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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이야기> http://cafe.daum.net/kccma/Fkh0/187
<2장, 두번째 이야기>
치명적인, 그러나 아름다운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랴, 집을 지으랴, 각자 비지땀을 흘리며 동분서주했다. 하지만 정라 가족의 희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우울했다. 턱없이 부족한 보상비로는 집을 지을 엄두조차 못 내는 천막생활이 지속되었고, 둥지를 잃은 가족들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부모를 바라보아야만 하는 정라가 애달프니 나는 덩달아 애달팠다.
그런 와중에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엉뚱한 곳으로부터 바람을 탄 홀씨처럼 날아온 소식이 있었다. 한국전쟁 중 행방불명되었던 정라 아버지의 형, 즉 큰아버지가 20여 년 만에 감옥에서 석방된 것이었다. 전쟁 중 죽은 걸로만 여겼던 큰아버지가 비록 폐암이라는 시한부의 몸이었지만 거짓말처럼 살아 돌아온 것은 정라 가족들에게 큰 기쁨이었다.
큰아버지 소식은 곧바로 마을에 커다란 화젯거리로 대두되었다. 소문은 꼬리의 꼬리를 물었다. 잊을 만하면 경찰이 조사를 나와 북한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 같다거나, 전쟁 때 강원도 산골에서 체포되어 사상범으로 투옥된 뒤 주로 독방살이 중이라거나, 그동안 수절하면서 유복자를 훌륭하게 키운 부인이 방장골에 살고 있다거나, 지금도 지역을 벗어나려면 경찰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소문 등 크고 작은 파장을 일으키며 발 없는 말은 돌고 돌아 마을을 날아다녔다.
먼동이 틀 무렵, 비보가 마을에 당도했다. 폐에 물이 찬 정라 할아버지가 깨어나지 못하고 끝내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이었다. 할아버지의 몸은 죽기 전에 이미 살갗이 매를 맞은 사람처럼 변했다고 했다. 큰아버지는 울부짖듯 통곡했다고 했다. 살아 돌아온 장남조차 알아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아버지 앞에, 그동안의 설움이 한꺼번에 터졌을 것이라고 서로들 수군거렸다.
그런 슬픈 소문을 들은 나는 정라를 위로할 심산으로 천막 주위를 또 기웃거렸다. 어쩌면 미친 아저씨 집으로 끌고 가서 위로라도 하고 싶은 속셈이 더 발동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정라는 없었고, 마을회관에서 친 차일 안에는 문상객들의 술판만이 질펀했다. 그래도 혹시나 그녀가 차일 안으로 들어와 잔심부름이나 하지 않을까 싶어 안을 엿보기 시작했다.
“아마 그때 공회당에서 몰매 맞았을 때 속으루 골병들었나 봐유!”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이제 튀어나온 겨?”
“죽기 전에 벌써 살갗이 거뭇거뭇 변했다잖어. 그게 동란이 끝난 직후 동네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은 후유증이 아니구 뭐여?”
“거 근거 없는 잡소리들 집어치우구 입들 닫으시게!”
누군가는 언성을 높였고, 누군가는 입을 틀어막았다. 나는 토끼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그들의 대화를 더욱 염탐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기적같이 살아왔어. 차라리 전쟁 통에 죽는 것이 마을에는 나은데 말여.”
“경찰이 찾아와서 소식을 전했다지 않어. 마누라두 20년 넘게 전혀 소식을 몰랐다는데.”
“젠장, 그 시대에 살아남은 대한민국 사람은 다 피해자지 뭘 그려.”
“하마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뀐 일인데 이제 와서 뭘 어쩌겠어. 그냥 모른 척 지켜나 보세!”
“그래두 그때 남은 가족을 집단으루 두드려 패지만 않았어두 줌 나아. 아무래두 큰일이 벌어질 것 같어! 머리가 보통 똑똑해야지.”
사내들의 긴장된 목소리는 줄줄이 엮여 차일 밖에까지 흘러나왔다. 생각해보니 근래에 어른들의 분위기가 사뭇 술렁거렸었다. 아버지는 물론 진수 아버지나 나의 작은아버지마저도 동네 어른들과 밤늦게까지 몰려다니는 일이 빈번했다. 마치 커다란 비밀이 숨겨져 있는 듯 정라 큰아버지를 경계하는 눈빛들이 곳곳에서 감지되었고, 마을의 불안한 기운은 안개 속을 헤매는 것처럼 자욱하게 밤이면 더욱 깊고 괴괴했다.
“왜정 때 다리 잃구 빙신 된 동생은 어떻구. 시대를 잘못 만난 겨.”
“아무튼 나서서 설치지 마. 쥐죽은 듯 가만히들 있어. 상처란 들춰내면 덧나게 마련인 겨! 무슨 말이라두 나오면 내가 나서서 만날 테니 진득하니 자중들이나 혀!”
마침내 누군가가 대화의 종지부를 찍듯 힘주어 말했다.
“그려유. 나는 형만 믿어유!”
잠시 정적이 흘렀다. 사내들이 길게 내뿜는 담배 연기가 차일 틈으로 삐져나와 허공으로 증발되었다. 얼마 후 대화는 다시 이어졌다. 곳집도 침수되어 상여를 쓸 수가 없다는 이야기, 상여를 멜 사람이 부족한 것은 어쩌면 큰아버지를 의식해 상여 들기를 꺼려하는 사내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이야기, 그런 암울한 넋두리에 나의 마음도 같이 암울해졌다. 나는 혹여 엿듣는 행동이 들켜 난처해질 것 같아 결국 자리를 피해야 했다. 뒤돌아 가는 걸음의 무게는 내 몸이 아닌 듯 무거웠다. 머릿속에는 사내들의 볼멘 목소리가 맴돌았다. 할아버지의 변색되어 가는 주검에 대한 비밀을 상상할 길 없는 나로서는 단지 정라만이 걱정될 뿐이었다.
이튿날도, 정라가 궁금하여 차일 안을 또 기웃거렸다. 폐허가 된 집터가 오랜만에 사람들로 북적거려 마치 오일장을 맞은 시골장터처럼 와글거렸다. 한쪽 귀퉁이에는 마을 끝자락의 미친 아저씨가 독상을 받은 채 허기를 채우고 있었다. 와글거리는 사람들과는 격리된 채, 관심마저 없다는 듯, 우적우적 먹는 일에만 열심인 아저씨의 행동이 낯설었다. 그러나 오로지 나의 관심사인 정라를 끝내 발견하지는 못했다.
“이눔들, 모두 죽여 버리겠어!”
갑자기 굵고 우렁찬 사내의 고함소리가 산지사방으로 흩어졌다. 사람들의 왁자지껄함이 일순 조용해지고, 고함소리의 주인공에게 시선들이 일시에 날아갔다. 화가 잔뜩 오른 표정의 정라 큰아버지가 성큼성큼 들어왔다. 큰아버지는 사람들의 눈총은 아랑곳 하지 않고 분노를 거침없이 토해내었다.
“세상이 변해두 더럽게 변했어. 머슴 짓 하던 눔들이 언제부터 상전이여!”
무언가에 단단히 화가 나 금방이라도 큰일을 저지를 듯한 험한 표정이었다. 큰아버지가 차일 안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모세의 홍해처럼 갈라졌다. 진수 아버지를 비롯한 몇몇 사내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뒷걸음질까지 쳤다. 그의 등 뒤에는 날선 도끼가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한 사내가 정라 큰아버지의 어깨를 부여잡으며 만류했다.
“이봐, 이제 와서 이런들 무슨 소용이 있는 겨? 큰일 내지 말구 제발 참게나.”
“내 이 눔들을 그냥 둘 수 없어. 조상들 대대루 빌붙어 먹던 머슴 눔 자식들이 세상이 변했다구 어디서 날뛰어!”
그는 진수 아버지를 겨냥하며 노려보았다. 그가 차일 밖으로 쏜살같이 도망쳤다. 나의 작은아버지가 뒤따라 빠져나갔다. 정라 큰아버지가 뒤쫓아 가려 하자 또 다른 사내가 그의 허리춤을 낚아채며 만류했다.
“이봐, 그들두 같은 피해자여. 세상이 변한 게지 그들이라구 그러구 싶었겠나!”
“자네는 빠져. 괜히 설치다가 봉변당하지 말구!”
“이보게! 제발 도끼 줌 치우게! 사람 다치면 어쩌려구 그러나! 또 감옥 갈 참인 겨?”
감옥이라는 말이 거슬렸던지 정라 큰아버지의 눈동자가 만류하는 사내의 얼굴에 꽂혔다. 그러나 사내를 노려보던 그의 도끼는 결국 땅바닥에 내던져지고 말았다. 의도했던 바는 아닌 듯했는데 능숙한 장수가 도끼를 날려 나무기둥에 꽂아버리는 살기와도 같이 날 쪽이 바닥에 박혔다. 서슬 퍼런 도끼가 햇빛을 받고 반사되며 순간 번뜩였다. 번뜩인 햇볕이 거울에 반사된 섬광처럼 공교롭게 내 얼굴을 할퀴고 지나갔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길게 빼놓았던 목을 거북이처럼 움츠려 집어넣었다.
정라 큰아버지는 맨바닥에 털썩 주저앉더니 꺼이꺼이 통곡하기 시작했다. 서러움은 그동안 참았던 울분을 한꺼번에 밀어 올렸다. 그의 목울대가 쉴 새 없이 목구멍으로 오르내렸다. 정라 아버지가 뒤따라 흐느꼈다. 형의 통곡은 울분이었고, 동생의 통곡은 죄책감이었다.
형제의 울음소리로 차일 안은 줄곧 침묵이 흘렀고 모두들 멀뚱거리는 순간이 얼마간 흘렀다. 독상을 우악스럽게 비우던 미친 아저씨가 주뼛주뼛 다가오더니 슬픈 눈알을 깜박이며 함께 훌쩍거렸다. 더구나 꼬질꼬질한 손바닥으로 정라 큰아버지의 어깨를 슬금슬금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미친 아저씨의 그런 행동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온전히 통곡하는 큰아버지의 반응은 물론, 그가 말한 머슴 운운이 무슨 뜻인지 나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마침 차일 안으로 정라가 나타났다. 문상객이 먹을 음식을 들고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하얀 광목으로 된 소복 차림이었다. 천사와도 같이 사뿐한 치맛자락의 넘실거림은 큰아버지의 울분과 아버지의 통곡조차도 내게 들리지 않게 만들었다. 눈이 부셨다. 심장이 멎을 지경이었다. 내 눈에는 하얀 소복을 입은 정라의 눈부신 아름다움이 형제의 슬픈 통곡보다 시렸다. 나는 차일 귀퉁이에 몸을 숨기고, 단지 그녀가 일하는 모습을 오래도록 훔쳐보았을 따름이었다.
정라가 곧 서울로 이사 간다는 소식이 바람을 타고 내 귓바퀴까지 흘러왔다. 며칠 후면 개학인데, 그 전에 정라네 가족 모두가 서울로 이사를 갈지도 모르는데, 차일피일 미루기만 할 수 없는 일인데도 망설임이 앞섰다.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았기도 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은 탓이었다.
그렇게 망설이며 기회만 엿보는 사이 결국 정라를 만나지 못하고 말았다. 용기를 내어 마을 끝 공터로 끌고 갈 심산으로 천막을 찾았을 때는 이미 집터만이 덩그러니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집터에는 한순간의 일장춘몽과도 같은 아지랑이만이 아물거렸다. 하물며 미나리꽝에서 올라온 개구리는 여느 때처럼 도망도 가지 않고 커다란 눈알을 멀뚱하니 끔벅거렸다.
정라의 소식을 알 길은 묘연해졌다. 가슴의 감촉과 복숭아 같은 엉덩이와 포동포동한 손바닥의 비밀을 남겨놓고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졌다. 너무나 소중한 비밀이어서 진정 비밀로 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아예 소식조차 알 수 없는 비밀이 되어버렸다. 울컥 눈앞이 자욱해졌다. 콧등은 왜 시큰해지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콧물이 흘러내려 훌쩍일 때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동반되는 이유를 알 길은 더욱 없었다. 뒤돌아 뛰었다. 지팡이를 버렸는데 지팡이가 다시 필요할 만큼 절룩거렸다. 나았던 발등은 다시 아렸고, 정라와의 이별은 더욱 아렸다.
정라가 떠난 후 그녀 가족은 마을 사람들의 기억에서 빠르게 지워져갔다. 그들이 수면 아래로 깊숙이 침몰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마치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처럼 너무 짧은 순간에 기억을 없애버렸다. 누구 하나 장례식에 발생되었던 도끼사건을 곱씹는 사람도 없었고 전처럼 은밀하게 몰려다니지도 않았다. 각자에겐 각자의 일만이 중요했다. 하물며 그녀가 살던 터는 외지인이 들어와 집을 짓고 있었다. 뜰 앞 미나리꽝은 매몰되어 집터가 되었고, 마을은 새집의 날 페인트 냄새로 구역질을 유발시키며 새살처럼 거듭 돋아났다. 추락하는 성적과 정라에 대한 그리움으로 속이 타들어 가고 아려오는 것은 정작 내 심장일 따름, 뙤약볕이 작열하면 뙤약볕이어서 그립고, 비가 와서 질척이면 질척여서 그리웠다.
나는 언제나처럼 하천 둑을 따라 지척지척 하교하고 있었다. 정라가 떠난 이후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다만 학교에 가고 오는 일만 충실할 뿐, 시선은 항상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주변 정황은 전혀 알려 하지도 않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돌멩이가 보이면 발끝으로 걷어차 힘껏 날려 보내곤 하는 것이 유일한 화풀이였다. 돌멩이는 빙그르 돌다가 풀숲으로 숨거나, 더러는 하천에서 퐁당 방귀소리로 항변했고, 더러는 아우성치며 비명을 토했다.
“야아, 전양우!”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천막을 훔쳐보다가 들켜버렸던 목소리, 비밀로 하지 않으면 혼내줄 것이라며 암팡졌던 목소리, 포동포동한 손을 불쑥 내밀며 악수를 청하던 목소리, 그 목소리가 환청처럼 나를 불러 세웠다. 고개를 먼저 돌리고 몸을 틀어 뒤돌아섰다.
교복을 입은 정라가 거짓말처럼 웃고 서 있었다. 그녀의 가지런한 치아가 구슬인 양 맑고 청아하게 빛났다. 하물며 정갈한 교복을 에워싼 동그란 섬광은 천사의 것을 하사받은 발광처럼 빛을 발산했다. 분명 천사는 아닌 듯싶은데 왜 천사로 보이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햇살을 등지고 있는 모습이 저녁 햇무리에 가려 천사처럼 보였으리라.
“니가, 어떻게 여기에 있어?”
“바보야, 나 서울루 전학가지 않았어.”
정녕 꿈은 아니었다. 정라가 말한 바보가 바보처럼 들리지 않으니 오히려 요사스러운 일, 그렇다면 줄곧 나의 행동을 보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그토록 그리움을 앓았는데도 그녀는 아무 일 없이 지내왔다면, 어쩌면 혼자만 삭여온 내가 진짜 바보였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시방 그게 무슨 말이여. 모두 이사 갔잖어?”
“지금 방장골에서 핵교 다니는데!”
“그럼, 지금까지 줄곧 방장골에 있었던 겨?”
“으응, 나만 남았어. 난, 이사 갈 때 서울루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어. 시험 볼 때까지 아랫방장골 큰집에서 지내는 중이여.”
나는 환장할 노릇이었는데 정라는 참 태연하기도 했다. 얼마나 안타깝게 떠올렸으며, 속을 끓였는지 모른다. 그동안의 시간은 짧았으나 얼굴을 떠올리면 벌써 아련하고 희미해져 대책 없이 조바심이 나기도 했었다. 그런데 정라는 되레 태연함을 떨었다. 나 또한 무관심한 척해야 사내다운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그것조차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았다.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정말 반가워. 그런데 니는 왜 날 안 찾은 겨?”
궁금했다. 무엇보다 그것이 궁금했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 건데?”
그녀는 능청이었다. 그것은 훈련되지 않았어도 본능적으로 표출되는 여자의 습성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손을 내밀며 악수까지 요청한 것은 무슨 속셈이었는지 정라의 마음은, 아니 여자의 마음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참으로 난감했다.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는지 마땅한 대꾸가 생각나지 않았다. 내 떨떠름한 표정만을 바라보던 그녀가 다시 꼬집어 물었다.
“니, 아직두 비밀은 잘 지키구 있는 거지?”
정라는 가슴을 도둑맞은 것을 소문낼까 봐 여전히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너무도 아련하여 한없이 소중한데도 말이다. 도대체 공부가 되지 않아 성적은 형편없이 떨어졌는데도 말이다. 가당치도 않는 물음이었다. 그 귀한 비밀을 내 스스로 폭로해 버린다는 것은 추호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녀의 물음이 어이없다는 듯 줄곧 눈알만 깜박이며 멀뚱거렸다.
그러는 사이, 천사의 햇무리가 어깨로 떨어져 노을로 스러져가는 와중에, 갑자기 따르릉 따르릉 자전거 경적소리가 찢어지게 울렸다. 엉겁결에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자전거와 충돌하여 다치기라도 할까 싶어 순간적으로 취한 행동이었다. 고스란히 햇살을 받은 손등은 더욱 따사롭고 싱그럽고 포동포동했다. 애써 신음을 삼키며 어금니를 악물었다. 이번에는 그녀가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엉거주춤 서 있는 나를 가장자리로 끌어 자전거 길을 내주려는 행동이었다. 자전거가 하천 풀숲 위에 갸우뚱 멈추어 섰다.
“어? 오빠네! 어디 갔다가 오는 겨?”
“시내!”
“잘됐다. 나 줌 뒤에 태워줘!”
정라가 대뜸 청년을 아는 체하며 응석을 부렸다. 고작 그깟 일에 아양을 부리는 그녀가 갑자기 미워지는 것은 아마도 질투였다.
“어, 그려! 니는 이제 집에 가는 겨?”
나는 단박에 그녀의 사촌오빠임을 직감했다. 아버지가 감옥에서 나오기 전 수절하며 키워낸 유복자, 소문에 의하면 공부를 곧잘 했다던 청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 공부를 했었으나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로 인하여 연좌제에 걸리는 것을 뒤늦게 알고 자살을 시도했다던 그녀의 사촌오빠, 자살이 미수에 그치고 몇 달을 두문불출하다가 어느 날 불쑥 곧바로 장삿길로 들어섰다는 바로 그 청년이었다.
청년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았다. 그의 얼굴에서 밑도 끝도 없이 정라 큰아버지의 날선 도끼날이 스쳐 지나간 이유는 어디서 비롯된 공포일까? 나는 숨 한번 크게 쉬지도 못하고 허리를 꺾어 인사를 했다.
사촌이 정라에게 물었다.
“재는 누구여? 친하니?”
“그냥, 국민학교 동창!”
“공부들 열심히 해야지. 입시두 얼마 안 남았는데. 니는 빨리 뒤에 타거라.”
사촌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정라가 자전거 뒷좌석에 날름 올라탔다. 그 행동이 민첩하여 고작 초등학교 동창밖에 안 되느냐는 항변은커녕 눈인사조차 건넬 짬이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 자전거는 도망치듯 벌써 저만치 내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로맨스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이 자전거에 걸터앉아 석양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물며 손을 흔들며 예쁘게 작별인사까지 하여 내 마음을 온통 법석이게 만들었다. 그녀가 점점 작아지는 것은 더 미칠 노릇이었다.
나는 자전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고 목석처럼 서 있었다. 한사코 석양을 바라보기만 하던 눈에 자전거가 사라지고 어느 순간 붉은 노을이 가득했다. 눈동자에 들어온 붉은 아지랑이가 춤을 추었다. 현기증으로 아뜩해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저절로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에라, 모를 일이다. 정라의 행방을 알았으면 그만이었다. 풀숲에 벌렁 누워버렸다. 알싸한 풀냄새가 코끝에 간질거렸다. 심호흡을 크게 들이켜 구름을 한껏 마셨다. 각양각색을 뽐낸 모양새가 어쩌면 이다지도 눈부시게 아름다울까, 목화솜처럼 몽실몽실한 구름이 품 안에서 너울대었다.
한 달 넘게 정라를 만날 수 없었다. 도대체 몇 시에 하교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입시공부 때문에 아무리 종잡을 수 없는 하교시간이라지만 어떻게 단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하는지 환장할 판이었다. 그녀를 만나고 싶어 부러 하천 둑을 거꾸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곤 하기를 수십 차례였다. 하천 둑에 흩어져 있던 돌멩이들은 거의 방귀를 뀌었거나 비명을 지르며 사라진 지 오래였고, 언제부터인가 떨어진 내 눈알만 뒹굴었다.
가을걷이가 한창인가 싶었는데, 낙엽들은 저절로 추락하고 이미 초겨울을 향해 달음박질쳤다. 고등학교 시험이 코앞으로 닥쳐왔다. 공부가 도통 되지 않아 성적은 속절없이 떨어졌다. 원서를 쓸 때 탄로 날 일이었지만 집에서 모르고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미리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으므로 한꺼번에 야단맞고 싶었을 뿐이었다.
언제나처럼 하천을 배회하다가 하교한 토요일 오후,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바야흐로 떨어진 성적이 들통 나 책망을 듣게 되었다는 불안감에 쪼그라들었다.
“양우야, 니 아랫방장골 줌 다녀와야겠다!”
뜻밖이었다. 아랫방장골이라는 단어에 정라가 퍼뜩 떠오른 것은 일순간이었다. 너무 궁금한 나머지 나는 숨 쉴 틈도 없이 왜유? 하고 되물었다.
“니 어무니 모셔오려무나. 저녁에 손님이 오기루 돼 있다구 전해라! 방장골에 가서 초상집 찾으면 될 겨! 정호 큰아버지가 돌아가셨단다!”
단박에 이유를 알아들었다. 폐암을 가슴에 담고 석방되었던 큰아버지가 채 넉 달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정라를 만날 기회가 온 것에 더 흥분되기 시작했다. 그 이유가 치사하고 초라하다는 마음은 미처 생각할 수 없었다. 큰아버지의 슬픈 죽음보다 그녀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앞선 것이 솔직한 고백이었다.
집을 나와 아랫방장골로 향하는 하천 둑을 한걸음에 달음질쳤다. 머릿속은 온통 정라의 얼굴로 이미 가득하였다. 상갓집을 찾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초상집 천막이 바람에 너풀대며 나의 걸음을 이끌었다. 장례식은 더없이 초라하여 기껏 차일 한 개로 족했고, 문상객은 고작 한눈에도 헤아려질 열 명 남짓이었다.
마침 부엌을 나오던 정라가 나를 먼저 발견했다. 한 손에 바가지를 들고 부엌데기처럼 나타난 그녀는 할아버지 장례식처럼 하얀 소복을 입지는 않았다. 다만 군데군데 얼룩진 검은 치맛자락 밑으로 하얀 종아리 속살이 눈부셨다. 내 눈길을 의식한 그녀는 대충 걸친 매무새가 신경 쓰였던지 뜬금없다는 표정으로 먼저 말을 건네 왔다.
“니가, 여기까진 어쩐 일이여?”
그녀의 얼굴은 몹시 지쳐 있었다. 하지만 힘 잃은 목소리가 도리어 다정스럽게 들렸다. 늘 도사리던 몸짓이 아닌 지친 행색이었지만 되레 그 모습이 예뻐 보였다. 당당하면 당당해서 예쁘고, 소복을 입으면 소복이어서 예쁘고, 지쳐 있으면 위로가 필요한 것 같아 예뻤다. 도대체 정라 앞에서 요사를 부리는 마음을 오늘도 애써 감추어야 했다.
“우리 어무니한테 전할 말이 있어서 심부름 왔어!”
“어, 맞어. 아까 니 어무니를 봤어!”
그녀가 어머니를 찾으려는 듯 부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이 머문 봉당에 쪼그리고 걸터앉아 전을 부치고 있는 어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얼굴로 날아오는 연기를 피하기 위해 연신 눈가를 훔치며 전을 부치고 있었다. 더구나 이상한 것은 여기까지 내려온 미친 아저씨가 독상에서 우적우적 전을 씹어 삼키고 있었다. 연기로 가득한 봉당언저리의 매캐함을 느끼지 못하는 듯 오로지 먹는 일에만 열중인 아저씨의 얼굴은 무표정 그 자체였다. 정라 할아버지 장례식 때처럼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 정말 궁금한 다른 것이 있었다. 대관절 만날 수 없었던 하굣길이 무엇보다 궁금했다. 비록 장례식이라 선뜻 나설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왜 한 달 내내 만날 수 없었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속내를 감추며 궁금하지 않은 척 물어야 했다.
“요즘엔 하천 둑으루 안 다니니?”
“아니, 요즘엔 역전 쪽으루 다니는데. 왜?”
“아, 아녀. 그냥 궁금해서…….”
나는 엉거주춤 서서 대충 얼버무렸다. 참으로 힘 빠지는 말이었다. 늘 태연하게,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타는 내 속을 모른 척하는 것인지, 진짜 눈치 없이 모르고 있는 건지, 정라는 참 무심하기도 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참으로 오랫동안 하천 둑을 헤매었다. 하천 둑의 돌멩이가 개천으로 날아가 다 없어진 숫자만큼 켜켜이 그리움만 쌓여진 시간이었다. 그러나 감추어야 할 조바심이었다. 정라가 평범한 바에야 애타는 속내만 들켜 버릴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아예 여유 있는 척 물었다.
“입학시험은 서울루 가서 볼 거지?”
“집이 서울인데 당연하지. 니는?”
“나두 그럴 생각이여. 그런데 걱정이여. 성적이 많이 떨어졌어!”
그녀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못했다. 아파올 것은 역시 내 자존심이었다. 적어도 정라 앞에서만은 초라해지고 싶지 않은 것은 어쩌면 무모한 객기였다. 더구나 마냥 그녀와 있고 싶었던 간절한 마음도 통제하지 못하고 무언가에 쫓기듯 불쑥 내뱉고 말았다.
“우리 어무니 줌 불러줘.”
“알았어. 그리구 양우 니, 서울에서 합격하면 연락혀!”
정라가 갑자기 악수를 청했다. 나는 또 엉덩이에 손을 문질러 닦고는 재빨리 손바닥을 내밀었다. 손을 잡자마자 전에 없던 불꽃이 일순간 튀었다. 짜릿한 번개가 소름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물기에 젖어 있던 그녀의 손에 감전된 듯했다. 너무나 순간적인 나머지 손을 얼른 빼버렸다. 그녀도 놀랐는지 왼손에 들고 있던 바가지를 그만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녀가 바가지를 줍기 위해 허리를 구부렸다. 그 순간, 동공이 확대되고 눈앞이 핑 돌아 거의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복숭아 두 개가 가슴에도 열려 있었다. 살짝 늘어진 스웨터의 목덜미 아래로부터 뽀얀 두 개의 가슴이 튀어 올라와 총알처럼 눈에 박혀버렸다. 옴폭 패인 가슴골은 피뢰침 같은 충격으로 머리 위로 내리꽂혔다. 짜릿한 전율! 읍, 난데없는 신음까지 목구멍으로 솟구쳐 올랐다. 마른침을 꿀꺽 식도로 밀어 넣었다. 뽀얀 두 개의 수밀도를 누가 정라의 가슴에 달아놓고 도망친 것일까. 치명적인, 그러나 아름다운 혼돈이 온통 머릿속을 와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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