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애’(遺愛)로 모셔야 할 이장우 대전시장과 최민호 세종시장
김용복/ 논설위원
어쩌면 그렇게도 닮았을까? 이장우 대전 시장과 최민호 세종시장의 언행 모두가.
창작 뮤지컬 '신이 나를 만들 때'는 신이 인간을 한 명, 한 명 만들면서 각자에게 능력을 부여한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그러다 어느 날 잔뜩 화가 난 인간 '악상'이 찾아와 인생을 환불해 달라고 요구한다. 자신은 뭘 해도 안 되는 '불운의 아이콘'인데, 옆집에 사는 '호상'은 어떤 일을 해도 술술 잘 풀린다며, 인생이 불공평하다고 하소연 한다.
이 뮤지컬은 인생 환불을 위해 투쟁하는 악상을 비롯해 인간 창조에 열의를 잃어버린 신, 신도 잊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담아내려는 '영', 남모르는 아픔을 지닌 호상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각자의 인생을 들여다 본다.
인생환불을 요구하지는 않았으나 환불을 요구하는 것처럼 사람들을 대하는 최민호 시장이 신년 인사를 페북에 올렸다. 봐도그만 안봐도 그만인 것이다. 고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 글을 보는 순간 세종시장 최민호에게 비판의 글을 개인톡으로 보냈다.
“시장님, 새해 인사를 개인에게 보낸 시도지사들이 많아요. 수고스럽지만 비서들 통해 안될까요?
받는 분들 심정 생각해 보세요. 저에게도 전국에서 개인 인사 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아부가 아니라 정치 능력입니다. 최시장님 곁에는 이런 참모가 없다는 게 참 아쉽습니다. 인쇄된 연하장 보내는 분도 있었습니다.
지방선거에 이기시려면 누구에게나 다가가셔야 합니다.
이장우시장이나 최 시장의 공통점이 인맥관리 못하는 데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대전 시장 이장우는 아예 그런 인사도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도 최 시장께 보낸 문자를 보내며 추가해서 더 보냈다.
“최민호 세종시장에게 보낸 글입니다.
두 분 공통점이 많습니다. 앞으로 4개월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제게는 제자들이나 아우들 기자들이 많습니다. 새해 첫날 이런 말씀드리는 저를 내치지 마시고 끌어안는 포용심을 가지시도록. 저는 이장우 시장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라고.
그런 최민호 세종시장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월파출해(越波出海)’로 정했다고 답장이 왔다.
“감사합니다.
저는 올해 세종의 사자성어로 월파출해(越波出海)로 정했습니다.
"파도를 넘고 넘어 대망의 바다로..."
그 의미를 신념으로 삼아 기필코 우리의 염원을 이루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바람이 거셀 때 돛은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우리 모두 서로의 돛이 되어 바람을 헤치고 파도를 넘어 대망의 바다로 나아갑시다. 모쪼록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누리시기 바랍니다. 세종시장 최민호 올림”
이장우 대전 시장께서도 답이 왔다. 그 답도 좀 보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늘 건강하시길 소망합니다.”
이런 모습이 이장우, 최민호 시장의 모습이다. 새해가 되었는데도 개인들에게는 인사 한마디 없는 그들이다.
그런 그들을 보며 인간미가 없다고 섭섭한 때가 여러 번 있었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생각일 뿐 그들이 대전 시민이나 세종시민을 위한 일이라면 밀어붙이는 뚝심이 있다.
이들 두 목민관을 볼 때 조선시대 정약용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정약용 본인이 목민관으로 근무했던 것은 황해도 곡산부사 시절뿐이었다.
정약용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여러 곳의 부임지에서 함께 생활했다. 6살 되던 때 연천현감에 임명된 아버지와 생활했고, 15살에 혼인한 다음 해에도 화순현감으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랐다. 이런 젊은 날의 경험이 정약용 자신의 목민관 경험인 것처럼 명확하고 또렷하게 남아 그 직임을 파악하는 밑거름이 되었으리라 추정하는 게 무리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정약용의 목민심서 ‘해관’(解官)편에 보면, ‘은졸’(隱卒)과 ‘유애’(遺愛)라는 항목이 있는데 ‘은졸’은 본래 임금이 죽은 공신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던 말이고, ‘유애’(遺愛)는 부임지에서 목민관이 운명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송덕비와 선정비를 세워 떠난 목민관의 선정을 기리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두 목민관, 비록 그 뻣뻣한 자세에서 오는 섭섭한 마음이 있을지 몰라도 지역의 공적인 일이나 발전과 관계되는 일이라면 밀어붙이는 뚝심이 있는 것이다. 거기에 교활하지 않고 아첨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관상을 보라. 눈매서부터 목줄에 힘이 들어간 것까지 교활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가?
그래서 이들의 이런 모습에서 ‘은졸’(隱卒)이나 ‘유애’(遺愛)라는 말을 붙여주고 싶은 것이다.
지켜볼 것이다.
대전과 세종의 발전을.
첫댓글
추천입니다
회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