골동품이 쌓여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하지만 이곳은 골동품으로써의 가치와 실용성이 있는
물건부터 최근에 출시된 제품까지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잡화를 취급하는 한 아주머니는“브랜드가
없으면 잘 팔리지 않아 해외명품이나 국산 브랜드 제품만 싸게 팔고 있다”고 전했다.
전체적으로 대형할인마트 분위기의 실내는 칸으로 나뉘어 칸칸이 다른 점포로 운영되고 있으며,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각 점포마다 다른 시대의 만물상을 보는 느낌을 준다. 신설동 서울풍물시장 역시 황학동 벼룩
시장처럼 넉넉한 인심을 자랑한다. 구경 좀 하겠다는 손님의 말에“구경에는 돈 안 드니 찬찬히 살펴보소”라고
응대한다. 스트라이퍼, 신중현 등 희귀 LP판을 판매하는 아저씨는 사진을 찍겠다고 하자“사람들이 와보고
싶도록 멋있게 찍어 줘요. 어떻게 찍었는지 확인 할 거야”라는 우스갯소리를 던진다.
60~80년대 문방구에서 팔던 학용품과 생활용품도 있어 향수에 젖고 싶거나 추억을 구입하고 싶은
이에게 추천하고픈 장소. 신기하고 다양한 물건들로 호기심을 자극받고 싶은 이에게도 권할 만하다.
찾아가는 길
황학동 풍물시장
6호선 동묘역 3번 출구. 사람들이 많이 나가는 쪽으로 따라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꽤 긴 거리에 걸쳐 시장이 열리기 때문에 편안한 신발을 신고 가는 것이 좋다.
신설동 서울풍물시장
1, 2호선 신설동역 10번 출구에서 동대문도서관 방향으로 150m 정도.
이정표를 따라가다 길을 잘못 드는 경우가 더러 있으므로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찾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