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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3.여호수아-02 길갈에 새긴 기념비(여호수아 4장 1-7절)
성경말씀은 여호수아 4장 1절에서 7절까지 봉독합니다.
[여호수아 4장]
1 온 백성이 요단 건너기를 마치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2 백성의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열 두 사람을 택하고
3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곳에서 돌 열 둘을 취하고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밤 너희의 유숙할 그곳에 두라 하라
4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매지파에 한 사람씩 예비한 그 열 두 사람을 불러서
5 그들에게 이르되 요단 가운데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궤 앞으로 들어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대로 각기 돌 한 개씩 취하여 어깨에 메라
6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 자손이 물어 가로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뇨 하거든
7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었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영한 기념이 되리라 하라
성경에 보면 ‘기념(記念)을 하라.’ 하는 곳이 더러 있어요. 기념.. ‘기억하고 생각하라’
기념(記念)한다는 말은 ‘기억(記憶)하고 또 생각한다.’ 그런 뜻이죠? 기념..
그래서 잊어버리지 못하게 하는데, 기억이라고 하는 것은 또 가끔 한계가 있어가지고 가끔 잊어버리게 되니까, 어떤 기념의 표식을 하는데 그중에 기념비를 세우는 거죠.
우리나라 사람들도 뭐 비 세우는 것은 참 어느 민족 못지않죠? 세계에서 비석이 제일 많은 나라가 한국이 아니겠는가..
비를 세우는데 그것은 잊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또 자녀들, 그들의 자녀들이 훗날에 그 돌들을 이상하게 생긴 단을 보고 이게 무슨 의미냐 하고 물으면 자녀들에게 그걸 가지고 교육을 하라는 거야.
여러분 이 성경에 이런 저런 이적과 어떤 기적, 표적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기념을 하도록 명하신 곳이 더러 있는데,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면 기적을 하나님이 계속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그 기적이 일어났던 것을 일정량 동안 그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그 은혜로우심과 자비로우심과 여러 가지 특성이 나타나는 어떤 그 기념을 하게 하고 무슨 표식을 세웠다가 그걸 끊임없이 자녀들에게 교육을 하라는 거야. 역사 교육을..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역사 가운데 가장 잘못한 것이 있다면 교육을 하지 않고, 자꾸 표적을 구하는 거야.
옛날 역대를 기억하고, 성경을 기억하여 역사를 읽고 그 기념비와 또 기념일과 기념행사를 하면서 교육을 하라고 했는데 계속해서 표적을 구한다는 거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 주옵소서.’ 하니까, 예수님께서 조금 언짢은 투로 꼭 보면 그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그러면서 좀 짜증섞인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 하시면서 요나가 밤낮 사흘을 물고기 뱃속에 있은 것 같이 내가 무덤 속에서 사흘만에 부활하게 될 것이다. 그것 외에는 더 이상 표적 보려고 하지 마라. 이렇게 하셨다는 거야.
여러분 우리가 그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그 믿을 수 있고 예수님의 그 부활을 믿을 수 있다면 그 다른 표적은 그 볼 게 없잖습니까? 충분하지 않습니까? 최고의 표적이죠.
그래서 그 칼 바르트 같은 유명한 신학자는 ‘기독교에 들어가는 입문에 들어갈 수 있는 정문에는 동정녀 탄생이라는 시험의 문이 있고 나오는 문에는 부활이라는 문이 있다.’ 그 예수님이 동정녀의 몸에서 성령으로 탄생했다. 이것이 믿어지는 사람은 교회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고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이 믿어지면 구원을 얻는다는 거야.
달리 또 뭐 계속 기적을 일으키면 뭐 하나님께서 맨날 그 기적을 일으키다가 아무 일도 못 할 것 아니예요?
그래서 기적이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기념과 기억과 교육이 계속되어야 한다. 하는 뜻이 바로 기념비를 세우라고 하는 뜻이고,
그 다음에 신약에 와서는 딱 한가지예요. 신약에 와서 기념하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최후에 만찬을 드시고 ‘내 살과 내 피를 기념하라.’ 하신 그 기념 외에는 신약에서 무슨 달리 기념을 하라하신 것은 없고 이제는 그 기념보다 가장 완벽한 기억 장치가 기록이죠.
기록. 그래서 기억하고 기록하고 기념하는 건데 기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는 거야.
그래서 신약 성경에는 온갖 기적과 온갖 능력과 온갖 은혜와 온갖 진리가 이 계시된 66권 안에 필요하고 충분하게 계시 됐다는 거야. 그러니까 달리 우리가 또 무슨 표적을 보면 믿겠다. 그런 발상을 가지면 안 돼요. 우리가 믿음을 가지면 그 믿음이 이적을 가져올 수는 있으나 이적을 보고 믿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돼요. 그런 사람은 이적을 봐도 안 믿어요.
종종 드리는 말씀인데 모세 시대에 그렇게 많은 기적을 제일 많이 본 사람들이 끝내 믿지 못하고 가나안 땅도 못 들어가고 모래밭에 다 그저 죽었잖아요.
엘리야, 엘리사 때 많은 이적들이 일어났지만 그 시대 그 누구도 회개하지 않았고, 예수님이 3년이나 온갖 이적을 다 보였지만 제자들이 다 예수님 버리고 도망갔고 그 기적의 떡을 먹던 사람들이 다 한 입으로 하는 말이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그렇게 하는 거라.
그래서 기적이 믿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잘 들어서 인격적으로 그 믿음의 바탕이 아직도 순전한 믿을 수 있는 어떤 여지가 그 인격 속에 남아 있다면 들어서 믿어진다는 거야. 들어서 믿어지는 믿음 들어서 믿어지는 그 믿음은 때로는 그 이적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적을 자꾸 보고 믿겠다 하는 사람들은 그 전혀 대책이 없는 사람들이야. 그 믿음이 거의 안 생길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자, 여기 기념비 두 곳을 세우는데, 하나는 그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요단강에 들어가서 강 어디 중앙쯤 갔을 때 물이 딱 위에 물은 밀려 올라가서 쌓이게 되고 밑에 물은 흘러가서 그렇게 됐을 때, 그 제사장들이 한 가운데 머물러 있었습니다.
온 백성들이 다 건너갈 때까지 그 머물렀던 그 곳에서 돌 열둘을 가져다가 그들이 요단강 건너가서 첫날밤 잠자던 그 곳에 세우게 됐고, 또 한 기념비는 바로 강 한복판에 그 발이 머물렀던 그곳에 그 돌을 세워서 물속에 나중에 잠겨 있게 되겠죠?
그래서 물속에 잠겨 있는 그 돌단이나 길갈에 세웠던 그 돌단이나 똑같이 열두 돌을 가지고 세워서 그것을 자녀들에게 잊지 못하게 끊임없이 교육을 하라. 하신 그런 말씀입니다.
자, 4장 10절.
[여호수아 4장]
10 궤를 멘 제사장들이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이르게 하신 일 곧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명한 일이 다 마치기까지 요단 가운데 섰고 백성은 속히 건넜으며
그러니까 제사장들은 백성들 다 건널 때까지 요단 가운데 섰고, 백성들은 속히 건너갔습니다.
11 모든 백성이 건너기를 마친 후에 여호와의 궤와 제사장들이 백성의 목전에서 건넜으며
12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는 모세가 그들에게 이른 것같이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들보다 앞서 건너갔으니
땅을 먼저 분배 받은 사람들은 가나안땅 전쟁에도 앞장서서 이렇게 싸우라고 했는데, 그대로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13 사만 명 가량이라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건너가서 싸우려고 여리고 평지에 이르니라
14 그 날에 여호와께서 모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여호수아를 크게 하시매 그의 생존한 날 동안에 백성이 두려워하기를 모세를 두려워하던 것같이 하였더라
15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16 증거궤를 멘 제사장들을 명하여 요단에서 올라오게 하라 하신지라
17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요단에서 올라오라 하매
18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서 나오며 그 발바닥으로 육지를 밟는 동시에 요단 물이 본 곳으로 도로 흘러 여전히 언덕에 넘쳤더라
자, 19절,
19 정월 십 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서 여리고 동편 지경 길갈에 진치매
20 여호수아가 그 요단에서 가져온 열 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21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 가로되 후일에 너희 자손이 그 아비에게 묻기를 이 돌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22 너희는 자손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23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 마르게 하사 너희로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로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24절은 중요합니다.
24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이 목적이 어떤 기적을 일으켰을 때 그것이 그 때 당시는 그 목도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계시이지만, 이 기념비를 세우고 그리고 이것을 오늘 여호수아에 이것을 기록해서 이 성경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24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하나님의 의지가 그런 거야. 하나님 뜻이 그러니까 이런 건 우리가 공부를 잘 해야 돼요.
5장입니다.
[여호수아 5장]
1 요단 서편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네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연고로 정신을 잃었더라
이런 걸 제가 전에 얘기했죠? 신경전이라고.. 전쟁을 하는데 그 가나안땅 사람들이 그냥 소문만 듣고 간담이 녹아버리게 그렇게 한 거야.
그래 이쪽 사람들은 그 이적을 보고 하나님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갈 수 있는 믿음과 담력과 사기가 충천한 반면에 가나안 땅 사람들은 그 소문만 듣고도 정신을 잃어버리고 마음이 다 녹아 버렸다는 거야.
5장 2절에는 할례를 행하게 하는데,
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3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4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노중에서 죽었는데
5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오직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노중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그 돌들 중에 지금 같으면 그 메스를 가지고 하면 되는데 그 때는 쇠붙이로 만든 칼이라는 것은 그 어렵죠?
지금도 수술을 할 때 사람 살을 이렇게 베어가지고 독이 없이 그런 쇠라는 것은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차돌 중에서 아마 홍보석 같은 어떤 돌인지 모르겠는데 돌중에 아주 이렇게 탁 깨면 완전히 그저 칼처럼 그렇게 되는 돌이 있어요.
가끔 그 역사가들이 그런 고고학자들이 그런 돌을 가지고 딱 깨 가지고 양을 잡을 때 가죽을 벗길 때 쓰는 것을 보면 굉장히 잘 들어 완전히 면도칼 보다 더 잘 들어 그런 것을 가지고 할례를 행하게 됩니다.
그 모세와 여호수아를 따라서 애굽에서 나왔던 그 어른들은 애굽에서 다 할례를 다 받았지만 지난 40년간 길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할례를 받지 않은 채 40년간 지나 왔기 때문에 이때 길갈에서 다 할례를 받게 한 것입니다.
거기 6절에 보면,
6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마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로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 년 동안을 광야에 행하였더니
그래서 결국은 그 믿음 없는 사람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거죠.
제가 이따금 드리는 말씀인데, 제일 불쌍한 사람들이 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가나안 못 들어간 거예요.
차라리 그저 애굽에서 살다 죽었으면 괜찮죠? 그 광야 고생 덜 하고 말이야. 애굽에서 나왔는데 가나안 못 들어간 이 사람들 불쌍하지 않습니까?
이를테면 어떤 사람들 같으냐 하면, 이 세상에서 교회까지는 나왔는데 천국까지는 못 들어 간 사람이 있다는 거야.
그 교회 처음에 나오면 이래저래 뭐 힘도 들고 또 뭐 핍박도 받고 손해도 보고 지금은 뭐 예수 믿는 것 때문에 핍박받고 손해 보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만, 옛날에 뭐 우리가 처음 믿을 때 그 예수 믿으면 범사에 손해 보는 거죠? 어디가나 그 뭐 핍박은 기본이고 왕따는 보너스고 그랬는데,
그런데 지금 이상하게 요즘 얼마간 한 10년 넘어 한 20년 정도는 예수 믿고도 아무 핍박이 없어요. 이런 일이 기독교 2천년 역사에 없었다는 거예요.
어떻든 교회까지는 와 가지고는 천국 못 간 사람이 있으면 참 불쌍한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이왕에 믿음을 가졌다면 바른 믿음을 가지고 천국 갈 뿐 아니라, 가서 겨우 가면 어떡합니까? 겨우 가면 어떡해? 가서 칭찬도 있고 상급도 있게 이렇게 믿어야지. 기왕 신앙생활 할 때..
그래서 늘 성경 읽으면서 그 한두 사람도 아니고, 한 150만 정도 죽은 것 같거든요. 광야 생활하는 동안에 한 150만정도가 죽은 것 같은데, 그 많은 사람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지고 그렇게 광야 생활 고생해 놓고 끝내 가나안땅 보지도 못하고, 물론 뭐 모세 같은 분이야 가나안 땅 못 들어가도 모세, 아론이라든지 미리암 이라든지 뭐 천국 간 사람들이 있지만, 대부분이 그 천국 가지 못했을 거란 말이야.
그래서 그 온 백성에게 할례를 받게 했는데, 7절입니다.
7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치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8 온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필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처하여 낫기를 기다릴 때에
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10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쳤고,
이것은 요단강 건너 들어가서 맨 처음 진을 친 곳이죠? 꼭 시험에 나오기 좋겠죠? 거기서 유월절 명절을 지키게 됩니다.
10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쳤고 그 달 십 사 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고
유월절 같으면 우리나라 같으면 광복절하고 비슷한지 몰라요. 애굽에서 해방 되었다하는 그런 명절인데,
11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 소산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니
12 그 땅 소산을 먹은 다음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
어느 것이 맛있을 것 같아요?
우리는 그냥 어린 애들처럼 그냥 그 만나 좀 먹었으면 좋겠다. 그 만나가 그 맛이 있을 줄 알지만 그 맛이 별로 안 난답니다.
처음에 먹을 때는 뭐 굴 섞은 과자 같다 하더니 나중에는 뭐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한다. 그게 음식이라는 것이 특히 우리 한국 사람들은 짜다가, 싱거웠다가, 달았다가, 매웠다가, 세콤, 달콤하고 뭐 매콤하고, 얼큰하고 별것을 다 찾거든요. 한국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맛을 가장 그 여러 가지 요구하는 도깨비가 그 흉내를 못내는 게 한국 사람들이예요.
대개 서양 사람들은 뭐 대개 음식이 밋밋한 그런 것들 고기도 그렇고 뭐 빵이나 뭐 해 봐야 맛이 그렇게 다양하지가 않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전부 맛을 다르게 만들어 가지고 먹기 때문에 많이 먹어. 맛이 똑같으면 그 느끼하고 밋밋해서 많이 못 먹는데 그 싱거웠다가 짰다가 하기 때문에 많이 먹을 수 있는 거죠.
맛이 여러 가지이기 때문에 음식을 좀 많이 먹는 편이야. 한국 사람들은 제가 볼 때 체격에 비해서 많이 먹는 편이야. 서양 사람들은 그 체격은 큰데 사실은 그 많이 못 먹어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역시 우리가 흙에 땅에 발 딛고 사는 날 동안에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보다는 흙에서 나는 것을 먹어야 그게 맛있는 것이고 건강에 좋다는 거야.
13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왔을 때에 눈을 들어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한 마디로 어느 편이냐? 누구 편이냐? 그러는 거죠.
14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가로되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15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여기 ‘신을 벗는다’ 하는 이런 말이 모세 때 한번 그런 일이 있었고, 또 여호수아 때 한번 그런 일이 있었는데, 아마도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뭐 주석을 봐도 확실하지가 않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이런 저런 말들을 하는데 개운하지가 않아요.
아마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이제부터는 좀 다른 길을 걸어간다. 그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두려움과 떨림으로 새로운 길을 새로운 걸음을 걸어가야 한다. 그렇게 그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내가 걸어온 것은 내가 걸어온 것이고, 이제부터는 내가 내 걸음으로 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길을 걸어간다. 그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것 때문에 지금도 이슬람 회당에 가면 회당에 들어갈 때 다 신을 벗어요. 한국 사람처럼 그런데 우리는 뭐 어떻게 그 서양에서 뭘 잘못 배워가지고 예배당에 들어올 때 다 신발을 신고 예배당에 들어오게 돼 있죠?
그러다가 지금 대부분 도시에 강단까지 다 카펫을 깔고 있으면 강대상에 다 신발 신고 올라갑니다. 도시 교회는 전부다..
저는 예배당에 들어 올 때는 또 신고 들어 왔다가 여기 올라올 때는, 그 참 어디 가니까 그냥 신발 신고 올라가십시오. 그러는데 그 한국 사람들은 그 신발 신고 들어가는 것이 참 좀 그렇죠?
그 미국 사람들은 뭐 안방까지 신발 신고 들어가니까 선교사들이 가끔 우리 집에 와가지고 신발 신고 들어 왔다가 깜짝 놀래가지고 다시 벗어 놓고 들어오는 그런 수가 있는데, 역시 제가 볼 때 그 신발을 밖에 벗어 놓는 것이 옳죠? 그게 더 위생적인 것 같아.
그래서 이제부터는 여호수아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앞에 서는 것 같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전쟁을 할 때 내가 네 걸음, 네 행동, 네 재주, 네 무술 뭐 너의 무엇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길로 하나님의 싸움을 싸우게 할 것이다. 하는 그 신호탄이 될 것이죠.
그리고 이때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먼저 파송되었다는 것은 앞으로 전쟁은 하기는 하는데 물로 여호수아가 징도 치고 나팔도 불고 뭐 칼을 들고 나가고 뭐 이렇게 하지만, 그러나 그 싸움의 이김이라고 하는 것은 여호수아가 무슨 작전을 잘 짰다든지 무기가 탁월했다든지 이런 것 하고 상관이 없습니다.
여기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싸움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전쟁은 백전백승이 그저 보장 되어있는 그런 전쟁입니다. 단, 여기 그 뒤에 나가 보면 잘 아시는 대로 그 아간처럼, 아간과 같은 그 못된 짓만 안 하면 가나안 전쟁은 다 이길 수 있도록 그렇게 보장된 건데, 그런 영적인 어떤 교훈이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교회가 선한 싸움을 싸워서 승리하려고 할 때, 우리 중에 아간과 같은 그런 사람이 없어야 한단 말이죠. 여러분 꼭 우리 한 교회뿐 아니라 기독교인 중에 어떤 못된 사람이 아주 못된 일 해 가지고 그 뭐 언론을 타고 그 방송으로 이런 게 막 퍼져버리면 그것 때문에 온 기독교 전체에 영적인 전쟁을 막 망쳐 놓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로 하여금 여리고 성에 바라보게 됐는데 그 전쟁은 뭐 잘 치렀죠?
6장에 나오는데,
[여호수아 6장]
1 이스라엘 자손들로 인하여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 없더라
얼마나 겁이 났던지 아예 그냥 딱 굳게 닫아 놓고 문을 열지도 않습니다.
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3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4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제 칠 일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5 제사장들이 양각나팔을 길게 울려 불어서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6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언약궤를 메고 일곱 제사장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행하라 하고
7 또 백성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 행할지니라
여러분 여리고를 큰 성이라고 하니까, 우리는 막 워낙 이 동양 사람들은 스케일이 커 가지고 막 만리장성을 생각하고 그러는데, 가서 보면 어이가 없어요.
너무 작아 가지고 이것 여리고성 맞나 할 정도로 조그마한 동산입니다. 동산.
부산 사람들은 혹 아실지 모르겠는데 자성대만 할란가? 말란가 그래요. 자성대..
그만 할런가? 그러니까 여기 마산 사는 계시는 분들 여기 제비산 있죠? 제비산.. 그 제비산 반쪽만 할란가 모르겠습니다. 그 조그만 해요. 가서 보면..
그리고 우리가 안 가보고 뭐 이게 성경에서 큰 성이다. 하고 하는 것 하고 가서 보면 많이 다르다는 거야.
조그마한 성인데 지금처럼 무슨 장비가 있는 시대가 아니고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것도 큰 거야. 이스라엘 사람들이 볼 때는 이스라엘 사람들 그런 것 하나 못 만들었어.
나중에 물론 뭐 예루살렘 성을 쌓기는 해도 그것도 다 옛날에 그 여부스 사람들이 만들었던지, 아니면 헤롯이 만든 거지.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런 것도 하나 못 만들어..
그래 그 팔레스타인 쭉 다녀보면 세상에 이스라엘 백성만큼 무능한 사람들이 없는 거야.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온통 그 이스라엘 땅 전체에 헤롯왕의 업적이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업적은 없는 거야.
업적 해 봐야 딱 하나있죠?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밖아 죽이는 거. 그 외 아무것도 없어요. 어이가 없을 정도로 뭐 아무것도 못해.
그 뭐 그림도 시원찮고 조각도 시원찮고, 뭐 거의 뭐 남은 것 딱 유대인이 남긴 것 하나 있는데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밖은 것 하나하고 성경책 기록한 것 그것 밖에 남은 것 없어.
팔레스타인 땅에 가서 보면 뭐 우리 한반도가 아무것도 볼 게 없는 것처럼 진짜 유대인 땅에 가서 보면 아무것도 볼 것 없습니다.
애굽의 그 룩소르 같은데 가서 보고 이란이라든지 무슨 터키 같은데 이런데 가서 다른 나라라든지 로마도 가보고 그리고 나서 이스라엘 가보면 제일 볼 게 없는 데가 이스라엘 땅이야.
여러분 우리 한국도 뭐 얼마나 볼 게 없습니까? 역사가 반만년 된다면서 세상 뭐 기껏 본다고 한다는 게 경주 불국사, 석굴암 뭐 돌멩이 하나 다듬어 놓고 그것 가지고 뭐 굉장하다고 그러고 대궐 해 봐야 저 성냥 꼬쟁이 가지고 만든 것 경복궁 나무 꼬쟁이 가지고 조그맣게 지은 것 그 다른 나라 궁궐에 가서 보고 와서 그 경복궁을 보면 민망해요, 민망해..
여러분 앞으로 그 여행을 가서 보면 베르사유 궁전이라든지 아니면 스페인 왕실, 스페인 왕실 이라든지 아니면 영국의 버킹검 이라든지 이런데 한번 가 보세요. 터키의 돌마바체 궁전이라든지 토카페 궁전이라든지 가보면 입이 딱 벌어져 가지고 거의 뭐 말로 표현이 안 돼요. 사람이..
진짜 사람이 지은 것 맞나? 타락한 인간들이 이 정말 이것 지었나? 할 정도로 그렇게 굉장한데, 그런데 한국에 오면 뭐 그 경복궁 가서 보면 참 어이가 없죠? 그런 것처럼 이스라엘 땅에도 아무 것도 없어요.
그런데 한 가지 그렇게 이스라엘 하고 한국이 역사에 비해서 아무것도 없는데 두 나라의 어떤 공통점이기도 하고 어쩌면 그것이 우리 역사에 자랑이라면 자랑이랄 수 있어요.
무슨 얘기냐 하면 임금들이 왕궁을 뭐 굉장하게 유럽의 어떤 왕들처럼 그렇게 안 지었다는 거야. 임금들이 매우 검소하게 조그마한 왕궁에 살았다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그런 그 경복궁을 짓고도 또 무슨 임금들이 백성들이 도탄 중에 있는데 이렇게 큰 집을 지어도 되겠는가? 하고 중신들 중에서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임금도 가슴아파하고 이랬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나라가 어려울 때 우리 역사에는 막 의병들이 일어나는 거라. 임금을 자기 임금을 지키려고 심지어는 막 스님들까지 일어나 가지고 막 나라를 지키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저렇게 어떤 나라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궁궐을 지어가지고 궁궐 하나가 뭐 어떤 궁궐은 길이가 1키로 되는 이런 것도 있거든요. 그런 어마어마한 궁궐을 지면 얼마나 그 또 세금을 내고 혹사당하고 뭐 이렇게 되면 어떤 적, 대적이 쳐들어오면 대적을 환영해 가지고 자기 왕을 타도하는 거야. ‘태양신의 아들이 우리를 해방시키러 왔다’고 하면서..
그러니까 그런 역사에 비해서 우리 역사에는 임금들이 다 착했다는 거야. 큰 능력은 별로 없었어요.
우리나라 임금들이 보니까 큰 능력은 없었어도 대체로 다른 나라 비해서 워낙 우리나라 임금들이 착한 편입니다. 공자 왈, 맹자 왈 을 해서 그런지 몰라도 어떻든 참 착한 편이예요. 신하들이 못된 것 들이 있어서 그렇지, 임금들은 뭐 그렇기 때문에 나라가 어려울 때 국민들이 일어나서 그 임금을 지키려고 했다는 것도 우리 역사의 또 다른 해석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나라는 그런 수가 없어. 가서 보면 야, 임금들이 이렇게 호화찬란하게 살았고 또 성당 같은 것도 얼마나 웅장하게 지었는지 그 자체가 백성들을 엄청나게 착취했다는 거죠. 보나마나 거기다가 그 그렇게만 했겠어요.
그 자국민 착취해 가지고 모자라니까 남미까지 가가지고 막 그 잉카 마야 문명, 아즈택 문명 다 때려 부수고 그 사람들 다 약탈 해다가 그래가지고 그런 궁궐 지었다는 거야.
그 유럽을 볼 때 예술적으로 보면 굉장한 건데 도덕적으로 보면 아주 나쁜 놈들이야. 대영 제국이 아주 국제 도둑놈 소굴이야. 온 세계 모든 나라 것 다 훔쳐 가지고 다 쌓아놓고 그 요즘 와서 그 양심이 좀 찔렸던지 외국서 같다 놓은 것은 관람료를 안 받습니다. 입장료를 그 도둑놈도 양심이 있었던지 그 자기 영국 것은 입장료를 받고 외국서 가져 온 것은 안 받는 거야.
그런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에 어떤 면에서는 아무것도 보여줄 것이 없는 것이 어쩌면 자랑 일수 있다는 거야.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죠? 이스라엘도 뭐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죠? 헤롯이 뭐 좀 백성들을 동원해서 헤롯 성전이라든지 뭐 성벽도 짓고 했습니다만 이스라엘 백성들 뭐 손으로 한 것이 별로 없는 거죠.
여리고 성을 우리가 볼 때, 그렇게 큰 성은 아닌데 어떻든 그 성이 무너지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이적이었죠?
마지막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고 나서 고함을 지릅니다.
15 제 칠 일 새벽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서 여전한 방식으로 성을 일곱 번 도니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날 뿐이었더라
16 일곱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제사장들이 나팔을 길게 울려 불 때 고함을 지르는데, 고함을 지르는 순간에 하나님께서 그 땅을 뒤 흔들었던지 그 여리고 성 무너진 것을 고고학자들이 답사를 해 보고 정밀 조사를 해 보니까 틀림없이 지진이 나서 무너진 것 같다는 거야.
사람들이 무너뜨린 것 같지 않고 지진이 나서 무너졌다는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고함을 지를 때 하나님께서 그 막 여리고를 뒤 흔들어 버린 거죠. 그렇게 해서 막 무너진 것 같아요.
그런데 문제는 그 성에 들어갔을 때 두 가지를 명심을 해라.
여리고 성에 들어가서 꼭 두 가지를 명심해.. 첫째, 그 창틀에 붉은 줄을 매고 있는 그 집 사람들은 해하지 말라 하는 것이고, 또 18절,
18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
19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그래서 두 가지 아까 이야기 했죠?
창문에 붉은 줄을 두른 집은 손대지 말 것과, 그 은금이나 동철 기구들 값진 것들은 여호와의 곳간에 들이라.
이번 여리고 성은 첫 번째 전쟁이죠? 처음 그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첫 전쟁인데 첫 전쟁에 들어가서 그 첫 번째 노획물은 일절 다 하나님께 다 드리는 걸로 하고, 절대 개인이 취하지 말라.
20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우리 보통 상식하고 다르죠? 성이 무너지면 우리는 고함을 지를 텐데, 고함을 지르니까 성벽이 무너졌다는 거야.
..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
21 성 중에 있는 것을 다 멸하되 남녀 노유와 우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22 여호수아가 그 땅을 정탐한 두 사람에게 이르되 그 기생의 집에 들어가서 너희가 그 여인에게 맹세한 대로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라 하매
23 정탐한 소년들이 들어가서 라합과 그 부모와 그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고 또 그 친족도 다 이끌어 내어 그들을 이스라엘 진 밖에 두고
24 무리가 불로 성읍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사르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더라
25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 아비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탐지하려고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었더라
26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로 무리를 경계하여 가로되 이 여리고 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 하였더라
했는데, 이것은 나중에 이대로 문자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거기 ‘열왕기상 16장 34절에 이루어짐’이라고 풋노트(각주) 하시면 좋겠어요.
열왕기상 16장 34절에 보면 여리고 성을 건축하려고 하다가 아들들을 한꺼번에 잃어버리는 그런 일이 벌어지죠?
27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의 명성이 그 온 땅에 퍼지니라
자, 이렇게 여리고 성 함락까지는 시키는 대로 잘 했기 때문에 첫 번째 전쟁은 잘 끝났죠?
그런데 문제는 7장에 보면, 그 유명한 아이 성 사건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여리고 성에서 아간이라는 사람이 아까 두 가지 내용한 것 중에 하나를 범한 거야.
그게 뭐 이스라엘 군대 전부가 한 것이 아니고, 아간 딱 한 사람이 그렇게 했는데 하나님께서 그 한 사람의 그런 범죄에 대해서도 아주 엄하게 다루셨는데, 이런 건 이른바 일벌백계(一罰百戒)로 시범 케이스에 걸려든 거야.
가나안 땅에까지 들어가서 세상에 그 물건도 아무것도 아닌 그 옷 하나 훔쳐가지고 어려움 당하는 데, 옷 때문에 좀 어려움 당한 사람 많아요.
아간도 그렇고 나중에 게하시도 그렇고..
그러니까 여러분 특히 우리 옷 그것 너무 탐내지 마세요. 특히 뭐 모피코트 호피무늬 반코트 그런 것 뭐 국회까지 나가서 그 난리굿을 피우지 말고..
그래서 이 아간 사건은 우리가 뭐 다 아는 사건인데 이렇게 되면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게 되고,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전쟁에서 패하게 되는 거야.
그 조그만 이 작은 물건인데 옷하고 뭐 그런 정도 아닙니까? 그런데 이 작은 건데 전쟁에서 패했을 때 그런 엄청난 사건으로 번지게 됩니다.
그래서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잘못된 일이 없도록 우리가 항상 조그만 일에 ‘이 작은 일 어때?’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는 작은 일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일에 소홀한 사람은 큰일에 소홀하다는 거야.
그 어느 나라죠? 비행기가 여객기 하나가 떨어졌는데 그 날개 밑에 달려있는 그 볼트가 하나 있는데요, 그 볼트 하나가 그 수명이 다 한 거야.
그 수명이 다 하면 멀쩡해 보여도 그 갈아 끼어야 하는데 그 볼트 하나 갈아 끼우는 것을 소홀히 했는데 그 네겐가 이 볼트가 껴 있는데 그 중에 한 개가 딱 잘라지니까 진동에 의해서 잘라지면서 한 개 잘라지니까, 새 개가 지탱하다가 세 개중에 한 개가 또 부러지니까 두 개가 지탱하다가 두개는 더 힘이 없으니까 왕창 그 떨어지는데..
여러분 그 제트엔진이라는 것은 뒤로 그 힘을 확 뿜기 때문에 거기서 날개에서 이탈되자마자 앞으로 튀어나가는 거야. 이게.. 뒤로 뿜는 힘 때문에 앞으로 튀어 나가가지고 그것 그냥 떨어지기만 하면 그 비행기가 안 떨어진답니다. 그 엔진이 그 네 개가 있는데 이쪽 두 개, 저쪽 두 개. 엔진이 세 개가지고 충분히 날아 갈 수 있데요. 그리고 한 개 날개에 붙은 두 개가 다 떨어지기만 하면 날아간답니다. 비행기가.. 떠오르기는 힘 드는데 날던 것이 착륙은 가능하데요.
그런데 어떻게 됐나 하면 딱 떨어져 가지고 앞으로 튀어나간 그 엔진이 튀어나갔다가 힘이 빠지니까 선이 다 끊어지니까 엔진이 꺼질 것 아냐? 꺼지니까 속도가 느려지면서 비행기가 충돌하는 거야. 충돌을 해 가지고 나머지 한 개 엔진을 갔다가 떨어트리면서 날개 균형을 완전히 비틀어 버리니까 결국은 날지 못해가지고 큰 아파트가 이렇게 기억자로 되어있는데 그 한가운데를 찢어 쪼개고 충돌한 사건이야. 그 네덜란드인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인데 결국은 지극히 작은 볼트 한 개 그 것 하나 갈아 끼었으면 될 텐데, 그것 하나 갈아 끼우지 않은 것이 20여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거기 아파트 그 뭐 엉망이 되고 그런 거죠.
그런 것 보면서 그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그 항상 소홀히 하지 않도록 그 큰 교훈이죠?
그리고 다 잘 했는데 한두 사람이 잘못해 가지고 일을 그르치는 그런 일은 얼마든지 있는 거죠.
우리 교회 안에 아니라도 세상일에는 그런 일이 얼마든지 있다는 거야. 뭐 그 우물에 미꾸라지 한 마리가 전체를 다 흐린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 어떻든 이 아간 사건은 가나안 땅 사람들 뿐 아니라. 이스라엘 역사에 그리고 온 성경을 읽는 오고 오는 세대의 모든 성도들에게 아주 큰 경각심을 주는 그런 사건이 된 겁니다.
그 아간이 뭐 그런 일을 한 것은 잘못된 것이고, 그리고 전쟁에 가서 그 패배해서 죽은 사람은 잘못된 것이지만 그러나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서 그 깊은 교훈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작은 일도 지극히 작은 한 사람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어떻든 그 아간이 처벌된 후에 그 아이 성 전투에서 이기게 되는데,
7장 26절에 보면,
[여호수아 7장]
26 그 위에 돌 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날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 극렬한 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날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아간을 돌로 쳐서 죽이고 나서 거기 돌무더기를 쌓았는데 그 위에 돌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날까지 있었는데요, 여호와께서 그 극렬한 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날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아골 골짝 빈들에도’ 하던 그 골짜기가 그 아간 때문에 생긴 골짜기예요.
그래서 우리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 되겠죠.
8장에는 다시 아간이 처벌되고 문제가 해소되고 나니까, 8장에는 다시 전쟁을 하고 나서 이겼는데 24절,
[여호수아 8장]
24 이스라엘이 자기를 광야로 따르던 아이 모든 거민을 들에서 죽이되 그들을 다 칼날에 엎드러지게 하여 진멸하기를 마치고 온 이스라엘이 아이로 돌아와서 칼날로 죽이매
25 그 날에 아이 사람의 전부가 죽었으니 남녀가 일만 이천이라
‘아이’는 어린아이가 아니고 아이라는 성 이름이죠? 아이 성 사람의 전부가 죽었으니 남녀가 일만 이천 명 정도 아주 전멸하게 되었습니다.
26 아이 거민을 진멸하기까지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아 든 손을 거두지 아니하였고
27 오직 그 성읍의 가축과 노략한 것은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신 대로 이스라엘이 탈취하였더라
28 이에 여호수아가 아이를 불살라 그것으로 영원한 무더기를 만들었더니 오늘까지 황폐하였으며
29 그가 또 아이 왕을 저녁 때까지 나무에 달았다가 해질 때에 명하여 그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그 성문 어귀에 던지고 그 위에 돌로 큰 무더기를 쌓았더니 그것이 오늘까지 있더라
‘오늘까지 있더라’는 것은 이 성경이 기록될 때까지 있었다는 거죠.
30절에,
30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 산에 한 단을 쌓았으니
31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철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와 화목제를 그 위에 드렸으며
32 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의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
33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유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 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이왕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한 대로 함이라
34 그 후에 여호수아가 무릇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이것은 아마도 신명기 27~28장을 낭독한 것 같습니다. 율법 전체를 낭독한 것이 아니고..
35 모세의 명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인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거하는 객들 앞에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더라
여기까지가 한 단락이 되면서 중부전투와 남부전투를 끝내고 이렇게 정리를 하는 거죠.
그리고 에발 산까지 왔으니까 가나안 땅 중부까지 올라온 것입니다.
이 사건에서 오늘 우리가 본 4장부터 8장을 살펴볼 때, 하나님의 전쟁은 하나님 방법으로 한다는 거야.
그래서 우리가 우리 재주나, 우리 기술이나, 우리 작전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방법으로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잘못 때문에도 전쟁에 패하는 수가 있다는 거야.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 할지라도 하나님 말씀을 어겼을 때 우리가 영적으로 승리하기 어려워진다는 거죠.
그래서 그런 교훈 때문에라도 우리가 2006년을 보내면서 지난 한해를 돌아보고 2007년에는 정말 사소한 문제라도 항상 살펴서 이것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하나님 뜻을 벗어나는 것이 아닌가? 늘 세밀하게 작은 것까지라도 정성을 다해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 처음에 그 아이 성 보고 뭐 그 인원도 얼마 안 되는데 뭐 많이 올라 갈 것도 없고 뭐 소수를 보냅시다. 그 소수를 보냈다가 큰 실수를 하는 거요.
백성 중 3천 명 정도 뭐 그리로 올라갔다고 그랬습니다. 그래가지고 큰 패배를 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나중에 보면 열배를 딱 보내게 되는 거죠? 열배를.. 3천명이 아니고 군사 3만 명, 8장 3절에 보면 이에 여호수아가 일어나서 군사와 함께 아이로 올라가려 하여 용사 삼만 명을 보내게 됩니다.
처음에 자만심에 여리고 성에서 승리한 그 자만심 때문에 그랬는지, 아이 성을 우습게 보고 그 3천 명이나 보내자 하고 그 가다가 혼쭐나고 서른여섯 명인가 죽었죠?
그 때 그걸 보고 막 여호수아가 엎드리고 했는데 결국은 원인은 그 아간 때문에 그렇게 됐지만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상대를 너무 얕잡아보는 그런 것은 그 금물이야.
그래서 결국은 여호수아가 나중에 처음에 보내지 않았던 열배. 3천 명을 보내려고 했었는데 3만 명을 뽑아서 보내는데 그걸 반을 나눠요. 반을 나눠서 반은 이게 딱 매복을 시키고, 반은 가서 싸움을 겁니다.
싸우면서 그 한참 싸우는 척 하다가 패해서 도망을 가니까 ‘아 이놈들 지난번에도 겁쟁이처럼 도망을 가더니 또 도망을 간다’ 하고 아이 성 사람들이 다 따라오는데 성문을 열어 놓고 따라 나온 거야. 그 따라오고 다 따라 나오니까 매복한 사람들이 들어가서 성안에 있는 사람들 다 죽여 버리고 다 불질러 버리고 그렇게 해서 이기는데, 아이 사람들이 도망가는 사람들을 따라가다 한참 따라가다가 누가 뒤를 돌아보니까 자기 성이 그냥 불에 연기가 충천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앞으로도 뒤로도 못가고 흐지부지 된 거죠.
그래서 상대가 작아 보인다 할지라도 우리가 너무 만만하게 보지 말고 3천 명을 보내고 그리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돼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지만 하나님이 함께하니까 조금 보내자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거야.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돼. 이런 것도 여호수아에 나오는 교훈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는데 하나님께서 분명히 여호수아에게 싸워서 이기게 보장했지만 여호수아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싸워야 돼요.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싸울 때 하나님이 돕는 것이지, 우리가 가만있어 버리고 하나님 싸우세요. 그러고 우리가 있으면 안 된다는 거야.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싸우려고 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거야.
서양 사람들이 오랜 시간 생각하면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그런 속담이 있죠?
하려고 하는 사람을 도와주신다는 거예요. 뭐든지 그래.. 안 하려고 하면 다시 말하면 하나님도 도울 길이 없다는 거야. 이런 것들이 여호수아서 안에서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공부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청년들도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하나님 도와달라고 해야지 공부를 맨 농땡이 치고 뭐 그냥 땡땡이 치고 뺑소니치고 뭐 요령 피우고 그래 놓고 시험 때 가서 주여 하고 밤새도록 기도하고 그러면 하나님 도울 수가 없는 거요.
제가 신학교 때도 그런 사람이 있다니까. 평소 공부 안 해 그래 놓고 시험 다가오면 또 공부해야 될 텐데 기도실로 가.. 그러면 나중에 쌍권총을 차고 나타난다고..
그러면 안 된다는 거야. 최선을 다하면서 도와달라고 해야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거죠?
특히 우리 학생들 그러니까 믿음 좋다고 하면서 공부는 열심히 안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여기 말고 딴 데 우리 교회 말고.. 그런 것은 곤란해요
그것은 최선을 다하고 그리고 또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는 거죠. 무슨 일이든지 그렇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개인 전도를 하려고 하면 개인 전도를 열심히 하면서 전도의 능력과 은사를 달라고 해야지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서 능력 충만 평생해도 아무 능력도 못 받고 아무것도 못해요. 무슨 일이든지 마찬가지야.
제가 볼 때 제 경험으로 보면 성경을 공부하는 것도 어느 날 막 계시를 번뜩 줘 가지고 이게 보인 게 아닙니다. 그럴 수 없어요.
성경을 알고 싶어가지고 그냥 막 하여튼 생 몸부림을 다치고 밤잠을 안자고 그렇게 그저 보채니까.. 하나님께서 그것도 한꺼번에가 아니고 단계적으로 조금씩, 조금씩 열어 주셨어요.
저는 제가 지금 돌아보면 내 머리나 내 지혜를 가지고는 도무지 깨닫지 못하던 것이 더러 있었거든요. 도무지 그 안 되는 것.. 정말 참 하나님께서 어떤 그 열어 주셨으니까 내가 그런 것 봤지 싶은 것 많이 있는 거야. 지금도..
그런 것 정말 알고 싶어가지고 아니 그냥 뭐 나 혼자 알고 싶은 것 알고 믿으면 그만 인데 그 주일날은 설교를 해야 되죠? 주일마다 그 성경 강좌를 계속 사람들이 몰려오는데 애매해 가지고 희미해서 있으면 내가 괴로워서 못 견디는 거야.
그러니까 그 열리지 않고 있던 것들을 알아보려고 얼마나 몸부림을 치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단계적으로 하나씩 열어서 보여주시더라고..
그러니까 정말 요한계시록 그 어려운 책들이 보이고 에스겔서 같은 그런 책들이 보이고 여러분 그 보이니까 그때는 세상에 그런 희열이 없는 거라.
나는 가끔 염려되는 게 여러분들이 열심히 애를 쓰다가 이것을 알아야 이게 정말 귀한 것 같이 보이는데, 가만히 앉아 있으면 그저 밥 퍼다가 안겨 주고 하니까 이게 귀한 줄 아는가? 모르는가? 가끔 그런 생각이 나요.
우리는 정말 그렇게 그걸 알아보려고 그 애를 쓰다가 그 알았기 때문에 내게는 참 소중하고 귀중한 것들인데, 여기 보면 가만 앉아 있다가 그냥 뭐 교회 나온 지 1년도 안 돼서 싹 다 배워 가지고 그냥 저 사람들 저것 귀한 줄 아는지, 모르는지.. 그런 생각이 가끔 든다는 거야.
우리 모두가 2006년도도 최선을 다 했지만 그래도 돌아보면 또 소홀히 했던 것 등한히 했던 것들 있는데 2007년도에는 더 열심을 다해서 전심전력해서 우리 모두의 진보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와 함께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 길갈에서 하룻밤을 자고, 거기 기념비를 세우고 그리고 여리고 성 전투와 아이 성 전투 그리고 마침내 에발 산과 그리심 산에서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선포한 곳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그대로 했기 때문에 그는 항상 하나님 말씀 모세로부터 위탁 받은 그 말씀을 좇아서 가나안 땅 전쟁을 잘 치러냈습니다.
우리 중에 혹시라도 아간과 같은 그런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문제 때문에 큰일을 그르치는 그런 우를 범치 않게 하옵시고, 또 지극히 작은일 하나라도 최선을 다 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2006년도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사오니, 2007년 평양에서 큰 한국 교회 부흥의 바람이 불어왔던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우리 샤론 교회도 2007년도에 크게 성장하고, 발전하고, 성장되고, 성화되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크게 드러내는 하나님의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