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0일)부터 장마가 시작된다는 것 같은데 홍천 강에서 물놀이를 하던 십 대 4명이 물에 빠진 사고가 났어요. 강원 홍천강은 필자가 현역 시절 근무 끝나고 종종 멱을 감던 곳입니다. 11사단(홍천)에서 두촌 방향(철정 검문소) 44번 국도 길인데 강폭이 넓긴 하지만 평소에는 강폭의 반이 자갈 밭이어서 물놀이하기 좋습니다. 하지만 비가 오면 단시간에 물이 불어나서 래프팅 할 만큼 급류가 가팔라지기 때문에 성인들도 위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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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6시 40분쯤 홍천군 북방면에 위치한 홍천강에서 A(15) 군 등 10 대 4명이 물에 빠졌다는 신고가 접수됐고 4명 중 B 양 등 2명은 119 구조대가 도착하기 전 현장에 있던 군인이 구조, C 군은 스스로 헤엄쳐 물 밖으로 나왔지만 A 군은 물에 빠진 채 실종된 상태입니다. 에예공! 수영은 수영장에서 여행은 혼자, 오빠는 어디에? 44번 국도는 한여름 밤의 추억이 있습니다. 필자 나이가 우리 예주 보다 무려 5살이나 어린 21살 여름입니다. 예주야! 지금은 연애하기 딱 좋은 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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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생활 33개월 중 12개월은 수도방위 사령부에서 보냈고 21개월을 3군단에서 때웠습니다. 그중 33개월의 반을 잠실, 동작, 방내 철정 검문소에서 보냈으니, 내가 역마살이 끼긴 한 것 같습니다. 덕분에 헌병 병과의 전 커리큘럼 중 대부분을 경험한 것 같아요. 아마도 나 같은 케이스는 아주 드물 것입니다. 넷플릭스 영화 <DP>에서 소개된 것처럼 수방사는 경호 행사를 다녀야 하기 때문에 개인생활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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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기준으로 공황 행사, 노량진, 서울역 순찰, 24개 강다리 근무-DP 정도입니다. 나머지 시간은 전투복 입고 보병처럼' 폭동진압'을 하느라 0뺑이를 칩니다. 그래서 '검문소 파견'을 학수고대했습니다. 졸병 때 잠실 CK를 나갔다 왔더니 진짜로 본부에 들어가기 싫더이다. 운이 좋은 건지 2개월 만에 다시 '동작 CK'로 파견을 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군대 생활 풀린 줄 알았어요. 하루 12시간 근무를 해도 민간인을 볼 수 있어서 꿀 보직에 말뚝 박고 싶었어요. 동부이촌동 장욱조가 농구선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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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대 초소 단독 침투' 사건 이후로 HS는 이미 중대-대대까지 이름이 알려졌어요. 일병 계급장을 달고 요샛말로 말하면 셀럽이 되었어요. 군대 별거 아니구나 했어요. 웬걸, 천방지축 하다가 고 참 폭행 건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면서, EBC453기 최초로 영창을 가게 됩니다. 출소 후 W 백 매고서 102보충대까지 기어들어갔고 거기서 신병들과 한 무더기로 소양강을 건너 강원도 '3군단 휴양소'로 전출을 왔다는 것 아닙니까?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 우는 두견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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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좁아서 강원도까지 내려온 김 일병 신세가 걱정됩니다. 까짓것 이판사판 공사판입니다. 어떻게 되겠지요. 본부에서 내 위치 찾느라 고생 꽤나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파견 지를 나간 곳이 바로 이곳 인제군 두촌 면 ‘철정 검문소’입니다. 마이 가리 병장(상병) 달고 4개월을 보냈는데 40년이 지난 지금도 강렬합니다. 검문소 주변에(5분 거리) '현리 병원'이 있었고, 인제 원통 길을 향하는 44번 국도와 어둔리-내촌-상남-현리로 이어지는 아홉 사리 길이 한계령 고개만큼 고불고불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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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현리 병원(1984)-국군 철점 병원(1992)-국군 홍천병원(2010)으로 명칭이 바뀐 현리 병원은 간호장교들이 가끔 눈에 띄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당시는 승용차가 별로 없던 시절이라 휴가를 나가는 군인들이 검문소를 버스 정유 장처럼 이용했어요. 근무 때 여군을 만나는 것을 싫어하는 근무자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 고 참 중에 실제로 여군과 연애에 성공한 헌병이 있었어요. 일반적으로는 4시간짜리 근무를 두 번 서고 나면 자유시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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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무장 탈영이나, 본부의 긴급 출동 지시를 받으면 기린면- '내촌'-어둔리''-상남'까지 지원을 나가기도 했습니다.'상남'은 경찰 지구대를 임시 초소로 사용했습니다. 당시(84)는 3군단, 예하 2사단, 12사단, 21사단, 22사단까지 모두 44번 국도를 타고 휴가를 나가야 했습니다. 10분 거리에 11사단 예하 76훈련단 야수교와 '홍천'이 있었기 때문에 철정 검문소의 존재감은 권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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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운수'나 '대한 여객'은 정규 노선이고, 가끔 지나가는 수학여행 차들까지 모두 검문 대상이었어요. 대한 여객은 없어졌고 금강운수는 가끔 생생 달리는 걸 봅니다. 언젠가는 '금강운수'에 올라갔다가 실제로 어머니와 삼촌 이모들을 만나는 기적 같은 행운을 잡은 적도 있어요. 이때는 근무시간이 기다려졌던 것 같아요. 초소장이 고 득송 주임 상사였는데 우리는 ‘고포‘라고 불렀어요. 왜 그런 별명이 붙었겠어요? 교육을 하도 많이 시켜서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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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 관련한 필자의 악명은 '방내 초소' 편에서 다루기로 하고 패스하겠습니다. 철정 검문소 주변에는 초등학교가 하나 있었고, 신작로 건너에 홍천 강줄기인 다리가 하나 있었는데 미니 대교 정도의 사이즈로 기억합니다. 상류인 소양강은 강폭이 가장 크고 두촌-홍전 쯤에서 강폭이 좁아집니다. 아마도 이 물길이 덕소-팔당을 지나 한강으로 합류될 것입니다. ‘소비조합’이라는 꽤 큰 구멍가게가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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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봤자 야간에 하늘에서 본다면 검문소 불빛 하나 달랑 보이는 풍경일 것입니다 만. 22살 피 끓는 청춘을, 소녀 펜 위문편지 답장이나 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하늘 님, 저를 살리시려거든 새 줄을 내려주소서! 하고 기도를 했더니 글쎄 마트(소비조합)에 여학생이 있는 겁니다. 꿈이어도 상관없고 거짓말이어도 괜찮습니다. 물어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들이댔어요. '해진이네 고모'라고 합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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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21살, 장안 대 2학년. 장안대가 어디 붙어 있는지 물어보지도 않았어요. 생쥐 들락거리듯이 열라 들락거렸어요. 쪽지를 써서 담배랑 맞바꿨어요. 아슬아슬 한 장면이 몇 번 있었지만 들키지 않고 연애질을 했어요. 여름 방학이 끝나고 편지 한 통이 왔어요. 우리는 이미 사귀는 사이가 되었어요. 제대할 때까지 기다리겠대요. (중략) 지도가 확 바뀌긴 했어도 검문소는 더 크고 멋지게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어요, 서울은 검문소가 재다 없어졌는데 이곳은 구멍가게 두 곳 다 마트로 번성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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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문소 바로 옆에 근사한 고깃집도 생겼고요. 지금 제가 신호 대기하고 있는 이 다리가 통신병 대가리 깼던 다리 밑일 것입니다. 후, 이때도 신문 보도 안 나고 넘어간 건, 상천하지의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입니다. 이 강물이 홍천강 사고 지점으로 이어집니다. “해진이 고모 되십니까?” “누구시더라?” 40년 만인데 놀랍게도 기억을 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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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정 초등학교는 폐교를 했고 전 검문소는 민간에 매각을 해서 현재 미장원, 타이어 가게가 들어와 있다고 브리핑을 해줬습니다. “해진이 고모는 잘 살아요?” "시집을 어디로 갔어요? “ ”예, 아가씨 잘 살아요. 부산으로 갔어요. “ '꿀물'을 따 줘서 담배 한 보루 사는 걸로 답례했습니다. 후, 내가 만약 승0를 만나지 않고 현0를 만났으면 어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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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90회 차입니다. 90화가 시작하자마자 느닷없이 공명이 병석에 누워버렸어요. 병이 위중하니 진창성을 포함, 그간 먹은 십여 개의 성을 포기하고 퇴각을 명합니다. 이에 '위연'은 '진창'성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발끈 하나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갈량이 왜 병을 얻었는가 하니, 아직은 피 토할 시점은 아니고 전략을 위한 꾀병인데, 여기서 말하길 '장포 장군의 죽음으로 상심하여…'라는 데 대체 장포는 또 언제 죽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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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촉 군은 한중까지 후퇴하며 그간 취한 성들을 몽땅 내주게 돼 위연의 짜증은 극에 달합니다. 이에 제갈량은 속내를 털어놓고, 진창성을 거저먹은 '조진'의 콧대는 높아만 가고, 사마의는 그런 '조진'을 더욱 추켜세워 줍니다. 그런데 갑작스레 큰 비가 내리고 그 기간이 길어지자, 지대가 낮은 진창성의 식량에는 곰팡이가 피고 갑옷에는 녹이 슬게 됩니다. 이때 촉 군이 쳐들어오면 큰일이라고 간언하는 '조상'(조진의 아들)으로 하여금 '조진'은 잠시나마 걱정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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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련한 조진은 황제에게 공을 인정받고 녹봉마저 올라서 기분이 좋아진 터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아니나 다를까 촉 군이 쳐들어오고, 병장기가 녹슬고 특히 목재인 활은 썩어버려서 위 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합니다. 위 장면만 보면 마치 위연이 공명에게 반기를 드는 거 사라도 꾸미는 양 표현되었지만, 사실은 그냥 비가 내리는 틈을 타서 진창으로 진군을 재촉하는 장면일 뿐입니다. 그것도 제갈량의 명을 받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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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은 촉 군의 갑옷을 입고 퇴각하는 도중에 낙마하여 허리가 부러집니다. 조상에게 자신을 죽이라 명하지만 조상은 그러지 못하고, 그러던 중 사마의가 원군을 이끌고 옵니다. 반가운 마음으로 사마의를 맞이하지만, 사마의의 표정은 그동안 조진을 대할 때와는 사뭇 다르고 말투 역시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고생이 많았다며 그의 등을 '세게' 두드립니다. 이미 체력은 떨어질 대로 떨어졌고 허리까지 부러진 터라 '조진'은 그마저 버티지 못하고 어이없이 죽고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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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조진'은 죽고 사마의는 거기 장군에 임명되어 공명과의 일전을 준비합니다. '조진'이 죽는 대목은 소설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어이없이' 죽는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문 팔 괴진'은 제갈량과 사마의의 첫 대면이고 삼국지연의 후반부에서 워낙에 유명한 대목이라 많은 분들이 기억할 것입니다. 둘은 약간의 설전을 벌이다가 '진법'으로 첫 대결을 벌이자고 서로 제안해요. 무슨 원 펀치 누가 먼저 때리느냐 고 간 보는 것 같아서 우습기도 하지만, 말하자면 사마의 vs 공명의 일대일 맞대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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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사마의가 먼저 '혼원일기진'을 구사하여 병사들이 신속하게 움직입니다. 이를 살피시던 제갈량께서 피식 웃으시더니 부채를 쓱 휘두르심에 병사들이 재빠르게 움직이니 이것이 '기문팔괘진'입니다. 제갈량이 "이 진법이 무엇인지 아시겠소?" 하고 묻자 대답 없이 90화는 끝나고 예고편에서 이 진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이 '기문팔괘진'이란 말은 드라마 내에서 육손을 가두는 팔진도(팔괘진과는 다르다)의 대용으로 한 번 등장한 적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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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삼국지가 무협처럼 변해버렸는데, 사실은 여기서 제갈량이 펼친 '기문팔괘진'이란 32화에서 서서에게 격파된 조인의 '팔괘진'을 이름만 살짝 바꾼 것입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팔괘진'이라는 이름 보다는 '팔문금쇄진'으로 더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조진의 팔괘진은 쉽게 박살이 났지만, 제갈량의 팔괘진은 사마의가 그 해법을 알고 있었음에도 도리어 당하고 맙니다. 이것은 제갈량이 진법을 살짝 변형했기 때문인데,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이 '진법'이라는 것은 사용하는 이의 역량에 따라 그 위력이 다른 모양입니다.
2025.6.20.fri.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