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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에는 고대 한반도인들의 일본 열도 개척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와 관련된 유물/유적과, 벼농사, 문자, 언어, DNA 등의 상관 관계들에 알아 보겠습니다.
1. 일본 열도에서의 고조선 청동기, 고인돌의 발견
일본의 야요이시대라고 하는 초기 역사의 도래인의 정체는 기원전 3세기 경의 고조선인들이며, 그들이 일본 열도로 이동하여 벼농사, 청동기, 문자를 제공하였습니다. 이런 증거들은 유물에서 나타나는 데 일본 큐슈 후쿠오카(福岡)에서 발견된 청동기와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서로 비교해 보면 동일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는 서로 동일한 문화를 가진 계통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또한 고조선의 다른 표지 유적인 고인돌이 발견됨으로 이는 고조선 시기 일본 열도 진출을 말해주는 그 증거 유적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주로 남방식 고인돌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전라남도 고창의 것과 거의 유사한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반도인들의 일본 열도로의 문화의 이동과 전파 경로는 한반도 남부에서 대마도(쓰시마)와 이키섬을 거쳐 북큐슈 지역을 통해 전파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본 열도로 가는 이동 루트는 중국의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從郡至倭, 循海岸水行, 歷韓國, 乍南乍東, 到其北岸狗邪韓國, 七千餘里. 始度一海, 千餘里至對馬國...又南渡一海千餘里, 名曰瀚海, 至一大國...又渡一海, 千餘里至末盧國
(대방)군에서 나아가 '왜'에 이르는데, 물로 가서 해안을 따라 돌면 '한국'(삼한)이 나오고, 남쪽으로 가다 동쪽으로 가면 '구야한국'(금관가야)의 북쪽에 이르러 거리가, 칠천여리나 된다. 처음 하나의 바다를 건너 천여 리에 '대마국'(대마도)에 이른다. 또 [대마국에서] 남쪽으로 바다 1천여 리를 건너는데, 이름은 한해(瀚海) 라고 한다. [1천여 리를 건너면] '일대국'(이키섬) 에 이른다. 또 바다 하나를 건너서 1천여 리를 가면 '말로국'(북큐슈 지역) 에 이른다.
『삼국지三國志』「위서 동이전魏書 東夷傳 倭」
제러드 다이어몬드(Jared Diamond)에 의해 1998년에 발간되어 퓰리쳐상을 수상한 세계적 베스트셀러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의 2003년 한국어 개정증보판에는‘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제목의 추가 논문이 게재되어 있습니다. 논문의 요점은 현대 일본인 대부분이 현대 한국인 대부분과 유전적 동질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 즉 기원 전후 몇 백 년 사이 한반도에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일본 섬으로 건너가서, 인구 증가 과정을 거쳐 현대 일본인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설은 고고학적 증거나 DNA 분석과 같은 생물학적 증거들에 의해 뒷받침 됩니다.
2. 고조선인(야요이인)의 대표적인 유적 큐슈 요시노가리
일본 야요이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큐슈 요시노가리 유적지 소개 내용에서는 일본 열도의 벼농사 기원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紀元前5世紀から紀元後3世紀までの弥生時代は、日本で稲作の文化が始まり、定住文化が根付いた日本の文化の原点ともいえる時代です。
“기원전 5세기부터 서기 3세기까지의 야요이(彌生)시대는 일본에서 벼농사문화가 시작되고 정주(定住)문화가 뿌리 박힌 일본 문화의 원점이라고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요시노가리 역사공원』, 요시노가리 유적 소개 (한국어 홈페이지에서는 기원전 3세기 부터, 일본어 홈페이지는 기원전 5세기로 기록)
그런데 요시노가리에서 발견되는 이런 집터의 형식은 충청남도 부여의 송국리 유적지와 유사하며 요시노가리 유적지에서 발견되는 유물들은 한반도 고조선 시기의 유물과 일치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한민족의 일본 열도 이동으로 시작된 벼농사, 청동기를 특징으로 한 야요이 문화는 세토 내해를 통해 동쪽으로 전해졌는데, 현재 후쿠오카와 가라쓰, 요시노가리, 그리고 세토 내해의 오카야마, 킨기 지방의 나라 분지에 전해졌으며 이를 바탕으로 쿠니들이 세워졌습니다. 수도경작은 기원전 2세기 이후에는 주부 지방에 보급되었고, 1세기 전까지 간토와 도호쿠 남부에 전파되었습니다. 최종적으로 3세기까지 도호쿠 북부까지 벼농사가 전파됨으로써 홋카이도를 제외한 고대 일본은 3세기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농경 생활이 행해지기 시작합니다.
문명화된 벼농사와 청동기를 가진 한반도의 도래인이 이주해 오면서 동일본 지역에 분포하던 토착인인 조몬인들은 서서히 훗카이도 등지의 동쪽으로 계속 밀려나게 되었고 이들은 여전히 목기, 석기를 도구로 하여 수렵,어로, 채집을 등으로 삶을 영위하였습니다.
3. 유전자적인 관계 - 일본인 선조, 현대 한국인과 DNA 일치
일본 학자들의 연구에서도 야요이인들이 현대 한국인과 DNA가 일치된다는 내용이 발표되었습니다.
"일본인의 선조 집단이 한반도를 경유한 도래인에서 유래했을 것이라는 학설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일본에서 잇따라 나왔다. 돗토리대 의학부 이노우에 다카오 교수팀은 벼농사 도입과 청동기 전래로 상징되는 야요이 시대(기원전 3세기~기원후 3세기)에 살았던 사람들의 유전자(DNA)가 현대 한국인의 그것과 일치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고 <교도통신>이 23일 전했다. 일 돗토리대 이노우에 교수팀기원전 5~4세기 야요이인 분석 연구팀은 야요이 시대 유적인 돗토리현 아오야가미 절터에서 출토된 야요이인 유골의 미토콘드리아 디엔에이 염기배열을 분석해 이런 결론을 얻었다."
또한 민족간의 유전자를 서로 비교해 살펴보면 한국인과 일본인이 가장 유사하다는 것을 알수 있는데, 이는 고대 다수의 한반도인들이 일본 열도로 이동 했음을 증명하는 내용입니다.
O2b : 한반도 지역 고유 유전자
O3 : 화북 지역 동아시아 북방 유전자
O* : 흑룡강, 만주 지역 북방 유전자
D : 조몬계 남방 고유 유전자
C3c : 시베리아 지역 북방 유전자
유전자 분석을 보면 O2b는 한반도에서 나타나는 고유한 유전자로서 이는 일본인에게서 비슷한 비율로 상당수 나타나고 있으며 만주족도 일부 가지고 있습니다. D는 조몬계 남방 유전자로서 이는 일본인에게서 주로 특히 나타나는 형질입니다. O3는 동아시아에서 대륙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유전자로서 현재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전자의 구성 비율을 보면 한국인과 일본인의 유전자가 가장 비슷한 양상을 나타내고 있고 일본인들의 유전자 60% 이상에서 한반도인들의 유전자와 동일한 비율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 유전자 결과는 고대 한국인들의 일본 열도로 진출로 인해 기존의 일본 열도의 토착 남방계 조몬인들의 유전 형질을 밀어내고 한반도계가 현대 일본인들의 유전자 형성에 있어 상당한 영향을 주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래의 표는 민족간 유전자 상관 관계로서 몽골인, 티베트인, 한국인, 일본인이 서로 가까우며 특히 한국인과 일본인의 유전자 거리가 가장 가깝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아래 그림 면역 글로불린 G (Gm)의 유전자 형질에 따른 동아시아의 유전자 분포 그림으로서 하북, 산동, 만주, 한반도, 일본 등이 동일한 유전자 패턴을 나타내며 특히 한국인과 일본인은 거의 같은 유전자 형태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4. 고조선 문자의 전파, 가림토문자와 신대문자
고조선인들의 일본 열도 이주를 말해주는 또 다른 증거가 가림토와 신대문자입니다.
이것이 한자(漢子)가 전해지기 전 고대일본(古代日本)에서 썼다고 주장하는 문자는 가림토 문자이며 이것이 일본 열도에 여러 흔적이 남아 있는 신대 문자((神代文字)입니다. 그리고 고조선의 가림토문자에 대해서 단군조선의 역사를 기록한 『단군세기』 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檀君 嘉勒 庚子 二年 時俗尙不一 方言相殊 雖有象形表意之眞書 十家之邑 語多不通 百里之國 字難相解. 於是 命 三郞乙普勒 譔正音三十八字 是爲 加臨土 其文 曰
경자 2년(BC 2181) 이 때의 풍속이 하나 같지 않았다. 지방마다 말이 서로 다르고 상형(象形)과 뜻을 나타내는 진서(眞書)가 있다 해도 열 집 사는 마을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백 리 되는 땅의 나라에서도 글을 서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에 삼랑 을보륵(命三郞乙普勒)에게 명하여 정음38자를 만들어 이를 가림토(加臨土)라 하니 그 글은 다음과 같았다.
『단군세기(檀君世紀)』 3세단군 가륵(재위 45년)
이 가림토 문자가 일본 열도로 이동하여 신대문자로 전달되었는데, 일본의 신대문자는 서기 전 660년 이전에 사용되던 문자로서 단군조선의 가림토 38자에 해당하는 문자가 되며, 대부분의 문자들이 단군조선의 가림토 문자와 일치하고 있습니다. 즉 일본의 신대문자는 계통적으로 보면 단군조선 가림토 38자의 직계에 해당하는 것이 됩니다.
이런 신대문자와 관련된 유적은 일본 열도 곳곳에 다수 나타나고 있으며 신대문자로 기록된 고사기도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신대문자로 기록된 고사기가 발견되어 신대문자가 다시금 주목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이자 천황제의 근간인 '고사기(古事記)'가 19세기 근대화 혁명인 메이지유신 직후 한글로 다시 쓰인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 메이지유신의 토대를 마련하려 한 일본 국학자들이 한글을 '신이 내린 글자'(신대문자)라고 칭송했던 점으로 미뤄 고사기 한글화는 천황체제 강화 작업의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김문길(64) 부산외국어대 일본어학과 교수는 최근 일본 국립 교토대학 도서관 고서적실에서 발견한 한글판 고사기를 8일 본보에 공개했다."
일본 最古 역사책,19세기 한글본 발견… 김문길 교수 국민일보에 공개-국민일보 (kmib.co.kr)
5. 일본어의 기원은 고조선어, 트랜스 유라시아 어족의 기원에 대한 연구 논문
일본어가 고조선어에서 기원했다는 사실은 최근 네이처지의 연구로도 밝혀졌습니다. 한국어, 일본어등의 알타이어의 기원이 고조선의 중심지였던 요하지역에서 기원하였다는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 이는 고대 한국어와 일본어와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발표라 할수 있습니다.
이는 작년 12월 네이처지에서는 알타이어의 기원에 대한 중요한 연구 결과로서 고대 일본어는 고조선의 중심지라고 할수 있는 요하 지역에서 발생한 북방계 언어라는 것과 한국어와 일본어는 언어의 기원이 같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원시 트랜스유라시아어(알타이제어) - 원시 일본어-한국어 - 원시 한국어 - 원시 일본어
로 언어가 분화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수사의 일치등으로 현재 일본어는 부여, 고구려 계통의 언어라는 것이 현재 학자들의 연구 결과입니다. 일본어는 한국어와 같은 계통이라고 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문법이나 기초 어휘적인 측면에서 공통점이 많습니다. 특히 고대 고구려어와 고대 일본어에 있어 3, 5, 7, 10 등의 수사(數辭)가 거의 일치한다는 점에서 학자들은 일본어가 고구려어에서 왔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단일민족 미스터리②…일본어 뿌리는 고구려어 - 아틀라스뉴스 (atlasnews.co.kr)
하지만 현대 한국어와 일본어는 서로 어휘나 단어가 많이 달라졌는 데,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그원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하였습니다.
“현대 한국어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언어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신라는 일본과 그다지 긴밀한 관계를 맺지 않았다. 한국의 초기 연대기를 보면 삼국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했다. 신라에 복속된 고구려와 백제의 언어는 후세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부 전해지는 고구려어 단어들을 보면, 현대 한국어보다 오히려 옛 일본어의 그것과 더욱 유사하다.” 제러드 다이아 몬드, 총, 균, 쇠(654쪽)
6. 한일 관계 갈등의 근본은 잘못된 역사 문제
이요이시대에 고조선인들이 일본 열도로 이동해 문명을 열었으며 이후에 고분시대의 시작은 가야가 열였으며, 백제가 이를 계승하였고 신라, 고구려계도의 열도에 진출하여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이는 일본인의 DNA 유전자에 기록된 한국계의 형질, 청동기, 벼농사, 문자, 언어의 기원까지 모두 증명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한반도계의 일본 열도 진출에 대한 내용들은 14세기 일본의 유력한 정치 지도자였던 기타바타케 치카후사(北 親房)의『신황정통기(新皇正統記)』에서도 알려졌는데 "옛날 일본은 삼한(三韓)과 같은 동족이라는 기록이 존재하지만 칸무(재위 781~806년) 천황 때 이를 감추기 위해 불태워 졌다"고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후대에도 계속해서 부정되었으며 그후에 일본은 수차례 한반도를 침략하였고 지금도 일본은 고대사를 왜곡하고 정치권은 과거를 반성하지 않으며 혐한을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합니다.
이런 근본 원인은 한일간의 잘못된 역사 교육입니다. 한국에서는 우리 민족의 역사 영토 범위를 한반도로 규정하고 이를 벗어난 동이의 중국 대륙사는 물론 일본 열도 진출사 등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또한 일본 역시 자신들의 선 조상들이 일본 열도로 문명을 연 한반도인들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잘 가르치지 않습니다. 상호간의 고대사가 바로 잡힐때 올바른 한일 관계사가 정립된다고 할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