윷가락
놀이에 화투와 윷이 있다. 서양 화투도 있고 네 사람이 136패를 짝 맞추는 마작(麻雀)도 있었다. 제기차기와 자치기, 구슬, 숨바꼭질, 고무줄, 투호, 그네, 차전놀이, 활쏘기, 말타기 등이 있지만 가장 많이 놀고 성행하는 것이 화투이다. 대마도를 통해 일본에서 들어온 것으로 열두 달을 네 장씩 풀과 나뭇잎으로 만들었다. 민화투에서 두 장 겨루기, 패 가기, 도리짓고땡, 나이롱뻥, 육백, 요즘 유행하는 고스톱 등 다양하다.
모여 앉으면 이거 아니면 할 짓이 없다. 술 마시거나 잡담하는데 그런 게 오래 가지 못하고 잠시여서 뻘죽하니 이 놀음을 한다. 잔돈을 걸다가 잃으면 크게 하고 날밤 새우면서 도박으로 변한다. 이래 투전하다가 문전옥답 날린 사람 많다. 오광은 일본 명절 든 달이고 우산 쓴 비(雨)의 붉은 옷 입은 사람은 나무에 오르는 개구리를 보고 글을 쓴 서예가이자 시인이다.
2월 홍매화와 3월 벚꽃, 4월 등나무꽃, 5월 난초, 6월 모란, 7월 홍싸리꽃, 9월 국화는 우리보다 앞서 피는 일본 구주 지방이다. 광의 둥근 한자와 청단, 홍단의 미끈한 한글 글자는 우리나라에서 붙인 것으로 일본에는 없다. 11월의 오동과 12월의 비는 일본과 반대다. 횟가루를 넣고 한지를 말아 만드는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비닐로 질기게 포장하고 있다.
돈 놓고 노름하지 않고는 싱거워서 할 수 없는 화투와는 달리 그냥 쳐도 좋기만 한 윷놀이가 있다. 부여 때 벼슬 이름을 따 만들었다는 우리 놀이인 척사(擲柶) 또는 사희(柶戲)는 17, 8센티 박달이나 밤나무를 잘라서 만들었다. 흔해 빠진 아카시아로 하니 가시가 일어나 손에 자꾸 찔린다. 네 개로 하는데 옛말 윷(柶)이 4를 뜻하고 한자에도 4(四)가 들어 있다.
밤윷이라 해서 종지에 담아 던지는 윷도 있다. 멍석을 깔고 장작윷을 뿌리며 소리치고 놀던 정초의 모습이 선하다. 이것을 즐겨 치면서 세계에 자랑했으면 한다. 해 보니 이보다 재미 나는 게 있을까 싶다. 꿀꿀거리며 느리게 걷는 돼지에서 빠르게 달리는 말까지 가축으로 키우는 귀한 다섯 동물을 가지고 노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한 동이 아니고 네 동을 나야 하니 조상이 참 귀하게 만들어놨다. 풋 밭에 얼쩡거리다가는 죽기 십상이다. 빨리 샛길이나 뒷밭으로 가야 한다. 뭐라 해도 윷, 모 사리가 잘 나와야 빠르다. 도 개 쳐서는 어느 천년에 참으로 가나. 가다가 잡아먹히게 된다. 또 무겁게 합쳐 가다가 보면 길이 막혀 좌우로 달려드는 상대 말에게 붙잡힌다.
던졌을 때 아무렇게 나오는 말을 누가 알랴. 살아가는 게 윷과 같을 수 있다. 얼굴 높이로 던지면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다. 아들과 딸이 서울과 경기도로 가고 집에는 둘이 들앉아 있으니 적적하다. 그놈들이 있을 때는 언제나 북적거리며 이렇게 사는가 했는데 가고선 시끌벅적한 데가 없다.
저녁마다 띵똥 한다. 윷을 치자는 안방 신호다. 각방 생활을 하면서 급할 때 부르는 초인종이다. 얼마 전에 갑자기 어지러워 병원에 실려 간 적이 있다. 핑 돌 때 저쪽 방의 아내를 부르니 대답이 없다. 그래서 휴대폰을 하려니 막 빙빙 돌아서 켤 수가 없었다. 그 후 벨을 두 개 사서 달았다.
문구에서 사온 윷은 뭉툭해서 도, 개만 나오고 고향 어머님이 만들어 쓰시던 아카시아 윷은 가볍고 얇아서 윷, 모가 잘 나온다. 가시가 일어나 손을 찌른다. 사포로 문질러 매끄럽게 했지만 그래도 생긴다. 불모산에 물 뜨러 가면 여러 개 만들어 와야겠다 맘먹는다. 저녁마다 친다. 아랫집에 들리지 않게 깔고 던진다.
아내에게 오목을 가르쳐서 거실에 펼쳐놓고 자주 뒀는데 얼마나 잘 하는지 이길 수가 없다. 윷도 꼭 이겨야 하는가 눈빛이 억실억실하다. 부부인데 지고는 못 사는 눈치다. 한번은 여러 번 져서 돈도 잃고 나니 화가 나는가 이제는 안 친다며 둘둘 말아 어디다 집어 꿍쳐 넣고 말았다.
며칠 뒤 꺼내 깔아서 돈도 놓고 기다리니 껌벅 놀라며 못 이기는 척 다시 앉았다. 잘 되는 날은 계속 이기고 어떤 날은 죽어라 안 된다. 잘 가다가 퍽 엎어지고 도망가야 하는데 도, 개만 나온다. 높이 던져도 살살 굴려도 나오라는 말은 아니 되고 어긋나기만 한다. 실컷 지고 일어나 오려면 멋쩍다. 그래서 골이 났나.
결국 이기고 지는 게 비슷하다. 그래서 밤마다 해도 질리지 않는다. 여섯 판을 한다. 약속처럼 매일 그렇게 하니 일과이다. 으레 해 떨어지면 준비하니 안방 놀음이 일 년 내내 우리 부부를 붙들어 놓는다. 그러다 가끔 낮으로 바둑을 하는데 여기서는 돈을 걸지 않는다. 삼삼이나 삼사에 걸려 넘어지는 게 재미있는지 좋아라 한다.
나도 잘 될 때는 휘파람을 불며 노래한다. 그러면 얼굴에 바람 스친다며 불지 말라 한다. 속이 비뚜름한가 억양이 있다. 윷도 내리막일 때는 얼굴에 웃음이 줄어들고 막 던지는게 보인다. 그럴 때는 알아서 끝내고 빨리 내 방으로 건너가야 한다. 비상벨은 위급할 때 쓰라고 달아놨는데 아무 때나 눌러 댄다. 윷치자 간식먹자 뭐 하나...
윷 하나에 한쪽을 까맣게 칠해 백 도를 만들었다. 이게 가끔 나와 거꾸로 가야 하는데 도에 있다가 마지막 참으로 갈 수 있으니 재미있다. 요즘 만들어서 하는데 뒷걸음질 쳐서 잡기도 하고 지름길로도 가게 된다. 그게 웃음거리가 되어 까르르 넘어간다. 난데없이 나타나서 놀라워하는 게 윷의 새로운 모습이다.
나는 새는 없고 모두 길짐승이다. 돼지와 개, 양, 소, 말인데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는 가축들을 말로 쓴다. 화투는 눈치가 왔다갔다 소리없이 조용하게 하지만 이것은 꽤 요란타. 화투와 윷으로 점을 치기도 한다. 세시풍속으로 정이월 부락 간에 쳐서 이기면 농사가 잘 된다는 것을 믿는다.
설핏해지면 띵똥 소리가 기다려진다. 어떨 땐 졸다가도 초인종 소리에 일어나 한판 하러 간다. 제멋대로 나오는 윷말이 정말 재미있다. 가축을 이끌고 농사짓는 판이다. 그래서 밭이라 부른다. 한 동씩 끝나는 곳이 참이다. 말갈아 타고 쉬어가며 먹고 마시는 편안한 장소이다. 고달픈 몸을 잠시 머물게 하자.
첫댓글 동네 주막 마당에서 어른들 종지윷 놀이 옛추억이 그려집니다
감사합니다
보랏빛 가족도 만나 한번 쳐봐요.
날이 좀 풀려 집니다.
북한 김영춘이 온답니다.
어릴적에 외할머니가 저를 데리고 화투놀이를 잘했습니다.
어려서 자주 만저 그런지 사실 화투 좋은지 모르고 윷도 잊어버렸는데
말이 나오는 것이 기억 납니다.
참으로 오래 되었나봅니다. 윷쳐 본지가.
봄에 오실적에 윷 가져 오세요. 윷가락 다듬고 윷판 그려 놀까요?
우리 윷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