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때때로 가슴은 우리 삶의 고향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우리 모두 이 고향을 찿아서 헤매지만 찿지 못하고 페허의 상태에서 방황할 때가 많다.
지붕이 망가지고 구들장이 내려앉아 마음을 열고 찿아가 푸근히 쉴 곳이 별로 없다.
차거운 가슴으로 대화가 끊겨버린 돌담의 인생집, 가슴과 가슴이 일치를 이루지 못해 다들 외로운 비둘기가 되어 싸늘한 빙판에서 맴돌기만 한다.

오랫만에 가을을 마시며 바닷길을 달린다. 가슴이 따뜻한 삶을 맛보려고 핸들을 잡아본다. 늙어 서툴어진 운전 솜씨에 차도 비틀거린다. 길가에 늘어선 풀잎들도 모두 지처있는 것 같다.
롬팍 지역에는 많은 꽃들이 있다. 난 그중에서도 수선화를 더 좋아한다. 그들의 곁을 지날땐 난 숙연해져 나 자신이 영혼의 가난한 자가 되어 그들이 주는 자연의 메세이지에 귀를 귀울이게 된다. 귓가에 선명하게 들여오는 그들의 속삭임, 바스락거리는 꽃들의 잎새에서의 속삭임에서 난 그들의 생명력을 느낀다.

의미가 없는것도 유심히 보면 의미가 가득한 세상, 각박한 세상에서 정을 쉽게 느낄 수 없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세상을 다시 보면 꼭 그런것만은 아니다.
꽃들은 인간과는 비교 할 수 없는 완전한 가슴, 말없음 속에서도 의미를 가득 싣고 달려오는 가슴이다. 이 씁쓸한 계절에 그들을 통해 삶의 근본과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배울수가 있다.
어려운 우리 인간의 환경속에서도 그들처럼 우리의 가슴을 열고 세상을 내다보면 이 세상엔 아름답지 않은 것이 별로 없다.
독방에 갇힌 채 성경을 읽는 사형수, 발가락이 상한 비둘기가 에처러워 먹던 과자를 다 던저 주고 빈 손가락을 빠는 꼬마둥이의 착하디 착한 눈망울, 추운 밤 곤한 잠에 빠져있는 아내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착한 그 남자의 손길……….
삶의 푯대를 세우기에 따라 선과 악으로 가득찬 이 세상, 우리는 제한된 시간속에 살면서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권력과 물질 때문에 "숨쉬는 기계"로 살다 저승 문에 다다랐을 때 자식들에게 재산 싸움만 물려 준 것은 아닌지.

나는 바닷길을 달리며 꽃들이 말하는 자연의 밀어를 듣는다.
세상 사는 방법이 자연에 그대로 다 적혀있으므로, 우리의 마음을 열어 그들을 통해 우리 마음의 고향을 찿아 휴식을 취하면 될 것 같다.

자연탐구, 예술탐구는 이익 탐구를 위한 수단이 아니다. 건조한 우리의 마음을 치료받기 위한 예행연습에 불과하다.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면 "오늘 난 무엇을 위해 살았나, 푼돈을 아끼느라 친구들에게 혹시 상처를 주진 않았는지" 되집다간 얼굴이 불거질 때가 많다. 자기 성찰에 게을러지면 들꽃의 넓은 가슴을 닮아갈 수가 없으며, 우리가 어디까지 왔는지 가는지 통 알 수가 없다.
십년전 페루를 여행 했을때 볼리바르의 동상 앞에서 느낀게 있어 그 느낌을 같이 나누려 한다. 그는 페루의 독립 영웅이고 또 다들 그가 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했다..

Simon Bolivar
허나, 그는 대통령직을 사양하고 물질을 택했다. 그 돈으로 페루의 노예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몸값으로 썼다.
"국민이 한 명이라도 노예로 남는 한 우리의 독립은 의미가 없다"라고 외치고 난 뒤, 그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가슴이 따뜻한 삶, 예술을 정치처럼하면 문제가 되지만, 정치를 예술처름 하는 시몬 볼리바르를 생각하면 나의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의 열정은 대지위에 가슴을 활짝 열고 있는 꽃들의 향기와 같다. 왜 우리는 그같은 지도자를 가질 수가 없는지.
첫댓글 L.A. 文昌培 동문의 E-Mail : 태호에게(상략). 몇자 적어 놓은 것 자네에게 보내니 고칠 것 있으면 고쳐서 친구들과 나눠 가졌으면 해(하략). 창배가. 이 편지는 #178 "한 老夫의 가을 短想"에 뒤이어 2번째인 #188 "꽃의 향기(삶)"을 보내온 사연입니다. 제가 아주 조금 교정했고, 먼저처럼 San Francisco의 유샤인 수고로 안성맞춤 그림들과 배경음악이 곁들여졌네요. 이처럼, 인생을 관조하는 수필가 동문의 탄생을 축하하고,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