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들이나 부인들 할 것 없이 모두가 얼굴에 화색이 그득하다.
누구의 얼굴에도 그늘진 곳이 없다. 찡그리거나
불만스러운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시종 싱글벙글 이다.
운영진의 치밀한 계획과 준비가 이런 결과를 낳았다.
호텔 체크아웃 시간이 제법 길어져 삼삼오오 모여앉아 풀어내는
간밤의 무용담은 칠순 노인들을 50년 전의 소년으로 되돌려놓는다.
술로 인한 실수 아닌 실수는 이런 경우에는
그야말로 가장 인간적이라 할 수 있다.
버스는 올 때와 달리 고속도로가 아닌 한계령으로 들어선다.
한계령이 개통되기 전에는 내설악에서 외설악으로 가는 길은
비포장인 진부령 외길뿐이었다.
그나마 단일로 라고 해서 자동차 두 대가 교행할 수 없기 때문에
헌병초소에서 줄줄이 늘어서서 맞은편에서 오는 차가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저쪽 헌병초소에서
가도 좋다는 신호가 와야 비로소 출발하는 좁은 골목길 수준이었다.
이제는 진부령 미시령 한계령이 뻥 뚫려
내설악에서 동해안으로 가는 길이 엄청나게 편해졌다.
한계령은 68년부터 민간 건설회사가 아니라
당시 3군단장이던 김재규 중장의 총지휘하에
육군 공병부대가 건설했다.
국가 예산이 없기 때문에 60년대 후반까지도 기름과 장비 모두가
미국의 원조로 운영되던 공병부대가 건설을 하게 된다.
내설악에 들어서자 외설악과는 달리 단풍이 제법 화려하다.
근처에 주전골 흘림골이라는 절경이 있지만
스쳐 지나야할 우리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포장이 잘되었다고는 하지만 구절양장(九折羊腸)
꼬불꼬불하고 험한 한계령을 넘어 장수대를 지나
원통 근처의 휴게소에서 잠시 멈춘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라던 원통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50년대에 원통에서 사단장으로 복무했다.
그가 사단장일 때 인제읍과 3군단 사령부가 소재한
관대리를 잇는 군축령을 완공했다고 한다.
그때 벌써 국토건설의 조짐이 보였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고개 이름이 참 촌스럽기도 하지.
군대가 건설했다고 해서 군축령(軍築嶺)이라고 명명했다니
군대식으로 우직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상상력이 부족한 우둔함이라고 해야 하나.
관대리의 3군단 사령부는 소양댐 완공으로
소양호에 잠겨 흔적조차 찾을 길 없다.
그 옛날 군대시절에 넘어 다니던 흙먼지 자욱한
군축령은 사라지고 4차선 포장도로가 널찍하다.
강원도 동부는 젊은 시절의 우리에게
군대를 빼고는 할 말이 별로 없다.
원통과 양구 홍천 등 동부전선에서 군대생활을 한 동창에게는
갖가지 추억이 서리서리 쌓인 곳일 터.
잘 닦인 국도를 막힘없이 달려 남이섬에 도착한다.
남이섬을 관광지로 개발하여 수익이 생기자
경기도 가평과 강원도 춘천이 서로 관할권을 다툰다는
보도에 접한 적은 있지만 와보기는 처음이다.
무능한 자들이 남이 지어놓은 밥상에
숟가락 들고 덤비는 꼴이라니.
겨울연가라는 드라마와 드라마에 나오는
욘사마라는 곱상한 얼굴을 한 탤런트의 위력이 과연 대단하다.
섬으로 들어가는 배에는 거의 대부분이 일본 아줌마들 단체와
중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이다.
선착장에는 나미나라(Nami Republic) 입국이라고
커다랗게 써놓고 출입국관리소도 만들어놓았다.
선표(船票)에 입국허가 스탬프를 찍어주는
동화 같은 장사수완도 보인다.
일본이나 중국 관광객들은 아마도 인증서로 쓸 것이다.
전에는 버려져 쓰레기로 덮인 땅에 사통팔달 길을 내서
은행나무 삼나무 메타세쿼이아 등 높고 곧게 자라는 나무를
계획 식재하고 질 좋은 정원수로 가꾸어 군데군데
약간 조잡하기는 하지만 각종 조각상을 세워놓고 관광지로 개발했다.
사진작가인 동창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풍광이자 기회이겠다.
조선조 비운의 남이장군과는 아무런 연고가 없음에도
그의 시비와 묘도 만들어놓았다.
역적으로 몰려 처형당한 남이장군이 몰래 묻혔다는
전설의 돌무더기에 흙을 덮어 가묘를 만들었으니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고 칼국수에 칼이 없듯이
지금의 남이섬에 잘 가꾸어진 남이장군의 묘는 허묘다.
관광 상품의 상업적 애교쯤으로 받아들여 그러려니 웃고 만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남이섬 관광회사에는 정년이 없다고 한다.
누구나 체력이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근무하게 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80이 넘은 노인들 상당수가 본인이 스스로 그만두지 않는 한
이곳에서는 자기 능력에 맞춰 근무한다고 한다.
보수의 높낮음에 상관없이 늙도록 일거리가 있다는데
근로자들이 흡족해 한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회사밖에 널리 알리는 것도
상업적선전의 일환일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기발한 발상임에 틀림없다.
바로 곁에 있는 자라섬은 재즈 페스티벌로 유명하다.
춘천에 왔으니 춘천 닭갈비가 빠질 수야 없지.
점심으로 매콤한 닭갈비에 막걸리 한잔.
세상에 부러울 것 없어라.
대인원이 숙식을 함께하는 것은 오늘로 마감이다.
잠실운동장에 도착하여 토요일(10.13)에
한강유람선에서 다시 만나기로 기약한다.
11일의 남대문시장 통일옥에서의 점심과
13일 오전 남산트레킹에 이은 장충동 평양면옥에서의
점심이 있기는 하나 이 두 가지는 공식행사가 아니므로
참가인원이 많지 않을 듯하다.
양양 솔비치에서의 2박3일은 우리 동창의 황홀한 만남이었다.
특히 운영진의 빈틈없고 탁월한 운영능력은
우리 동창들 가슴에 두고두고 남을 추억이자 공로일 것이다.
역시 좋은 학교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농담으로
운영진의 노고를 격려하고 보답한다.
50주년 행사를 치르면서
도처에 고수가 즐비하다(到處有高手)는 사실을 실감한다.
어찌 50주년뿐이랴.
이목에서의 활약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다들 이런 재능을 여태 숨기고 있었다니 놀라울 뿐이다.
이제 한강 유람선을 타러가자.
첫댓글 근일형의 고고학적 지식이 한계령 구절양장에 얽힌 사연에서 한껏 빛을 발하는구나! 관대리가 물에 잠긴 줄도 모르고, 나는 2사단 31연대 1대대 화기소대 졸병 시절 그곳 탄약고에서 4시간짜리 맞교대로 야간보초를 섰던 추억이 그리워 거길 찾아갈 꿈을 꾸며 살아왔다니.
졸업50주년행사의 말미를 한계령의 건설 역사와 남이섬을 함께 이야기 해 주니 즐거웠던 그 때가 다시금 생각나는구나.
오감으로 인지한 것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글을 써본 사람이 아니면 모를 것이다. 윤영백은 시인으로, 이근일, 박충건은 글쟁이로 나서도 손잭이 없을 것 같다. 어찌 실감나게 글을 잘 쓰는지.
육군 공병대에 의한 한계령 건설과정,,,,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고찰과 예리한 관찰력 감탄사가 절로 터지네.
역사학자, 수필가,작가들 ,긴장 되시겠네요,,,,.
즐겁고 해복했던 추억들 전부 잘 간직하고 싶습니다. 잘 남기도록 계획하여 봅시다.
잘못 알고있었던 사실들을 깨우쳐 주셨오이다.
군축령이 강능/속초 루 넘어가는 highway(?)루 기억 하구 살았었는데,,,
3군단본부, 관대리가 물속에 잠긴것두 몰랏꾸, 그 갯가에 탄약수령가던 츄럭 세워놓쿠 이잡으며 밥해먹던 관대리가,,,?
게다가 이교수가 같은 양구빠닥 군대동긴건 오늘에야 알앗으니,,,나는 2사단 62포대에서 황홀하구 화려한 강원도2년을 보냈다오.
머루, 다래, 콩서리, 살무사쌩고기, 막국수,,루 멍구일생 적어두 정서적으룬 최정상을 보낸 맘에 고향인데,,,
멍구형두 참, 당신께서는 70년 이전에 대학, 포병장교를 다 마치고서는, 비행기타고 시카고로 비상한 터수에, 뭉기적거리며 겨우 입대해서, 인제 기둔리에서 벙커공사에 동원되어, 자갈 골재를 등짐으로 지고 하루 다섯차례 이상 878고지를 오르락거리다가, 일병으로 제대한 몰골 사나운 동창더러 군대 동기라니. 차라리 병역 마친 나를 왜 총리로 지명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해주시는 게 더 낫지.
군축령 ?
괸찮은 이름인데? 이런 사실을 모르면 어감이 별로 나쁘지는 않다만--- 당시엔 詩的으로 명명할만한 여유가 없었겠지.
이런 사실도 다 역사가 되겠지.
남재형이 드디어 시적인 이름과 군사적인 이름을 능수능란하게 구분하는 경지가 되었다!
여행기와 함께 역사를 더듬어 보니 금상첨화로다.
가지 않고 글로 보는 여행이 더 재미 있도다.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괜시리 젊어지는 기분이 들며 젊을때의 좋은 추억들이 마음속에서 솓구처올라온다. 우리가 뻐스로 지나가던 홍천 원주 황걔 대관령 강릉 속초 한계령 원통 인제 남춘천 가평 남이섬...차창 밖을 내다보면서 군생활을 하면서 있었던 일을 회상하고 있었는데 이런 생각을 한것이 나뿐만은 아니었었구나. 좋은 기억을 다시 더듬어볼수있게 만들어줘서 넘 고맙다.
내가 총리로 지명되어, 미래창조과학부장관 이정인, 국방부장관 한멍구, 법무부장관 이근일, 교육부장관 조남재, 문화부장관 윤영백 . . . 하면서 신나게 명부를 불러제끼다가 깜빡 깨어나니 한바탕 꿈이었다. TV에서는 '젖 먹을 때부터 지은 죄가 많다'는, 이름도 성도 못 들었던 정인홍이가 총리로 지명돼 있다. 한마디로 족같은 놈들이 족같이 놀고 있구먼.
애기만해두 섬찟허우다.
"고소영"출씬은 들봣어 봣어두 "대영해"출씬은 첨 듣지요?
대광고등, 영낙교회, 해방촌피난민촌, 감이좀 가시우?
어름판에서 자빠지믄 엉덩뼈나 나가지 거 머시기 청문횐가 청어횐가에 거치구나믄 나마지 뼈꺼정 다 발리우게 생겼읍디다.
우린 젖먹기전부텀 죄진 사람들 아니우? 오늘밤 잠들기전에 총리꿈만 좀 빼줍시사 미리 기도허시구 주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