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30일
제목 권위를 존중함
본문 삼상1:8-20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피조 세계를 관리하고 질서 있게 다스릴 수 있도록 사람에게 권위를 입히셨습니다. 가정 질서를 위하여 아담을 머리로 세우셨고, 국가 질서를 위해서 지도자에게 권세를 입히셨습니다. 권위가 존중되어야 가정, 사회, 국가, 교회가 질서가 생기고 안정이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권위를 존중하는 귀한 모범을 보여주시고, 권위를 존중함이 복이 되는 것임을 배웁니다.
엘리의 분별력 약화
엘가나의 아내 한나는 남편의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마음에 큰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의 남편에게는 브닌나라는 아내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브닌나는 자식이 낳았는데 한나는 무자하였습니다. 브닌나는 임신하지 못하는 한나를 괴롭게 했습니다. 그래서 성전에 해당하는 실로에서 기도했습니다. 브닌나에게 무시당한 억울함 때문에 큰 소리로 부르짖어야 분이 풀릴 것 같지만 그 반대였습니다. 12~13절을 보면 한나는 오랫동안 기도하였지만,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였고 음성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기도란 감정풀이가 아니라 하나님께 마음을 토하는 것입니다. 기도란 사람 들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심정을 아뢰는 것입니다. 한나는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때 한나를 지켜보는 자가 있었습니다. 엘리라는 제사장입니다. 엘리는 한나의 입을 주목한즉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그녀가 취한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삼상1:14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삼상4:15에 의하면 엘리 제사장은 시력이 매우 나빴고 나이는 98세였고, 분별력까지 떨어지니 기도하는 자를 향해 술에 취했다고 오해했습니다.
엘리는 제사장으로서의 수임을 다하지 못하는 자였고, 인생의 끝자락에 이른 자였습니다. 휠체어 타고 다니는 현재의 교황 모습을 연상하면 이해가 쉽겠습니다. 거의 퇴물에 가까운 제사장입니다. 더 이상 존경심이 우러나올 것 없는 그런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의 권위를 인정함
그러면 한나는 늙고 병들고 분별력이 없는 엘리 제사장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위로해주어야 할 순간에 주정뱅이 취급하는 늙은 제사장을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담임 목사가 이렇게 했다면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한나가 엘리에게 “제사장님 너무합니다. 기도하는 나를 술에 취했다고 하시니 너무 기분이 나쁩니다. 당장 사과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나는 더 이상 당신을 제사장으로 인정할 수 없고, 신앙 지도도 받지 않겠습니다. 그럴 수 없다면 당신이 떠나주세요. 아니면 내가 떠날 것입니다.” 이렇게 말했다 해도 엘리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한나는 늙고 분별력이 없는 엘리 제사장을 향해 어떻게 대우하였는지 보십시오. 15-16절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한나는 여전히 엘리를 주라 부르고 자신은 엘리의 여종이라 하므로 겸손함을 표현합니다.
한나는 제사장의 권위를 적극 존중합니다. 엘리의 실수에 대해 격분하지 않고 겸손함으로 자초지종을 해명합니다. 한나는 조금도 감정에 흔들리지 않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답게 품위를 잃지 않았습니다. 한나는 엘리에게 결정적인 흠과 티가 분명했지만, 그것을 물고 늘어지지 않았습니다.
한나는 여전히 엘리 제사장을 향한 존경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인간적인 존경심이 바닥난 상태이지만 제사장으로 존중했습니다. 한나는 엘리를 주로 인정하였고, 자신은 엘리의 여종이라 했습니다. 이는 엘리를 제사장으로 세우신 분이 하나님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한 교사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온 나라가 들썩거리고 있습니다. 교사의 권위를 무시하면 온전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교권이 무너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로 돌아갑니다. 교권 추락의 일차적인 책임은 부모들에게 있습니다. 부모들이 선생님을 무시하니 아이들도 교사를 우습게 여기고 지시를 따르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마땅히 존경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학교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백년대계를 세울 수 있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들 앞에서 선생님을 가볍게 여기는 언행을 일절 삼가고, 의도적으로 존경의 태도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이 내 자녀를 위한 일입니다.
권위는 하나님께서 질서를 위하여 주셨습니다. 아담에게 아내의 머리 되는 권위를 주셨고, 국가 지도자들에게도 그 권세를 주셨습니다. 학교는 선생님에게, 교회는 목사님에게 권위를 입혀 주었습니다. 지도자의 권위를 존중함이 그 권위를 입힌 하나님을 존중함입니다. 한나는 엘리를 존중했습니다. 제사장의 권위를 존중한 한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축복받은 한나
엘리는 자신의 어리석은 판단을 깨닫고 한나에게 축복을 빕니다. 17절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공적 제사장이 개인에게 복을 비는 것은 초유의 일입니다. 한나는 늙고 힘없는 제사장의 축복이지만 그 축복을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18절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한나는 끝까지 엘리를 존중하였고 자신은 여종일 따름이라고 고백합니다. 엘리가 복을 빌어주니 한나의 마음에 근심이 사라졌습니다. 한나와 그의 남편은 아침에 여호와를 경배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해 주시니 한나는 임신하였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비록 엘리는 시력과 분별력이 떨어진 늙은 자였지만 그의 빈 평안과 축복은 무효 되지 않았습니다. 엘리의 축복이 효력이 있음은 그의 개인의 경건과 능력의 결과물이 아니라, 그에게 권위를 입히신 하나님께서 엘리의 빈 평안과 축복이 한나에게 임하게 하셨습니다.
만일 한나가 술에 취했다고 말한 엘리 제사장에게 한바탕 퍼붓고, 잔뜩 화가 나서 돌아갔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래도 이런 복이 임했을까요? 그럴 리가 없을 것입니다. 엘리의 권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세운 제사장으로 존중하였기에 18절 말씀처럼 얼굴에 근심 빛이 사라졌고,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해 주셔서 임신하였고 사무엘을 낳게 되었습니다.
지도자의 권위를 존중함이 자신에게 복이 됩니다. 교사를 무시하고 좋은 학생이 될 수 없듯이 목사를 무시하고 잘되는 교인은 없습니다. 학교 교육은 잘못하면 백 년의 손실을 보지만 교회에서 지도자를 무시하고 그의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천년만년 손해를 입고, 영혼까지 잘못되고 맙니다.
이런 말씀을 편하게 드릴 수 있음은 목사를 향해 거역하는 성도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떤 성도가 목사의 권위를 무시하고 무례한 행동을 하고 있을 때 이 말씀을 드린다면 말은 옳지만 듣는 자가 기쁘게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언제든 이런 말을 해도 편하게 받을 수 있는 좋은 관계가 계속되기 바랍니다.
지도자에게 무례하게 굴지 않음에서 멈추지 말고, 지도자를 존경하고 지도에게 순응하는 자세를 갖추기 바랍니다. 롬13:1-2에서 세속적 권세도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라 했거늘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권위는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또 롬13:2 국가의 권세를 거스르면 심판을 면치 못하리라고 했는데, 하물며 교회 지도자에게 입힌 권위를 무시하면 무사하겠습니까?
분별력이 떨어진 제사장에게 끝까지 존경심을 잃지 않았던 한나의 모범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함이 범사가 잘되고 영혼이 잘 되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권위를 입힌 지도자들을 존중함이 하나님을 존중함이 됩니다. 그렇게 함이 몸과 영혼이 잘 되는 길입니다. 분별력이 떨어진 제사장이었지만 엘리가 빌어준 평안과 복이 한나에게 임하듯이 지도자를 존중하는 자에게도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될 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