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순탄하지 않은 준비작업
2001년 10월 11일 강윤철 거사로부터 관정 스님이 대구공항을 통해 입국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일정을 조절하는 과정에서 될 수 있으면 시간을 가지고 준비할 수 있도록 뒤에 넣어달라고 부탁하여 11월 12일에 오셔서 3~5일까지 우리 절에서 법회를 갖기로 결정하였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준비 기간은 만 20일밖에 없으니 어찌 되었든 그 안에 모든 일을 해내야 한다. 단 한 번도 이런 행사를 해 본 경험이 없었지만 나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최선을 다했다. 우선 장소를 정해야 했다. 그러나 한창 가을이기 때문에 큰 곳을 체육대회다 동창회다 해서 이미 몇 달 전부터 예약이 되어 장소 찾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날짜는 이미 결정되었고 나는 발원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조용히 앉아 정에 들어보면 이 행사는 100% 성공한다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총무인 명심화 보살, 김재기 거사, 성불 보살을 비롯하여 모든 임원들이 적극적으로 돕기 시작하자 일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였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해 낸 일이 법회 장소를 마련한 것이다. 성불 보살의 형부 친구가 새로 생긴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인데 그 체육관을 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순천 왕지 초등학교는 순천시 조례동에 있는 초등학교로, 2000년 1월 7일 설립인가를 받아 2000년 3월 2일 21학급으로 편성되어 개교하였다. 개교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아 오히려 우리에게 기회가 온 것이다. 한편 새로 근대식 건물을 지었기 때문에 시설이 아주 좋아 정말 좋은 장소를 얻을 수 있었다.
다음은 어떻게 알리느냐 하는 홍보문제였다. 이 문제는 총무가 직접 각 절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바로 순천사암연합회를 찾아가 전후 사정 이야기를 하고 도와줄 것을 요청하였다. 사암연합회에서도 걱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른 큰 행사도 안 되는데 스님이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절의 역사도 일천하고, 스님 절도 아니며, 소임을 맡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큰 행사를 성공시킬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순천사암연합회 이름으로 유명하신 법정 스님이나 박완일 법사님을 모셔 행사를 해보았지만 다 실패했습니다. 사람이 모이지 않습니다.”
나는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결심을 말씀드렸고, 열심히 해 볼테니 믿고 후원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드렸다. 그래서 금당절이 주최를 하고 사암연합회에서 후원단체가 되어주기로 결정하였다. 이처럼 사암연합회가 후원 단체가 되어 준 것이 우리 절로서는 날개를 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4) 기적처럼 성황을 이룬 법회
드디어 행사 날이 다가왔다. 11월 2일 관정 스님이 전주쯤 오셨을 때 신도들이 꽃다발을 만들어 가지고 거기까지 가서 모시고 와 우리 절 1층에 일행을 머무시게 하였다. 행사는 3일간 계속되었다.
11월 3일(토) <法會> 토요일 오후 2시: 마정수기 법회
(순천 왕지초등학교 체육관)
11월 4일(일) 10시: 관정스님 친견법회(순천 금당절 대웅전)
11월 5일(월) 10시: 마정수기(순천 금당절 대웅전)
가장 중요한 행사는 역시 첫날 왕지초등학교 체육관 행사였다. 교장선생님께서 의자가 300개 있다고 해서 300개를 모두 배치했다.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고 뜻밖에 불교 용품을 파는 부스들이 들어와 승복이나 액세서리 같은 것을 팔기 시작했다. 행사의 성공을 알리는 서막인 것이다. 장사들이 우리보다 훨씬 더 예측을 잘 하기 때문이다. 행사 시작 시간이 되자 의자는 물론 서 있는 사람들이 몇 배 더 많아 큰 체육관이 꽉 찼다.
“아! 이것이 무슨 기적인가?”
대중들이 어림잡아 1,000명을 넘었다. 순천, 여수는 물론이고, 서울 . 부산 . 경남 . 남원 등지에서 관광버스를 내서 수많은 불자들이 몰려온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된 것인가? 일개 절에서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순천사암연합회가 후원하고, 또 장소도 우리 절이 아니라 학교 체육관에서 했기 때문에 모두가 참여하여 성공을 거두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송광사 . 화엄사 . 선암사 같은 큰사찰에서 직접 플래카드를 지원하여 걸어주었고, 우리는 보도자료도 내지 않았는데 그 플래카드를 보고 불교방송과 법보신문 같은 데서 기사로 취급해주어 전국에 알리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20일 사이에 불교 행사에서 1,000명 이상을 모은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더구나 순천이란 지역이 우리나라의 중앙에 있지도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더 그러하다. 그만큼 우리나라 불자들이 깨달은 선지식에 대한 갈증이 크다는 것을 웅변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리 준비한 50명의 합창단 찬불가로 시작하여 행사가 장엄하게 시작되었다. 본사 스님과 흥국사 스님이 축하의 말씀을 하여주셔서 행사를 더욱 빛나게 해주었다.
한 시간쯤 극락 다녀온 이야기와 극락에서 하는 염불법을 직접 들려주시고 이어서 마정수기가 진행되었다. 하루 종일 마정수기를 하고 가을 해가 넘어가는데도 끝이 없다. 할 수 없이 마이크로 아직 못하신 분은 내일 금당절로 오시도록 안내를 했다. 그래서 다음날 일찍부터 하루 종일 금당절에서 마정수기를 했지만 다 못하고 결국 다시 하루를 더해 3일을 꼬박 다 채우고서야 마정수기를 마칠 수 있었다.
행사를 마치고 관정 스님도 아주 마음에 들어 하셨다. 자기가 지금까지 다녀보았지만 여기처럼 완벽하게 준비한 곳을 보지 못했다며 칭찬해 주셨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벅찬 일이었지만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의 환희심은 비길 데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무슨 힘으로 그렇게 밀어붙였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 당시의 위치나 주변 환경으로 봤을 때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해낸 것이다. 이는 분명히 내 힘이 아니라 부처님 가피라고 생각한다. 꿈에 중국말이 들렸던 것부터 시작해서 생각지도 않은 중국 스님의 행사를 마친 것을 연결해서 보면 무언가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법회가 끝나고 사암연합회에 가서 감사의 말씀을 전하자 모두 좋아하시면서 두 번이나 축하박수를 보내주었다. 처음 소임을 맡은 새내기 주지가 큰일을 성공적으로 끝낸 것에 대한 칭찬이었던 것이다.
3일 동안 뵌 관정 스님을 내 경계에서 뭐라고 말씀 드릴 수 없지만 그때까지 화두참선만 으뜸으로 생각했던 내가 부처님의 명호 가피를 받으면 정토선이 가장 빠르다는 것을 심어주신 선지식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포교 일선에서 그 어려운 선을 가지고 어떻게 신도들을 이끌 수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나에게 포교를 위한 큰 방편을 주신 큰스님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나모아미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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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무량공덕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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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