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을 배우는 사람들은 자신의 공덕과 행원이 충분치 못하기 때문에 열심히 노력해도 진보가 없습니다. 이 점을 여러분들은 특별히 유의해야 합니다. 흔히 열심히 하는데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오로지 수련에서만 구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는 구하지 못합니다. ‘행’의 공덕을 실천하지 않으니, 다들 자신을 위하는 생각은 많고 다른 사람을 위하는 생각은 너무도 적습니다. 그렇게 해서 성불할 수 있다면 정말로 천리(天理)가 없는 것이니, 저 역시도 불법을 배우지 않을 겁니다. (63-64쪽)
여러분이 깨달은 도리는 부처님의 도...
더보기 부처님을 배우는 사람들은 자신의 공덕과 행원이 충분치 못하기 때문에 열심히 노력해도 진보가 없습니다. 이 점을 여러분들은 특별히 유의해야 합니다. 흔히 열심히 하는데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오로지 수련에서만 구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는 구하지 못합니다. ‘행’의 공덕을 실천하지 않으니, 다들 자신을 위하는 생각은 많고 다른 사람을 위하는 생각은 너무도 적습니다. 그렇게 해서 성불할 수 있다면 정말로 천리(天理)가 없는 것이니, 저 역시도 불법을 배우지 않을 겁니다. (63-64쪽)
여러분이 깨달은 도리는 부처님의 도리이지만 여러분이 직접 수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부처님의 경계와 비슷하다고는 말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저 지혜만 이르러서는 아무 쓸모가 없고, 몸과 지혜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몸은 사대가 한데 합쳐진 것입니다. (69쪽)
만약 여러분이 확실하게 믿지 못한다면 서둘러 부처님께 절하고 서둘러 머리를 조아리고 서둘러 좋은 일을 하십시오. 여러분의 지혜가 밝고 예리해진 후에 다시 돌아오면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지혜에 달렸고 공덕에도 달렸습니다. 그러므로 신심(信心)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지혜와 공덕이 충분하지 않은 것입니다! (81쪽)
외계의 환경이 심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장소[地]에 의지하지만 서로 다른 점이 있으므로 단계마다 적절한 수련이 있어야 합니다. 심경의 공령(空靈)함을 수행하고자 하면 높은 곳에 있어야 하고, 심경이 안정되어 움직이지 않게 하려면 낮은 곳에 있어야 합니다. 광선, 처소, 기온 모두를 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같은 범인은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이것에 의거해서 수행하고 걸음을 빨리하여 노력한다면 정혜(定慧)가 비로소 자라나고 비로소 도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102쪽)
이 자리에서 부처님을 배우는 많은 분들 가운데 과연 어떤 사람이 조건에 부합할까요? 부처님을 배우는 데에는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먼저 출리심을 일으켜야 하는데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이 출리심을 일으켰습니까? 하나같이 자기 수명을 약간 늘려 주고 복보를 조금 더해 주기만 원할 뿐입니다. 조금 고명하게 말한다면 구하는 바가 없고 그저 지혜만 구한다고 말합니다. 말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구하지 않습니까? 탐내지 않습니까? 지혜는 복보보다 더 큰 것입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생과 겁에 걸쳐서 수행으로 얻는 것입니다. (129-130쪽)
여러분이 염불을 해서도 힘을 얻지 못하고 주문을 외워서도 힘을 얻지 못하고 타좌를 해서도 힘을 얻지 못한다면, 왜 힘을 얻지 못하는 걸까요? 공덕이 충분하지 못하고 심력(心力)의 배양에 성공하지 못해서입니다. 마음은 하나의 ‘힘[力]’이고 업(業) 또한 일종의 힘입니다. 그래서 업력(業力)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같은 일반 중생은 모두 업력 업보에 색신이 지배를 받습니다. 만약 자신을 전화시켜서 자신의 심력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여러 불보살의 지혜와 공덕의 신통한 묘용입니다. (174쪽)
번뇌는 청정하기가 가장 어렵고 망념은 떨쳐 버리지 못하며 아집은 비우기가 어려우니, 이것이 바로 고해(苦海)의 근본입니다. 번뇌의 바다는 깊고 아집의 바다는 더 깊은데, 여러분은 자신이 ‘무아(無我)’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어디 말처럼 그리 쉽습니까!(225쪽)
생명은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죽은 후를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낮 동안의 일도 마음대로 하지 못합니다. 외부 경계에 촉발되면 희로애락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데, 이것이 바로 윤회의 고통입니다. 수명이 무상하고 세상일이 무상하고 중생은 윤회 가운데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하며, 자신도 윤회 속에서 각종 번뇌와 고통을 받고 있음을 알아야 비로소 자연스럽게 가엾어 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됩니다. (244쪽)
공(空)을 말해 놓고 왜 또다시 대비(大悲)를 일으켜야 한다고 할까요? 대비(大悲)는 공(空)이 아닌가요? 대비심을 지니고 있으면 공이 아니지 않습니까? 논리적으로는 마땅히 그러합니다. 이 둘은 모순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경은 우리에게 비(悲)와 지(智)를 쌍운할 것과 이 둘이 평등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공성(空性) 가운데의 대비심은 공(空)을 증득하고서 대비심을 일으킵니다. 이것이 진실한 대승법이고 이것이 바로 불심입니다. (247쪽)
우리가 타좌를 하다가 가장 좋은 때에 도달하면 아주 편안하지 않습니까? 편안함이 바로 욕(欲)이니 그렇다면 이는 욕계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념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좋겠지요? 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수련을 합니다. 다만 스스로 정사유를 하지 않고 견지가 철저하지 못하기 때문에 멍청하게 앉아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지금 말하는 이것이 바로 큰 법입니다. (247-248쪽)
환경이 여러분의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단장(壇場)을 장엄하게 꾸며 놓음으로써 여러분이 들어갔을 때 그 숙연함에 절로 공경심이 일어나게 한다면, 이미 절반의 공덕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식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268쪽)
수많은 사람이 의식 경계의 청정을 약간 얻으면 그것이 바로 선이고 바로 불법이라고 생각해서, 산림 속의 청정으로 달려가고 그것이 옳다고 여깁니다. 여러분은 오로지 생각을 비우고 생각을 움직이지 않으려고만 합니다. (294쪽)
현교 소승의 교리는 습기를 끊어야 비로소 득도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승의 교리 특히 유식에서는 “습기를 어떻게 끊을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습기를 끊을 수 있다고 할 것 같으면 부처의 본성도 끊을 수 있으니, 그렇게 되면 단견(斷見)이 되어 버립니다. 그것은 끊어 내는 것[斷]도 아니고 항상 있는 것[常]도 아니며 오로지 습기를 전화할 뿐입니다. 번뇌를 전화하면 그것이 곧 보리이고, 식(識)을 전화하면 지(智)를 성취합니다.(300-301쪽)
여러분은 일체의 본존이 여러분의 참 지혜 속에 녹아 들어가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염주를 집어들 때 여러분의 심신은 곧바로 염주로 들어가서 심물(心物)이 융화됩니다. 부처님까지도 그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307)
여러분은 부처님이나 관음보살이 바로 내 앞에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소리를 지르면 마치 그가 듣자마자 금방이라도 올 것 같은 그런 의경을 지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입으로는 주문을 외우지만 마음속으로는 망상을 하고 있으면 죽어라 외워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지극한 정성과 지극한 공경의 마음이 있으면 부처님께서 찰나의 순간에 여러분에게 오시고 서방 극락세계가 금방 여러분에게 도래합니다. (310쪽)
여러분은 선종이 ‘펑’ 하고 단번에 깨닫는 것이며 깨달은 후에는 별거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수지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며 영원히 자신을 다스릴[調理] 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친구들이 열심히 수지하면서도 스스로 다스릴 줄을 모릅니다. 다스린다[調理]는 것은 수시로 조정할 줄 알아야 함인데, 때로는 마장(魔障)이 일어나는 것도 알지 못합니다. 특히 수련이 깊어질수록 수도(修道)가 진보할수록 미세한 마장은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합니다. 그 마장들은 너무나 미세해서 자신이 느끼기에는 번뇌도 일어나지 않고 마음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미 일찌감치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324쪽)
이것은 정신의 경계이고 유심(唯心)이 만들어 낸 것이지만 물질적 현상으로 변해서 옵니다. 정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래쪽 단전에서 따뜻한 불이 일어나면 위쪽에서는 감로가 흘러내려야 합니다. 어느 정도까지 흘러내려야 할까요? 명치 아래까지 흘러내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오로지 이 생명의 의식(意識) 기능을 인정하고 일체의 변화에 관여하지 않아야 합니다. 실제로 여러분이 정말로 관여하지 않는다면, 온 전신의 기맥이 안팎에서 모조리 변화해서 탈태환골합니다. (351-352쪽)
일반인들은 수지하면서 이것을 알지 못하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특히 정토종을 수행하거나 선종을 수행하는 사람은 고집이 대단해서 여러분이 이런 방면을 이야기하면 그들은 여러분을 외도라고 말합니다. 사실 그는 어떤 도도 알지 못합니다. 결국 자기 스스로 마음속으로 거절했을 뿐 아니라 이미 악과(惡果)의 인(因)을 심었습니다. (375쪽)
바꾸어 말하면 저는 더 이상 놀 거리가 없어집니다. 제가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여러분을 속일 수 있었겠습니까! 그 속에 아주 깊은 비밀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것은 속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참회할 줄 알아야 하고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어떤 부처님도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특히 여러분이 심신(心身)의 성명(性命)의 학문을 조금 배웠다고 해서 이거면 됐다고 생각한다면, 저는 탄식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375쪽)
심기(心氣)가 충만해져야 비로소 맥을 수지할 수 있습니다. 맥을 수지한 후에 비로소 명점을 수지할 수 있고, 명점을 수지한 후에 졸화를 일으켜야 색신이 비로소 전화해서 이 경계에 도달합니다. (383)
기를 어떻게 수지하고 맥을 어떻게 수지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단지 원리를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대원만을 이미 배웠는데 어째서 조금도 효과가 없는 거지, 하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작용이 있는지 듣기만 한 것이니 여러분에게 약간의 법연(法緣)을 맺어 주었을 뿐입니다! 이런 학리(學理)들에 대해 여러분은 단지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며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