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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론 56
마태복음 9:35-38
추수할 일꾼
예수님께서 맹인들의 눈을 뜨게 하신 것과 말 못 하는 사람을 고쳐주신 것은 병고침 이적 자체가 중요한 의미가 아니라 보지 못하는 자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알아보게 하신 것과 말하게 하신 것으로 진짜 본다는 것이 육적인 문제가 아니라 진리에 대한 문제임을 나타내셨다. 그러므로 눈으로 성경을 지식적으로 보고 그 내용을 줄줄이 읊어대는 것이 아니라 알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으며 말할 수도 없던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진리로 볼 수 있게 되었고 그 진리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맹인과 같은 종교지도자들의 가르침 아래에서 맹인이 되어 따라가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면서 복음을 드러내신 것이 본문이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35절). 가르치시는 것,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는 것, 모든 병 고치시는 것,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는 것이 각각 다 다른 것이 아니라 가르치시는 것, 병 고치시는 것,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는 것들은 천국 복음을 드러내시는 수단이라는 뜻이다. 즉 가르치시고 질병과 약한 것을 고치시는 것을 통해 천국 복음을 전파하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36절 이하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것도 천국 복음을 선포하시는 말씀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36절).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구약 성경에서 제시하는 배경들을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고자 하였을 때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나아가 이렇게 말하였다(참고 대상 11:2-3).
2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삼하 5:2-3)
히브리어로는 “이스라엘의 목자”라고 명사로 되어 있지 않고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양을 치듯) 치며”라는 동사로 표현하고 있다. 즉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주기를 청하면서 목자의 이미지로 표현하였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을 치는 자와 주권자를 왕과 같은 의미로 말씀하였다는 것이다(참고 시 80:1).
그러나 실제 이러한 표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야곱이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창 48:15-16)라고 한 말에서 “나를 기르신 하나님”이란 표현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나를 (양 치듯) 치신 하나님” 혹은 “먹이신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야곱은 삼촌 라반의 집에서 가나안 땅으로 그리고 여기 애굽에 이르기까지 인도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목자라는 비유로 사용하였다. 즉 성경에서 목자의 이미지는 왕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표현하는 용어였고(참고 시편 23:1)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 민족 전체는 여호와 하나님의 양 떼로 비유하고 있다. 그래서 시편 기록자도 출애굽 사건을 말하면서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양 떼를 인도하여 내신 것으로 묘사하였고 민수기에서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대신할 이스라엘의 인도자를 목자로 표현하면서 여호수아를 세우라고 하셨다.
51 애굽에서 모든 장자 곧 함의 장막에 있는 그들의 기력의 처음 것을 치셨으나 52 그가 자기 백성은 양 같이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양 떼 같이 지도하셨도다(시 78:51-52)
16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하건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17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19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20 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민 27:16-20)
이상과 같은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목자로 드러내시면서 사람에게 보이는 인간 목자를 이스라엘의 인도자, 주권자, 왕으로 세워 하나님의 목자 되심을 나타내신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 위에 목자로 세워진 지도자들은 양들에게 군림하며 포악으로 다스렸다. 하나님의 언약을 무시하였기에 하나님의 목자 되심을 인정하지 않았고 야훼 하나님을 드러내는 제사장 나라로서 전적으로 실패하였기에 목자 없는 양 떼의 상태가 되었다고 그들의 죄악상을 선지자들은 철저히 폭로하였다(참고 왕상 22:17, 대하 18:16).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3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4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 주지 아니하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포악으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5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고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겔 34:1-5)
드라빔들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는 진실하지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한즉 그 위로가 헛되므로 백성들이 양 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나니(슥 10:2)
이스라엘에 목자요 왕이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목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이스라엘의 문제였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표현이 사사기에서 “왕이 없으므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라는 것이었다(삿 17:6, 18:1, 19:1, 21:25). 이는 단순히 이스라엘의 문제만 아니라 죄 아래 있는 모든 죄인의 상태를 말씀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이렇게 버려두시지 않고 참된 목자를 보내실 것을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약속으로 주셨다(렘 23:1-6). 에스겔 선지자도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다.
23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24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겔 34:23-24)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언약을 담아 놓으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언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마태는 처음부터 다윗의 자손으로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하였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동방 박사들이 경배하기 위해 헤롯 궁에서 왕을 찾으니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헤롯 왕에게 성경을 찾아서 이렇게 말했다.
5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마 2:5-6)
이는 미가 5:2 말씀의 인용이었다. 마태가 이 말씀을 인용하여 성취되었다고 선언한 것에는 예수님의 오심이 단순히 구원자로서 오신 정도가 아니라 이스라엘 중에 지도자를 목자로 세웠고 양 떼를 잘 다스려 여호와 하나님의 목자 되심을 드러내도록 하였으나 그 일에 실패한 것에 대한 고발을 담고서 예수님께서 왕이요 목자로 오셨다는 것을 선언한 것이다. 실로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은 목자 없는 양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친히 은혜를 베풀기 위해 오신 것이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1)
목자로 오신 예수님께서 하실 일은 자기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일이었기에 십자가를 스스로 취하신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일은 언약을 성취하는 일이었기에 자기 백성을 온전히 구원하신 일이 되었다. 이 일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신 것에 기인한다.
“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37-38절). 목자 없는 양이란 잃어버림을 당한 상태에 있는 양이라는 말이다. 즉 선악과로 말미암아 자기 나라를 세우고 거기서 스스로 목자 노릇을 하며 목자인척하며 살았던 자가 잃어버림을 당한 양이고 목자 없는 양이었다.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이 아니라면 결코 참된 목자의 품에 돌아올 수 없는 자였다. 그렇다면 결국 추수하는 일꾼이란 우리가 스스로 추수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없다는 뜻이 담겨 있는 말씀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추수꾼이 되어 추수하신다. 추수할 때란 세상의 끝이다(마 13:39). 그러므로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좇아 온전히 추수하실 수 있는 추수꾼은 예수 그리스도뿐이고 그분이 추수하신다는 것은 세상의 끝이라는 뜻이다.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계 7:17)
20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21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히 13:20-21)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벧전 2:25)
주님의 불쌍히 여기심에 의해 목자의 품에 안길 수 있게 되었음을 아는 자가 선한 목자의 부르심을 받은 양이며 성도이다. 교회란 잃어버림의 상태에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아는 자들이다. 여기서 잃어버림이란 죽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것이다(롬 4:17). 그러므로 성도는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죽는 죽음 안에서 하늘의 생명을 확인하게 된다(20260719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