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진동 천사들 뮤지컬을 쏘다
**푸른 학교는 실업, 저소득 가정을 위한 방과 후 무료 공부방입니다. IMF직후인 1998년 처음 성남에서 문을 열었습니다. 지금은 전국 각지에서 30여개의 푸른 학교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면 푸른 학교에서 공부와 다양한 체험학습을 하며 따뜻한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서로 돕고 나누는 푸른 학교는 참 행복한 일들이 많습니다. 지금 푸른 학교의 작은 행복 하나가 여러분 곁으로 다가갑니다.**
오후 미술 수업에 쓰일 자료를 뽑고 있는데 아이들이 계단을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시계를 보니 아이들이 올 시간이다. 아마도 준혁이와 정은이일 것이다. 예상대로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정은이와 준혁이었다.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공부방이 아이들의 등장으로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한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응, 안녕. 오늘은 일찍 왔네?”
“네. 수업이 일찍 끝났어요.”
머리를 두 갈래로 딴 모습이 귀여운 정은이의 대답이다. 준혁이는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가지런히 올려놓더니 놀이방에서 무얼 하는지 재잘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선생님, 이번 문화제 때 뭘 준비하죠?”
함께 수업준비를 하고 있던 고학년 반 김민정 선생님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묻는다. 마침 나도 고민하던 문제라 잘 됐다 싶었다.
“글쎄요. 뭘 하면 좋죠?”
“흠.... .”
“영어 동요는 어때요?”
“동요는 좀 그렇고 뮤지컬은 어때요?”
“흠....뮤지컬이라...”
문득 작년 성남동에서 영어연극을 준비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데 갑자기 기운이 빠지고 건 왜일까? 공연에 대한 부담 때문에 거의 두 달 간을 불면증과 소화불량에 시달리던 기억 때문일까. 아니면 당일 찾아온 감기 몸살과 엉망이 되어버린 리허설 때문에 어디론가 도망가 버리고 싶었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무사히 공연을 마치고 퇴장하는 아이들에게 달려가 마구 뽀뽀해 주고 싶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런데 그걸 하자고? 으휴... 고심 끝에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도레미 송’을 짧은 뮤지컬 형식으로 꾸며보기로 했다.
뮤지컬을 제안한 민정 선생님이 메가폰을 잡고 나는 보조를 맡았다. 아이들과 함께 영화 를 보며 주요 배역을 정한다음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갔다.
그 즈음 다른 동의 푸른 학교에서도 저마다 문화제에 올릴 작품(풍물, 율동, 악기연주 등등)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각동의 교사들은 자기가 속한 푸른 학교의 공연이 더 멋있고 잘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루는 학부모 회의에 사용할 자료를 얻으러 법인 사무국에 들를 일이 있었는데 푸른 학교 대표인 전지현 선생님이 나를 보자 대뜸 한마디 하신다.
“수진동 에서는 뮤지컬을 올린다면서요. 기대할게요.”
“아....네?”
그 말을 듣자 덜컥 숨이 막힌다. 괜히 뮤지컬을 한다고 했나. 전문지도 강사가 있던 다른 동과는 달리 우리 동에서는 민정 선생님과 내가 직접 대본을 쓰고 안무를 짜야 했기에 가는 곳마다 종종 들어야 했던 기대 가득한 말들이 한층 부담이 되었다.
여하간 아이들과의 뮤지컬 연습은 매번 고장 난 중고 자동차처럼 덜컹거렸지만 그런대로 목표한 지점을 향해서 달려가기 시작했다.
선생님과 아이들의 노래와 대사는 영화의 O.S.T를 사용하여 립씽크로 처리할 예정이었지만 영어 대사는 한글로 음역을 해서 전부 외우도록 했다. 어느 정도 틀이 잡히자 좀 더 넓은 연습 공간이 필요했다. 다행히 근처에 터사랑 청년회가 있어서 그곳을 빌릴 수 있었다.
공연을 잘 해야 한다는 중압감 외에도 우리를 힘들게 한 것은 오래전에 바닥이 나버린 운영비였다. 급식비는 제때에 지급이 되었지만 운영비 지급이 늦는 바람에 두세 달씩 밀린 공과금은 차지하고 문화제에 필요한 소품도 제때에 구입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구청담당자가 바뀌어서 서류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아예 운영비가 끊길지도 모른다는 지부장님의 엄포(?)에 바쁜 시간을 쪼개어서 그동안 써놓았던 각종 상담 일지와 연간 운영 계획서등을 새롭게 정리해야했다. 2007년을 맞는 푸른 학교의 1월은 어느 달보다도 더 분주하고 정신이 없다.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과 함께 만든 뮤지컬을 문화제에서 관객들을 향해 제대로 쏠 수 있을까? 음악 따로, 몸짓 따로, 노래 따로, 게다가 출처가 어딘지도 모를 녀석들의 저창조적인 시끄러움들. 으이그 속 탄다. 연습 할 때마다 달라지는 율동을 한숨 섞인 표정으로 바라보며 민정 선생님은 요즘 밤에 잠이 안온다고 토로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 너무 걱정하지 말자고요. 우리 아이들은 실전에 강하잖아요.’ 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아이들은 그런 우리들의 불안과 염려는 안중에도 없는 듯 매번 시간이 날 때 마다 사력을 다해서 웃고 떠들고 뛰어 다녔다. 답답한 교실에서 수업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대나. 밥을 먹다가도 ‘도레미’ 길을 가다가도 ‘도레미’ 심지어는 야단을 맞다가도 녀석들은 연방 ‘도레미’를 합창해댔다.
그렇지만 마냥 웃고 떠들기만 할 것 같던 아이들도 막상 하루 이틀 문화제 날짜가 다가오자 제법 긴장한 듯 연습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주야. 선생님이 그렇게 로봇처럼 움직이면 안 돼지.”
“태호야. 은혜랑 박자 맞춰.”
“승수, 승기, 상미 동작을 좀 더 크게 하라고.”
문화제를 며칠 남겨두고 아이들 상담과 6학년 졸업생들의 중등부 입학 건으로 학부모 회의를 진행했다. 한 시간 분량의 교육 관련 영상을 함께 시청하고 나서 전국 교사 연수 시간에 작성했던 수업 안을 정리해서 제시하며 푸른 학교 연간 운영 계획을 설명했다. 그런 다음 고/저학년별로 나누어서 그동안 푸른 학교에서 있었던 아이들과의 생활을 주고받았다.
드디어 문화제 당일, 조연출을 맡은 나는 리허설이 시작되면서 무대 뒤를 책임져야 했기에 수진동은 따로 신경을 쓸 엄두를 못 냈다. 물론 똑 부러지고 카리스마 넘치는 민정 선생님과 자원교사 선생님이 계시기에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다.
사회를 맡은 분당 푸른 학교 신은미 선생님의 매끄러운 멘트와 함께 무대 조명이 꺼지고 마침내 성언이의 영상을 필두로 아이들의 발표회가 시작되었다. 장내는 물을 끼얹은 것처럼 고요한 가운데 한 작품이 끝날 때마다 객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연이어서 금광동 송가, 상대원 율동, 성남동 사물놀이, 창신동 율동, 신흥동 바이올린과 오카리나, 그리고 마침내 수진동 천사들의 뮤지컬이 객석을 향해서 장전되었다.
조명이 켜지면서 감미로운 음악이 모데라토로 흐르면 핀 조명을 받은 선생님이 기타를 치며 사랑스런 눈빛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른다. 빙 둘러 앉아 있던 아이들은 좌우로 몸을 흔들며 선생님의 노래를 따라 부른다. 계이름을 부르면 차례로 일어서는 아이들. 왼쪽, 오른쪽.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살짝 흩어졌다가 확실히 모이고. 무릎 꿇고 두 팔 벌려 쫙! 공연 내내 아이들의 몸짓은 음악과 하나가 되었다. 연습 내내 떠들고 장난만 쳐대던 아이들은 막상 무대에 서자 관객들을 향해서 제대로 뮤지컬을 쏘았다.
정자동 율동, 연극. 태평동 단소, 그리고 통일을 염원하는 신흥동 중등부의 율동을 마지막으로 지난 몇 달 동안 숨 가쁘게 달려왔던 제4회 푸른 학교 문화제의 대단원은 막을 내렸다. 무대 뒤에서 마이크와 출현 순서를 책임지느라 객석에서 아이들의 공연을 보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지만 무대 위에서 춤추는 아이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나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무대의 막이 내려가기 전까지 객석의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오늘저녁 아이들은 저마다 준비한 자신들의 별을 너무도 훌륭하게 쏘았다. 그러한 빛나는 별을 쏘기까지 뒤에서 고생한 선생님들의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들은 모두 실전에 강했다. 뒷풀이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 앞으로 일 년 동안 힘차게 내달리게 될 푸른 학교의 첫 신호탄이 별 하나 없는 깜깜한 밤하늘을 환하게 밝힌다.
2007년 2월8일
첫댓글 오시인님 초고만 써놓고 아직 수정은 못했습니다.
푸른학교 설명이 약간 들어가야할 듯 한데요. 첫 시작이 생뚱 맞을 듯 하네요. 내일 오전까지 수정해주시면 고맙겠네요. 글 좋아요.
알겠습니다...^^
제 멜로 보내주세요... 원고료는 무농약 쌀 10kg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