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의 사랑 스캔들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지족선사와 서 경덕의
삼각관계를 꼽을 수 있다.
옛날 송도에는 백성들이 심히 우러러보는 두 사람이 있었으니 한 분은
화담 서 경덕이요 다른 한 분은 지족선사였다.
서 경덕은 양반이나 집안이 빈한하여 홀로 독학을 하며 개성의 화담이란
동네에서 학문을 연마하며 후학을 기르치셨고 지족선사는 지족암이란 암자
에서 달마스님처럼 10년간 면벽을 하며 도를 닦기위해 묵언수행(默言修行)을
하고 있었다.조선 팔도의 뭇사내들이 송도의 황진이란 꽃을 꺾기위해 몰려
오는 판에 정작 동네의 두 남자만 자기를 거들떠 보지않자 황진이는 자존심이
상해 두 남정네를 유혹해 보리라 작정을 한다.
깐깐한 성격의 지족선사보다 서 경덕을 먼저 우혹하려던 황진이는 아마도
선사를 먼저 만나보라는 경덕의 말에 어느 더운 여름날 얇은 모시옷을
입고 선사가 거처하는 굴로 가던 중 소나기를 만난다.비때문에 옷이 몸에
살짝 달라붙은 섹시한 자태의 황진이를 보고도 선사가 거들떠 보지도않자
황진이는 예전에 사모했던 서방님에 대한 불공을 드린다며 청아하고 촉촉한
목소리로 창을 부르자 철불같은 선사도 무너지기 시작하여 끙 소리를 내며
황진이의 품에 안기고 만다.황진이는 한 수 더 떠서 선사가 자기 가랭이
사이로 지나가도록 철저히 망가뜨린다.황진이에 의해 파계가 된 선사가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라 그때 자조적으로 내밷은
말이 "십년공부 나미아미타불"이다.후에 속된 말로 도로아미타불로 바뀌었지만,,,
그후 선사는 부끄러움과 회한으로 송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황진이는 같은 방법으로 비오는 날 얇은 모시옷을 입고 경덕을 찾아간다.
경덕은 의외로 황진이를 반갑게 맞이하고 젖은 옷을 벗겨주며 온 몸의
물기를 닦아준다.황진이가 배가 아프다고 하니 손으로 배를 문질러주고
배로 문질러 달라하니 옷을 벗고 배로 문질러 주는데 서로의 몸이 一자가
아닌 十자의 형으로 문질러준다.황진이는 황당하고 안타까워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웠는데 경덕은 별일이 없다는 듯 책을 읽다가 누워서 코까지 골면서
잤다 한다.이 대목에서 황진이는 "졌다"하고 경덕과 사제의 정을 맺는다.
황진이 왈"송도에는 도저히 꺽을 수없는 것이 세 개가 있는데 박연폭포,
선생님(서 경덕) 그리고 저의 마음입니다" 하였다.이것이 송도삼절(松都三絶)이다.
서 경덕과 지족선사는 내가 추론해 보면 서로 라이벌 관계였던 것 같다.
허나 믿었던 선사가 너무 허망하게 무너지자 묘한 쾌감과 승리감도 있었지만
지조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지 않았나 싶다.서 경덕은 이미
결혼을 하여 처자식이 있는 사람으로 어찌 남녀의 운우의 정을 모르겠는가!
모든 송도의 백성들이 자기를 주시하고 있다고 생각하자 차마 황진이와
사랑놀음을 할 수는 없었으리라.그러나 그도 사내인지라 가끔 황진이를
그리워 했다.아래 시조가 그의 애절한 마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마음이 어린 후(後)니 하난 일이 다 어리다.
만중 운산(萬重雲山)에 어내 님 오리마난,
지난 닙 부난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
마음이 어리석고 보니 하는 일마다 모두 어리석다,
만겹으로 구름이 둘러싸인 (성거)산에 어느 누가 나를 찾아오겠냐마는,
그런데도 바람결에 떨어지는 낙엽소리를 듣고 혹시 그녀가 왔나 하는
마음에 방문을 열어본다.
서 경덕을 끔찍이도 사모했던 황진이가 이 시조를 듣고 가만 있으면
안되지.아래의 시를 지어 화답을 한다.
내 언제 무신(無信)하야 님을 언제 속였관대
월침삼경(月沈三更)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秋風)에 지난 닢 소래야 낸들 어이 하리오
내가 언제 신의도 없이 님을 속였겠어요, 절대 그런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달 밝은 깊은 밤에 무기력하게 무엇을 해야겠다는 마음 또한
없습니다.(즉 마음이 허전하옵니다).
가을 바람에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까지 낸들 어쩌겠습니까?
분명 서경덕의 시조 종장에 대한 답으로 나도 당신이 이렇게 그리운 것을,
당신이 나를 그리며 나뭇잎 소리를 내 발걸음 소리로 착각하는 것까지
내가 어쩔 수 있겠어요? 뭐 그런 뜻이다.
이렇게 경덕을 사모하던 황진이는 미인박명이라고 30살을 살다가 갔다.
한편 멀리서 서 경덕의 행보를 초조하게 지켜보던 지족선사는 경덕이
황진이의 육탄공세를 훌륭하게 방어하자 그만 낙담하고 자기를 먼저 시험하려
했던 경덕에게 증오의 마음이 싹튼다.경덕이 임종이 가까와지자 그는 후손에게
신신당부를 한다."내가 죽은 후에 무덤의 깊이를 3자이상 파지마라.누가
뭐래도 이를 명심하거라.그렇지 않으면 후손이 번창하지 못할 것이니라"
경덕이 운명하자 후손들이 무덤을 3자만 팠는데 지나가던 고승이 무덤을
3자만 판다는 것은 과거에도 없는 일이다라고 하자 그만 부친의 유언을
깜빡 잊고 3자 이상을 파고 안장을 하였다.그러자 그 고승이 파안대소를
하면서 "이제야 화담에게 분풀이를 했구나" 하면서 학으로 변해 창공으로
날라갔다고 한다.그게 누군지는 알겠지?
그후로 화담의 예언대로 화담의 자손은 번성치 못했다고 한다.
누가 더 인간적인가?
누가 더 멋있는가?
우리는 누구를 추구해야 하나? 당신은 지족을? 서화담을?
나이에 따라 정답이 다른가?
황진이는 정말 서화담을 좋아했을까?
아니면 지족을 넘어서 화담까지 넘봤나?
고 1때 침 튀기면서 이 이야기로 열변을 토하시던 변 영 대 선생님 왈~
고래 **에 빠져 죽은 사나이!
영자의 **는 누가 입혔나(?)! 하시며 졸음을 쫓으려 하시던 선생님!
어느 날 자전거 타고 넘어져서 얼굴 치료 후 반창고 붙이고 와서는
야들아! 내가 잔~차 타고 가다 넘어져서 큰일날 뻔 했다!!!
내가 "선생님 어제 밤 황진이 만나신 것 아닌가?"하니
옆에 앉았던 김동규가" 황진이 태우고 가시다가 넘어진 아니야?"
치료는 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 동부국민학교 앞 시립도서관 옆에
손의원에서 치료 받고 있다고 하셨는데 확인이 필요할까?
지금도 아마 얼굴에 상처 있으실걸!
첫댓글 긴 설명, 감사합니다. 고등학교 때는 송도 삼절만 배웠는데, 삽십절도 더 외우네. 古文에 박식하다.
역시 종찬이구나 시발노무새기 부터 고문에는 일가견이 있네그려 이과 출신이면서.... 참 메일은 잘 받았는데 내 답장은 잘 받았는가? 학생들에게 들려 줄께.
편지 잘 받았네! 같은 찬 자 들었다고 너무 띄우면 남이 욕하지! 아뭏튼 고맙네! 우리 1~3반 Let`s go!
정말 기억력 하나 짱이다. 자넨 도대체 환자 돌볼 공부는 안하고 늘 잡기에 능하니 의심스럽다.. 가히 자네는 안동의 삼절일세.
동진아! 변성생님께서 얼굴 다치신 것 기억하지! 손의원 원장이 잘 해주셔서 변선생님께서 감동 받았다고 했지.너 같은 반이어서 알겠지만 나는 키가 작고, 동규는 큰데 둘이 같이 앉고 싶어서 나는 발을 들고 동규는 무릎 굽혀서 꿈을 이루고 장난 많이 쳤다.재미 있는 이야기는 다 못한다!
지나면 모든게 아름다운 추억인 것을....
이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분이시다 ~~~ 변 영 대 선상님 건강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