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방송학과 200414195 (역시나 이쁜!) 선민입니다.
인터넷으로 글을 봐서.. 페이지가 없답니다.
양해해주세용..ㅠ.ㅠ 도서관에서 아무리 기다려봐야 반납이 안되서..^_________^;;;
앗.. 수업가야지.... 곧 뵙겠습니다!!! 슝~~!! ^_^
(덧. 다시 읽어보니 문법적으로 안맞는 부분이 있어 약간 수정했습니다...^^;; )
주제 : 과연 이 소설은 ‘인간의 법칙을 두려워하지 않는 안티고네의 비극’을 그렸는가?
구성
◎ 폴리네이케스는 추방 지에서 돌아와, 아버지의 나라와 조상들이 모셔온 신들의 신전을 말끔히 불태워 버리려 했고 동포의 피를 마신 다음 남은 사람들을 노예로 삼고자 했습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는 백성들이 장사 지내주거나 조문하는 영광을 베풀어서는 안되며, 묻지 않고 내버려 두어 그 시체를 새나 개가 뜯어먹게 해서 보기에도 끔직한 수모를 겪게 하라고 명령했습니다.(크레온)
◎ 또한 나라의 적을 내 친구로 여기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우리의 안전을 지켜 주는 배와 같아서 이 배가 순탄한 항해를 할 때에만 우리는 참된 친구들 사귈 수 있는 것입니다.(크레온)
◎ 저는 왕께서 정하신 법이 하늘의 법과 같은 힘을 지니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하늘의 법은 어제, 오늘에 생긴 것이 아니며 아무도 그 법이 언제 생겼는지 알지 못합니다. 저는 인간의 자존심은 두려워하지 않지만 신 앞에서 하늘의 법을 어겼노라고 대답할 수는 없습니다.(안티고네)
이 소설에서 주목할 수 있는 점은, 크레온도 안티고네도 모두 자신의 뜻이 진정한 ‘신의 뜻’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그 당시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자신의 명분을 확립함으로써 스스로 나아가 주변인들이 납득할만한 합리화를 하고 있다. 이는 본문의 전제가 된다.
국가의 입장에서 본 ‘반역자’와 혈연의 입장으로 본 ‘오빠’의 대상을 같은 인물로 설정함으로서 이 비극은 시작한다. 그리고 예언자나 백성 등의 여러 인용구를 통해 안티고네를 영웅적 존재로 부상시키려는 ‘작가의 의도’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정말 그 시대의 자랑스러운 여성이었는가? 현 시대가 만들어놓은 (당시 왕=법 이라는 것을 감안했을 경우) 법을 무시하고, 개인이 자신의 ‘법’을 만들어 내는 것이 옳은 일인가?
이 소설의 전편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에서도 안티고네는 효성이 짙고 연민이 많은 여자로 등장한다.
그녀와 동일인물로 봤을 경우, 안티고네는 자신의 가치관을 버리지 않고 지킨 것이 된다. 그녀에겐 반역자 폴리네이케스보다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가치가 더 중요한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크레온은 조카로서의 폴리네이케스보다 반역자 폴리네이케스의 의미를 더 크게 보았다는 걸 알 수있다. 그의 눈으로 봤을 때 폴리네이케스는 자신의 조카이기 전에 한 나라의 백성이었을 터, 그런 그가 '동포의 피를 흘려 마셨다는 것'은 왕인 그에게 천인공로할 일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안티고네나 크레온이나 자신의 입장과 역할 그리고 가치관에 충실한 것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별히 누구를 영웅으로 볼 것도, 특별히 누구를 악인으로 볼 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티고네’를 평론한 많은 자료들은 소포클레스의 ‘뜻’을 받들어 ‘크레온의 용렬함을 비판하고 안티고네의 정의에 대한 불굴의 정신을 본받자’식의 감상이 대부분이었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얼마 전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지율스님의 100일 단식이 생각났다. 터널공사를 막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바쳐 일인시위를 진행한 것이다.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모습은 (불교 측의 경영적인 입장을 배제하고 정말 순수한 의도로 봤을 때) 스님의 입장과 청와대의 입장, 마치 이 둘 같아 보였다.
최종적으로 이 사건은 지율스님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끝을 내렸다. 그러나 그로 인해 국가는 8조원 이상의 손해를 봐야했고, 국민들의 불편 또한 만만치 않게 되었다.
우스갯소리로, ‘나도 단식 100일 해야겠다’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국가란, 그렇게 쉽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뜻이 모이고 국토를 비롯한 여러 법을 제정하고서야 만들어 지는 것이 한 국가인 것이다. 만일 그녀가 정말 그 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면, 자살이나 막무가내의 매장이 아닌 ‘법 안에서의 새로운 법률’을 모색해야했어야 한다.
이렇듯 나는, 이 소설에 관해 평론가들이 주장한 그 어떠한 교훈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크레온의 변명만을 잔뜩 늘어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 또한 나의 가치관에 따라 서술한 것 뿐이다.
신은 인간을 창조했다.
그리고
인간은 신을 만들었다.
- Min~
첫댓글 brav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