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유격 올빼미 (4)
유격 넷째 날이 밝았다. 산악훈련과 레펠 하강이 있는 날이다.
입소한 전원이 4열 종대로 열 맞춰 구보로 정문을 나섰다.
PT 체조 하느라 목들이 쉬었는데, 따르는 조교가 복창 소리 작다고 닦달이다.
입소하던 방향으로 가다가 기차 철교와 나란한 다리를 건너 병풍 절벽 산 뒤로 들어간다.
겉보기와는 달리 들어갈수록 계곡이 깊고도 넓다.
원래의 분대별로 모여서, 새로 바뀐, 노련해 보이는 조교들의 통솔을 따른다. 코스마다 별도의 조교들이 배치되어있다.
“산악훈련은 집중력이 필요하다. 조금만 방심해도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PT 체조 12번 ‘몸통 비틀기’다. 준비 동작은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고 깍지 낀 손바닥을 머리 뒤통수에 놓는다. 실시!”
‘좆 퉁소는 불어도 세월은 간다.’는 군대 용어가 있다.
조교가 아무리 깽깽거려도 오늘만 잘 넘기면 내일은 퇴소하고 간다.
이왕 할 거 열심히 하자!
“하나에 팔꿈치만 앞으로 모아 머리를 감싸면서, 상체를 숙여 오른쪽 팔꿈치가 왼쪽 허벅지에 닿게 한다. 둘에 왼쪽 팔꿈치가 오른쪽 허벅지에 닿게 몸을 틀어준다. 실시!”
무릎을 펴고 해야 제대로인데, 허벅지 뒤쪽이 댕겨서 무릎이 자꾸 구부려진다.
“셋에 양쪽 팔꿈치가 양쪽 허벅지로 향하게 정 방향으로 틀어주고, 넷에 상체를 일으켜 준비 동작으로 돌아간다. 실시!”
연속 동작으로 20회 하고는 이어서, 비슷한 동작인 PT 체조 13번 ‘팔 올려 발 닿기’다.
다리는 어깨너비로 벌려 양손을 V자로 위로 뻗어 만세 부르며 시선은 전방이 준비 동작이다.
“하나에 팔을 편 상태로 상체만 숙여서 오른손이 왼발에 닿게 한다. 둘에 원 상태로 돌아오고, 셋에 왼손이 오른발에 닿게 몸을 숙인다. 넷에 준비 동작 상태로 원위치한다. 20회 실시!”
허벅지 뒤쪽이 아프게 댕기더니, 줄타기 코스로 이동하면서 다리에 힘이 생긴다.
깎아지른 기암절벽을 가로질러 만들어 놓은 줄타기 코스들이 쳐다 만 봐도 아찔하다.
맨 처음 시작하는 ‘세줄 타기’는 양손으로 두 줄을 잡고 밑에 있는 줄을 밟으면서 건너는데, 양쪽 줄이 V자로 밑의 줄과 듬성듬성 연결되어있고 밧줄도 굵어서, 중간쯤에서 약간 출렁거리기는 하지만 30여 미터 건너는 데는 별문제가 없었다.
“ ’두 줄 타고 건너기’는 윗줄 잡은 양팔에 힘을 주고, 군화 발바닥 가운데로 아래 줄을 훑으면서 옆으로 가면 된다. 시선은 절대로 밑을 보지 말고 건너편 목적지에 고정한다.”
조교들이 허리 요대에 안전줄 고리를 채워주지만, 빌딩 5층 정도의 공중에서 흔들리는 위아래 두 줄에만 의지해 20여 미터를 건너는데 여간 담력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다.
위아래를 연결해 둔 지점에서, 한 발을 떼고 연결한 줄 묶은 곳을 넘을 때는 간이 콩알만 해진다.
“ ‘외줄 타기’는 왼발을 아래로 내리고, 줄 위에 엎드려 오른발 발등을 줄에 걸친다. 머리는 줄에 밀착시켜 시선은 전방 목표지점을 향한다. 왼팔을 뻗어 앞쪽을 잡고 조금씩 당기면서 전진한다. 몸과 줄이 일치되어 체중의 중심이 줄에 실리는 것이 요령이다.”
선박 닻줄 같은 굵은 줄이 새끼줄만큼 가늘어 보인다.
철모 끈을 꽉 조여 매고 줄 위에 엎드렸다.
어릴 때 철봉 위에서 몇 번 해봤지만 흔들리는 밧줄은 처음이다.
중심을 잡고 왼발로 땅을 짚어 손으로 당기며 조금 나가자, 눈앞에 아득한 절벽 낭떠러지가 아찔하다.
허리에 안전줄도 매어있고, 줄 아래에 보호망이 펼쳐져 있는데도 가슴이 콩닥거린다.
왼발이 지면을 떠나 2m도 못 가서 뱅그르르 돌면서 공중에 매달렸다.
다행히 돌 때 왼쪽 다리 무릎 안쪽이 줄에 걸려, 얼른 오른발을 끌어올려 발뒤꿈치를 줄 끝에 걸쳤다.
“00번 올빼미, 침착하라! 그 자세로 계속 전진하면 된다.”
앞서 하던 대부분 병사도 이 상태로 건너는 걸 봤다.
실패는 했지만, 거꾸로 매달리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다.
10여 미터 거리를 별로 힘들이지 않고 올빼미 바비큐 한 마리 건너갔다.
**
배식 차량이 날라온 점심을 받아 들고, 어느새 동지애를 느끼는 분대원끼리 옹기종기 둘러앉아 맛있게 먹는다.
집에서는 귀한 자식들인데 여기서는 영락없는 거지꼴이다.
어려운 시절도, 다 지나고 보면 즐거웠던 추억이 되겠지.
**
‘줄 타고 오르기’ 코스 절벽 밑에서 기본 동작에서 시작하는 PT 체조 14번 `팔 동작 몸통 받쳐’가 실시됐다.
“하나에 양손 짚고 앉아, 둘에 발을 일자로 모아 뒤로 쭉 뺀다. 셋에 팔 굽히고 넷에 편다. 다섯과 여섯에 굽혔다가 펴고, 일곱에 다리 모아 앉아서 여덟에 일어선다.”
한마디로 엎드려뻗쳐서 팔 굽혀 펴기 두 번 하고 일어서라는 얘기다.
줄 타고 올라가려면 팔심이 세어야 하니까!
예상외로 10회만 시키고 두 명씩 나란히 올려 보낸다.
높이는 15미터쯤에 경사 60도 정도인데 절벽 중간중간에 턱이 있어 쉽게 올라간다.
절벽 위에서 조교의 지시대로 10여 미터 가니까, 조교들이 너덜너덜한 가죽장갑을 나눠준다.
‘줄 타고 절벽 하강’ 코스다.
경사 없이 거의 수직에 가까운 절벽이다.
“허벅지와 허리에 안전벨트를 매고, 몸통과 다리를 90도 유지하면서, 살짝 뛰어 1미터쯤 내려가다 밧줄을 잡고 벽에 수직으로 착지한다. 안전벨트 줄을 위에서 풀고 잡으니까 겁먹지 말고 내려가라! 여기서 사고 난 적 한 번도 없다.”
절벽 끝에 돌아서 약간 경사진 바위를 서너 걸음 내려가서 조교의 지시에 따라 살짝 뛰었다.
몸이 주룩 내려가서 깜짝 놀라, 줄을 잡으니, 즉각 멈춰서 90도로 뻗은 다리가 슬며시 절벽에 가서 닿는다.
`아하~위에서 알아서 잡아 주는구나! 안심하고 내려가도 되겠다. 좀 더 멀리 뛰어볼까?’
무릎 굽혔다가 힘주어 뛰고 2미터쯤에서 줄을 잡았다.
살며시 양쪽 발이 절벽에 다가가 착지된다.
폴짝폴짝, 재미있어 서너 번 하니까 다 내려왔다.
옆줄에 내려오던 병사는 잘못해 한쪽 무릎을 찧었다고 울상이다.
다리를 90도보다 덜 올렸던가 보다.
**
절벽 아래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계곡 깊숙이 들어가, 로프의 도르래 타고 강을 건너는 ‘레펠 하강’ 코스에 도착했다.
“여러분 수고 많았다. 이제 마지막 코스에서 마지막 PT 체조를 실시한다. PT 15번인 ‘노 젓기’, 일명 ‘배 젓기’다. 바닥에 누워서 양다리 붙여 뻗고 팔을 일자로 펴서 어깨가 귀에 닿게 한다. 실시!”
땅바닥에 드러누워 치솟은 기암 협곡의 소나무들 사이로 푸른 하늘에 두둥실 떠가는 뭉게구름을 바라본다.
멋진 시라도 한 수 나올만한 아름다운 풍경이다.
`두 둥~실 두리둥실, 배 떠나 간~다. 저 넓~은..’
머릿속에 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온다. 마침, ‘노 젓기’ PT 체조를 한다니.
“팔과 다리를 쭉 뻗어 45도 올린다. 시선은 손끝에 둔다. 이것이 준비 동작이다. 하나에 다리는 왼쪽, 팔은 오른쪽으로 15도 비튼다. 하나~!”
머리를 안 드는 대신에 팔을 든, PT 8번 ‘몸통 받쳐 온몸 비틀기’와 비슷하다.
“둘에 30도~. 셋에 45도~. 넷에 원위치!”
2열 종대로 드러누워 좌로 우로 열심히 노를 젓는데, 20여 척의 올빼미 배들은 제자리에 있고 뭉게구름만 흘러간다.
**
적당히 몸을 풀고 비탈길을 조금 올라가니, 강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 ‘레펠 하강장’이 있다.
한 명씩 차례로 나가서 장갑 낀 손으로 활차(도르래) 손잡이를 잡고 강 건너편까지 활강하는 것이다.
안전줄도 없고 잘못 떨어지면 물귀신이 될지도 모른다.
“활강하다가 건너편 조교가 깃발을 올리면 다리를 V자가 되게 들어 올린다. 깃발을 주시하다가, 깃발이 내려가면 손을 놓는다.”
몇 명 출발한 다음에 차례가 되어 ‘하강장’에 서니, 30m가 더 되어 보이는 절벽 아래는, 깊어서인지 시커먼 ‘용 소’ 같은 강물이 휘돌아 흐르고, 100미터쯤 되는 강 건너편 모래밭 위에 빨간 옷 입은 조교 서너 명이 보인다.
철제 로프에 얹힌 활차 아래 수평 손잡이를 잡고 섰다.
조교 한 명이 뒤에서 내 혁대를 잡고 ‘하강장’ 끝에 세운다.
“깃발을 주시하고, 올리면 V자! 내리면 손을 놓는다.”
옆에선 다른 조교가 다시 한번 강조한다.
멀리 강 건너 조교가 커다란 빨간 깃발을 내려 들고 있는 게 보인다.
조교 뒤쪽 로프의 끝에 충격 방지용 같은 가마니 몇 개가 쌓여 있다.
“애인 있습니까? 조교가 묻는다.
“예, 있습니다.” 내가 대답한다.
“이름이 뭡니까?” -조교-
“.. 구 복자입니다.” -나-
“이름을 크게 부릅니다. 실시!”
“복자야!~”
“더 크게 부릅니다!”
“복자야!~ 복자야!~”
어느새 활차가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손잡이를 꽉 잡고 이빨을 악물며, 건너편 깃발만 쳐다본다.
속도가 너무 빨라 이대로 가다간, 가마니 더미에 처박힐 것 같다.
얼떨결에 오른손을 떼어 로프를 거머쥐었다.
하강 속도는 약간 줄어드는데 가죽장갑에 불이 붙은 듯 엄청나게 뜨겁게 화끈거린다.
로프에서 손을 떼어 도로 활차를 잡고 깃발만 주시하자, 번쩍 깃발이 올라가는 것이 보인다.
얼른 다리를 V자로 올렸는데도 절반도 안 올라온다.
몸은 쏜살같이 내려가고, 건너편 조교의 깃발은 안 내려진다.
이대로 가면 틀림없이 충돌이다!
손을 놓았다!
떨어지는데… 그제야 깃발이 내려간다.
“철버덕, 풍~덩!”
콧구멍 속을 엄청난 수압의 물이 때린다.
“어푸, 어푸~ 꿀꺽!”
물을 마시며 헤엄을 치는데, 군화가 무거워 제대로 안 뜨고 모랫바닥으로 빠져든다.
한참을 허우적거리다 겨우 허리 깊이로 나오자, 달려 들어온 조교가 부축해서 데리고 나온다.
“깃발 내리기 전에 놓으면 어떻게 해? 송장 치를 뻔했잖아!”
제 잘난 올빼미 한 마리 익사할 뻔했다.
헤엄을 못 쳤으면 어찌 되었을까?
‘진양호’에서 수영 가르쳐주던 친구가 보고 싶다.
(‘섬강’ 위의 철교는 영화 ‘박하사탕’에 나오고, 유격장은 지금 ‘간현유원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