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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임 <산에 대하여>의 26차 산행지는 김천 황악산이다. 언젠가부터 꾸준히 한국100명산을 추구해 오고 있는 우리 모임은 신년을 맞아 눈산행과 100명산 산행을 겸사겸사하여 선정한 곳이 김천 황악산이다. 황악은 백두대간 상 1,111m의 비교적 높은 위치에 있어 겨울에 눈이 많이 쌓여 있음에 틀림이 없어 정한 것이다. 서울 친구들은 기차를 타고 김천에 내려서 직지사로 들어왔고, 경주에서는 승용차를 가지고 왔다. 특히 이번 산행에는 경주고산악부 3년생 3명이 따라왔다. 추운 날이지만 멋진 산행이 될 것으로 기대들하고 오른다.
대찰 직지사 앞 상가지역. 이 상가지역 속 골목에는 산채정식 식당거리가 있다. 수십가지의 산나물이 나오는 것으로 유명한 지역인데 오늘 산행 후에 먹게 될 지는 아직 모른다. 김천에는 산채정식 외에도 전국적으로 유명한 지례 흑돼지가 있기 때문이다.
직지사 입구의 현판에 이렇게 쓰여져 있다. 東國第一伽藍黃嶽山門直指寺.............라. 한마디로 한국 최고의 사찰이라는 말이다. 나 빼고 산행에 참가한 사람들이 모두 섰다. 경주팀, 서울팀, 경주고산악부팀...............이다.
박종화 선생이 50년대에 쓴 <임진왜란>을 보면 왜적 5만 대군을 맞아 싸우는 추풍령 전투장면이 나온다. `황간의 의병대장 장지현은 천여 의병을 거느리고 추풍령에 당도하여.............(중략)..............호피를 씌운 황소 꼬리에 불을 부쳐 적진에 돌진시키는 등 신출귀몰의 전략에 시달리던 적병이 인해전술로 5만 명을 한꺼번에 투입하는 통에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말았다.`............는 대목에서 등장하는 추풍령. 지역으로 치면 이곳 경북 김천 황악산 기슭이다.
황악산문에 들어서려니까 커다란 바위 하나가 문 왼쪽에 서 있다. `직지사시비`다. 1960년대 한국의 대표적인 시조시인인 정완영 선생의 시다. `백수(白水)`라는 호를 가진 정완영 선생은 한국문학상과 가람시조문학상, 만해시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정완영 시인은 박재삼(朴在森), 이태극(李泰極) 등의 시인과 함께 한국 현대시조의 중흥기를 이끈 사람 중 하나다.
-직지사-
매양 오던 그 산이요.
매양 보던 그 절인데도
철따라 따로 보임은 한갓 마음의 탓이 일까.
오늘은 외줄기 길을 낙엽마저 묻었고나.
뻐꾸기가 너무 울어싸 절터가 무겁더니
꽃이며 잎이며, 다 지고, 산 날이 적막해 좋아라.
먹물 장삼을 입고 숲을 거닐자
오가는 윤회의 길에 승속이 무에 다르랴만
높은 산 뫼론 나무에 기거(起居)하는 흰 구름
인경은 울지 않아도 山岳(산악)만한 둘레이고
은혜는 뵙지 않아도 달만큼은 둥그느니
문득 온 산새 한 마리 깃 떨 구고 가노 메야
-정 완 영-
시인 정완영은 호가 백수(白水)로 김천시 봉계면 출신이다. 1962년에 조선일보에 <조국>이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전통적인 제재로 전통 정서인 恨을 읊은 시인이었다. 형식면에서 이영도 시조시인과 같이 구별배행시조를 많이 창작앴으며 온겨레시조짓기추진회 회장을 역임했다. 시조집으로 <채춘보> <묵로도> <산이 날 따라와서> 등이 있다.
직지사에서 내려가는 길목 어디쯤에는 유주현 선생의 역사소설 <황녀>의 배경지가 있다고 했다. 고종의 딸임을 숨기고 황악산 기슭의 방앗골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는 내용에 나오는 방앗고개, 사람들은 그곳을 `방앗재`라고 부른단다. 직지초등학교 근처 어디쯤이라는데, 쉽게 찾기가 어렵다. <황녀>의 주인공 이문명이 그러했든, 직지사 근처 어느 고개에 `방앗재`가 남몰래 숨어 있으리라 짐작할 밖에..............
직지사는 “문자에 의존치 않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른다” (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 ) 라는 어언 에서 이름이 유래되었으리라 생각된다. 내가 알기로............ 선종의 요체가 바로 저 언어들이다. 말하자면 깨닫는 데에 세상적 지식은 오히려 방해가 된다. 헛된 세상 지식으로 무장하지 말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라. 그리하여 그 사람의 본성을 보면 부처가 된다.............이런 뜻일게다. 나도 예전에 불경 공부 좀 했으므로 조금은 안다. ㅋㅋ
견성의 마음으로 법, 불, 승, 에 귀의하는 마음을 아는지 화강암으로 만든 샘터에서 물이 철철 넘쳐, 세속의 번뇌와 먼지를 모두 씻고 오르라고 생각이되어 넘치는 물에 마음으로나마 몸을 씻고 일주문으로 갔다.
동국 제일 가람인 직지사는 고구려의 아도화상이 지었다는 설이 있으나 현재 사적비가 허물어져 확실한 것은 알 수 없고, 418년(눌지왕 2)에 묵호자(墨胡子)가 경북 구미시에 있는 도리사(桃李寺)와 함께 창건했다고 전한다. 그 후 645년(선덕여왕 14)에 자장(慈藏)이, 930년(경순왕 4)에는 천묵(天默)이 중수하고, 936년(태조 19)에 능여(能如)가 고려 태조의 도움을 받아 중건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불에 거의 타버려 1610년(광해군 2)에 복구에 들어가 60여 년 후 작업을 끝맺었다고 전한다.
고려시대 능여대사 말고도 조선시대에 학조(學祖)가 주지로 있었고, 사명대사 유정(惟政)이 여기서 승려가 되었다. 경내에는 석조약사여래좌상(보물 319), 대웅전 앞 3층석탑(보물 606), 비로전 앞 3층석탑(보물 607), 대웅전 삼존불 탱화 3폭(보물 670), 청풍료(淸風寮) 앞 3층석탑(보물 1186) 등의 문화재가 있다
직지사 안에 있는 그 많은 문화재를 다 찾아 볼 수는 없고 지나가다 만나는 직지사 비로전앞 삼층석탑만 올려본다.
이 삼층석탑은 1976년에 보물 제607호로 지정되었다. 근처에 있는 직지사 대웅전앞 삼층석탑(보물 606)과 같은 경북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 도천사 절터에서 1974년에 직지사로 옮겨왔다. 3탑식의 가람 배치 사찰로 추정되며, 일설에는 도선국사(道詵國師)가 도천사를 창건할 때 조성하였다고 전해진다. 석탑의 양식은 직지사 대웅전 앞의 석탑 양식과 동일하다.
직지사 지나 돌다리를 건넌다. 예전에는 산길이었는데 지금은 주변의 암자로 통하는 길들이 잘 닦여져 있다.
황악산 등반로는 운수암을 거쳐 백두대간 능선으로 올라서는 방향으로 되어 있다. 황악산은 서남쪽에 연봉을 이룬 삼도봉(三道峰:1,176m)·민주지산(珉周之山:1,242m)과 함께 백두대간(일본식으로 하면 소백산맥)의 허리부분에 솟아 있다. 주봉인 비로봉과 함께 백운봉(770m)·신선봉(944m)·운수봉(740m)이 치솟아 있으며, 산세는 평평하고 완만한 편이어서 암봉(岩峰)이나 절벽 등이 없고 산 전체가 수목으로 울창하다. 특히 직지사 서쪽 200m 지점에 있는 천룡대로부터 펼쳐지는 능여(能如)계곡은 대표적인 계곡으로 봄철에는 진달래, 벚꽃, 산목련이 볼 만하고 가을철 단풍 또한 절경을 이룬다. 그밖에 내원(內院)계곡과 운수(雲水)계곡의 경관도 뛰어나다.
북쪽의 괘방령과 남쪽의 우두령을 통해 영동군과 김천시를 잇는 지방도가 지난다. 정상에서는 서쪽으로 민주지산, 남쪽으로 수도산과 가야산, 동쪽으로 금오산, 북쪽으로 포성봉이 보인다.
이제 운수암 근처에 이른다. 모두들 죽죽 쳐져서 따라오고 있다. 발이 빠른 전종성과 고등부 아이들이 앞에 갔음은 물론이다.
운수암 지나서부터 이제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된다.
서서히 비탈은 가팔라지고..............
이제 아주 계단이다.
뒤에서 따라오는 김경배
가파른 계단식 비탈을 올라 드디어 백두대간에 섰다. 황악산은 백두대간 상에 있다. 민주지산 삼도봉에서 북으로 올라오는 백두대간은 우두령(질매재)을 지나 바로 황악산에 들어온다. 대간은 황악산을 지나고나서 엄청나게 고도를 낮추어 괘방령을 통과하면서 바로 추풍령으로 떨어진다. 백두대간 구간 중 가장 고도가 낮은 지역이 추풍령이다.
잠시 좀 추스리고.........간식 먹고...........
서서히 정상부가 보인다. 저기 보이는 봉우리를 몇개 더 넘어야 정상이다.
능선이지만 더욱 가팔라진 경사를 힘차게 오른다. 앞에 선 이정은 예상치 않은 파워를 보여준다. 산을 잘 못타는 줄 알았는데 최근에 보면 그것도 아니다. 그는 박태환을 길러낸 노민상 코치와 같은 시대, 오산고 수영부 출신이다. 거의 동기 쯤 되지 싶은데.............
영차, 영차..........눈길은 평소보다 훨씬 더 힘이 든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발목에 힘을 줘야 되기 때문이다.
주능선
사진 촬영하는 것도 몹시 힘이 든다. 이렇게 추운 날에는 더욱 그렇다. 정상에 올라보니 왼손 집게 손가락 상단부에 퉁퉁 부어오른 것이 동상 끼가 보였다.
자! 또 오르자. 황악산도 악(嶽)자가 붙었다. 악자 붙은 산치고 어디 쉬운 산이 있더냐? 설악, 치악, 월악................한마디로 악! 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팀.
또 오르자!
선두가 바뀐다. 시끄새가 앞으로 치고 나온다.
시끄새, 단미, 이정, 서브리더 석천이 따라온다. 이게 맨 후미이다. 오르기를 즐기는 기타맨과 김경배는 고등부대원들과 저 앞에 가고 있다.
아래 위로 중무장한 단미가 잠시 숨을 고른다.
믿음직한 사나이 석천. 그는 경주사람으로 내가 이 모임에 들인 사람이다. 그는 산심이 좋고 마음이 넓어 산행 친구로는 적격이다. 예전 어느 산모임에 같이 있었을 때 서로 정을 주고 받다가 그 모임이 해체되고 난 뒤 최근에 다시 만났다.
이제 김천 분지가 내려다 보인다.
오르는 길이 멀기도 하다. 우리는 여전히 오르고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쓰산한 겨울 산
막바지 된비알을 쳐 올린다. 이제 고도감도 있고 사진도 좀 나온다.
오르다 잠시 쉬는 팀들.
이 대간 길은 충북과 경북의 경계선인데 오르면서 우측 발은 충북 영동을 밟고 왼발은 경북 김천을 밟고 간다. 시끄새가 잠시 두발 다 충북 영동으로 들어갔다가 깊은 눈속에 빠지고 만다. 눈이 허리까지 쌓였는데 대간 길은 사람들이 밟아서 빠지지 않는 것이다.
황악산 동쪽 산줄기가 앞에 드러난다.
부지런히 따라오는 대원들. 정상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벌써 3시간 째 올라오는 데 말이다.
단미가 힘을 내기 시작한다.
이제 거의 다 온 것 같다.
황악산 정상이다. 높이가 재미있게도 1,111m이다. 삼척 응봉산이 999m이고 황악산이 1,111m이다. 쉽게 기억되는 수치이다.
김천시가 내려다 보인다. 김천은 경북 남서부지역의 사회·문화·산업·행정·교통·관광의 중심지이다. 김천의 동쪽에는 금오산(金烏山:977m)이 솟아 있고, 서쪽에는 황악산(黃岳山:1,111m)이 추풍령과 이어져 충북과 경계를 이루며, 남서 방향으로 백두대간의 일맥이 험준한 산악지대를 이룬다. 특히 민주지산의 한 봉우리인 삼도봉(三道峰:1,176m)은 충북, 전북, 경북의 3도가 합쳐지는 지점이다.
대덕산(大德山 1,290m)에 이어지는 험준한 산지가 전북과 경계를 이루고, 국사봉, 수도산, 단지봉에 이어지는 산지가 경남과 경계를 이룬다. 남동부에서는 성주군과의 경계에 형제봉(兄弟峰:1,022m)·염속산, 백마산, 염암산이 이어져 금오산에 이르고, 북으로는 광덕산, 백운산, 국수봉 등이 구릉지대를 이루며, 추풍령·면목령·주치령·우두령 등의 고개는 주요 교통로가 된다.
단미도 정상에서 미소를...............
이정............그는 우리가 졸업한 서울 무학국민학교 동기회장이다.
산정에서의 점심식사. 하지만 너무 추워 장갑이 없는 내 손을 무척 괴롭힌다.
전종성과 김경배
석천, 시끄새, 그리고 이정이다.
같이 참여한 경주고산악부 3명...........권기원, 김영민, 하석주.
점심 먹고 다시 올라온 길을 내려간다. 내원계곡이 폐쇄지역이라 눈이 엄청나게 쌓였지 싶어 올라온 길로 되돌아 내려간다. 다른 길이 없다.
대간에서 탈출하자 마자 바람도 잦아 들고 눈도 적다.
이런 가파른 계단으로 올라왔었지? 추워서 가파른지도 몰랐다.
하산 후, 서울 팀중 전종성만 서울로 가고 3인은 경주로 왔다. 내일이 일요일이라 시간이 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로 경주로 와서 동천동의 오이시이로 간다. 오이시이 이승철 사장에게 가지고 있는 먹거리를 다 내어 놓으라니까 과메기부터 나온다. 서울 친구들은 이 음식을 신기해 한다. 허영만의 <식객>에서 소개된 이후로 전국적으로 과메기는 인기 음식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조심하라. 우리 딸아이 약국에 오는 식중독 손님 중 상당수가 이 과메기를 먹고 탈난 사람들이다.
어릴적부터 친구인 김경배와 문성호. 그들은 국교시절에 과외를 같이 한 친구들이다. 이른바 부르조아들이다. 나? 과외를 한 적이 없다. 먹고 살기도 바쁜 데 무슨 과외냐? 그때만 해도 과외는 부르조아들이 하는 짓거리들이었다. 난 과외 안해도 명문고교 나왔다. 경주고!!
김경배가 엄청 좋아하는 연어무침. 갑자기 온 관계로 좋은 연어를 준비했는 지는 모르겠지만 왕창 나왔다. 모든 음식이 그렇지만 특히 연어는 나이가 들어서야 그 맛을 아는 음식 중 하나이다. 젊은이들은 연어의 맛을 잘 모른다. 물을 거스러 오르는 그 엄청난 이력의 역사도 잘 모른다.
석천과 이정
그리고 마지막 피날레................얼씨구 절씨구............어크! 팁도 좀 나갔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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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의 마지막 컷은 노래방이네요. 황악산 잘 보았습니다. 근데 정상주 치고는 너무 초라한 소주...최소한 발렌타인 21 정도는 되야지 않겠습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