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공기가 차갑다. ‘오뉴월 보리 익을 때 중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말이 실감나듯 오싹해지
는 기온에 인체는 민감해지고, 멀지 않는 대숲에 서식하는 까치 떼가 아침의 시작을 알리는
요란한 기상이 사고(思考)를 일깨운다. 선산(先山)가는 길은 언제나 풍성했고 실록의 녹음은
싱그럽다. 누른 보리가 불어오는 바람에 일렁이고, 모내기를 한 곳이 대부분이지만 아직 늦은
못자리 담수(湛水)에 여념이 없었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 저수지 바닥을 드러낸다는 둥,
모내기를 다시 한다는 둥 비를 원하는 소식들이 계속해서 나온다. 혹여 내일 비가 내릴지! 언
제쯤 내릴는지? 관심 또한 지대하고 하루에 몇 번씩 진주 미천면 날씨 앱을 열어보지만 온다
는 비는 오지 않고, 오보(誤報)를 낸 기상청에 화풀이를 해댄다. 산하는 타들어가고 대한민국
전역은 가뭄에 허덕인다. 날씨는 또한 먹거리까지 큰 영향을 주었고 ‘가뭄에 채소 값 비상’이
라는 기사들이 나오고 있다.
선산을 찾아가는 이유는 5월초에 식재(植栽)한 묘목의 상태가 궁금해서였고, 공들여 심은 나
무가 잘 커 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전번 주 현충일에 ‘찔끔’ 비가 왔지만 가뭄 해소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기상청에서도 넉넉하게 1000mm가 적당히 여러 번에 걸쳐 비가 오면 좋겠
다는 바람이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비 소식이 달갑지 않는 사람도 있으며, 어느 누구는 지금
날씨가 생활하기 딱 좋은 날씨라지만 나의 심사(心事)는 타들어가는 목마름이다. 아마도 며칠
간 햇살과 불어오는 바람이 적당했기 때문이리라. 인디언들이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오는데, 이는 비가 올 때까지 계속 기우제를 드리기 때문이란다. 이 땅에 날씨는 신(神)
이 있다면 신의 영역이라 할 수밖에….
선산을 향해 두 번 절하고 곧장 뛸 듯이 올라간다. 먼저 묘목 이파리부터 확인한다. 백목련·
미니사과·오가피·홍매실 12그루를 심었는데 그중 3그루는 고사상태며 나머지는 잎을 내보이고
미니사과는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렇다. 이 땅에 맞는 수종(樹種)을 발견함과 동시에 앞으로
어떤 종류의 나무를 심어야할지, 가뭄의 적응도를 측정할 수 있는 작은 바로미터가 되었기 때
문이다. 흐르는 개천의 물로 땅을 적신다. 한참을 부어도 더 달라고 한다. 나무마다 두세 번에
걸쳐 듬뿍 물을 주고 그늘에 앉아 잠시 쉬어본다. 뻐꾸기 한 마리 선회하며 묘역을 돌다 소나
무에 낮게 앉아 울기 시작한다. 뻐억~국 뻐억~국,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뻐꾸기를 보았다. 아
마도 상서로운 조짐이라 생각하며, 벌초작업을 시작한다. 정말 이런 햇살과 높은 기온에 기
(氣)는 꺾이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며, 어느 누가 대행해 줄 사람 없지만, 작은 소망이 못
난 나를 춤추게 만든 모양이다.
2시가 가까워지자 허기가 돌기 시작하며, 못 다한 부분은 다음 달에 정리키로 하고 철수한
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개운했다. 신작로를 따라 내려가는 길은 더위 탓인지 한산했고, 입
맛에도 가뭄이 들었다. 의령장터가 가까워지자 “뭐 먹을까?” “소고기국밥, 메밀막국수….” ‘의
령소바’ 본점 앞은 장사진이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길 20여분, 입장을 허락한다. 가위로 4등
분한 거칠거칠한 면이 혀에 부딪치면서 목을 타고 내려가고 냉기가 서린 시원한 육수가 목젖
을 어루만지며 국물이 입속에 밀려든다. 고개를 돌려 밖을 보니 햇살은 도도하게 쏟아지고,
한동안 비 예보가 없으니 마른하늘이 유감(有感)이였지만, 놋그릇을 든 채로 국물을 비우고 있
었고 메밀막국수 한 그릇에 고단함도 다 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