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사실로 존재했던 소설이며, 소설은 존재할 수 있었던 역사다. 자신의 시대가 작가의 유일한 기회이다. 시대는 작가를 위하여 만들어지고, 작가 는 시대를 위하여 만들어짐을 받는다. 작가란 말하자면 넝마주이다. 자기의 눈에 띈 것은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이용한 다. 작가는 절대로 책임이 없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고 가고 싶은 데로 갈 수 있다. 이 땅에서 기상관측이 실시된 이래 가장 더운 4월이라는 1989년의 4월 24일 밤, 석간 신문사의 편집국 숙직근무에 임한 풋내기 작가 하나가 자동차의 불빛이 흐르 는 창밖을 내다보며 홀로 부질없는 문답놀음을 하고 있었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작가란 또 무엇인가. 그는 끊임없이 반복하여 물음표를 만들어 자신에게 던졌고, 제법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을 만들어 내어 물음표의 고리에 걸었다. 그 사 이에도 창밖의 십자로에는 붉은 신호등이 켜질 땐 멈춰서고 푸른 신호등이 켜지 면 달려가는 자동차의 불빛들이 엇갈리며 흘러오고 흘러갔다. 그는 불빛들의 엇갈 림이 빚어내는 리듬에 맞춰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했다. 그의 문답놀이가 그렇 듯 진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 중 어느 하나도 그가 최초로 생각해낸 답은 없 었다. 전에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구절들을 용케 기억해내는 것뿐이었다. 그것만 으로 미루어 봐도 그 자신이 얼마나 재능 없는 풋내기인지는 금세 짐작이 가는 일 이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그는 문답놀음을 걷어치웠다. 그는 옷걸이로 가 웃 옷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담배에 불을 붙인 다음 성냥 꼬투리를 버리기 위해 책상 위에 놓인 재떨이로 손 과 함께 뻗어가던 그의 시선에 한 장의 메모지가 걸려들었다. 거기에 적힌 내용 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는 습관적으로 그걸 다시 읽었다. 외신, 황석영 동정 철저 체크. 소재 확인되면 북경에 출장 중인 최 기자나 홍콩, 동경 등 특파원에게 연락하여 완벽한 취재(인터뷰, 스케치 등)를 지시할 것. 사회 부 당직 기자에게는 연희동 황씨 집 스케치 지시하도록. 그것은 숙직 담당자 앞으로 남겨진 편집국장의 메모였다. 그는 숙직 책임자로부 터 그 메모를 전달받았다. 이거 삼류작가 때문에 일류작가 고생하게 됐군요. 그보다 후배인 외신담당 숙직 기자가 그 메모를 읽고 텔렉스실로 들어가면서 한마 디 내뱉었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두 사람 다 밤새 한숨도 못 자게 될 사태에 직면 했음을 빗댄 빈정거림이었다. 그는 책상 서랍을 뒤져 문인 주소록을 찾아냈다. 지 난해 연말에 나온 어느 문예지의 권말 부록이었다. 거기에는 물론 그의 이름과 주 소도 나와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 황석영과 그의 주소가 나란히 실렸다고 해서 같 은 처지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황씨는 나이로도 그보다 다섯 살 위였지만, 문단 의 경력으로는 무려 십오 년 이상 선배였다. 그는 부질없는 셈을 자르고 황씨 집 전화번호를 찾아 수화기를 들었다. 뚜, 뚜, 뚜. 단절음의 단속음이 연속적으로 수 화기를 타넘었다. 아. 지금 통화가 이루어지고 있구나. 그것은 아무런 근거도 없 이 그 순간에 그의 뇌리를 스친 예감이었다. 그는 그러나 고개를 저으며 수화기 를 내려놓았다. 계속 걸려오는 전화에 시달리다 못해, 아예 수화기를 내려놔 버렸 는지도 모르지. 그는 멋대로 추측하고 있는 자신을 나무란 다음 메모지 아래에 황 씨 집 전화번호를 적어 넣었다. 설사 헛수고에 불과하더라도 밤새 몇 차례쯤은 더 시도해 봐야 할 일이었다. 그 시간까지의 신문지면에 나타난 황석영에 대한 기사는 두 건이었다. 북한방문 황석영 씨 귀국 즉시 구속키로. 공안 합동 수사본부는 24일 북한에 체 류 중이던 작가 황석영 씨가 이날 평양을 출발, 북경과 동경을 거쳐 귀환할 것이 라는 북한 평양방송의 보도와 관련하여 황씨가 귀국할 경우 구속한다는 방침을 재 확인했다. 합수부는 황씨가 귀국할 경우 문익환 목사와 마찬가지로 김포공항에서 안기부가 황씨의 신병을 확보, 수사키로 했다. 합수부는 황씨의 귀국이 확실해질 경우 국가보안법 제6조 1항(단순 잠입, 탈출죄) 및 제8조(회합, 통신죄) 위반 혐 의로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합수부는 특히 황씨가 방 북 전 정치인 및 정부 관계자들과 자신의 북한방문 문제를 사전 협의한 경위 및 내용에 대해서도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1면에 2단으로 처리된 기사의 전문이었 다. 남북 공동 정기간행물 창간. 방북 황석영 씨 북한 예술인과 합의. (동경 AP 연 합) 북한을 방문 중인 황석영 씨는 남북한 문화 예술인들이 조국 재통일을 위해 노력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합의문에 서명했다고 북한 관영 중앙통신이 23일 보도 했다. 동경에서 수신된 중앙통신은 민예총 대변인인 황씨가 조선 문학예술총동맹 측과 남북한 문학예술인들이 ‘문학예술 활동을 통한 긍정적인 기여로 자주 평화 적인 조국 재통일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에 합의했다고 전했다. 합의 문은 또한 남북 양측이 음악 순수예술 소설 출판 연극 무용 및 곡예 부문 등에서 협력 및 교류를 강화하는 한편 북의 작품과 남쪽의 ‘진보적인 창작물’을 같이 게재하는 정기간행물을 창간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고 이 통신은 말했다. 양측 은 이밖에도 남북한 문화예술인의 보다 심도 있는 회동을 준비하기 위해 빠른 시 일 안에 예비 접촉을 갖기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앙통신은 황씨가 이날 북 한에 살고 있는 친지들과 감격적인 상봉을 했다고 보도했다. 2면에 2단으로 취급 된 기사의 전문이었다. 그 중 그에게 중요한 기사는 황석영이 평양을 출발했고, 아마도 북경에 도착하게 되리라는 사실이었다. 국장의 메모는 각국의 통신사에서 보내오는 외신을 체크, 황씨의 소재를 파악하여 조치하라는 요지였다. 그러나 황석영의 동정이 반드시 외 신을 타게 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자칫하면 밤새워 일하고도 황석영 인터뷰 기사 를 다른 신문에 빼앗기게 될는지도 몰랐다. 그는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혹시 북 경의 최 기자가 이미 황석영의 소재를 파악한 것은 아닌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 다. 한동안의 시간이 흐른 뒤 신호가 가고 한동안의 시간이 더 흐른 뒤에야 북경 호텔의 교환이 나왔다. 그가 최 기자의 방을 부탁하자 곧 두루루, 두루루, 신호 가 흘러가기 시작했다. 최 기자는 체육부 소속이었다. 아시아 주니어 체조선수권대회 취재차 북경에 머물 고 있다가 뜻밖의 사건에 마주치게 되는 셈이었다. 그날의 신문에 최 기자가 보 내 온 기사가 실려 있었다. 여홍철 뜀틀 금메달, 마루운동선 은메달, 이주형 철봉서 동메달. 한국의 여홍철 (전남체고)이 89년 아시아 주니어 체조선수권대회에서 금, 은메달을 1개씩 땄다. 여홍철은 23일 북경 수도체육관에서 열린 남자 뜀틀 종목 결승에서 9.512점으로 1 위, 마루운동에서 9.45점으로 2위를 했다…. 신호음만 거듭 흘러갈 뿐, 최 기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마 늦은 저녁식사라 도 하러 나갔는지 모르지. 그는 서울과 한 시간 남짓한 시차가 있다는 북경의 밤 시간을 그려 보며 수화기를 내려놓고 책상 위에 수북이 쌓여 있는 석간신문과 조 간신문들을 펼쳤다. 전두환 씨 5월 국회 출석 증언. 백담사서 서울 이주 조건. 정부 여당 17, 18일게 상경 추진, 연희동 집 거주 허용. 전씨, 비공개 증언 후 방영 요구, 예우 문제 등 야당과 논의. 노사분규 부동산투기 물가불안, 우리경제 위기상황. 수출 성장목표달성 비관, 물 가 실업 억제선서 1% 내지 3% 웃돌 전망. 3개 대 휴업 끝이 안 보인다. 고려대 서울교대 한림대학교 학생 감정싸움 양상. 점거농성 계속… 같은 주장만 되풀이. 자취 하숙생 일부 보따리 싸 귀향, 수습 나 선 교수 동창회 성과 별무. 동아출판사 교학사 고려서적 보진재인쇄 신흥인쇄 신일인쇄 삼성인쇄 삼화인쇄 등 8개 대형 출판노조 임금협상 결렬로 오늘부터 연대 파업. 여고생 인신매매단 활개. 포주 등 구속 수배. 광산촌 어둡고 긴 불황 터널, 38개 광산노조 집단 쟁의 신고. 서울 택시, 내일 파업 여부 결정. 조정회의 결렬, 사용자측선 중재 요청. 화섬업계도 임금 진통. 코오롱 한일합섬 동양나일론 등 난항. 88수익금 체육부에도 분배, 전직원에 20만원 내지 3백만원씩 지급. 서울시, 27일 밤 7시 쥐잡기 실시. 평양 성명 실수 있었다. 문익환 목사 가족 면회서 밝혀. 자치단체장 직선 올해 시범 실시 안 해. 민정당 방침. 전국 15곳 택지 6천 6백만 평 개발 공급키로. 서울에서 위성도시간 사철추진. 정부 여당 택지개발 행정절차 대폭 간소화. 안양 군포 사이에 새 도시. 3백만 평 규모 계획. 전노협, 노동절 100주년 기념집회 강행할 듯… 당국, 원천봉쇄키로. 소련통신사 서울지국 설치 추진. 냉장고 에어컨 등 가전제품, 품귀 속에 값 껑충. 노사분규 계절 수요 겹쳐. 병원노조 간부 첫 소환장. 노동부 경찰, 한양대병원 9명 출두 요구서. 집단 연월 차 휴가 불법으로 규정한 듯. 마산 창원 37개 업체 1만 명 임금투쟁대회. 일본 다케시타 총리 사임할 듯. 리크루트 의혹 사건 인책. 이토 자민당 총무회장 후임 물망. 조자양 중국 당총서기 북한방문. 김일성, 노 대통령 직함 부르며 평양 초청. 여소야대 정국 1년, 정치 무력증에 빠져. 청문회 특위열기 외화내빈. KAL 858기 폭파범 내일 선고공판. 사형선고 후 정치적 차원에서 사면될 듯. 일출 05 : 44 일몰 19 : 16 월출 23 : 36 음력 3월 19일 월요일. 단 하루에 일어난 사건들 치고는 양이 너무 많았다. 그는 신문을 덮고 절레절레, 머리를 내저으며 돌아섰다. 듬성듬성, 제목만 훑어봐도 머리가 터져 버릴 듯 아팠 다. 세상은 왜 이렇게 어지럽고 복잡한가. 그 많은 사건들 중 인류의 미래를 위 해 반드시 일어나야만 할 필요성을 지닌 사건이란 단 한 건도 없었다. 꼭 터지지 않아도 지장 없는 사건들은 그러나 꼬리를 물고 잇달아 일어난다. 그리고 그러한 사건들의 나열을 역사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역사는 인류의 미래에 대하여 무슨 의미가 될 수 있는가. 누가 말했던가. 당사자에게 절실한 삶이라 할지라도 타인 의 눈에 비칠 때, 그것은 다만 희극일 뿐이라고… 그는 텔렉스실의 문을 밀고 들 어섰다. 별것 없는데요. 다섯 대의 텔레타이프는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지구상에서 그 시간에 일어나고 있 는 모든 사건들을 두루마리 종이 위에 열심히 적어 내고 있건만, 외신담당 숙직 기자는 그렇게 한마디로 끊어서 말했다. 별것 없는데요. 그 말은 뉴스가 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관심을 가질 만한 사건들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는 뜻 없이 고개 를 끄덕여 보이며 텔레타이프가 찍어내고 있는 글자들을 건성으로 훑었다. 조자양 평양 도착 후 김일성 예방. 그루지야 공산당 서기장, 독가스 사망 공식 시인. 나토 단거리 핵미사일 대소협상대상 안 돼. 부시, 대처 전화 회담 통해 확인. 일부 중국 언론들, 당국의 보도 통제에 저항. 텔레타이프는 숨가쁘게 다닥다다닥, 다닥다다닥, 그런 소식들을 토해내고 있었 다. 그러나 그것들은 외신담당 숙직 기자의 말처럼 별것 아니었다. 조자양이 평양 을 방문하여 김일성을 만났다는 사실이 무슨 대수로운 일이며, 중국의 언론들이 당국의 통제에 대하여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텔레 타이프라는 기계가 찍어내는 활자들의 조합에 불과했다. 거기에 찍힌 활자들 속 에 내포되어 있는 상황에 대한 현실성을 느끼기에는 현장과의 물리적인 거리가 너 무나도 멀었다. 정말 별것 없군. 그는 그렇게 맞장구 친 다음 텔렉스실을 빠져나왔다. 책상으로 돌아온 그는 숙직 일지를 펼쳐 놓고 볼펜을 들었다. 다음 날짜 조간신문 의 주요기사 체크와 텔레비전 뉴스 모니터, 그리고 주요 외신이 일지에 기재되는 항목들이었다. 그밖에 밤사이의 주요 취재사항 및 보고상황을 요약하는 난도 있었 다. 그는 메모와 신문을 뒤적이며 일지의 빈 칸들을 메웠다. 야단났는데요. 황석영이 외신에 나타나지도 않으니 꼼짝없이 밤새우는 것 아닌지 모르겠어요. 외신담당 숙직 기자가 그렇게 투덜거리며 그에게로 다가온 것은 밤 열한시 정각이 었다. 숙직일지의 빈 칸도 대강 메워진 다음이어서 그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본 뒤 대답 대신 빙긋이 웃어 보이며 수화기를 들었다. 다행히 신호가 흘러가자 바로 상 대가 나와 주었다. 여보세요. 거기 황석영 씨 댁이 맞습니까.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행여 상대가 수화기를 그냥 내려놓는 불상사가 일어나선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 리고 그가 추측하는 불상사가 결코 기우일 수만은 없었다. 황씨의 입북 사실은 모 든 언론기관의 관심사였다. 어떤 신문사에서는 황씨를 취재하기 위해 일부러 사진 기자와 취재기자 한 사람씩을 북경으로 보내 놓고 있다는 소문까지 들리는 판이었 다. 당연히 황석영의 집 전화통은 쉴 틈이 없을 게 분명했다. 모두가 위로와 격려 이기보다는 호기심이 팽배해 있는 취재성 문의전화이고 보면 가족들의 신경은 바 늘 끝처럼 날카롭게 마련이었다. 네. 그런데요. 상대는 여자였다. 그의 염려와는 달리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서 그는 재빨리 대화의 가능성을 읽었다. 그는 발끝부터 차오르는 기쁨을 지그시 억누르며 아주 느릿느릿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신문사입니다. 저는 오늘밤 숙직을 하고 있는 아무개입 니다. 아직 풋내기이긴 하지만 저도 소설을 쓰고 있으니 황 선생 후배 중의 하나 인 셈입니다. 혹시 황 선생의 부인 되시는 김명수 씨 계신지요. 네… 전데요…. 그녀의 목소리도 그의 말투에 감염된 듯 더욱 속도감이 떨어져 있었다. 그는 내 심 고개를 끄덕인 다음, 망설이지 않고 빠르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황 선생님께서 오늘 평양을 출발하여 북경에 도착하셨는데, 안부전화는 언제 왔었 습니까. 그는 숨죽이고 기다렸다. 한동안의 침묵 끝에 머뭇거리며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 을 열었다. 거기가 정말 ○○신문사가 확실한지… 하도 이상스런 전화들이 많아서…. 그가 얼른 그녀의 말꼬리를 잡아챘다. 네. 조금이라도 미심쩍으시면 이쪽 전화번호를 알려드릴 테니 그쪽에서 걸어 주셔 도 됩니다. 그러자 그녀 쪽에서 마음이 놓이는지 목소리를 분명하게 가다듬었다. 아, 괜찮아요. 맞는 것 같네요…. 사실은… 조금 전 열시 반쯤에 안부전화가 왔었 어요. 아, 그렇다면 조금 전의 그 예감이 들어맞았단 말인가. 그는 내심 무릎을 치며 불 쑥 그녀의 말을 자르고 끼어들었다. 지금 황 선생은 북경의 어느 호텔에 묵고 계신가요. 그러나 그녀는 그의 성급함을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을 계속 이어갔다. 어느 호텔에 묵고 계신지는 말씀하시지 않으셨어요. 다만 동경에 도착한 뒤 다시 전화하겠다고 하셨어요. 참지 못하고 그가 다시 끼어들었다. 언제 동경으로 간다고 하셨나요. 그밖에 다른 말씀은 없으셨나요. 네. 언제라고 말씀은 안하셨어요. 그냥 지금 북경에 있다, 다들 잘 지내고 있느 냐, 아이는 많이 컸느냐, 북한에서 친척들을 만났다, 이곳 북경에 취재기자들이 많이 와있는 것 같은데 기자들을 이곳에서 만나야 할지 일본에 가서 만나야 할지 생각 중이다, 걱정 말고 잘 지내라, 일본에 가서 전화하겠다, 그것뿐이었어요… 그런데 전화하시는 분은 어느 부서에 근무하시나요. 그녀의 말을 정신없이 받아 적고 있던 그는 그 마지막 말에 허를 찔린 기분이었 다. 그는 취재기자가 아니었다. 다만, 그날 밤 편집국의 편집, 취재담당 숙직 기 자일 뿐이었다. 전화로 그런 사정을 장황하게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그는 간단 히 대답해야 했다. 교열부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네, 어느 부서라고요. 역시 그녀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하긴, 그녀로서도 뜻밖일 것이었다. 교열부요. 기사의 교정을 보는 부서 말입니다. 네에…. 알아들은 그녀 목소리의 음량이 갑자기 반으로 줄었다. 아무래도 기사화되지도 않 을 괜한 헛소리 늘어놓는 게 아닌가, 하는 실망감 때문이리라. 그는 아직도 전화 를 끊을 수가 없었다. 염치를 무릅쓰고 그는 그녀에게 메모를 부탁했다. 지금 북경에 저희 신문사 기자 한 사람이 나가 있습니다. 전화번호를 알려드릴 테 니 혹시 황 선생과 다시 연락이 되면 황 선생께서 저희 기자를 꼭 만나보라고 전 해 주십시오. 고맙게도 그녀는 여섯 개의 숫자를 받아 적고, 확인까지 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 는 곧장 북경의 다이얼을 돌렸다. 직통전화의 번호 자릿수는 세 자리, 두 자리, 한 자리, 세 자리 세 자리로 이어지면서 모두 열두 개나 되었다. 다행히 최 기자 는 방에 돌아와 있었다. 최 기잡니까. 나 본사 교열부의 아무갭니다. 황석영 씨 소재 파악이 되었습니까. 대답은 한참 지난 뒤에야 흘러 나왔다. 네. 국제전화라서 한참 지난 다음에야 목소리가 들립니다. 천천히 말씀하세요. 황 씨의 소재는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여긴 서울과 달라서 어려워요. 그는 약 7초간의 시차를 두어야 소리가 흘러간다는 북경과 통화해 본 사람들의 얘 기를 떠올렸고, 언어의 소통도 불편한 이국의 호텔에서 여기저기 다른 호텔로 전 화를 넣어 황씨의 소재를 확인하느라 지쳐 있을 최 기자의 얼굴을 떠올리며 목소 리를 높였다. 서울의 황씨 집으로 삼십분 전에 안부전화가 왔었답니다. 북경에서 묵고 있는 호 텔은 말해주지 않아 모른다고 해요. 혹시 다시 연락이 되면 최 기자에게 연락을 하라고 그곳 전화번호를 알려 줬으니 혹시 연락이 갈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황 씨의 서울 집 전화번호는… 직접 연락을 취하면서 계속 수고하세요. 그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것으로 일단 그날 밤 숙직 근무자에게 맡겨진 임무 는 끝낸 셈이었다. 남은 것은 현지에서 최 기자가 알아서 할 일이었다. 호텔의 교 환에게 잘 교섭하여 북경전화국으로 알아보면 삼십분 전에 서울의 황씨 집 전화번 호로 통화한 호텔을 찾아낼 수도 있으리라. 혹시 운이라도 좋으면, 한 달여에 걸 친 여행 끝이라 집이 그리운 나머지 잠 못 이루는 황씨가 다시 서울 집으로 전화 를 넣음으로써 최 기자의 전화번호가 전해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숙직 책임자에게 가서 경과를 보고했다. 수고했어요. 이제 사회부 기자들을 보내서 황씨 집 스케치하는 것만 남았군. 지 금 말한 내용을 시간별로 정리해서 간단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쉬도록 해요. 그에게 그렇게 이르고 사회부를 향해 몸을 돌리는 숙직 책임자에게 그가 불쑥 말 했다. 사회부 기자와 함께 저도 황씨 집에 다녀오면 안 될까요. 보고서는 다녀온 뒤에 쓰도록 하고…. 정치부 데스크 중의 하나를 맡고 있는 숙직 책임자는 이해가 빨랐다. 그에게 왜 취재부서 근무자도 아닌데 거기까지 가려 하느냐고 묻지 않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 였다. 그가 풋내기이긴 했지만 명색이 작가라서 황석영 사건에 관심을 가지는 게 당연하다고 이해하는 빛이었다. 나는 왜 그곳에 가려는 것일까. 그는 사회부 당직 기자와 함께 회사의 후문 앞 수 송부로 내려가는 도중에 계단의 중간쯤에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고초를 겪고 있 는 인물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인가. 아니면, 숙직 기자로서의 철저한 사명감인 가. 계단을 벗어나 차에 오를 때까지도 확실한 답은 찾아지지 않았다. 그는 답답 하고 우울한 구름 낀 하늘만 자꾸 올려다봤다. 차가 회사의 후문을 빠져 나가 네거리 신호등 앞에 멈추자 기자는 카폰으로 황씨 집을 불러냈다. 안녕하세요, ○○신문 사회부 기잡니다. 거기 황 선생님 댁이죠. 지난해에 수습기자로 입사한 막내둥이답게 활달하고 애교스러운 목소리로 대화를 풀어가고 있었다. 젊음. 그는 신호등의 붉은 빛깔이 바뀌기를 기다리면서 문득 그 낱말을 떠올렸다. 작은 일에도 진지함을 잃지 않는다. 설사 결론이 빤한 사건 앞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위한 시도를 포기하지 않는다. 신 선한 마음가짐과 잘 가다듬은 목청으로 반복하여 되풀이하는 질문을 늘 첫 번째 의 질문인 것처럼 말한다. 그 모든 것이 사실은 대수롭지 않은 기자의 습성인 것 처럼 보여도 거기에 젊음이 가세하면 언제나 새로운 것이 되었다. 그는 상대적으 로 젊음을 보내 버린 쓸쓸함이 자꾸만 신호등의 붉은 빛깔처럼 앞을 가로막는 것 같아 고개를 숙였다. 이미 황 선생님께서 댁에 안부전화를 하셨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만, 좀더 자 세한 상황을 알았으면 해서 지금 제가 댁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그러자, 저쪽에서 무어라 완곡하게 거절의 뜻을 비치는 듯싶었다. 기자는 그를 돌 아보며 아이가 몹시 아파서 만나는 것만은 안 된다는데요, 하고 말했다. 그러나 마침 신호등의 빛깔이 푸른색으로 바뀌었고 차는 내친걸음이란 듯이 가던 방향으 로 진행했다. 전화로는 얼마든지 말씀해 주시겠다고요. 그러면 처음부터 그때의 상황을 다시 말 씀해 주십시오. 네, 그러니까 아홉시 텔레비전 뉴스를 통하여 황 선생님의 북경 도착 소식을 알고 혹시나, 하며 기다리고 있던 중에 전화를 받으셨다고요. 사회 부 기자는 상대의 말을 반복하여 확인하면서 메모하기 시작했다. 아이와 둘이 있 을 때 전화가 왔다고요…. 그는 이어지는 대화를 귓가로 흘려들으며 황석영이란 인물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아이… 라는 말은 곧장 돌이 갓 지났다는 황씨의 아들을 떠올려 주었다. 그러나 그 떠오름이란 낱말 또한 추상적인 것에 불과했다. 그는 단 한 번도 황씨를 직접 만나 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그가 알고 있는 것이라곤 책에서 읽은 작품들과 문 단이란 동네에 흩어져 떠도는 소문들의 편린에 불과했다. 아이는, 갓 돌을 지낸, 황씨의 세 번째 소생이란 것, 두 명의 큰 아이들은 광주에서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란 것. 어느 것 하나도 직접 확인해 본 적이 없는, 먼 나라에서 날아와 텔레 타이프에 찍히는 외신기사 정도의 신빙성도 지니지 못한 것들이었다. 지금의 부인은 발레리나라죠. 기왕에 출판된 책의 인세는 모두 먼저의 부인에게 주고 황씨는 지금의 부인 집에서 살고 있다죠. 오가는 사람들이 스치듯 한 마디 씩 던지는 ‘죠’자 돌림의 어미로 처리되는 말들이 얼마만큼 진실에 가까운지 그 로서는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황씨의 신춘문예 당선작품인 ‘탑’을 비롯한 ‘섬섬옥수’ ‘삼포 가는 길’ ‘돼지 꿈’ ‘잡초’ ‘이웃사람’ ‘낙타누깔’ ‘한씨연대기’ ‘객지’ 등의 초기 소설과 ‘장길산’ 등의 대하소설을 그는 모두 읽었다. 작품을 평가할 때의 두 가지 요소인, 문학성과 문학 정신의 양면에서 확실한 업적을 쌓았음을 널리 인 정받고 있음도 알았다. 그 때문에 아직 풋내기이긴 하지만 작가의 길에 들어선 그 에게 있어 작가 황석영이란 부담스럽고 거북한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그는 황석영 나이 또래의 국내 작가들에 대해 적의에 가까운 열등감 을 지니고 있었다. 열 살 내외의 소년기에 6 ․ 25를 체험한 잡초처럼 끈질긴 세 대의 작가들. 그들은 왕성한 의욕을 보이며 이십대에 작가생활을 시작했고 사십 대 후반에 다다른 이즈음에 와서도 전혀 쇠퇴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더욱 무섭게 뻗어 가고 있었다. 그들의 작품, ‘장길산’이 그렇고 ‘태백산맥’이 또한 그렇 고… 끝이 없어 보였다. 그가 걸어야 할 작가의 길은 그들이 쌓아올린 그런 산맥 들의 존재 때문에 더 험난하고 숨가빠야 한다고, 그는 믿고 있었다. 이젠 그쯤에 서 그만 쓰러져 달라. 그리하여 나머지의 길을 달릴 수 있게 내게도 기회를 달 라. 그는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늘 그렇게 빌고 있는지 도 몰랐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황석영이야말로 가장 먼저 쓰러져줘야 할 표적 중 하나였다. 그로서는 황씨의 입북 사실을 입 밖에 내어 옹호해야 할 까닭이 전 혀 없는 셈이었다. 사십 년간 굳게 막혀 있던 남북의 벽을 개인의 힘으로 뚫었다. 일단 그 사실만으 로도 한반도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가슴 설레는 사건이 아닐 수 없 었다. 거기에 더하여 작가가 직접 북녘땅을 밟아 본 뒤 남한과 북한이라는 개별적 인 개념이 아닌, 남과 북을 하나로 묶어내는 작품 하나를 써 낸다면… 그로서는 숨이 막혀 그 이상 생각을 이어갈 힘이 없었다. 황씨의 행위가 실정법에 저촉되 고, 돌아온 뒤 거기에 합당한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는 따위의 논리적인 이론은 이 미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작가가 작품을 쓰기 위해 엮어내는 삶이란, 그것이 처참 한 것일수록 더욱 힘 있는 작품으로 연결되어 왔다는 사례들을 일일이 열거할 필 요조차도 없는 일이었다. 왜 북녘땅에 뛰어들어 백두산, 묘향산, 금강산에 올라 가 보고 거기에서 삶을 꾸려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온 것이 풋내기 작가인 그 가 아니고 성공할 만큼 충분히 성공한 황석영이란 말인가. 그것은 부러움이고, 질 투이며, 씻어낼 수 없는 열패감이었다. 어려서부터 애국가를 부를 때마다 그리움 으로 일렁이던, 동해물과 백두산… 으로 요약되는, 밟아 디뎌보고 싶은 국토에 대 한 열망이 일시에 훼손돼버린 것 같은 씁쓸함이기도 했다. 네. 황 선생이 북한 땅을 무사히 벗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맙고 안심이 돼 다 른 말을 물어보지 않았단 말씀이죠…. 신호등 앞에서 차가 멈추거나 신호가 바뀌 어 다시 달리거나를 개의치 않고 카폰의 대화는 계속되고 있었다. 차가 사직터널 앞에 이르자 회사 운수부 사원인 운전자는 차를 세워 놓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오랜 취재 차량 운전 경험으로 미루어 터널 안으로 진입할 경우 대화가 끊길지도 모른다는 배려였다. 그는 카폰을 쥔 기자에게 잠시 잡음이 들릴지도 모르니 양해 를 구하고 터널을 통과하자고 재촉했다. 시계바늘이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러잖아도 거절당하고 있는 방문길이 너무 늦어지는 게 콧등에 자꾸 걸려왔다. 차 가 터널을 지나고 있어서…. 기자는 카폰에 대고 양해를 구하고, 차는 기세 좋게 터널을 관통했다. 그러나 앞에 또 한 개의 터널이 가로막았다. 차는 금화터널도 곧장 꿰뚫었다. 연대 앞 넓은 도로를 질주한 차가 연희동 파출소 앞에 멈춰서고, 그가 파출소 문을 밀고 들어섰다. 황석영 씨 집이 어딘지 아십니까. 두 사람의 당직 순경은 그를 쳐다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순경들의 반응을 무시하고 벽에 걸린 관내 지도 앞으로 곧장 다가 가 번지수를 확인하고 돌아섰다. 곧장 가다가 좌회전하여 직진하다가 세 번째 골 목에서 다시 좌회전, 직진하다가 두 번째 골목에서 우회전하여 모퉁이에서 두 번 째 집 앞에 세우면 됩니다. 운전자는 쉽게 길을 알아들었다. 기자는 카폰의 대화를 계속하고 있었다. 내용이라곤 있을 수 없는 단순한 안부전 화 한 통을 매개로 하여 십분 이상의 통화를 이어 가고 있는 기자의 젊음이 다시 한번 그를 감동시켰다. 황석영요. 황 구라로 더 잘 통해요. 화려한 제스처와 능란한 화술로 늘 좌중의 화 제를 압도해 가거든요. 검은 얼굴 때문에 옛날엔 깜상이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 다죠…. 황석영과 여러 번 어울린 일이 있다는 어떤 사람이 했던 말이었다. 깜상 이라…. 그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지난해 봄,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복간된 창작 과비평 봄호에 실렸던 황씨의 소설 ‘열애’에 그 별명이 나와 있었다. 고교시절의 한 친구라고 자신을 밝힌 어느 사내로부터 전화를 받는 것으로 그 소 설은 시작된다. 그로서는 사내가 누구인지 전혀 떠오르지 않는데 상대가 깜상이 란 그의 고교시절 별명을 기억한다. 그는 친구로부터, 이혼을 요구해 오는 친구 의 아내를 만나 설득해 달라는 주문을 받는다. (차가 다시 앞으로 나갔다. 나는 그와 꼭 같은지 다른지는 아직 잘 몰랐지만 하여튼 내 경우에도 실패를 해본 경험 이 있어서 그의 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황씨는 친구의 청을 거절할까 하 다가 결국 거절하지 못한다. 황씨는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다시 도망칠 궁리를 계 속한다. (그가 먼저 레인이라고 붉은 불이 켜진 네온간판을 보았고 나는 앞서가 는 그의 뒤를 따라갔다. 몇 번이나 슬그머니 새버릴까 했다가도 그러지를 못했는 데 어느 결에 나는 헤어진 아이들과 아내를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의 부인이 기다리는 카페로 들어가는 그 순간의 진술이 소설 ‘열애’의 핵심 을 이루면서 이어진다. (트렁크에 간단한 짐을 꾸려서 밤 기차를 타던 정거장이 생각났다. 나는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리면서 내가 국경을 넘어 당도해야 할 그 어느 곳에는 의무와 동지애와 뜨거운 사람의 사랑이 넘치는 새로운 땅이 있으면 좋겠다고 실없는 공상을 했었다. 그리고 기차는 밤새껏 서울을 향해 달렸고 새벽 에 요란한 쇠바퀴 소리에 잠을 깼을 때, 내가 똑같은 공상을 하고 십여 년 전에 떠났던 서울이 거기 다가오고 있는 걸 보았다.) 그는 그때 몇 줄의 시구를 떠올린 다. (어딘가에 아름다운 사람과 사람과의 힘은 없는가. 같은 시대를 함께 사는 친 근함과 따스함과 그리고 노여움이 날카로운 힘이 되어 솟아오르는… 튼튼한 사나 이들이 네댓 명 커다란 손을 벌리고 이야기를 하는 그런 곳은 없는가. 구름이여 물론 나는 가난하지만 괜찮지 않은가 데려가 다오.) 소설 ‘열애’는 한 주일 뒤 다시 걸려온 친구의 전화로 끝을 맺는다. (우리는 깊이 생각한 결과 다시 합치기 로 결정을 봤네. 내 아내도 자네에게 미안하다는군.) 짓궂게도 황석영의 ‘열애’에 답하기라도 하듯, 같은 책에 그의 전 부인 홍희담 씨의 소설 ‘깃발’이 실려 있었다. 신인 투고작품이란 꼬리표가 달린 홍씨의 첫 소설은 광주사태를 현장에서 다룬 좋은 작품으로 평가되면서 문단의 주목을 끌기 도 했다. 집이 좋군요. 기자가 카폰을 내려놓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렇군.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서 내려섰다. 이층의 앞쪽을 거의 다 차지한 커다란 유리창에 드리워진 커튼 자락은 엷게 배어 난 형광등 불빛으로 은은하게 젖어 있었다. 짙은 청색의 견고한 대문은 그러나 열 리지 않았다. 기자가 다시 연결한 카폰에서는, 만날 수 없다는 완곡한 말과 함께 아이의 울음소리가 심상치 않게 자지러졌다. 그는 지난 11일 황씨의 부인 김씨가 모처로 연행됐다가 풀려났다는 어느 신문의 일단짜리 기사를 떠올렸다. 어쩔 수 없지, 돌아가자구. 그들은 카폰으로 그녀에게 작별인사를 전하고 차를 돌렸다. 선배님, 황 선생의 집을 보니까 작가가 다 같은 작가가 아니라는 걸 알 것 같은데 요. 기자가 명랑하게 웃으며 농을 걸어왔다. 그렇군. 그는 아주 짧게 대답하고 입을 다물었다. 도저히 농담을 하고 있을 기분 이 아니었다. 분단 이후 백두산을 한반도를 통하여 최초로 올라가 본 남쪽 사람. 작가 황석영 은 조선 문학예술총동맹 측과 합의한 ‘진보적인 창작물’을 게재할 남북 공동 정 기간행물을 발간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북한 기행문은 쓰게 될 것이 고, 분단의 역사와 공간을 관통하는 대작의 구상에 들어갈 게 확실했다. 그것은 소설이란 무엇이며, 작가란 또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물음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 이, 이미 진행되고 있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는 잘못하여 실패에서 한꺼번에 빠 져 나와 엉켜버린 명주실꾸리처럼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릿속의 생각을 지우기 위 해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차는 자정이 지난 텅 빈 밤길을 직선으로 갈라 젖히며 달리다가 회사가 보이는 곳 네거리에서 멈춰 섰다. 눈앞에 붉은 신호등이 텅 빈 도로를 조롱하듯 켜져 있 었다. 지나는 차들이 전혀 없어 그대로 통과해도 괜찮을 네거리 건널목에서 오로 지 신호를 지키기 위해 차가 멈춰 선 것이었다. 한동안을 더 기다렸다가 신호가 바뀌어 차가 움직일 때까지도 엇갈려 통과하는 차 한 대가 없었다. 그래도 차는 신호를 따라야 하는 것인가. 신호등은 시간별로 일정하게 바뀌도록 고정되어 있었다. 신호등의 경직성.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일컬어 법이라고, 질서라고 말한다. 그는 푸른빛으로 바뀐 신호 등을 스쳐 지나며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서울엔 신호등이 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