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도장을 만들기 위해선 나쁜 관장님이 되라!
일주일에 2회씩 공권유술 훈련에 참여하지만 격투기 자체를 즐기면서 꾸준히 수련한 결과, 블랙밸트까지 올라간 임사범은 유명호텔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부주방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동양무술에 대한 관심이 많아 취미로 무술을 수련하다가 우연히 한국형 종합격투기인 공권유술을 알게 되어 마니아가 된 케이스 중 한명이었다.
“제가 이탈리안 음식을 맛있게 조리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꼭 선생님을 모시고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싶습니다.”
어느날 임사범의 초대로 자신이 근무하는 호텔의 레스토랑에 나의 가족을 초대했다.
둥근 탁자에 하얀색 식탁보가 깔린 자리를 안내한 지배인은 최고급 레드와인 한 병을 따면서 특별한 손님을 위한 선물이라고 말을 했다.
레스토랑의 특징과 오늘 제공될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동안 풀코스의 요리들이 등장했다.
갓 구워낸 빵, 스프와 샐러드, 에피타이저 그리고 메인요리인 바닷가재 볶음, 달콤한 디저트까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극진한 대접에 부담감이 밀려왔다.
요리가 나오는 중간에 임사범이 주방과 홀을 들락거리면서 요리에 대해서 안내를 했고 식사를 마칠 즈음에는 부드러운 인상의 주방장이 나와서 인사를 했다.
“어떻게 음식이 입맛에는 맞았는지요?”
두 손을 비비며 상냥하게 묻는 주방장의 물음이 떨어지기도 전에 아내는 밝은 미소로 음식 맛에 대해서 극찬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금방 식사를 하고서도 아내와 음식 맛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하며 “오늘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내 덕이라구.”라는 생각에 어깨가 우쭐하기도 했다.
며칠 후 임사범이 훈련을 위해 도장에 들렀다.
맛있는 식사초대에 대해서 고마움을 다시 한번 전하는데 마지막에 허리를 연신 굽히며 인사를 했던 주방장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주방장님이 카리스마가 대단하세요!”
“그렇습니까? 인상이 참 부드럽게 생기셨던데?”
“보기에는 그렇지만 매우 엄격하셔서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꼼짝을 못합니다.”
나는 키도 작고 체격도 왜소했기 때문에 의외라고 생각을 했다.
“주방장님은 밑에 요리사들이 조그만 실수라도 하면 바로 욕이 날아가거나 국자 같은 물건을 집어던지는 것은 예사로 일어납니다. 소리를 지르는데 거의 고함을 넘어서 기합에 가깝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 들어온 신입들은 어리둥절하고 매우 부담스러워 합니다.”
“그런데 임사범님은 부주방장까지 있으시면서 그분을 잘 모시고 계시네요.”
성격이 온순했던 임사범을 잘 알기에 굉장히 까다로운 상사로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을 거라 생각했다.
“처음에는 주방장의 성격이 나와 맞지 않아서 매우 불편했는데 주방장님은 겉과는 다르게 속으로는 참 부드러운 사람이구라고 느낀 적이 있습니다. 어느날 귀빈이 저희 레스토랑에 오신 적이 있는데 막 내어가려던 음식이 나의 실수로 바닥에 쏟아지고 말았습니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던 분이었기 때문에 크게 혼 날을 각오를 했었습니다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웃으면서 넘어갔고 일을 마친 후에도 나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느라고 얼마나 힘드냐는 격려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 아! 이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얘기를 듣는 동안은 아~ 예! 하고 대답을 했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는 별일도 아닌 일 같은데 임사범은 어째서 주방장에게 모든 신뢰를 주고 있는지 언 듯 이해가가지 않았다.
“그때 뵈었을 때 주방장님의 얼굴이 매우 부드럽던데 이후에 성격이 많이 바뀐거군요?”
“아닙니다. 다음날 되니까 오히려 더 심술부리면서 나를 대하던데요. 어디 사람성격이 쉽게 바뀔 수 있나요?”라는 대답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사람들은 어떠한 일을 할 때 항상 보상을 주는 것 보다 가끔씩 보상을 받을 때, 그 행동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부분강화 효과(部分强化)라고 하는데 위의 현상과 일맥상통해 보인다.
가령, 낚시꾼이 낚시의 매력에 빠지는 이유는 가뭄에 콩나듯이 어쩌다 한 번씩 낚게 되는 월척급의 붕어의 손맛 때문이다.
며칠씩 밤을 세워가며 낚시를 해도 붕어새끼 낯짝 한번보지 못하고 꽝을 치고 돌아오는 날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그래도 낚시의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몇 개월에 한번 월척급의 대물을 걸었을 때, 순간의 찰라에서 벌어지는 찌올림의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낚시꾼들은 매주 토요일만 되면 낚시터에서 밤을 세운다.
만약 누구나 물가에 갈 때마다 붕어를 양동이로 한 가득씩 잡는다면 낚시꾼이 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여자들은 나쁜 남자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누구든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는 없다.
다만 처음 어떠한 인연으로 나쁜 남자를 알게 되었고 이 남자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열 번 중 아홉 번 잘못하다가 어쩌다 한번 해주는 감동이벤트, 혹은 평소에 그녀에게 무관심하고 함부로 대하다가 한 번씩 "그래도 내겐 당신뿐이고 오로지 당신만을 사랑한다.“라는 달콤한 말이나 선물등은 여자의 마음을 뒤 흔들어 놓는다.
이쯤 되면 여자들은 그 남자를 쉽게 차버리지 못한다.
즉, 어떠한 일에 대해서 항상 보상을 받는 것 보다 뜻하지 않게 보상을 받았을 때, 그 행동에 감동을 하고 더욱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예를 보았을 때,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공권유술 도장의 관장들은 아주 나쁜 관장님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어린이를 지도하는 수업시간에는 더욱 그렇다.
공권유술도장에서는 어린이를 위주로 운영되는 일선 무술도장들처럼 레크레이션과 같은 놀이는 일체 하지 않고 정통무도에 필요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훈련시키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한 달에 한번 어쩌다 한 번씩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시간에 아이들은 관장님의 배려에 감사함을 느끼고 특별히 할애해준 시간에 감동한다.
공권유술 도장에서는 떡볶이 파티나 과자파티 또는 피자나 치킨같은 간식등을 수련시간에 제공하지 않는다.
어린 수련생들이 도장에 오면 의례히 레크레이션을 통해서 놀이를 해야 하는 것으로 알게 되고 도장만 가면 먹을 것이 산적해 있다는 사실을 인지시키는 것처럼 바보같은 행동은 없다.
수련생들은 관장님을 엄격한 분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것은 수련생들이나 학부모 모두에게 플러스가 된다.
자녀분들을 둔 부모들은 알겠지만 저녁 먹을 시간에 아이들이 밖에서 뭘 먹고 들어와 식사를 안 하게 되면 그것처럼 속상한 일이 없다.
도장에서 나누어주는 주전부리는 아이들은 좋아 할지 모르지만 정작 학부모님들은 달갑지 않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다는 마음에 작은 것을 여러번 지속적으로 해주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은 방법이다.
이것이 반복되면 아이들을 위한 배려가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지도자의 행위가 역효과를 낸다.
일년에 한두번 아이들을 위해 특별 회식을 하거나 생일이나 특별히 기념해야할 아이가 있다면“그동안 열심히 수련해주어서 관장님은 참 기쁘다.”라는 말과 함께 조그만 선물을 주고 안아주는 정도면 충분한다. 그리고 다음날 역시 엄격한 관장님으로 돌아가더라도 아이들에게 관장님은 언제나 영웅이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수련 그 자체에 충실한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이것은 수련생, 학부모, 관장님 모두에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