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종 10타
<개회> 사회자
<법신불전 헌배> 일어서서 대례
[기도]
<입정>
<영주>
천지영기 아심정(天地靈氣 我心定)
만사여의 아심통(萬事如意 我心通)
천지여아 동일체(天地與我 同一體)
아여천지 동심정(我與天地 同心正)
<기원문>
<심고>
<독경>
일원상서원문(一圓相誓願文)
일원은 언어도단의 입정처이요 유무초월의 생사문인바,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본원이요 제불조사 범부 중생의 성품으로 능이성 유상하고 능이성 무상하여 유상으로 보면 상주 불멸로 여여자연하여 무량세계를 전개하였고,무상으로 보면 우주의 성주괴공과 만물의 생로병사와 사생의 심신 작용을 따라 육도로 변화를 시켜 혹은 진급으로 혹은 강급으로 혹은 은생어해로 혹은 해생어은으로 이와 같이 무량 세계를 전개하였나니,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이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아서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를 하며, 또는 사리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를 하며, 또는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를 지성으로 하여 진급이 되고 은혜는 입을지언정 강급이 되고 해독은 입지 아니하기로써 일원의 위력을 얻도록까지 서원하고 일원의 체성에 합하도록까지 서원함....
<법어봉독>:100쪽
대종경(大宗經)
제1 서품(序品)11~12장
서품(序品)11장
방언 일이 준공되니 단원들이 서로 말하기를 [처음 시작할 때에는 평지에 태산을 쌓을 것같이 어려운 생각이 들더니, 이제 이 만큼 되고 보니 방언은 오히려 쉬운 일이나 앞으로 도(道) 이룰 일은 얼마나 어려울꼬.] 하는지라, 대종사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이 지금은 도 이루는 법을 알지 못하므로 그러한 말을 하거니와, 알고 보면 밥 먹기보다 쉬운 것이니 그 넉넉하고 한가한 심경이 어찌 저 언 막기 같이 어려우리요. 그대들이 이 뜻이 미상하거든 잘 들어 두었다가 공부 길을 깨친 뒤에 다시 생각하여 보라.]
서품(序品)12장
길룡리 옥녀봉(玉女峰) 아래에 이 회상 최초의 교당을 건축할 때, 대종사 그 상량에 쓰시기를 "사원기일월(梭圓機日月) 직춘추법려(織春秋法呂)"라 하시고 또 그 아래에 쓰시기를 "송수만목여춘립(松收萬木餘春立) 계합천봉세우명(溪合千峰細雨鳴)"이라 하시니라.
< 일상수행의 요법 대조> (p54)
1) 심지(心地)는 원래 요란함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요란함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自性)의 정(定)을 세우자. 2) 심지는 원래 어리석음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어리석음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혜(慧)를 세우자.
3) 심지는 원래 그름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그름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계(戒)를 세우자.
4) 신과 분과 의와 성으로써 불신과 탐욕과 나와 우를 제거하자.
5) 원망 생활을 감사 생활로 돌리자.
6) 타력 생활을 자력 생활로 돌리자.
7) 배울 줄 모르는 사람을 잘 배우는 사람으로 돌리자.
8) 가르칠 줄 모르는 사람을 잘 가르치는 사람으로 돌리자.
9) 공익심 없는 사람을 공익심 있는 사람으로 돌리자.
<성가>
131장: 사은님 사은님
<설법> 창산 김진성 교무
이매망량 / 조전권 선진
조전권[曺專權, 1909~1976]
주요약력
본명은 옥순(玉順), 법호는 공타원(空陀圓), 법훈은 종사. 1909년 12월 21일 전북 김제군 금산면 원평리에서 부친 송광(頌廣)과 모친 최형엽(崔亨燁)의 딸로 출생. 원불교 정녀(貞女) 1호. 불법연구회 2대 회장 조송광의 딸. 초량교당에서 부산지역 교화를 이끌었으며, 교무부장, 총부 순교감, 동산선원 원장을 역임했다.
생애와 활동
조전권은 17세에 전주 기전여학교에 입학했으나 19세시 가정이 어려워지면서 중퇴하고 부친을 따라 독실한 기독교 신앙생활을 했다. 조전권이 소태산대종사를 처음 본 것은 기전여학교 입학 전이었다. 소태산이 원평 조송광의 집을 찾아 하룻밤 유숙한 때였다. 그러나 아직 어리고 부친과 만나는 소태산을 잘 알아보지 못했다.
그 후 19세시에 익산총부에 부친을 따라 왔다가 소태산을 뵙고 법명을 받으며, “세계의 대권(大權)을 잡고 일체중생의 어머니가 되어 최령한 가치를 발휘하여라. 일체중생의 어머니가 되려면 우주만유의 진리를 깨쳐야 한다. 그래서 참나를 찾고 참 생활을 하여야 영생을 얻게 된다. 진리를 깨쳐야 나와의 촌수를 알게 되고 대자대비심이 생겨 무아봉공의 희생정신이 생기는 것이다”는 법문을 듣는다.
1927년(원기12) 총부 동선을 난 조전권은 출가(出家)를 결심, 농공부(農工部) 공양원으로 출발, 정녀 전무출신의 문열이가 되었다. 1929년부터 서울교당 공양원으로 일하다가 1931년(원기16) 총부 순교로 지방교화에 조력하면서 소태산의 측근에서 구전심수로 속깊은 공부를 했다. 그 당시 조전권은 소태산이 일제의 간섭과 감시 가운데 늘 고충을 겪는 모습을 보고 마음 아파하면서 불보살 성인이 어찌 저런 어려움을 당해야 하는 건지 의심이 걸려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그러한 의심의 일단을 속시원히 스승인 소태산에게 물어 그 해답을 구한 것이 《대종경》 인과품 8장의 내용이다.
“조전권이 여쭙기를 ‘부처님들께서는 다생겁래에 낮은 과보 받으실 일을 짓지 아니하셨을 것이므로 또한 세세생생에 고통받으실 일이 없어야 할 것이온데, 과거 부처님께서도 당대에 여러 가지 고난이 없지 않으시었고 대종사께서도 이 회상을 열으신 후로 관변(官邊)의 감시와 대중의 인심 조정에 고통이 적지 않으시오니 저희들로는 그 연유를 모르겠나이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내가 알고는 죄를 짓지 아니하려고 공을 들인지 이미 오래이나, 다생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을 교화할 때에 혹 완강한 중생들의 사기악기가 부지중 억압되었던 연유인가 하노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정당한 법을 가지고 자비 제도하시는 부처님의 능력으로도 정업(定業)을 상쇄(相殺)하지는 못하고, 아무리 미천한 중생이라도 죄로 복이 상쇄되지는 아니하나니라. 그러나, 능력 있는 불보살들은 여러 생에 받을 과보라도 단생에 줄여서 받을 수는 있으나 아주 없애는 수는 없나니라.’”
조전권은 1936년(원기21)에 부산교화를 위해 남부민교당 교무로 부임했다. 이어 1938년(원기23)부터 13년 동안 초량교당 교무로서 부산교화에 헌신했다. 1942년(원기27) 11월에는 열반을 앞두고 부산지방을 찾은 소태산이 초량교당을 갑자기 방문하여 조전권을 격려했다. 조전권은 유덕하고 포용력이 넓었다. 항상 누구를 보아도 장점만을 보고 칭찬하기를 좋아했다. 평소 덕담을 잘했다. 심덕, 언덕, 행덕을 두루 갖춘 ‘좋다 보살’로 동지들과 후진들의 칭송을 받았다.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한 그는 일생을 두고 사재라고는 없었으며, 좋은 의복도 자신의 몸에 걸치는 일이 없었다.
늘 부족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동지와 후진들을 챙기고 북돋우고 격려해 주었다. 따라서 조전권의 주위에는 따르는 법연들이 많았다. 그는 또한 남녀의 국한을 뛰어넘은 상(相) 없는 도인이었으며, 정녀로 일생을 오롯이 순결을 간직하며 정결하게 살았으나 자신이 정녀라는 상이 없었다. 1945년(원기30) 수위단원으로 피선되고, 법호를 받은 조전권은 부산교화를 반석위에 올려놓은 후, 1950년(원기35) 42세시에 여자로서 처음으로 중앙총부 교정원 교무부장(현 교화훈련부장)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교화 계획의 꿈이 무산되었고, 1953년부터 2년간은 총부 교감으로, 1955년(원기40)부터는 총부 순교감으로 7년 동안을 교당 순회와 교리 강습을 진행, 교화의 새 바람을 일으켰다.
설통(說通)을 이룬 능란한 법설로 가는 곳마다 교화의 법풍을 불리며 일원대도에 많은 인연들이 귀의토록 했다. 1962년 중앙선원 부원장으로 1년간 봉직한 조전권은 이듬해 동산선원장으로 부임하여 8년간 재직하며 폐허가 된 동산선원을 중흥했다. 이후 병마와 싸우는 중에도 교단의 명을 받들어 1971년(원기56) 중앙훈련원 초대 원장으로 부임, 1976년(원기61) 5월 24일 68세로 열반할 때까지 중앙훈련원 신축 부지 확보와 신축 기금 조성에 혈성을 다했다. 문장에도 조예가 깊어 교단 기관지에 ‘오, 나의 마음이여’ㆍ‘종사님 성덕송(聖德頌)’ㆍ‘자부(慈父)님은 어디 가시고’ 등 여러 글을 남기고 있다. 또한 열반 후 후진들이 발간한 문집 《행복자는 누구인가》가 있다.
대종경(大宗經)
제6 변의품(辨疑品)12장
조 전권이 여쭙기를 [제가 과거에 동리 근처의 오래된 나무를 베거나 혹 함부로 하여 벌을 받는 것을 본 일이 있사온데, 그러한 무정지물에도 인과 관계가 있어 그러하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것은 나무와의 인과로 그리 된 것이 아니라, 과거 음 시대에는 몸을 받지 못한 이매망량의 무리가 많이 있어서 그러한 나무나 혹은 성황(城隍)이나 명산 대천에 의지하여 어리석은 대중의 정성을 많이 받고 있다가, 제 기운보다 약한 사람이 저를 해롭게 하면 혹은 병도 주고 혹은 벌도 내린 일이 없지 아니하였으나, 지금은 양 시대가 되어 가는지라 앞으로는 그러한 무리가 감히 인간계를 해치지 못하리라.]
제5 인과품(因果品)8장
조 전권(曺專權)이 여쭙기를 [부처님들께서는 다생 겁래에 낮은 과보 받으실 일을 짓지 아니하셨을 것이므로 또한 세세 생생에 고통 받으실 일이 없어야 할 것이온데, 과거 부처님께서도 당대에 여러 가지 고난이 없지 않으시었고 대종사께서도 이 회상을 열으신 후로 관변(官邊)의 감시와 대중의 인심 조정에 고통이 적지 않으시오니 저희들로는 그 연유를 모르겠나이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내가 알고는 죄를 짓지 아니하려고 공을 들인지 이미 오래이나, 다생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을 교화할 때에 혹 완강한 중생들의 사기 악기가 부지중 억압되었던 연유인가 하노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정당한 법을 가지고 자비 제도하시는 부처님의 능력으로도 정업(定業)을 상쇄(相殺)하지는 못하고, 아무리 미천한 중생이라도 죄로 복이 상쇄되지는 아니하나니라. 그러나, 능력 있는 불보살들은 여러 생에 받을 과보라도 단생에 줄여서 받을 수는 있으나 아주 없애는 수는 없나니라.]
이매망량[魑魅魍魎]
⑴ 온갖 도깨비와 귀신. 이매는 산이나 내에 있다는 네발 도깨비. 망량은 도깨비. 이매는 인면수신(人面獸身)에 네 다리를 가졌고 사람 홀리기를 좋아하며, 망량은 수신(水神)으로 세 살 어린애 같고 적흑색이라 함(《사기》 오제기주). 밝은 세상에서는 살지 못하고 어두컴컴한 곳에서만 산다는 모든 구제받지 못한 영(靈)을 통칭하는 말로서 인간들을 많이 괴롭히기도 하고 때로는 약한 자와 정의로운 자에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고 생각했다.
소태산대종사는 과거 음 시대에는 몸을 받지 못한 이매망량의 무리가 많이 있어서 큰나무나 성황(城隍)이나 명산대천에 의지하여 어리석은 대중의 정성을 많이 받고 있다가, 제 기운보다 약한 사람이 저를 해롭게 하면 병도 주고 벌도 내린 일이 있었으나, 지금은 양 시대라 그런 무리가 감히 인간을 해치지 못한다고 말했다(《대종경》 변의품12).
⑵ 정당하게 살아가지 못하고 어처구니없이 허무맹랑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얕잡아 이르는 말.
<성가>
135장: 고요한 법당
<공고>
<생활결의 구호>
원망 생활을 감사생활로!
원망 생활을 감사생활로!
원망 생활을 감사생활로!
<성가>
102장 : 저희들이 이 불사로(回向의 노래)
<폐회>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삼대력을 얻어 성불제중(成佛濟衆)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