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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의 웅담, 다슬기 그 푸르고 건강한 맛에 빠져볼까요? ~ 거제에서는 논에서 서식하는 것은 논고동, 물에서 서식하는 것은 물고동이라함.~
“이래 쪼맨한 거 뭐 먹을 게 있다고 잡아 먹노?” “모르는 소리 하지 마라. ‘물속의 웅담’ 아이가. 보물이다, 보물.” ‘몸에 좋다면 못 먹을 것이 없는 사람’ 취급 받으며 다슬기잡이 수경에서 눈을 못 떼는 사람들. 그 속에 필자도 포함됐다. 피서로 나선 물놀이 중에 ‘한 번 해보자’로 시작한 다슬기 잡기. 자잘한 수확물에 여기저기 웃음보가 터지고, 여름햇살이 부딪치는 덕천강물은 그 어느 때보다 생동감이 넘친다. “욕심내지 말고, 옛날 생각하면서 재미로 하세.” 웃음 속에는 매사 꼼꼼한 친구의 안전에 대한 당부도 섞인다. 물속 돌 색과 비슷해서 수경을 통해 유심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다슬기. 그 위장술에도 제 몸체가 투명하게 드러날 만큼 깨끗한 1급수에만 사는 까다로운 녀석이다. 다 자라봐야 25mm 정도. 5~6월 산란기에 잡은 것이 가장 맛있다고 한다. 낙동강 언저리 외가에서 여름방학을 자주 보냈던 필자는 물놀이 삼아 즐기던 다슬기 잡기의 매력은 알지만, 다슬기 맛은 잘 몰랐다. 다슬기탕의 푸르스름한 색깔이 참 이쁘다 생각했을 뿐, 맛이 좋다는 생각은 못했다. 다슬기 맛은 적당히 나이 들어야 알게 되는 것 아닐까.
여행이 지금처럼 쉽지 않았던 7080세대 중에는 다슬기에 대한 기억이 유명 관광지나 유원지 나들이의 중심에 있는 경우도 있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라 했던가! 눈으로 본 구경보다 입으로 본 기억이 더 선명한 경우가 있다. 추억의 다슬기가 바로 그렇다. 번데기와 함께 길거리 음식으로 유명한 다슬기는 고깔모양으로 말은 신문지에 담겨 팔렸다. 눈요기에 지치면 벤치에 걸터앉아 이쑤시개로 알맹이를 빼먹었다. 쌉쌀한 맛에 이쑤시개나 입으로 알맹이 빼먹는 재미까지 한 맛 더했던 그때 그 시절 얘기다. 경남 하동군에 다슬기 음식 명인이 있다. 홈쇼핑에서는 완판(매진) 쇼호스트로 이름을 날리는 ㈜정옥의 박정옥(64) 씨다. 박 씨에게 다슬기탕은 ‘아버지의 여름 해장국’이었다. 한여름 무더위에도 뜨끈한 다슬기국을 ‘시언허다’며 맛있게 드시던 아버지를 위해 사각 수경을 들고 강가로 냇가로 뛰어다녔다. 짐작했겠지만 ㈜정옥(대표 추호진)은 그녀의 이름을 사명으로 삼은 로컬푸드 가공업체이다. 2008년 귀농한 아들이 대표이사를 맡았다. 추 대표는 엄마의 이름을 걸고 하동에서 나는 농수산물로 음식을 만들어 판다. 물론 식재료 선정과 조리법은 엄마손 정옥 씨 방식을 따랐다.
고디, 올뱅이, 대시리 등 지역마다 다른 이름 “경남에서는 맑게 끓여서 부추를 띄워 훌훌 마시듯 먹습니다. 제 고향인 구례를 포함한 전라도에서는 얼갈이배추를 함께 삶아서 된장을 풀어 간을 맞춥니다. 다슬기된장국이 되는 셈이지요. 경상도에서는 고디, 전라도에서는 대시리, 충청도에서는 올뱅이, 올갱이 등 지역마다 다슬기를 가리키는 이름이 다르듯이 먹는 방법도 다양하지요. 경상도식 맑은 탕은 수제비나 국수 등을 써서 단품 메뉴로 먹기 좋은 장점이 있어요.” 박정옥 씨는 “다슬기는 어떻게 먹어도 보약”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정옥은 깐 다슬기뿐만 아니라 다슬기국, 다슬기얼갈이해장국, 다슬기죽 등 메뉴를 출시, 4년간 50여 회 방송 판매를 통해 다슬기를 하동의 음식으로 전국에 알렸다. 다슬기얼갈이해장국은 ㈜정옥의 인기상품이다. 얼갈이배추로 시원한 맛을 더했다. 진액, 기름, 환, 육수 등 다양한 가공품도 판매하고 있다.
초록색의 비밀, 흡수율 높은 엽록소 다슬기는 껍데기나 생살 모두 진한 갈색을 띤다. 폐디스토마 감염 우려가 있으므로 날것으로 먹을 수는 없다. 삶아 뚜껑을 떼고 살을 껍데기에서 빼내 먹는다. 삶으면 다슬기는 맑은 청록색을 띤다. 엽록소 때문인데, 식물처럼 광합성을 하는 것은 아니고, 다슬기의 먹이인 수초와 이끼류 때문이다. 식물 엽록소는 체내 흡수율이 낮지만 다슬기의 엽록소 흡수율은 높다. 엽록소의 클로로필 성분이 해독 작용과 항염 작용, 세포재생, 면역력 향상과 항산화 작용 등 인체에 유익한 작용을 한다. 특히 독성을 배출하는 기능이 탁월해 간에 좋은 음식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다슬기 살의 탱탱한 식감은 막 삶아냈을 때보다 차게 식혔을 때 더하다. 쫄깃하게 씹히는 맛 때문에 회무침으로도 먹는다. 뜨거운 국물에서도 쫄깃한 식감을 즐기려면 밀가루를 한 번 입혀서 끓이면 된다. 가끔 모래 씹는 듯한 서걱서걱함이 있는데, 껍데기째 산란하는 특성 때문에 다슬기 몸속에 알이 있을 경우 그렇다고 한다. 영양가를 생각하면 참을 만하다. 사실 다슬기의 참맛은 진하게 우려낸 육수에 있다. 푸르스름하게 우러난 국물은 쌉싸름한 향과 속이 후련해지는 시원한 맛을 낸다. 살짝 소금간한 맑은 국물에 송송 썬 부추와 홍고추를 고명으로 얹기만 해도 훌륭한 일품요리가 된다. 다슬기 육수는 수제비 한 그릇도 특별한 요리로 만든다. 분식 애호가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값싸고 맛있는 일명 보양수제비이다. 다슬기 육수의 맑은 색과 담백한 맛은 수제비를 포함해 모든 국물요리에 사용할 수 있다. 진한 향과 매운 맛을 찾는 경우가 아니라면 웬만한 국물요리에는 다 어울린다. 하동읍의 다슬기음식 전문점 ‘가릉’에서 선보이는 ‘다슬기백숙’이 딱 그랬다. 푸르스름한 국물에 초록색 다슬기를 고명으로 얹은 백숙은 보약에 보약을 더한 보양식의 으뜸이다. 가릉의 주인장 최성옥(57) 씨는 “고기보다 국물을 많이 드시라”고 권했다. 백숙 국물을 한 국자 들이켜면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힌다. 한여름 아무리 뜨거운 음식을 먹어도 땀 한 방울 나지 않는 특수 체질이라고 큰소리치던 손님도 손부채질을 하며 놀라는 눈치다. “독소를 배출하고 순환을 빨리 시키나 봐요. 그래서 간에 좋다고 하겠지요.” 최 씨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주)정옥(www.agyang.co.kr) 하동군 양보면 진양로 1094 ☎ 1688-0886 다슬기재첩전문점 가릉 하동군 하동읍 중앙로 120 ☎ 055)884-8292
글 황숙경 기자 사진 이윤상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