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무형 문화유산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 중 우리나라는
세계 문화유산 9종과
자연 문화유산 1종
인류 무형 문화유산 7종이 등재되어 있다
문화유산은 반듯이 부동산 즉 건물이나 사찰 묘지, 성곽 등이어야 한다.
팔만대장경은 등재가 불가하니 팔만대장경 판각으로 등재하여 대장경을 포함시킨 편법을 쓴 것이다
그리고 격이 좀 떨어지는 복합 문화유산과 기록문 화유 산등으로 분류를 한다.
그런대
최근에 인류 무형 문화유산이 생기면서
각국별로 독특한 무형 문화들이 등재된다.
우리나라는 2001년에 종묘 제례 및 종묘제례악의 등재를 시작으로 03년 판소리 05년 강릉 단오제 09년 강강술래에 영산 무, 제주 필머리 당 영등 굿,처용 무 등이 등재되어 7종이다
매년 5월 첫 주 일요일은 우리나라 종묘 제례가 종묘에서 열린다.
일본인 중국인 그리고 외국인이 우리나라 사람보다 관심이 무척 많다
중국은 공산당이 문화혁명을 하면서 다 때려 부수고 없애 치우고 한 두세대가 흐르면 언어도 없어지는데 남을 태기 없으니 지금은 공자를 복원하면서 가장 배가 아픈 것이 제례악인 모양이다
일본은 아직도 황제가 있으니 그들만이 황궁 깊은 조그마한 곳에서 대신들과 엄숙하게 치르는 모양이다 일반 백성들은 알지 못하니 우리나라 종묘처럼 큰 공간에서 많은 시민이 모인 제례는 없는 고로 일본 사람들의 관심은 지대하다
이 제례악을 등재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사람이 일본인으로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하면서 동양 삼국 중 가장 잘 보전된 우리나라를 서양 문화 대항마로 강력히 선정하여 동양문화 고양에 힘을 쏟은 모양이다.
이날 모임은 박 영식 친구와 우연하게 조우한 오 선생과 그 밖의 관심 많은 친구들이 5팀이 모였는데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들 부부 동반이었고 상당한 교양과 지식 그리고 우리 문화의 자부심이 보이는 우리 동년배들이 엇다.
사람이 너무 많아 우리는 친구끼리만 떨어지지 않으려 같이 행동 을하고 皇사자가 입장할 때는
떨어지고 말았다.
皇嗣子란 황제의 황위와 제례의 권한과 의무를 계승하는 사람이다
우리나라의 왕의 사자는 반듯이 후임 왕위를 계승한 왕에게만 사자란 말을 쓰는 것이다
중종의 예를 보면 1嗣 인종 2嗣명종 1녀 효혜 공주 2녀 자혜 공주 3녀 효순 공주 4녀 경현 공주 5녀 인순 공주 1남 복성 군 2남 해안 군 3남 금원 군 4남 영양군 5남 덕양군 6남 봉성 군 7남 덕흥대원군 1녀 혜순 옹주 2녀 혜정 옹주 3녀 정순 옹주 등등으로 왕 대군 공주 군 옹주 순서로 기록된다.
일반 시민의 부고에도 사자 아무개로 분명히 명기하고 그다음 차남부터는 사자는 아니고 자일뿐이다
사자는 밧듯이 선친의 재산과 봉제사의 의무도 같이 부여받는 것이다
그런데 나라가 망하고 우리도 한동안 종묘 제례가 맥을 잇지 못하다 백성이나 나라가 밥을 먹고 살만해지니 예의와 범절을 차려서 전주 이 씨 대종 약에서 의왕의 손 자중 한사람을 옹립하여 황사자로 모시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분의 아들은 세자의 의관을 입고 아버지와 함께 행사에 임하는 모습을 보았다
종묘에는 왕이 붕어하고 27개월이 되면 길일을 정해 혼전에 모셨던 신주를 종묘로 모셔 와 행하는 의식을 祔廟라 한다. 신실은 종묘 안에 한 칸의 작은 공간이고 신주는 독안에 나무로 만든 죽은 사람의 신체를 상징한 것으로 왕은 서쪽에 왕비는 동쪽에 모신다. 신주는 윗면이 둥글고 아랫면이 네모난 직육면체로 상하 사방에 혼이 드나드는 竅(규)라는 구명이 있다
일반 사대부의 사당의 신주는 폭이 4개절인 4치 높이는 12달의 12치 위부 분은 둥근 하늘의 둥근 모양 아래는 땅을 뜻하는 사각형 두께는 남녀 음양의 2치로 조부에 게들었는데 왕가의 두께는 더 크다 사대부의 신주는 규가 전후는 없고 좌우로 구명이 있다
이것은 전란 시에 청울치끈으로 묶어서 피난하는데 쓰면 편리하다 들었다
참으로 사자는 피곤하겠다. 난리가 나 모두 피난 가는데 죽은 할아버지 신주도 종손이 가지고 피난을 해야 하니 어릴 때 나는 사당집에서 신주를 쳐다보면서 내가 종손이 아닌 것이 다행이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약은 것인가 멍청한 것인가 알 수가 없다








첫댓글 ㅋㅋㅋ 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