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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상의 글 >
광야로의 초대
수원 화서동 본당
한 바오로 (민희)
당신은
이 세상에 얽매여 사로잡혀 있는 나를
새롭게 하시고자 광야로 이끄시고 계십니다.
수단과 목적이 와해되고 퇴색되어
방황하는 나에게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아무도 없는
너무 외롭고 힘들어 피하고 싶은 그 광야가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부르심을 받고
지금 바로 당신께서 원하시는
부활을 만나러 가는 디딤돌입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고행과 십자가는
나보다 더 힘들고 배고프고 고통 받는 이들을 기억하고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 안에 계시는
신랑이신 주님을 만나러 가는
구원의 동반자입니다.
너무도 큰 축복과 은총의 여정 안에서
나의 순간순간 작은 말과 생각과 행동이
오로지 당신 뜻대로 공동이익을 위해 잘 쓰여 질 때,
천국 낙원에서 맛볼 참 기쁨과 참 행복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어질 것이라 믿어 봅니다.
나는 오늘도
항상 내 곁에 계시며 손을 꼭 잡아 주시는
당신 사랑의 표징이신 따스한 성령을 느끼며,
언제나 감사하고 기도하고 기뻐하며,
그 광야의 길을 사뿐사뿐 걸어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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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례 묵상 Ⅰ>
글 : 탁 베드로 (은수)
예수님께서 광야로 간 까닭은 ?
교회에서 40은 의미 있는 숫자다.
노아의 홍수 때 40일간 땅이 물에 잠겼고 모세는 40일간 시나이산에서 머물렀다.
공생활 전 예수께서 광야에서 40일간 기도하셨고,
부활 후에는 40일간 제자들과 함께 계셨다.
교회에서 40일은 침묵과 뉘우침, 그리고 주님과의 만남을 준비하는 특별한 기간이다. 속세에서도 40 이란 숫자는 특별하다.
나이 40을 불혹이라고 해서 비로소 세상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인생의 중심을 잡는 나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고 가는 인생이 어디 있던가.
매번 갈등과 불안 속에 흔들리며 조금씩 이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인생인지도 모른다.
예수도 40일간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셨다.
메마른 광야에서 홀로 악마와 마주해 단호히 유혹을 물리치셨다.
그리고는 인류구원의 사업에 곧장 나섰다.
광야는 죽음의 땅이지만 예수께서 유혹을 이겨내신 광야는 구원과 부활의 길목이 된 셈이다.광야는 이스라엘에만 있지 않다.
물질과 권력의 유혹은 늘 우리를 시험에 빠뜨리고 흔들리게 한다.
속도와 결과만을 중시하는 바쁜 세상에서 유혹을 유혹으로 인식하지 못 할 때도 많다.
부정과 불륜으로 가득 찬 이른바 막장 드라마,
몸과 마음을 해치는 과도한 술자리,
필요보다는 욕구를 채우기 위한 불필요한 소비,
지옥 같은 입시와 과정을 무시한 경쟁 등으로 우리의 일상은 점차 광야가 돼 가고 있다. 옛날 인디언은 말을 타고 달리다 잠시 멈춰 서서 달려온 길을 되돌아봤다고 한다.
급히 오느라 자기 영혼이 미처 따라오지 못 했을까봐 따라오기를 기다린 것이다.
지금이 그 때이다.
일상의 분주함과 번잡함을 내려놓고 침묵과 절제 속에 하느님이 내어주신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때다.
불편하고 고통스럽더라도 일상 속에 쌓아놓은 욕심과 탐욕의 더미를 치워야 할 때다.
부활(復活)의 한자 부(復)는 ‘회복한다’,‘돌아간다’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부활의 영광에 함께하기 위해선 하느님이 지어주신 사랑스런 자녀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리라.
그러기 위해선 먼저 인류구원을 위해 고통과 침묵의 광야로 외로이 걸어가신 예수 발걸음의 의미부터 되새겨야 할 것이다.
< 가톨릭 부산 주보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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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례 묵상 Ⅱ>
안산 원곡동 성당 FB
권 토마 (순)
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으실까 ?
수난시기의 절정인 성목요일에 왜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으실까...
성주간이라는 단어도 잘 새겨보면 주님이 수난을 당해서 처형되시는 시점이 왜 성스러운 주간이고 성스러운 삼일간인가요...왜 사순기간은 하늘이 열려있어서 하늘나라로 곧장 들어갈 수가 있다고 할까...
교회는 성목요일에 세족례를 시행합니다.
세족례에 초빙되어있는 사람들을 뽑는 문제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으렵니다. 그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못하는 우리로서는 그러한 의미를꺠깨닫기에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 여깁니다. 주님이 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실까요... 왜 몸은 씻었으니 발만 씻으면 된다고 하셨을까요...사순시기의 정점에 다다르는 우리로서 그 무거운 분위기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는 한동안 궁금해왔던 것은, 각 성당에서나 교인들은 사순시기에는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았지만, 정작 오순시기, 즉 부활하신 주님이 하늘나라로 올라가시고 협조자이신 성령을 보낼 때까지는 그리 눈에 띄는 교회의 역동성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교회력으로는 부활절과 성탄절을 가장 중요한시기로 보기 때문에 팔일 동안은 가장 성스럽게 보내야한다고 합니다. 소위 말하는 팔일축제입니다.
2010~2011년 교회력에서 복음은 가해를 읽고 있고, 가해는 마태오복음을 읽게 되지만, 사순 3,4주일과 같이 때로는 요한복음을 읽을 때가 있다. 마태오복음 내용에 그 절기에 맞는 본문이 없거나 아니면 그 본문이 빈약하면 그에 상응하는 내용이 들어있는 영성복음인 요한복음을 읽게 됩니다.
언젠가 마음 먹고 요한복음의 전체를 매주 조금씩 일고 묵상한 적이 있습니다. 아주 평범한 글인 것 같지만 이를 이해 할려는 데는 너무나도 어려움이 많음을 느낍니다. 도대체 우리 실상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음을 깨닫게 해줍니다. 4대 복음 중 다른 복음서인 공관복음과 달리 말입니다. 공관복음은 주님의 가르침이 분명히 시각적으로 들어납니다. 이미 성령을 받은 우리로서는 이해 안될 것이 없어보이는 데, 도무지 본문에 등장하는 제자들은‘전혀 이해가 안되는 냥’하는 모습도 우리에게는 낯설게 느껴져 보입니다. 유태인들은 로마에 압제 속에서도 고통을 받았지만, 오히려 그들 대신 다스리는 율법학자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율법주의로 말미암아 더 고통을 받았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우리들이 신아에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그들이 우리 교리를 잘 모르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들이 믿고 생활해 나가는 것들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너무나도 이기적인 모습이 그들에게 만의 하나라도 비쳐진다면 그들은 보이지 않는 주님의 사랑을 만나기 전에 우리들의 누추한 모습에 되돌아갈 것입니다. 정의로우신 분이신 주님께서 오히려 병든 자를 구원하시려는 모습을 그분은 왜 제자들을 통해 우리들에게 보여주셨을까요...
주님은 주님이 육신을 취하시어 이 땅에서 공생활을 하는 3년동안 그 제자들에게 손수 보여주신 많은 것들은 그 제자들은 열심히 우리들에게 전하시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저는 이들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그들의 표징을 요즈음에서도 엿볼 수가 있었습니다.
지난 동계묵상회 때에 시작은 어수선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날 날씨는 너무 추었고, 그날 프로그램도 잘 정리가 되어있지도 아니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다수 말씀봉사자가 도착하지도 않았습니다. 수녀원의 아래층은 따뜻하였지만, 성당이 있는 2층은 약간 추었지요. 우리는 잠시 2층으로 올라갔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주님의 자비를 위한 기도를 바쳤고, 우리는 또 다시 그곳에서 수녀님의 안내로 슬라이드를 보았습니다. 어수선하고 약간 춥고 조명도 흐릿한 그곳에서 우리는 잠시 동안 숨을 죽였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에쿠아도르의 현지 소개를 슬라이드와 함께 들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몇 분의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지만, 그때의 느낌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직도 무엇을 해야 할 지도 어떻게 후원해야 할지도 결정되지도 못했지만, 그날의 느낌은 남달랐던 것은 사실입니다.
아마도 제자들과 예수님 사이의 교감도 대충 그러하리라고 생각이 듭니다. 해마다 사순시기의 느낌의 힘으로 배를 저어나가지만, 우리는 어느 틈인가 파도를 만나고, 그 파도로 타고 온 곳으로 떠밀려가곤 합니다. TV프로그램 중 동력 없이 육지에서 제주도로 가는 탐험을 하는 이들을 보여준 적이 있었습니다. 육지를 떠난 그 조그마한 무동력의 배는 파도를 타고 앞으로 나갔다 뒤로 물러섰다 여러 번 한끝에 추자도의 어느 섬도 도착했습니다. 추자도에서 제주도를 갈려면 망망대해의 바다의 파도와 싸워서 이겨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되돌아오고야 말았습니다. 조류를 타지도 이용하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장보고는 남해에서 중국으로, 김대건신부는 중국에서 제주도의 어느 포구로 그 무동력선을 타고 오셨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서해안은 간만의 차가 심하고 서해안 조류가 심하기 때문이고, 간혹 그 방향도 달라지기 때문에 천기를 알지 못하면 오고 가고 할 수가 없었던 지역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난관들이 있습니다. 이 난관들 중 대부분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심리학자들도 우리들이 고민하는 일들의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거나 일어나도 우리의 노력으로 바꿀 수가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1960년대 위성을 타고 지구 한바퀴를 돌고 내려온 두비행사의 고백은 완전히 다름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지만, 세상 사람들은 이 두 부류에 속해있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지구를 내다봐도 신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고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지구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니, 신의 작품이 아닌 것이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십자가에 콕 달리시는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그리고 온몸을 씻겨달라는 베드로에게 발만 씻으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왜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가장 더러운 다른 사람의 발을 씻겨주셨을까요...
우리에게 이웃이란 무엇이며, 그 이웃은 주님과 나에게는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모습이라 여깁니다. 해마다 다가오는 부활을 맞이하기 전에 거쳐야만 하는 사순기간 동안의 성삼일 기간 동안 교회는 온힘을 다해 준비를 하고 교인들도 많은 깨달음을 원하든 원치 아니 하든지 간에 갖게됩니다. 주님의 영광을 노래하고 주님께 자신이 지은 죄를 고백하게 되고, 뉘우치게 됨을 그 규모나 시기는 다소 달라지더라도 이를 진심으로 느끼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기에, 우리가 가지는 모든 연약함을 아시기에우리가 하는 일을 보시지 아니하고, 우리가 드리는 제물을 즐겨하시지 아니하고, 우리를 가련하게 보시기에 우리를 구하시려는 것을 깨달아갑니다.
주님 ! 우리들이 주님께 드리는 고백을 통한 기도가 온전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모습을 어여삐 여기시어서 당신의 사랑이 저희와 함께 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말게 하시기를 우리들이 이에 용기있게 열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심에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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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 묵상 >
사순시기에 알게 된 주님의 선물
안산 원곡동 성당 FB
권 아가다 (소희)
오늘은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퇴원하신 저희 엄마가 성당에서 있는 선서식(레지오)을 꼭 참석하셔야한다고 고집을 부리셔서 하루의 시작부터가 바쁘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부산스럽게 아침을 준비하던 내게 "엄마는 하느님책에서 어디가 좋아?" 어린 아들의 뜬금 없는 소리에 종일 머리가 혼란스러웠습니다.
FB회원인 저는 주님의 말씀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고 말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그것을 손에서 나 자신도 모르게 놓아버리곤 합니다. 8살 된 어린 아들의 말 한마디에도 내가 놓아버린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데, 어째서 세상을 창조하신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하지도 생각해보지도 않는 것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나 자신이 잘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기 때문일 것 입니다. 이런 작은 착각을 하지 않았다면 하루하루에 대한 문제와 반성들의 대한 해답을 주님의 말씀에서 찾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착각 속에 있기에 스스로 답을 내려고 하고, 그것에 대한 자부심,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오늘 복음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제가 하느님께 의지하기 시작하면서 저의 맘속에 담아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저는 내가 주님의 올바른 자녀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릴 적부터 영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저의 아이에게 영적으로 흔들림 없이 그 아이의 맘속에 주님의 크신 사랑을 알게 해주어서 그 아이가 주님 앞에 가는 날, 아니 세상 속에서 주님의 사랑하는 아들이 될 수 있기를 저만이 그렇게 만들어 줄 수 있고, 그렇게 만들어주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하느님책’이라 부르는 이 아이에게 과연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아마도 어른이라는 이유로 내 자신이 자만한 것은 아닐까요? 주님의 세상은 이미 제 아이의 맘속에는 이미 자리잡고 있는 것 아닐까요? 주님을 머리로 알려고 하는 제가 아니고, 맘으로 느끼고 있는 아이의 맘속에 말입니다.
제 삶속에서 가장 힘들고 지친 순간, 주님께서 내밀어주신 손을 잡아서 지금 남들보다 물질적으로 부유하진 않지만, 서로에게 의지하는 가족의 사랑이 있고 이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힘이고 삶의 원동력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시련과 역경이 있겠지만, 주님께서 주신 가족의 사랑이 가장 큰 선물이고 배려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더 많은 기도로 주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아가다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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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앙...
안산 초지 성당 FB
박 아녜스 (경량)
“고여 있고 머물러 있음은 곧 썩음이요,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자신을 하느님께서 만드신 본래의 뜻에 맞도록 끊임없이 변화하고 재 창조하여야하는 소명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타고 있는 배가 지금 어디를 향해 어디 쯤 가고 있을까??? ”
오늘 재의 수요일 미사 중에 이 글이 생각났어요... 이글은 <한민희> 바오로 형제님이 예전에 기쁜소식지에 실린 글 인데, 공감이 되는 글이라 올려봅니다...
오늘 부터 사순이 시작인데... 난 무엇부터 변화되어야 하는지...?????
내가 나를 우선 사랑해야 남을 사랑한다고 하네요...
쌀쌀한 날씨에 건강 챙기시고,맜있는 것 챙겨드시고 힘내세요...
성서형제회 여러분... 파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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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4주일
2011. 4. 3
요한 9, 1~41
♠ 복음 연구
* 1-2절 : 제자들의 질문은 다시 유대인들의 믿음을 반영시켜 주는데, 죄를 지으면 병을 얻게 된다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었다. 하느님의 규정을 소홀히 하면 벌을 받게 되는데 '미치게 하시고 눈멀게도 하시며 정신을 잃게도 하는 것이다."(신명28,28) 소경의 죄 인지 그의 부모의 죄 인지를 물었던 것이다.
* 3-5절 :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본인의 죄, 혹은 부모가 저지른 범죄 때문에 그 사람이 나면서부터 소경이 된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소경이 물질적인 세상을 보는 눈과 영적인 어둠에서도 구원을 받을 것임을 알 수 있다.
* 6-7절 : 실로암이란 "파견된 자" 라는 뜻임을 언급함으로써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을 얻음을 시사하고 있다. 침과 진흙을 바르는 것은 초대교회에서는 세례의식으로 받아들였다. 예수께서는 처음에 자신의 침과 흙을 개어서 진흙으로 만들어 소경의 눈에 바르셨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심은 죄와 악으로부터 어둠을 거두어 주시고 예수님의 참 모습을 알아보게 하려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알려준다.
* 8-12절 : 사람들은 소경을 향해 의문을 말들을 주고받은 것을 보고 예수라는 분이 치유하여 주었다는 그가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하고 말한다. 그러나 아직도 육신의 치유를 넘어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의 기적을 받아들여 그 참뜻을 알려고 노력하기를 꺼려하는 유대인 권력자들의 또 다른 예를 보여주고 있다.
* 13-17절 : 바리사이들의 논쟁은 소경이었던 사람이 " 그분은 예언자 이십니다" 하는 명백한 증언에도 불구하고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의심하며 예수님에 대해서는 안식일 법을 들어 하느님으로부터 오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 18-23절 : 소경의 부모는 소경이 자기들의 자식이며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었다는 사실을 말할 뿐이었다. 당시에도 예수님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회당에서 쫓아내기로 유다인들이 합의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24-27절 : 소경에게 바리사이들은 자기들이 본대로 예수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말하라고 협박을 하였으나 소경은 더욱 위협은 커녕 더욱 용감해져서 예수가 죄인인지 아닌지 밝히는 논쟁에 말려들기를 거절한다.
* 28-29절 :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소경이 건방지다고 생각하고 소경도 예수의 제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직접 말씀하셨으므로(출애굽기 33,11, 민수기 12,2-9) 모세의 말을 의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30-34절 : 하느님께서는 죄인의 청은 안 들어주시지만 하느님을 공경하고 그 뜻을 실행하는 사람의 청은 들어주시기 때문이다. 소경이 죄 중에 태어났다라고 말 하는 것은 결국 바리사이들도 눈을 뜨게 된 이가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음을 시사한다.
* 35-38절 : 소경이 신앙고백 때 쓴 명칭은 "주님"으로 부활한 그리스도에 대한 초대교회의 가르침으로서 예수에게 적용한 명칭이다. 앞 못 보는 소경이 예수님을 받아들임으로써 육신의 시력을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의 참 모습을 알아볼 수 있는 영적 시력의 선물을 받게 된 것이다.
* 39-41절 :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 경고하신다. 고의적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로 머물고자 하는 그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영광보다 인간들에게서 오는 영광을 얻으려고 자유로이 고의적으로 선택한 결과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눈멀었던 사람처럼 눈멀음이 밖으로부터 가해진 결과라면 죄가 없는 것이나 바리사이들처럼 보았음에도 모른다고 자초한 것이기에 그들의 죄는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 복음 요약 : 인간들이 스스로 심판자가 되어 구원된 사람들 속에 속할 것인가 아니면 저주받은 자들에게 속할 것인지 스스로 자유로이 선택한다. 예수께서는 세상의 빛이시기에 모든 사람들에게 빛을 주러 오셨지 단죄하려 오시지 않았다. 소경은 예수님으로부터 치유를 받고 그분을 주님으로 알아보는 영적인 어둠에서도 구원을 받는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증언하며 바리사이들의 어두운 마음을 알아보고 하느님으로 부터 오신 분이라고 선포하지만 회당에서 쫓겨난다. 바리사이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영광이 아닌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영광을 주는 어둠을 좋아하였기에 차라리 눈 먼 채로 남아있기를 원하였으며, 세상의 빛이신 분과 대면하며 온갖 책략을 쓰며 고의적으로 그 빛으로부터 앞을 못 보는 상태로 머물고자 하는 이들은 눈멀음의 죄로 남게 되었다.
♠ 대화 방향 : ①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영광과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영광을 우리는 분별할 수 있어야 하겠다. 소경이 시력을 되찾은 것은 예수님의 참 모습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영적인 빛을 주심이다. 사순시기 진정한 하느님께 영광을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② 세상의 집착이나 자신의 내면의 신앙의 성숙을 위하여 어두움을 거두어 낼 것이 무엇인지 나누어 봅시다.
♠ 참고 문헌 : ▪ 신약성서 영적독서를 위한 요한복음 (성요셉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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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5주일
2011. 4. 10
요한 11, 1~44
♠ 복음 연구
* 1-6절 : 예수님은 공생활 중에 지치고 피곤하실 때면 라자로의 집에 들려 쉬셨다. 예수님께서 무척 사랑하신 가정이었다, 그런데 라자로의 병 소식을 듣고 주님께서는 “그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하시며, 병으로 하느님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하느님의 계획의 흐름에 맡기시기 위해 병 소식을 듣고도 이틀을 더 지체하신다.
* 7-16절 : 라자로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잠들었다고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이는 어떤 최악의 상태도 새 생명으로 다시 회복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암시하신다.
* 17-27절 : 마르타는 주님께서 전능하신 분임을 알고 있으나, 죽은 이까지도 살리시는 분임은 모르고 있었다. 그것은 한번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죽은 후에 천국에서 부활한다는 부활신앙은 굳게 믿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28-37절 : 마리아와 함께 있는 유다인들의 눈물을 보시고, 주님께서도 마음이 북받치고 산란해지시어 눈물을 흘리신다.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시는 것은 예루살렘성의 멸망을 예고하시면서 흘리신 것 외에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신 것은 별로 없다. 얼마나 감동적인가? 라자로는 얼마나 예수님께 사랑받는 사람인가를 알 수 있다.
* 38-44절 :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시는 예수님, 죽은 사람까지도 살리시는 예수님은 라자로를 살리심으로써 모든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 주신다. 창세기에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성부와 성자, 성령께서 함께 창조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대로 사람을 만들자 (창세기 1;26)” 그분께서는 한 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 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요한 1;3)”
언제나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주시는 하느님을 고백하시는 주님의 말씀에서 (42) 예수님은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알려 주신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모든 피조물의 생명과 부활 그리고 존재의 원천이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우리를 억누르는 두려움과 걱정의 무덤에서 나오라는 생명의 소리 치유와 해방의 소리이다.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 (로마서 1;17)
♠ 복음 요약 : 우린 인간에게는 때론 이해할 수 없는 슬픔이 절망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그 속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 있을 때 그것은 반드시 승리로 역전됨을 보여 주신다. 연약한 우리는 마르타, 마리아처럼 우리의 고통이나 분노 공포 슬픔 등의 감정을 주님 앞에 솔직히 말씀 드리면서 주님을 향하여 부르짖을 수 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몸소 베푸시는 사랑과 그분의 구원 능력에 대한 믿음의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의 부름이 필요한, 그분을 통해서만 참다운 삶이 가능한 나는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가?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 대화 방향 : 라자로처럼 나의 절망을 부활로 회복시켜주신 체험을 나누어 봅시다.
♠ 참고 자료
▪ 말씀의 두레박 (생활성서)
▪ 인간의 상처를 치유하고 구원하시는 예수님 (서강대학교 출판부)
▪ 교부들의 성경주해 (분도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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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수난 성지주일
2011. 4. 17
마태 26, 14~27
♠ 복음 연구
* 14-16절 : 가장 역설적인 점은 예수님의 운명을 치명적으로 몰아간 것은 원수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그렇듯 오랫동안 예수님과 동고동락한 제자였던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 제자와 똑같은 사람이 될 수가 있다. 하느님의 계획을 따르지 않는 사람, 부와 지배권력과 억압과 착취와 참상과 질병과 죽음을 낳는 돈의 계획을 따르는 사람이 될 수 있다.
* 17-19절 : 축제의 전날이다. 과월절은 이스라엘의 모든 가족들이 자신의 가정으로 모여드는 때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식사는 단지 예수와 열두 제자들에 의해, 낯선 사람의 집에서 그의 가족도 없이 차려질 것이다. “나의 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에야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 시간은 아버지께서 정하셨으나, 예수께서는 그 시간이 다가왔음을 알고 계신다. 이렇게 하여 제자들은 그 장소를 찾아내고 준비를 마쳤다.
* 20-25절 : 파스카 식사를 하는 동안 내내 “누가 예수님을 팔아넘길 것인가”라는 질문이 계속된다. 모두가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묻는다. 우리도 그런 질문을 진지하게 드려야 한다. 선한 지향과 의도 뒤에도 항상 이익이 도사리고 있을 수 있다.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행위’는 우정과 친밀함을 나타내는 행위다. 예수님을 배반할 사람은 당신 친구다. 어떻게 친구가 친구를 배신할 수 있는가? 나는 혹시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을 것인가? 예수님의 답변은 우리 각자에게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 가장 불행한 사실은 친구를 배신하는 이는 자신을 배신한다는 것이다.
* 26-27절 : 해방의 축제인 파스카 축제를 거행하는 동안 예수님은 맨 처음으로 새로운 파스카 축제(성찬식)를 거행하신다. 우리가 참석하는 모든 성찬식은 예수님의 마지막 행위를 반복하는 행위이다. 예수님이 인류의 구원과 해방을 위하여 당신 몸과 피를 바치신 것처럼 우리도 생명을 바치겠다고 다짐하고 결심하는 행위이다. 성찬식에는 예수님의 생애 전체가 요약되고 집약되어 있다. ‘몸’은 인간의 구성요소다. ‘피’는 우리 혈관을 타고 흐르는 신비한 생명, 하느님의 선물을 상징한다. 예수님의 몸과 피는 우리 생명과 삶을 살찌우고 기쁨(포도주)을 안겨주는 양식(빵)이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초대하신다. 당신의 몸을 받아먹고 당신의 피를 받아 마심으로써 당신의 생명과 계획에 동참하는 것이다.
♠ 대화 방향 : ① 예수님은 친구에게서 배신을 당하신다. 예수님의 친구로 자처하는 우리는 어떤 경우에 예수님을 배신하게 되는지 생각해 봅시다.
② 성찬식에 참여하는 것은 예수님의 계획에 투신함을 뜻한다. 우리는 성찬식에 참여하면서 어떤 생각과 결심을 하는지 나눠 봅시다.
♠ 참고 문헌 : ▪ 마태오 복음 읽기 (성바오로출판사)
▪ 신약성서 영적독서를 위한 마태오복음 (성요셉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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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부활 대축일
2011. 4. 24
마태 28, 1~10
♠ 복음 연구
* 1절 : 여인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뒤 삼일 째 되던 날, 무덤으로 찾아간다. 주님을 향한 사랑 때문이다. 바로 그들이 빈 무덤과 예수님의 부활을 제일 먼저 목격하고 증언한다.
* 2-3절 : 천사는 지진과 더불어 하느님의 왕국으로부터 와서 돌을 굴려 놓는다. 천사의 모습은 예수께서 산 위에서 변모하셨을 때와 같이 눈부시고 위엄이 서려있다. 천사들은 예수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신 후 예수께 시중들러왔으며, 이제 그분이 무덤에서 영광스럽게 해방되실 때에도 천사들이 나타나고 있다.
* 4-6절 : 죽음은 승리 속에 삼켜지고 말았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나타난 징조들이 이미 종말이 시작되었음을 알렸다면, 그 첫날 이른 아침에 일어날 표징들은 더욱 더 명백하게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땅이 진동하고 무덤이 열렸다. 종말로서의 새로운 시대가 동텄다. 밤은 낮처럼 밝아졌으며 천상의 영광으로 빛을 받고 있다. 예수께서 돌아가실 때 죄에 대해서 내린 하느님의 분노의 심판은 이제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생명과 은총을 주는 사죄로 변한다.
* 7-8절 : 제자들은 흩어져 있으나, 다시 한 테 모아져야 한다. 그들의 신앙은 산산이 부서졌으나, 다시 한데 모아져야 한다. 여자들은 천사의 말을 듣고 황급히 떠나간다. 이젠 모든 것이 변했다. 그 무덤은 더 이상 죽은 자를 애도하는 장소가 아니라, 기쁨과 환희에 찬 찬미의 장소가 되었다.
* 9-10절 : 예수님의 인사는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이지만, 그들은 즉시 예수님을 알아 뵙고 예수님 앞에 무릎을 굻고 인사를 드린다. 예수님께서는 다정스럽게 ‘내형제들’이라 부르신다. 갈릴래아로 가면서 제자들 간의 내적인 유대관계는 다시 회복될 것이며, 그들은 예수님과 완전히 일치하게 될 것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단 두 세 사람만 모여 있어도, 주님께서는 살아계시는 주님으로서 그들 가운데 계실 것이다.
♠ 복음 요약 :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사흘 만에 다시 살리셨다. 천사가 알리는 부활은 절망에 찬 사람들에게 새 생명의 희망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제 새로운 생명의 힘이 역사 속에 피아나기 시작한다. 우리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
♠ 대화 방향 :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부활을 보고 자신의 부활에 대한 희망을 키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고 나누어봅시다.
♠ 참고 문헌 : ▪ 영적독서를 위한 마태오 복음 (성요셉 출판사)
▪ 말씀의 두레박 (생활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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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의 글 >
주교님께 드린 새해 첫 인사
전주 우림 성당 FB
이 사비나 (진재)
‘세배는 미나리 꽃이 필 때까지’라는 말처럼, 늦었지만 이 병호 빈첸시오 주교님께 F·B회원들과 세배 드리러 간다.
오려던 봄이 꽃샘추위로 머뭇거리니, 가려던 겨울도 따라서 주춤거려 입을 옷이 마땅치 않다.
한복을 입은 효은(8살, 가브리엘라)이와 영어 성경을 챙기는 완경(12살. 미카엘라)이, 그리고 닷새 전에 견진성사를 받은 영미(카타리나)를 데리고 아름다운 길을 나섰다.
아이들은 3번째 방문하는 교구청이 즐거운 놀이터였다. 잔디밭을 두 팔 벌려 한 바퀴 휘익 돌더니 안고 온 평온함으로 문을 살그머니 민다.
“안녕하세요. 주교님, 저 아시죠? ”하는 미카엘라에게 주교님은 끄덕이며 설명하신다.
작년 9월 요한 루갈다제(10회)에서 주교님의 강론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우연찮게 이튿날 주교님 영명축일에 전달되어서 기쁨을 주었다는 이야기였다.
마음을 모아 주교님께 세배를 드리니 묵주와 세뱃돈을 15명에게 주시며, 미카엘라에게 자궁을 묻자, “아기가 사는 곳”이라고 한다.
“아기가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사는 것처럼, 우리도 하느님 말씀 속에서 살아야 보호받고 힘이 생긴다.”고 하시니, 자궁이라는 단어에 생명이 숨 쉬는 것 같다.
‘말씀은 자궁’으로 하느님 보시기에 아기인 우리가 거룩한 말씀 속에서 성장해야 한다는 절대적인 진리를, 신비로운 탄생의 근원으로 풀이해 주시니 모성애로 이해되었다.
잡념 없이 집념이 잘되자, ‘F·B’라는 이름에 함축되어 있는 본질도 곱새겨졌다.
‘Fraternidad Biblica’는 성경말씀이 사랑받고 실천되도록 온갖 노력과 기도를 다해야 하며, ‘노력’이란 하느님 말씀을 매일 조금씩 읽는 것이고, 목적은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해 나가는데 있다. “주님께만 가면 아이들 교육은 덤으로 이루어진다.”는 내 교육관이 바로 서려면 성경을 꾸준히 읽어야겠다. 가끔 신앙생활이 건조하다고 한 번씩 떠날 때 나도 잠시 떠났었던 것은, 성경을 가까이 두지 않아서였다. 가변의 현실에서 영원한 생명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위대한 것은 부족하기 때문이고, 내가 갈구하는 것을 하느님이 먼저 갈구하신다고 하니, 이제부터라도 읽다만 성경을 머리맡에 펴 놓고 묵정밭을 갈듯 한 장씩 넘기자.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요한 8,31)
하느님 말씀 속으로 깊이 들어가며 나눔의 시간을 가졌다.
그 날의 매일 미사를 꼭 읽으며 유치원에 다녔던 가브리엘라는 (루카 11,11-13)의 복음을 암송하더니 “복음을 읽으면 하느님, 신부님, 천사들이 곁에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외짝인 한 자매님은 야베츠의 기도 “주여, 부디 저에게 복을 주시어 제 영토를 넓혀주시고...”(1역대 4,10) 하며 눈물짓는다. 시댁이 완고한 유교 집안이어서 가족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영토를 넓혀달라는 간절함에‘들어 주소서’라고 기도드렸다.
말에 맛이 있는 보나 자매님은 남편이 선물해 준 액자 속에 “거목 사이를 걸어가니, 내 키가 더욱 커졌다.”는 문구를 F·B의 예로 들었다.
굵고 큰 나무에 서면 내가 더 작아져 보일 텐데 F·B 숲에서 해찰하면서 아버지 말씀을 들었는데도 어느새 커져 있으니, 이 숲속을 벗어나지 말라는 당부였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불가능한 것이 없다.’ (루카 17,6)
파스칼 형제님이 필사한 쓰기성경에 주교님께서 사인을 해주신다. 한 때 봄을 봄으로 느끼지 못할 정도로 생명에 위험을 느껴 신앙의 초점이 흐려질 수도 있었는데, 아나윔으로 응답하시더니 완쾌되지 않은 몸으로 사목회장을 하신다.
기도로써 지금의 봄을 맞이하도록 해주신 부인 보니파시아 자매님께도 찬사를 보낸다.
웃음지도자 자격증을 딴 아폴로니아 자매님도 필사한 것을 들고 곱빼기 함박웃음을 짓는다.
미카엘라가 복음을 영어로도 암송하고 3권의 영어일기를 두 손으로 내미니, 주교님께서는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며 필리핀에 다녀온 일들을 물으신다.
받은 은총들이 이렇게 기쁨으로 표출되니 주교님께서도 미소를 지으신다.
오늘의 선물 보따리를 내일 문정성당에서 있을 월례피정에서 풀면 윤 클레멘트 신부님과 형제자매님들이 얼마나 좋아하실까...
에콰도로에서 선교활동을 하시는 창설자 최 규업 바오로마리아 신부님께서도 그럴 것이다. 주교님의 사랑을 느꼈고, 변함없이 열정을 쏟는 아나스타시아 자매님께서 조용히 문을 닫았다.
잔디밭을 향해 뛰어가는 아이들이 “봄이 나왔다.”고 한다.
하느님의 편지를 곰삭도록 읽자. 비약하는 봄날부터...
그리고 어젯밤 바이올린을 켜는 꿈을 꾸고 선뜻 따라나선 카타리나가 그 꿈이 축복의 통로가 되어
주님을 찬미하는데 공적으로 쓰이기를 꿈꾼다...
주교님!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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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재정 회계 보고 >
✟ 2011년 2월 1일 ~ 28일 수입 지출 내역
일자 |
내 용 |
수 입 |
지 출 |
잔 액 |
1/30 |
전월 이월금 |
|
|
318,688 |
2/ 7 |
<기쁜소식지> 인쇄비 |
|
95,500 |
223,188 |
2/ 7 |
<기쁜소식지>발송비&통신비 |
|
50,000 |
173,188 |
2/ 7 |
사회복음화 지원금 |
|
50,000 |
123,188 |
2/ 7 |
(전주 호성동) 예수성심 팀 FB |
50,000 |
|
173,188 |
2/ 7 |
(전주 서신동)그리스도폴팀FB |
20,000 |
|
193,188 |
2/25 |
이병호빈첸시오 주교님 인사방문 |
|
80,000 |
113,188 |
2/26 |
(포항) 포항 팀 FB |
20,000 |
|
133,188 |
2/28 |
(안산 원곡동) 4개팀 FB |
50,000 |
|
183,188 |
|
|
|
|
|
합계 액 |
140,000 |
275,500 |
| |
다음 달 이월금 |
183,188 | |||
봉헌금을 보내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농협351-0009-3493-03 박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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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소식란 >
♠ 지도신부님 사제서품 은경축 안내
- 성서형제회 지도신부이신 윤양호(클레멘트) 신부님의 사제 서품 25주년을 맞아 전국 모든 FB회원들의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 FB 축하미사 일시
- 3월 26일(토) 오전 10시 30분
* 장 소
- 전주 평화동 문정성당
♠ 4월 <성서형제회(FB) 봉사자 월례회의> 모임 안내
- 4월 <봉사자 월례회의> 모임을 다음과 같이 갖고자 합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 일 시 : 2011년 4월 23일 (토) , 오전 11시 'FB미사'로 시작
* 장 소 : 전주 문정 성당
* 참가 대상 : 각 지역, 각 팀 봉사자 ( 각 팀 1명 의무 참석 )
* 연락처 ☎ : 전국 봉사자 (박영화 아폴로니아) : 010-3564-9105
* 안 건 : FB 큰모임 행사 (6월 12일 (일))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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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의 기도 지향
구제역과 폭설로 인해 많은 이들의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웃나라 일본이 지진, 쓰나미와 방사능 유출로 인해 엄청난 재난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재난으로 인한 희생자들과 슬픔에 잠겨있는 이웃 형제들>, <방사능 유출로 인한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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