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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사람치고 축구 싫어하는 사람 없을 텐데, 현존하는 독일 최고의 문호 귄터 그라스(Günter Grass, 1927~) 역시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축구 광팬이다. 귄터 그라스는 “FIFA(국제축구연맹)는 겁쟁이다. (FIFA의 무사 안일주의로 인해) 축구는 각국 국민들을 위한 스포츠가 아닌 단순한 사업이 돼버렸다”고 질타하면서 함부르크를 연고로 하는 FC 상파울리(분데스리가 2부리그)를 열렬히 지지한다.
19세기 초엽 소년 브람스가 피아노 연주로 생계를 도모했고, 20세기 중엽에는 잉글랜드 리버풀 출신의 젊은 청년 4명이 무대에 오르기도 했던 상파울리는 함부르크, 아니 독일 전체에서도 유명한 홍등가를 두고 있다. ‘박애’ 정신으로 충만한 이 지역의 특성상 FC 상파울리는 인종차별, 성차별, 약자에 대한 폭력 등에 반대하며 그에 관한 슬로건을 경기장에 내걸고 축구를 하는 팀이다. 나치와 그 문화를 반대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 자신이 나치 참여 전력이 있지만 [양철북], [나의 세기] 등의 작품을 통해 20세기의 정치적 야만과 폭력을 비판하며 인간성을 수호해온, 그런 이유로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귄터 그라스가 FC 상파울리의 팬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워 보인다.
독일의 대문호 귄터 그라스. 축구광으로 알려진 그는 한일월드컵 개막식에서 축시를 낭송했다. <출처: (cc) Florian K at en.wikipedia.org>
그런 귄터 그라스가 2002 한일월드컵 때, 개막식에 초청되어 축시를 낭송했다. 큰 행사장에서 누군가 축시를 읽는다고 하면 대체로 무슨 감흥에 젖기보다는 그 의식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게 모두의 바람이다. 특히 축구라면 본 경기에 앞서서 열리는 행사는 짧을수록 좋다. 역시 축구광답게 귄터 그라스는 세계 축구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매우 짧은 시를 낭송했다. 2002년 5월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개막식 때, 정말로 짧은 시를 읽고 나서 그는 수만 명의 박수를 받았다. 아마도 짧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읽어보면, 짧은 시지만 그 내포하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13년 전의 그 시를 다시 한 번 읽어보자.
천천히 축구공이 하늘로 떠올랐다. Langsam ging der Fussball am Himmel auf.
그때 사람들은 꽉 찬 관중석을 보았다. Nun sah man, dass die Tribuene besetzt war.
고독하게 시인은 골대 앞에 서 있었고, Einsam stand der Dichter im Tor,
그러나 심판은 호각을 불었다. doch der Schiedsrichter pfiff.
오프사이드. Abseits.‘밤의 경기장(Naechtliches Stadion)’
‘오프사이드!’라는 놀라운 단어로 순식간에 종지부를 찍어버리는 이 시는 축구의 엄숙성을 단칼에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기존 관습의 명령과 차디찬 호각 소리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새로운 사유의 영토로 침범해 가야만 하는 예술가의 숙명적인 ‘오프사이드’ 반칙을 보여준다. 짦은 시 속에서, 시인은 오프사이드 위치에 혼자 서있다. 시인은, 그리고 예술가와 지식인은 모름지기 그런 존재이며 그들의 진정한 영토는 바로 그 텅 빈 사유의 공간이어야 하는 것이다. 비록 반칙을 알리는 호각 소리가 울리더라도 예술가는 미지의 영토로 끝없이 달려가야 하는 것이다.
K리그 수원 대 성남의 경기에서 최종 수비수와 나란히 움직이는 선심.
스포츠는 모순이다. 승자가 있으며 패자가 있다. 곧 모순(矛盾)이다. 회심의 펀치를 날리려는 순간 카운터펀치가 들어온다. 창과 방패가 암수 한 몸으로 뒤엉켜 있다. 축구? 90분 동안 차고 달리는 이 역동성이야말로 모순 덩어리다. 골을 넣어야 이기지만, 수비를 허술하게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미드필더까지 뒤로 물리면 이길 수도 없다. 결국 공간 싸움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결국 축구는 오프사이드로 인하여 축구가 된다.
오프사이드라는 발상 자체가 모순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축구의 기원에 대해서는 약 2천 년 전쯤에 중국 한나라에서 ‘츄슈’라는 놀이를 했다는 것을 포함하여 각 대륙의 유구한 민속 문화가 빠짐없이 거론된다. 그중에는 8세기 경 영국 군인들이 템스 강으로 쳐들어온 덴마크 군대를 물리치면서 적군 장수의 머리를 발로 찬 것도 포함된다. 그러던 것이 마을 대항의 풍습이 되었다. 마을의 사람들이 모두 참여했기 때문에 수십 명씩 우르르 몰려 다녔고 부상자도 많이 생겼다. 이로 인하여 영국에서는 1310년 경부터 1840년 경까지 42차례나 축구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오프사이드의 원형도 여기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상대 진영에 너무 깊숙이 가 있으면 일찍부터 격투를 벌일 위험이 있고, 또 쉽게 골을 넣게 되면 축제가 일찍 끝나기 때문에 일정 지점까지는 미리 들어가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물론 오늘날과 같은 오프사이드는 1863년 런던에서 11개 클럽이 모여 축구협회(the FA)를 창설하고 규칙을 정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규칙은 경기장 한쪽 끝 수비 지점에서 상대 진영 골문 앞으로 길게 패스하는 단조로운 경기 방식, 곧 ‘골문 앞에 우르르 몰려 있는 축구’를 배격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1896년에 보다 정확하게 공식화되었는데, 그 무렵의 규정은 다음과 같다. “선수가 공을 찼을 때, 같은 팀 선수가 상대팀 골라인 근처에 있으면 반칙을 선언한다.” 즉, 오늘날처럼 정교한 규칙이 아니라 다만 ‘골라인 근처’에 있으면 반칙이 되었다. 그러니 미세한 조정이 필요했다. 3년 후 이 규정은 “골라인과 패스를 받는 사람 사이에 수비수 세 명이 있으면 전진 패스를 허용한다”는 쪽으로 수정되었다. 그러니까 수비수 두 명 이하면 전진 패스를 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다가 1925년에 수비수 두 명으로 제한되었다.
그리고 1990년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공격수가) 볼과 최종 두 번째 상대편보다 상대편의 골라인에 더 가까이 있을 때 ‘선수가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다’고 한다”는 것으로, 이는 현재 축구 규정 11조에 해당한다. 이를 거꾸로 해석하면 ‘골키퍼를 포함하여 마지막 두 번째 수비수와 나란하게 위치(동일선상)하면 오프사이드가 아니다”는 말이 된다.
![]() 2006 독일월드컵 코트디부아르 대 세르비아 헤르체고비나 경기에서 최종 수비수와 나란히 달리고 있는 선심. | ![]() 진지한 동작으로 오프사이드 반칙을 살피고 있는 선심. |
그러나 이 섬세한 규정은 또 다른 문제를 낳았다. 오직 선심의 눈으로 판단을 내리는 오프사이드 규정 상 공격수가 패스하는 위치와 그것을 받고자 하는 동료 공격수가 선심의 시선에서 볼 때, 사선으로 서게 되는 경우가 많고 그리하여 오심 논란이 끊이지 않게 된 것이다. 방송 카메라가 리플레이하는 장면에서 선심이 판단한 ‘동일선상’과 카메라의 화면이 다른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럼에도 이 원칙은 현재까지 변하지 않고 있다. 다만 보다 공격적인 축구를 지향하기 위하여 비록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다 하더라도 그 공격수가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하지 않았고, 공의 방향과 무관할 경우에는 반칙이 되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이는 6,70년대에 리버풀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빌 샹클리 감독이 20세기 중엽부터 강조했던 것이다. 그는 “오프사이드 라인 안에 있던 선수가 경기에 관여하지 않거나 그 위치에서 팀 플레이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가 없었다면 반칙이 아니다”고 오래 전부터 주장해왔다.
한두 가지 더 점검해보자. 오프사이드 규칙은 상대방 진영에서만 적용한다. 상대 수비수가 하프라인을 넘어서 모두 내려와 공격에 가담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오프사이드 규칙은 발생하지 않는다. 예리한 공격수의 단독 역습이 이때 창조된다. 또한 수비수가 골키퍼에게 ‘백패스’를 할 때 공격수가 어느 위치에 있느냐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플레이 상황이다. 단독 드리블 돌파, 스로인, 골킥, 코너킥 등의 경우에 이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 상식적인 얘기다. 아예 상대 진영의 최극단에서 시작하는 코너킥은 말할 것도 없고, 스로인이나 골킥 때 상대 수비수들이 다 앞으로 전진해 버리면 사실상 스로인이나 골킥에 의한 인플레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오프사이드 트랩 위에서 태어난 선수”라는 평가를 듣는 공격수 필리포 인자기. 섬세하고 예리한 공격 본능을 타고난 선수라는 극찬이다.
오프사이드가 없는 축구를 잠시 상상해보자. 실제로 이런 푸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프사이드 때문에 골이 많이 터지지 않는다고, 오프사이드 논란도 끊이지 않으니 없애면 어떠냐고. 그러나 이 규정을 없앤 축구는 지금 우리가 보는 축구가 결코 아니다. 우선 키 큰 공격수가 상대 문전에서 어슬렁거릴 것이다. 미드필더들은 웬만하면 크로스를 올린다. 지루한 ‘뻥’ 축구만 반복되는 것이다. 게다가 키가 작은 선수도 활약할 수 있는 현대 축구의 매력이 사라진다.
그렇다면 다시 오프사이드를 적용해보자. 수비진은 상대 공격수를 멀찍이 밀어낸다. 그리하여 최종 수비수와 골키퍼 사이에 모순의 공간이 생성된다. 이 모순의 공간 때문에 일자 수비, 오버래핑, 월 패스, 쉐도우 스트라이커, 사이드 어태커 등의 용어가 실질적인 의의를 갖는다. 이 규정에 의하여 상대의 전술을 역이용하려는 모순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이며 축구의 역동성 또한 더욱 증가한다.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오프사이드 논란은 가벼운 찰과상에 불과하며 오히려 그런 논란과 더불어 현대 축구는 미증유의 흥미로운 용광로로 빨려들어간다.
단적으로 말해 오프사이드가 있기 때문에 현대 축구가 성립된다. 타고난 공격수들은 늘 오프사이드에 걸린다. 홈런 타자가 삼진이 많다는 속설처럼 뛰어난 공격수는 어김없이 오프사이드 반칙을 범한다. 베르캄프, 앙리, 호날두, 메시, 박주영 등이 그렇다.
그러나 귄터 그라스의 시처럼 이들이 오프사이드 반칙이 두려워서 한두 걸음 뒤에 있었더라면 결코 골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골에 대한 욕망, 수비수를 흔들어버리겠다는 포부, 또한 그것을 실천해낼 수 있는 공간 상상력과 스피드 등이 그들의 몸을 일순간 밀어낸다. 물론 그때 심판은 휘슬을 분다. 오프사이드! 그러나 이들은 제 욕망에 몸부림치며 다시 적진으로 달려가서 상대 수비수들의 오프사이드 트랩을 돌파한다. 이번에는 골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가 이동국이든 박주영이든 공격수가 골에 대한 욕망으로 공격을 하다가 오프사이드 반칙을 범한 것에 대해 결코 비난해서는 안 된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이탈리아 대표팀과 AC 밀란의 공격을 도맡았던 필리포 인자기에 대해 “그는 오프사이드 트랩 위에서 태어난 선수”라고 말했다. 그만큼 섬세하고 예리한 공격 본능을 타고난 선수라는 극찬이다.
영화 <오프사이드> 포스터. 2006 베를린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출처: 네이버 영화>
이번에는 영화 얘기다. 물론 일정하게 실제 상황을 바탕에 두고 있다. 2006 독일 월드컵 본선 진출을 앞두고 이란과 바레인의 지역 예선 마지막 경기. 이 한 판으로 본선 진출 여부가 가려지기 때문에 테헤란의 남자들은 대거 경기장으로 몰려간다. 그 무리 중에 자그마한 체구의 소년(?)도 경기장으로 들어가려 한다. 그러나 군인에게 잡히고 만다. 그는 소년이 아니고 소녀였다. 여자들은 축구장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이란 정부의 방침에 걸린 것이다. 붙잡힌 소녀는 경기장 외곽에 마련된 임시 수용 시설에 갇힌다. 거기에는 축구를 보기 위해 축구장에 몰래 잠입하려다 걸린 소녀들이 모여 있다.
마치 눈 앞에서 녹아 없어지는 아이스크림을 봐야 하는 것처럼, 그녀들은 출입구 바깥 임시 수용소에 갇힌 채 바로 안에서 들려오는 응원 소리와 환호 소리를 들어야 한다. 고문에 가깝다. 소녀들은 어리숙해 보이는 어린 병사에게 경기 상황을 전달해 달라고 간청한다. 소년 병사는 그렇게 한다. 그런데 너무 단순한 ‘중계’다. 소녀들은 좀 더 박진감 있게 들려달라고 한다. 그제야 소년 병사는 마치 중계 캐스터처럼 철창을 통해 축구장 안을 들여다보면서 소녀들을 위해 이란 경기를 들려준다.
실제 아마추어 축구 선수 경력이 있는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2006년 베를린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고, 2006년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촬영 도중, 작품 내용이 불순하고 군인이 부정적으로 묘사된다는 이유로 당국에서 곧바로 촬영 저지라는 명령까지 내렸는데, 감독은 군사지역을 떠나 테헤란에서 60킬로미터 떨어진 외곽에서 촬영을 마무리했다.
이 소박한 걸작은 제목 그대로 ‘이란’이라는 보수적인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소녀들의 ‘오프사이드’를 보여준다. 그녀들은 축구를 보고자 한다. 그런데 다만 축구 경기를 보고자 하는 것일 뿐일까? 그렇다면 이란 정부가 여자들의 축구장 출입을 막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녀들이 보고자 하는 것은 축구장의 해방감이며 그 누구의 제약도 받지 않고 환호하며 즐길 수 있는 자유다. 그것은 결국 이란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사회적 해방과 성차별로부터의 자유로 이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들은 보수적인 이란 정부의 ‘오프사이드 트랩’에 걸린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마치 공격 본능을 주체하지 못하는 공격수들처럼 이 ‘오프사이드 트랩’을 돌파하고자 한다. 영화 <오프사이드>는 이렇게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이 순간, 일상적 권태와 자기 모멸과 제도적 금기와 문화적 억압에 짓눌린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 볼 만한 영화다. 또한 축구 경기에서 오프사이드 규칙이 갖는 빛나는 가치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만약 당신이 골을 넣고자 한다면, 어떤 개인적 욕망이나 사회적 목표가 있다면, 아니 진실로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꿈이라도 꾸고 있다면, 그것을 억제하는 오프사이드 트랩부터 우선 무너뜨려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 다음에야 골을 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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