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 君子所貴乎道者三 動容貌 斯遠暴慢矣 正顔色 斯近信矣 出辭氣 斯遠鄙倍矣 籩豆之事 則有司存 군자(君子)가 귀중히 여기는 도(道)가 세 가지가 있으니, 몸을 움직임에는 사납고 거만함을 멀리하고, 얼굴빛을 바르게 함에는 믿음을 가까이 하며, 말을 함에는 비루하고 어긋남을 멀리 해야 할 것이니, 제기를 진설함의 일은 담당자가 따로 있으니, 군자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貴猶重也 容貌擧一身而言 暴粗厲也 慢放肆也 信實也 正顔色而近信 則非色莊也 辭言語 氣聲氣也 鄙凡陋也 倍與背同 謂背理也 籩竹豆 豆木豆 言道雖無所不在 然君子所重者 在此三事而已 是皆修身之要 爲政之本 學者所當操存省察 而不可有造次顚沛之違者也 若夫籩豆之事 器數之末 道之全體 固無不該 然其分則有司之守 而非君子之所重矣 貴는 중하게 여기는 것과 같다. 용모란 몸 전체를 들어 말한 것이다. 暴(포)란 거칠고 사납게 하는 것이고, 慢이란 방자하고 제멋대로 하는 것이다. 信은 성실한 것이다. 안색을 바르게 하여 신의에 가깝게 한다면, 안색만 장엄한 것이 아니다. 辭는 말이고, 氣는 말소리의 기운이다. 鄙는 비루한 것이다. 倍는 背와 같아서 이치에 어긋남을 말한 것이다. 籩은 대나무 祭器고, 豆는 나무 祭器다. 도가 비록 있지 않는 곳이 없을지라도 그러나 군자가 중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이 세 가지 일에 있을 따름임을 말한 것이다. 이는 모두 수신의 요체이자 위정의 근본이니, 배우는 자가 마땅히 붙잡고 보존하며 성찰해야 하는 것으로서 넘어지고 급박하며 유랑하는 때라도 결코 떨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만약 저 변두의 일이라면 제사상에 올리는 그릇 숫자 같은 말단의 일이니, 도의 온전한 본체가 진실로 포괄하지 않는 바가 없지만, 그러나 그러한 직분은 유사가 지켜야 할 것이지, 군자가 중하게 여기는 바가 아닌 것이다. 朱子曰 暴剛者之過 慢柔者之過 人之容貌 少得和平 不暴則慢 如人狠戾 固是暴 稍不溫恭亦是暴 倨肆固是慢 稍怠緩亦是慢 주자가 말하길, “사나움은 굳센 것의 지나침이고, 게으름은 부드러운 것의 지나침이다. 사람의 용모는 화평할 때가 적으니, 사납지 않으면 게으른 법이다. 마치 사람이 대단히 사나움은 본래 暴이지만, 조금이라도 온화하지 않거나 공손하지 않은 것도 역시 暴이고, 거만하고 방자한 것이 본래 慢이지만, 조금이라도 태만하고 느슨해지는 것도 역시 慢인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正顔色 亦著力不得 須是裏面正後顔色自正 正其顔色則近於信 表裏如一 正顔色而不近信 却是色莊 多見人顔色自恁地 而中不恁地者 如色厲而內荏 色取仁而行違 皆外面有許多模樣 所存却不然 便是與信遠了 只將不好底對看便見 近字是對上遠字說 주자가 말하길, “안색을 바르게 하는 것은 또한 억지로 힘을 쓸 수 없는 것이니, 반드시 내면을 바르게 한 후에 안색이 저절로 바르게 되는 것이다. 그 안색을 바르게 한다면, 信에 가까우며 겉과 속이 하나가 될 것이다. 안색을 바르게 하고도 信에 가깝지 않다면, 도리어 얼굴색만 장엄한 것이니, 사람들 중에는 안색은 스스로 이와 같이 하면서도 그 속은 이와 같지 않은 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예컨대 안색은 엄숙하면서도 속으로는 무르거나 안색은 仁을 취했으면서도 행동은 이를 어기는 것처럼 모두 밖으로는 수많은 모습을 갖고 있지만, 안으로 보존하고 있는 바는 오히려 그렇지 못한 것이니, 곧 바로 信과 더불어 멀어진 것이다. 그저 장차 좋지 않은 것과 대조해서 보기만 해도, 곧바로 近자는 위의 遠자와 대조하여 말한 것임을 알 수 있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顔色以見於面者言 신안진씨가 말하길, “안색이란 얼굴에 드러난 것으로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今人議論 有雖無甚差錯只是淺陋者 此是鄙 又有說得甚高而實背於理者 此是倍 주자가 말하길, “지금 사람들이 의논함에 있어, 비록 무슨 어긋남이나 잘못은 없지만 그저 천박하고 비루한 것만 있으면, 이것이 바로 鄙다. 또한 말하는 것은 대단히 높지만 실제로는 이치에 어긋남이 있으면, 이것은 倍다.”라고 하였다. 斯字來得甚緊 斯遠暴慢 猶云便遠暴慢 正顔色 便須近信 斯자는 대단히 긴요하게 끌어온 것이다. ‘斯遠暴慢’은 곧 暴와 慢을 멀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 안색을 바르게 함에는 곧 반드시 信에 가깝도록 해야 한다. 動出都說自然 惟正字却似方整頓底意思 蓋緣顔色亦有假做恁地而內實不然者 若容貌之動辭氣之出 則容僞不得 動과 出은 모두 저절로 그러함을 말한 것인데, 오직 正자만이 도리어 바야흐로 정돈한다는 뜻과 비슷하니, 대체로 안색에는 또한 거짓으로 이렇게 하면서도 안으로는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용모를 움직이고 辭氣를 내놓는 경우라면, 거짓이 용납될 수가 없다. 新安陳氏曰 三禮圖說 籩盛棗栗脩脯糗餌之屬 豆盛菹醢之屬 신안진씨가 말하길, 삼례도설에 籩은 대추와 밤, 육포와 볶은 쌀 같은 것들을 담고, 豆는 절인 채소나 젓 담은 고기 등속을 담는다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此語甚闊 籩豆器物皆包在內 신안진씨가 말하길, “이 말은 범위가 대단히 넓어서, 변두나 기물을 모두 그 안에 포괄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和靖尹氏曰 曾子所謂容貌 乃睟然見於面者 出辭氣 如修辭立其誠 有德必有言 是也 暴慢鄙倍 非謂人也 謂己所有爾 故曰遠 화정윤씨가 말하길, “증자가 말한 소위 용모라는 것은 곧 맑고 밝게 얼굴에 드러나는 것이고, 辭氣를 내놓는다는 것은 마치 말을 닦아서 그 정성을 세우는 것과 같으니, 덕이 있으면 반드시 말이 있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사납고 게으르고 비루하고 어긋난다는 것은 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말할 따름이니, 그렇기 때문에 멀리한다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君子所貴乎道者三 是指夫道之所以可貴者爲說 故云道之所以可貴者有三事焉 故下數其所謂可貴之實且看 世上人雖有動容貌者 而便辟足恭 不能遠暴慢 雖有正顔色者 而色取仁而行違 多是虛僞 不能近信 雖有出辭氣者 而巧言飾辭 不能遠鄙倍 這便未見道之所以可貴矣 道之所以可貴者 惟是動容貌自然便會遠暴慢 正顔色自然便會近於信 出辭氣自然便會遠鄙倍 此所以貴乎道者 此也 주자가 말하길, “군자가 도에서 귀하게 여겨야 할 것이 셋이라는 말은 무릇 도 안에서 귀하여 여길만한 것을 가리켜서 말한 것인데, 그렇기 때문에 도에서 귀하게 여길만한 것으로서 세 가지 일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따라서 아래에서는 이른바 귀하게 여길만한 그 실질을 세어서 살펴본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비록 용모를 움직이는 자가 있더라도 편벽하거나 너무 공손하므로 사납거나 게으름을 멀리할 수 없고, 비록 안색을 바르게 하는 자가 있더라도 겉으로는 仁을 취하되 그 실행은 어긋나므로, 대부분 허위가 되어 信에 가까이 갈 수가 없는 것이며, 비록 辭氣를 내놓은 자가 있더라도 교묘한 말로 꾸미므로, 비루함과 어긋남을 멀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곧 도에서 귀하게 여길만한 것을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에서 귀하게 여길만한 것이란, 오직 용모를 움직이면 자연스럽게 곧 사납고 게으름을 멀리할 줄 아는 것이고, 안색을 바르게 하면 자연스럽게 곧 信에 가까워질 줄 아는 것이며, 辭氣를 내놓으면 자연스럽게 곧 비루함과 도에 어긋남에서 멀어질 줄 아는 것이다. 여기서 도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이 바로 이것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以道言之 固不可謂 此爲道此爲不道 然其本在此 則其末在彼 所貴在此則其賤在彼矣 籩豆之事 非是說 置之度外不用理會 只去理會動容貌三者 蓋此三者 却是自家緊要合做底 籩豆是付有司管底 其事爲輕耳 今人於制度文爲一一致察 未爲不是 然於己身都不照管 於大體上欠闕 則是棄本而求末者也 籩豆之事 亦道之所寓 但非在所當先而可貴耳 道로써 말하자면, 본래부터 이것은 도가 되고 이것은 도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근본이 여기에 있다면 그 말단은 저기에 있는 것이고, 귀하게 여기는 바가 여기에 있다면 그 천한 것은 저기에 있는 것이다. 籩豆의 일은 그것을 도외시하고서 이해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가서 용모를 움직이는 등 3가지 것을 이해해야 하는데, 대체로 이 3가지가 도리어 스스로 긴요하게 마땅히 해야 할 것이고, 변두의 일은 담당자에게 주어서 관리하게 할 것으로서 그 일은 가벼울 뿐이다. 지금 사람들은 제도와 문물에 대하여 하나하나 지극히 살피는데, 이는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전부 돌보지 않아서 大體 위에 흠결이 생긴다면, 이는 근본을 버리고 그 말단을 구하는 짓이다. 변두의 일 또한 道가 깃들어 있는 바이기는 하지만, 다만 마땅히 우선하고 귀하게 여겨야 할 바가 있는 것은 아닐 따름이다. 問集註舊以三者爲修身之驗爲政之本 非其平日莊敬誠實存省之功積之有素 則不能也 專是做效驗說 如是則動正出三字只是閑字 改本以驗爲要 非其以下改爲 學者所當操存省察而不可有造次頃刻之違者也 如此則工夫却在動正出三字上 某疑正字尙可說做工夫 動字出字豈可以爲工夫耶 曰 這三字雖不是做工夫底字 然便是做工夫處 作效驗似有病 故改之 若專以爲平日莊敬持養 方能如此 則不成 未莊敬持養底人 便不要遠暴慢近信遠鄙倍也 누군가 묻기를, “집주에서는 옛날에 세 가지를 ‘수신의 효험이자 위정의 근본이니 그가 평소에 莊敬하고 誠實하며 存省하는 공을 쌓아서 소양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여겼으니, 오로지 효험으로 해석하여 말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다면 動正出 이 3글자는 그저 한가한 글자일 따름입니다. 개정본에서는 수신의 ‘효험’을 수신의 ‘요체’로 고치고, ‘非其’ 이하를 ‘배우는 자가 마땅히 붙잡아 보존하고 성찰해야 하되 엎어지고 넘어지는 다급한 상황이라도 잠시라도 떨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바꾸었습니다. 이와 같이 한다면, 공부는 오직 動正出 3글자 위에만 있는 것입니다. 저는 正자는 그래도 공부를 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動자나 出자는 어찌 공부를 한다고 여길 수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이 세 글자는 비록 공부를 하는 글자가 아니지만, 그러나 설령 공부를 하는 부분이 있다손 치더라도, 효험으로 해석하면 병통이 있는 듯 하기 때문에 이를 바꾼 것이다. 만약 오로지 평소에 장엄하고 공경함으로 몸을 붙잡아 길러야만 비로소 이와 같이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는 말이 되지 않는다. 아직 莊敬으로 持養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곧바로 暴慢을 멀리하고 信을 가까이 하며 鄙倍를 멀리하면 안 되는가?”라고 하였다. 此章之指 蓋言日用之間 精粗本末 無非道者 而君子於其間所貴者 在此三事而已 然此三者 皆其平日涵養工夫至到之驗 而所以正身及物之本也 故君子貴之 若夫籩豆之事 則道雖不外乎此 然其本則有司之守而非君子之所有事矣 蓋平日涵養工夫不至 則動容貌 不免暴慢 正顔色 不出誠實 出詞氣不免鄙倍矣 一身且不能治 雖欲區區於禮文度數之末 是何足以爲治哉 此乃聖門學問 成己成物 著實效驗 故曾子將死醇醇言之 非如異端揚眉瞬目妄作空言之比也 이 장의 취지는 대체로 일상생활 중의 정밀하고 거친 것과 근본이나 말단인 것 중에 도가 아닌 것이 없지만, 군자가 그 사이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은 이 3가지 일에 있을 따름임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 3가지 것은 모두 그 평소에 함양하는 공부가 일정 수준에 이르렀다는 징험이자 제 몸을 바르게 하여 남에게 미치는 근본인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이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만약 저 籩豆의 일이라면, 도가 비록 여기에서 벗어나지는 않지만, 그러나 그 근본은 담당자가 지켜야 할 것이니, 군자가 일삼아 가져야 할 바가 아닌 것이다. 대체로 평소에 함양하는 공부가 일정 수준에 이르지 않았다면, 용모를 움직이면 사납거나 게으름을 면하지 못할 것이고, 안색을 바르게 하여도 성실함을 현출하지 못할 것이며, 말의 기운을 내놓더라도 비루함과 도에 어긋남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제 한 몸도 또한 잘 다스릴 수 없는데, 비록 禮文과 度數의 말단에 구구히 하고자 할지라도, 이 어찌 충분히 잘 다스려질 수 있겠는가? 이것이 마침내 聖門의 학문이니, 자신을 이루고 남을 이루어주어서 그 효험을 착실히 하기 때문에, 증자는 장차 죽으려 할 적에 순수하게 이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니 이단이 눈썹을 올리고 눈을 깜짝거리며 함부로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에 비하는 것과 같지 않은 것이다. 汪氏曰 集註合操存省察爲說 乃朱子欲爲學者計 故以學者二字提出 所謂其分則有司之守 如樂記曰 鋪筵席陳尊俎列籩豆以升降爲禮者 禮之末節也 故有司掌之 又如周禮有籩人 皆有司也 왕씨가 말하길, “집주에서는 操存과 省察을 합하여 말하였는데, 이는 곧 주자가 배우는 자를 위하여 계획하고자 한 것이기 때문에, 學者라는 두 글자로 제시하여 내놓은 것이다. 이른바 ‘그 직분이라면 유사에게 맡긴다’는 말은 예컨대 樂記에서 말하는 ‘筵席을 펴고 술잔과 제기를 펼치며 籩豆를 나열하여 그 올리고 내리는 것으로 禮를 삼는 것은 禮의 말단인 것이니, 이 때문에 유사가 이를 관장하는 것이다.’라는 것과 같다. 또한 周禮에 籩人이 있다고 한 것과 같은 것이니, 모두 담당자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所貴乎道 不求之高處 而在乎容色辭氣之間 可謂切實矣 操存卽平日涵養於靜時者 省察卽目前致察於動時者 如動容貌 便省察其斯遠暴慢矣 可也 下二節倣此 內外交盡動靜兼該 工夫周密 始無欠闕 又此必因敬子之失而告之 其爲人得非忽略於修身之本 而煩瑣於名物器數之末者乎 신안진씨가 말하길, “道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은 高遠한 부분을 추구하지 않고 오히려 용모와 안색, 그리고 말하는 기운 사이에 있으니, 가히 절실하고 실제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操存이란 곧 평소에 고요할 때에 함양하는 것이고, 省察이란 지금 당장 움직일 때에 잘 살피는 것이니, 마치 용모를 움직이는 경우라면, 곧 ‘暴과 慢을 멀리 하는지’ 성찰해야만 비로소 옳은 것이다. 아래 두 절도 이와 같다. 內外를 서로 다하고, 動靜을 겸해서 갖추어서 공부를 두루 면밀하게 행한다면, 비로소 부족하거나 모자람이 없는 것이다. 또한 이는 반드시 맹경자의 잘못으로 인해 그에게 알려준 것일 터이니, 그 사람됨은 수신의 근본에는 소홀히 하면서 사물의 이름과 기물의 숫자의 말단에는 자잘하게 따지는 사람이 아닐 수 있겠는가? |
4 | 程子曰 動容貌 擧一身而言也 周旋中禮 暴慢斯遠矣 正顔色 則不妄 斯近信矣 出辭氣 正由中出 斯遠鄙倍 三者 正身而不外求 故曰 籩豆之事則有司存 尹氏曰 養於中 則見於外 曾子蓋以修己 爲爲政之本 若乃器用事物之細 則有司存焉 정자가 말하길, “용모를 움직인다는 것은 몸 전체를 들어서 말한 것이다. 주선이 禮에 맞으면 이에 사나움과 게으름이 멀어진다. 안색을 바르게 하면 망령됨이 없으니 곧 신의에 가깝게 된다. 말을 할 적에 올바름이 마음으로부터 나오면 비루함과 도리에 어긋남이 멀어질 것이다. 이 세 가지는 몸을 바르게 하는 것이로되 밖에서 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말하길, 籩豆와 같이 사소한 일은 담당자가 따로 있다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윤씨가 말하길, “마음속에서 기르면 겉으로 드러나는 법이다. 증자는 대개 자신을 수양하는 것으로 위정의 근본을 삼았으니, 오히려 그릇을 마련하는 일이나 사물의 세세한 것이라면 따로 담당자가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勉齋黃氏曰 曾子之意 則但欲其在外之無不正 而集註之意 則以爲未有不正其內而能正其外者也 況夫暴慢也信也鄙倍也 皆心術之所形見者也 不正其內 安能使其外之無不正乎 有諸中 必形諸外 制於外必養其中 則心可正理 可明敬 可存誠 可固修身之要 孰有急於此者乎 此曾子將死之善言 不獨可爲孟敬子之師法而已 면재황씨가 말하길, “증자의 뜻은 곧 단지 그 밖에 있는 것이 바르지 않음이 없도록 하는 것이었지만, 집주의 뜻은 그 안을 바르게 하지 않고서도 그 밖을 능히 바르게 할 수 있는 자는 일찍이 없었다고 여긴 것이었다. 하물며 저 暴慢이고 信이고 鄙倍라는 것도 모두 心術이 형체화 되어 드러난 것임에랴! 그 안을 바르게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밖이 바르지 않음이 없도록 할 수 있겠는가? 마음속에 그것을 갖고 있다면 반드시 그 모습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고, 밖에서 절제하려면 반드시 그 안을 길러야만 하는 것이니, 이렇다면 마음은 이치를 바르게 할 수 있고, 敬을 밝힐 수 있으며, 정성을 보존할 수 있고, 수신의 요체를 단단히 할 수 있으니, 어찌 이것보다 급한 것이 있겠는가? 이는 증자가 장차 죽으려 할 적의 선한 말이니, 단지 맹경자만을 위한 師法일 따름은 아닐 것이다.”라고 하였다. 胡氏曰 曾子之疾 見於語者二 見於檀弓者一 此章最先 前章次之 易簀最後 又曰 曾子是時 其息奄奄 性命僅存 須臾而聲 律身度心 與理一 乃如此 釋氏坐忘幻語 不誠不敬 豈能倣其萬一哉 호씨가 말하길, “증자의 병은 논어에 보인 것이 둘이고, 예기 단궁에 보인 것이 하나인데, 이 장이 제일 먼저고, 앞 장이 그 다음이며, 댓자리를 바꾼다는 것이 제일 나중이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길, “증자는 이 때에 그 숨이 꼴딱꼴딱하여 목숨이 겨우 부지되고 있었지만, 아주 잠깐이나마 한소리 하였는데, 제 몸을 규율하고 마음을 헤아림이 이치와 더불어 하나임이 오히려 이와 같았다. 석씨가앉아서 세상 일을 잊어버리고, 허깨비 같은 말을 함은 정성스럽지도 않고 공경하지 않으니, 어찌 만에 하나라도 그것을 본받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