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작가가 나누는 대화가 아주 깔끔하고 깊이가 있고, 구수하였다. 목소리가 차분하였지만, 진솔한 내면이 담긴 언어들이었다.
몇 가지 가슴에 와 닿았던 말들을 옮겨보면,
1 에스 에프는 과학이 아니다. 경이감이다.
아, 우선 이 말이 와 닿았다. 그렇다. 과학을 넘어 경이감을 줄 때 문학의 범주로 들어올 것이다. 경이감에 대해 참 많은 생각을 해 봐야 겠다. 경이로움을 불러일으키려면 어떤 시공간, 어떤 문장의 힘, 언어의 리듬, 사유의 깊이, 상상력의 기발함이나 독특한 사유를 비롯해서 하여튼 이런 저런 다양한 요소들이 개입되어 있을 것이다. 어느 것 하나라도 작동을 해야, 과학이라고 하는 논리를 넘어 경이의 세계로 흘러들어갈 수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저 경이의 세계쯤에서 판타지와 에스에프의 경계도 흐릿해지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도 싶은데....
2
아이고 또 잊어버렸다. 무슨 만화책이라고 했는데, 뒷풀이에서 그렇게 확인까지 했건만.
하여튼 김보영 작가가 10여년전에 이 만화를 읽을 때는 이상했던 지점이, 시간이 지나서 읽으니까 하나도 이상하지 않더라는 것.
그게 뭐냐면 애인이 생기니까 참 좋다고, 이렇게 좋다고 하는데, 아이들 만화인데 그 애인들이 동성애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어떤 경이감 같은 것, 놀라움 같은 것은 시간이 지나면 평범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에스 에프의 운명과 같은 것이라고 말을 하는데, 여기서도 무언가 가슴이 짠해졌다.
그렇구나. 늘 경이감에 휩싸여 있는 건 없을테지.....
어떤 사라진다는 것, 희미해진다는 것, 에스 에프의 경이감이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진다고 할 때는 무언가의 슬픈 정서 같은 것, 존재의 운명 같은 것, 운명을 받아들이는 사유 같은 것, 우주와 하나가 되는 깊은 에너지의 울림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
억지로 계속해서 독특하고 경이롭기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범해지는 것에 대한 아름다운 예찬 같기도 하고,
결국은 일상의 평범함으로 돌아오는 더 깊은 우주의 원리가 있다는 것 같기도 하고......
에스에프라고 하는 장르 문학의 한 운명은 결국은 평범으로 돌아오는 세계를 지향한다는 것, 궁극에는.... 그래서 그 기이함이 평범이되는 세상에 대한 어떤 예지 같은 것이 아닐까도 싶고.
전복이 결국은 평이한 세상의 중심이 되는 것이고, 거기에서 다시 전복하고 경이로움이 생겨나고....
계속 시간이 지나가도 평범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에스 에프가 아니라, 판타지라는 것, 이것도 재미있는 말이었다. 그렇지도 모르겠다.
3
에스 에프를 쓴다고 너무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디테일을 쓰지 마라.
모든 이야기는 하나의 순간을 위해 존재한다.
아, 이 말에서도 무언가 아하가 온다.
4
<어둠의 속도>라는 작품도 한번 읽어봐야겠고, <앨저넌에게 꽃을>도 참 좋은 작품이었다.
5
하나를 경험하고 그걸 일반화시킬 수 있는 게 인간인데, 이런 점이 인간의 장점이면서 또한 한계이기도 하다.
그렇다. 얄팍한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시켜서 엄청난 착각과 고집과 주장을 일삼고, 그것이 거대 자본이나 권력과 결탁을 하면
엄청난 부작용을 일으킬 테니까.
예를 들어서 요즘 국정교과서 반대를 하는 목소리가 많은데, 이런 국정교과서 반대의 목소리도 북한의 지령 때문이라고 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단다. 한겨레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난 걸 보고, 바로 저런 사람들이 정말 말도 안되는 억측의 논리를 일반화시키려는 사람들이니, 인간의 장점을 저렇게도 쓰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게 먹힌다.
정말 대중은 왜 저렇게 파시즘을 욕망하는지 모르겠다.....
저 심리는 무엇일까.
6
자기의 소설을 쓰는 것이지, 누구에게 맞추기 위해 쓰는 건 아니다.
7
끝으로 박상준 선생이 작가에게 실패란 없다. 자신의 삶 전체가 글쓰기의 재료가 될테니까.
이런 말도 참 가슴에 와 닿았다. 그렇다. 작가에게 실패란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삶 그 자체가 그냥 글쓰기의 온통 재료가 될 터이니, 삶에는 실패도 없고 성공도 없다. 그냥 흘러가는 우발적인 마주침의 연속일 뿐....
첫댓글 제2회 어린이와 문학 SF특강이 마무리되었습니다.4강이 진행되는 동안 내내 자리를 지켜주신 이재복 선생님께서 이야기밥 카페에 후기를 올려주셨습니다. 그 내용을 허락을 받아 어린이와 문학 카페에 옮깁니다.
그리고 이재복선생님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만화는 카드캡터 체리입니다.
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의 시적인 감상으로 다시 들으니 더 감동인 듯 싶습니다!
저도 박상준 선생님의 말씀이 계속 떠오르더라고요.
그러니 작가의 하루는 실패가 없을 거라는...
후기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