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의 시점은 2015년입니다)
128. 유태파 두목 박신배
부산 동구 범일동 유태파 본부, 유태파 2대 두목인 박신배의 사무실.
나이 55세인 박신배가 자기 수하인 영도파 보스 배차돌을 만나 김해에 다녀온 보고를 받고 있다.
“쌍칼은 잘 있더냐?”
“예, 큰형님. 그 자식 피신해 숨어있으면서 조직 관리는 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신배의 질문에 장유파 행동대장 쌍칼을 만나고 온 배차돌이 확실하게 대답했다.
“그래? 생각보다는 똘똘한 모양이구나. 물건 더 달란 얘기는 없고?”
박신배는 장유파에서 혹시 필로폰을 더 달라고 할까 봐 걱정이다.
거래처인 장유파 두목 이무계가 마약 거래 혐의로 구속되어 있는데, 이럴 때는 돈벌이보다 한동안 숨죽이고 근신하는 게 상책이기 때문이다.
“예, 큰형님. 가지고 있던 거 다 압수돼서 팔 물건은 없지만, 지금은 돈이 없어서 사고 싶어도 못 산답니다. 큰형님한테 외상으로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며 아주 울상을 짓던데요.
배차돌이 들은 얘기와 조금 다르게 각색해서 보고한다.
“그 자식 한동안 고생 좀 하겠구먼. 식구가 한 30명은 되지?”
“예, 얼추 그 정도 됩니다. 업소 삥 뜯는 돈만 가지고는 먹고살기 어렵지 싶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큰형님···”
배차돌이 일부러 말꼬리를 흐렸다.
“왜? 무슨 말인데?”
“제가 가지고 있는 해로인이라도 좀 넘겨주고 필로폰 대신 팔라고 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헤로인을? 음.. 그러면 좋겠지만, 네가 괜찮겠나?”
“예, 큰형님! 고객리스트는 다행히 압수되지 않아서 계속 물건 달라는 연락이 오는 모양입니다. 저도 부산에서는 팔기 어려운데, 차라리 좀 싸게 받고 건네주면 싶어서요.”
이미 쌍칼에게 헤로인을 공급해 주기로 해놓고 딴 수작을 부린다.
“음, 그래. 그렇게라도 해줘라. 단디 조심하고!”
“예, 큰형님. 제가 큰형님 드릴 마진은 조금 붙여서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히히.”
잔머리 굴린 제 뜻대로 잘 풀려서 배차돌이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 알았다. 그러고, 그 서면파에서 부탁한 거는 말해줬나?”
“예, 그 두 놈이 서울 이글스파에서 배신하고 나온 놈들인 거 얘기해 주고, 서면파에서 큰형님한테 부탁해 온 거란 말도 해줬습니다.”
“쌍칼이 이글스파는 알고 있던가?”
“예, 그럼요. 이름만 듣고도 놀라더니, 해결사가 뭔지 알려주니까 금세 얼굴이 완전 사색이 되어서 버벅거리던데요. 킥킥.”
“그래? 쌍칼이 겁 좀 먹었나 보네. 지가 알아봐 주겠대?”
“예, 발 벗고 나서서 수색하겠답니다. 두 놈 사진도 전송해 줬습니다.”
“그래, 잘됐네. 아, 참. 서면파에서 다른 놈 몽타주 사진 한 장 더 보내왔다.”
“다른 놈 몽타주요?”
“응. 이놈이 그 해삼이란 해결사 놈들을 도피시킨 장본인 같단다. 쌍칼한테 보내주고, 함께 알아보라고 해라.”
박신배가 핸드폰에 저장된 문도의 몽타주 사진을 배차돌에게 보여줬다.
“예, 형님. 그런데 이놈은 오토바이 타고 다니나 보죠? 어떤 놈이랍니까?”
스포츠머리에 오토바이 가죽점퍼 차림의 몽타주 사진을 보고 배차돌이 물었다.
“응. 그 함안이 고향이라는 최 대린가 하는 놈 친구란다.”
“아, 그러면 이놈도 함안 근처에 있겠네요?”
“그럴지도 모르는데, 그 최 대리가 대학은 여기 서면에 있는 D대학 전자과를 다녔대. 대학교 친구인지도 모르니까, 서면파에서 자기들 나와바리인, D대학에 알아보고 있단다. 체격으로 봐서 체육과 출신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아, 예. 그렇군요. 그러면 이 자식은 부산에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 사진도 쌍칼한테 곧바로 보내주겠습니다.”
“그러고, 이무계 없는 동안 장유파는 네가 관리 잘하도록 해라. 이참에 언제고 김해 삼방파 깨부수고 김해 시내는 우리가 꽉 잡아야 될 거니까!”
박신배의 유태파는 부산 다른 조직이 넘보기 전에 김해 시내 유흥업소를 자기들이 접수할 계획을 오래전부터 세우고 있다.
“예, 큰형님! 헤로인 외상 주고 코 꿰어놓으면 장유파는 우리 맘대로 할 수 있을 겁니다. 언제고 삼방파하고 일전 벌이게 되면 우리 수족처럼 부려먹게 만들겠습니다.”
배차돌이 제가 헤로인 공급할 생각 잘했지요, 하며 으스댔다.
**
부산 역전 맞은편 대로변, 차이나타운 들어가는 입구 무지개문 옆에 있는 2층 ‘엔젤리너스’ 커피숍.
문도와 정훈이 조용한 구석 자리에서 밀담을 나누고 있다. 문도의 흥신소 ‘배달’ 부산지부인 ‘텍사스 바’는 이 차이나타운 입구에서 100m쯤 올라가면 우측 골목 안에 있다.
“장유파 애들 수사는 잘 진행되고 있는 거야?”
문도가 절친인 해경 마약단속반 반장 이정훈 경사에게 물었다.
정훈이 장유파 두목 이무계의 아지트를 급습하여 필로폰 20g을 찾아내고 그 들을 김해경찰서에 구속 입건했다.
“응. 어제 김해경찰서에서 창원지방검찰청으로 송치했대. 그런데 검찰에서 법원에 기소해도 형을 얼마 안 받을 것 같단다.”
박강철의 어방배달 사무실에서 장유파 중간보스 물소가 물건을 건네는 CCTV 녹화 영상까지 확보하여 김해경찰서에 물증으로 건네준 정훈이 좀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강철도 함께 불구속으로 입건했지만, 오히려 증인 역할을 해왔다.
“형을 얼마 안 받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필로폰도 압수되고 물건 건네는 동영상도 있잖아?”
문도가 이해할 수 없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응. 마약을 소지한 건 맞는데, 그걸 판매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얘기야.”
정훈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판매했다고 보기 어렵다니? 물소가 강철이 사무실로 담뱃갑에 든 물건하고 연락처 있는 전단지까지 갖다 줬잖아?”
“물소는 자기 보스가 시키는 심부름만 했다 하고, 이무계는 자기가 그 마약과 전단지가 든 봉지를 길에서 주웠다고 주장하고 있어. 당연히 전단지에 적힌 전화번호는 대포폰이라 아무 소용도 없고.”
“그러면 강철이한테 만나자는 전화는 왜 했고, 물건은 왜 전달했다는데?”
답답한 문도가 검사처럼 따지고 물었다.
“그걸 강변장어타운에서 주웠는데, 거기가 어방동이라서 어방배달 직원이 물건 배달하다가 흘린 건 줄 알고 그랬단다. 그 자식들 장유면에서 마약을 거래하면서 이럴 때를 대비한 각본이 있었던 것 같아.”
“하~ 참, 답답해 죽겠네! 아, 참! 글마들이 강철이한테 돈을 1천만 원이나 줬잖아? 주운 물건 주인 찾아주면서 돈을 왜 건네줘? 말이 안 되잖아?”
“그 돈은 어방배달 사장한테 보관증 받고 빌려준 거래. 박 사장이 직접 작성하고 사인해서 건네준 보관증이 있으니까, 검찰도 그놈들 말을 부정할 수 없게 됐어. 오히려 박 사장이 더 해명하기 어렵게 생겼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냐? 그러면 그놈들 재판에서 마약 소지죄로 징역은 얼마나 받게 되는데?”
“법대로면 마약 소지죄로 징역 1년 이상은 받을 건데, 자칫하면 무죄로 석방될지도 모른단다.”
“뭐야? 무죄 석방이라니?”
문도가 어이가 없어 입을 떡 벌리고 정훈을 노려봤다’
“검찰에서 법원에 제출할 공소장에는 이무계가 향정신성의약품을 판매해서 돈을 벌 목적으로 필로폰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적시해서 기소할 거야. 그런데, 판사가 볼 때 마약을 주워서 보관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그것을 판매해서 영리를 취할 목적이 있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거지. 그러면 무죄가 되어 석방될 거고, 이무계가 박 사장을 무고죄로 고소할 수도 있다는 말이지.”
설명하는 정훈도 한숨을 쉬었다.
“아이~ 씨! 뭐 그따위 법이 다 있어? 되레 강철이만 고소당하게 생겼다고?”
어이가 없는 문도가 탁자를 탁, 치자 커피가 쏟아졌다.
“아직 판결 난 건 아니야. 최악의 상황에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재판 결과는 더 지켜봐야 하고, 그동안에 뭔가 다른 확실한 증거를 찾으면 되는데 말이야.”
“다른 증거라니, 뭐가 더 있어?”
“그 장유파가 갖고 있은 구매자 리스트를 아직 찾지 못했잖아? 그것만 있으면 마약 판매가 고스란히 드러나니까 꼼짝없이 3년 이상은 징역 사는 건데!”
이무계의 아지트인 무계헌 건물을 깡그리 뒤지고도 그 구매자 리스트를 찾지 못한 정훈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 참! 그때 진주에서 이무계가 이정율파랑 만나는 장면을 삼봉이 핸드폰으로 찍어 둔 게 있잖아? 그거면 이무계가 마약을 구입했다는 증거가 되지 않을까? 이정율이도 불러서 왜 만났냐고 대질 심문하면 되지 않아?”
문도가 문득 생각나서 삼봉의 핸드폰 사진을 증거로 삼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하하,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냐? 야, 코모도! 길 가는 사람 둘이 만나면 다 잡아다가 왜 만났냐고 물어봐? 무슨 일제 강점기 시절에 독립투사 검거하는 왜놈 순사냐? 순진하기는! 크크.”
정훈이 열받은 문도가 안쓰럽고 귀여워서 쫑코를 주며 웃었다.
“그것도 소용없어? 하~이, 씨. 그럼, 뭐? 다른 거 뭐 더 찾아보라고?”
문도도 더 이상 방법이 없겠다 싶어서 포기하는 심정으로 해경 마약단속반 이 경사님을 바라봤다.
“그날 진주 이병율파한테서 마약을 다량으로 구입한 건 틀림없지 않아? 그 물건을 분명히 행동대장인 쌍칼이 몰래 빼돌렸을 거란 말이야. 지금 쌍칼은 아무 혐의가 없어서 지명수배할 수 없어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데, 그놈 뒤를 밟으면 분명히 그 물건과 마약 구매자 리스트를 찾을 수 있을 거야.”
정훈이 조심스럽게 문도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공권력이 나서서 쌍칼을 수배할 수는 없으니까, 문도가 부하들을 풀어서라도 쌍칼을 추적하면 좋겠다는 뜻이다.
만약 이무계가 재판에서 무죄로 석방이 되는 날이면 지금까지 그 들의 검거에 앞장서 온 해경 소속인 정훈의 입장도 매우 난처해진다.
“그래, 맞아! 그 자식들 분명히 마약은 거래하고 있을 거니까, 우리 애들 풀어서라도 쌍칼 그놈을 잡아야겠다. 마약은 둘째고 지난번에 두 번씩이나 칼 들고 우리한테 덤볐으니까, 꼭 잡아서 아주 작살을 내줘야겠다. 흐흐.”
문도도 김해중앙병원 주차장에서 자기한테 몰매를 가한 쌍칼을 반드시 잡아서 복수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해삼은 이제 다 나은 거냐? 그때 수로왕비릉에서 장유파 애들한테 엄청 심하게 맞은 것 같던데?”
이제는 공식적으로 문도네와 합류해서 움직일 수 없는 정훈이 장유파에게 구타당해 입원했던 해삼까지 들먹이며 문도의 전의를 북돋웠다.
“응, 지금은 어방동 숙소에서 가까운 ‘자성병원’에 다니면서 물리치료 받고 있어. 거의 완치되었다. 해삼이 맷집 하나는 좋은가 봐. 흐흐.”
문도가 이글스파를 배신하고, 자기한테 의탁해 온 해삼이 기특해서 미소를 지었다.
문도는 지금 이글스파에서 부산 서면파에 해삼과 멍게의 사진뿐만 아니라 문도 자기의 스포츠머리에 오토바이 가죽점퍼 입은 몽타주 사진도 내려보내 수배 중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다.
그 사이 문도의 머리는 좀 길어졌고, 옷도 지부장이라고 양복으로 바꿔 입고 다니기는 하지만.
“그래? 곧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겠네. 너네 지부에 직원은 전부 몇 명이나 되냐?” 정훈은 아직 문도의 직장에 대해 자세하게 물어보지는 않았다.
남의 뒤나 캐는, 별로 떳떳하지 않은 흥신소 일에 종사한다는 정훈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이다.
“응, 해삼하고 나까지 전부 열 명밖에 안 돼. 왜? 쌍칼 뒷조사하다가 우리가 당할까 봐?”
“응, 솔직히 그렇다. 장유파는 30명이나 된다며?”
“그래, 그렇기는 하다. 세 배나 되는데, 지리도 서툰 장유면에 들어가서 기웃거리다가 얻어터지기 십상이네. 흐흐. 그래도 김해 근처에서는 걱정할 거 하나도 없다. 대원이 25명이나 되는 김해 삼방파 두목님이 우리 고모 덕혜고아원 출신 성덕이 형이잖아? 큭큭.”
문도가 든든한 배경을 노출하며 킥킥거렸다.
장유파 따위는 마음먹기에 따라 선제공격으로 박살을 내줄 수도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