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제로 주교는 안니발레 사람들과 로마인과의 전쟁이 잦은 칸느 교구 주교였다.
주교는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가엽은 마음이 남달리 커서
주교관을 빈민 숙박소로 개조했다.
칸느는 그후 노르만족의 노벨토 구이스카르도의 침략으로
1083년 칸느 온 도시가 파괴되었다.
그러나 루제로 주교는 자신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1128년 빈민 숙박소를 다시 재건하여
불쌍한 사람들 방랑객들을 수행하여 따뜻하게 살게 했다.
성 사비노는 스뽈레또의 주교로서 교외 안팎에서 큰 존경을 받던 인물이다.
에트루리아의 집정관 베우스띠안은 성 사비노를 너무나 존경한 나머지
그에게 작은 쥬피터 신상을 선물하였다.
그러나 사비노는 이것을 받자마자 그가 보는 앞에서 땅에 내동댕이 쳐서 깨뜨려 버렸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큰 모욕을 받은 베우스띠안은 사비노 주교의 손을 자르도록 명하였다.
이때 그의 부제이던 마르첼로와 엑수뻬란시오 또한 신앙을 고백하여
함께 순교하여 아씨시에 묻혔고, 사비노는 투옥되었다.
세레나라는 어느 과부는 맹인이 된 아들을 데리고 와서
옥중의 사비노 주교에게 축복해주기를 간청했다.
이때 그는 그 아이에게 축복을 내렸는데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보고 집정관 베우스띠안은 온가족과 더불어 개종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사비노는 스뽈레또에서 순교하였다.
♤엑수뻬란시오 St.Exuperantius 303년 순교자
♤마르첼로 St.Marcellus 303년 순교자
♤베누스띠아노 St.Venustian 303년 순교자
성 베누스티아노 Venustianus 12.30 순교 303년
둘치시우스 총독이 테살로니카에서 잔인한 박해를 계속할 때,
연일 수많은 크리스챤들이 모여들어 집회를 계속하였다.
천애고아인 성녀 아니시아는 신자들의 모임에 참석키 위하여 카산드라 성문을 지날 때였다.
파수꾼 한명이 그녀를 보고는 어디 가는 길이냐고 묻자,
위험을 느낀 아니시아는 엉겁결에 십자성호를 그으면서 뒷걸음질 쳤던 것이다.
이에 군인 한명이 뛰어와서 "너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느냐?"고 다그치자,
그녀는 아주 태연하게,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주님의 모임에 갑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못간다. 그대신 너는 신전에 희생을 바쳐라"고 강요하였다.
그녀가 말을 듣지 않자, 베일을 벗겨 버렸다.
이어 그 군인은 그녀를 칼로 난자하여 성문에서 죽였던 것이다.
후일 테살로니카에 평화가 찾아들었을 때,
교우들은 그녀가 순교한 자리에 기도소를 세우고 용감한 그녀의 신앙을 기렸다고 한다.
♤아니시오(살로니카) St.Anysius of Salonika 407년경 주교
아니시오 Anysius 410 축일: 12-30 주교 테살로니카
성 아니시오는 테살로카의 주교이던 성 아콜리오의 제자로서,
"엘리아에 대한 또다른 엘리세오"를 꿈꾸었다고 한다.
개인적인 생애는 알려진 게 거의 없으나,
로마와 콘스탄티노블간의 논쟁이 심화 될 때 교화의 특사 자격으로 활약한 그는
교황 성 다마소의 열렬한 후원자였으며, 또 성 요한 크리스또므의 강력한 지지자였다.
그는 성 요한 크리스또므의 제재에 항의하기 위하여 콘스탄티노블로 가서
알렉산드리아의 테오필로에게 반격을 가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의 덕행들은 성 인노첸시오 1세와 성 레오(대)에 의하여 높은 칭송을 받았다.
♤만수애또 St.Mansuetus 483년경 순교자
♤세베로 St.Severus 483년경 순교자
♤아삐아노 St.Appian 483년경 순교자
♤도나또 St.Donatus 483년경 순교자
♤호노리오 St.Honorius 483년경 순교자
★에그윈 egwin 717 축일: 12-30 주교 워체스터
메르시안 국왕의 후손인 에그윈은 젊어서 수도자가 되었는데,
692년경에 잉글랜드의 워체스터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는 성직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로마로 고행의 순례길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에 메르시아 국왕 에텔레드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그는 에베샴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곳이 중세 잉글랜드 베네딕또 수도원으로서는 가장 큰 수도원으로 발전하였다.
709년경에, 그는 또 다시 로마 순례를 갔는데,
이때는 메르시아의 국왕 첸레드와 이스트 색손의 국왕 오파를 수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