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의 개성 있는 영화제들
매년 세계 3대 영화제인 칸과 베를린, 베니스 영화제 초청작 발표 시즌이 되면 국내 언론은 한국영화 초청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물론 영광일 것이다. 하지만 그 영화제들이 아니더라도, 이 넓은 세상에는 숱한 최고와 최대가 존재한다. 각자의 영역에서 오랜 역사와 꾸준한 성과를 자랑해온 개성 있는 영화제들을 소개한다.
다큐멘터리의 으뜸,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아시아에서 열리는 다큐멘터리 영화제 중 으뜸이다. 암스테르담, 오버하우젠과 함께 세계 3대 다큐멘터리 영화제로도 손꼽힌다. 야마가타 시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1989년부터 격년으로 열리고 있다. 대체로 10월 초에 시작하여 중순에 끝난다. 가장 최근에는 2015년 10월 8일부터 15일까지 열린 바 있다. 이해에는 역대 최다인 1,874편이 출품됐다. 이 중 165편이 5개 상영관에서 상영됐고 국제 경쟁 부문에서는 포르투갈 출신 페드로 코스타의 <호스 머니>가 대상을 수상했다.
야마가타 시 출신인 일본의 대표적인 다큐 감독 오가와 신스케가 이 영화제의 정신적 지주였는데, 1992년에 그가 타계한 뒤 영화제는 1995년에 오가와 신스케 상을 신설하기도 했다. 더불어 2회 때 신설했던 ‘아시아 프로그램’을 ‘뉴 아시안 커런츠’로 확대 개편하면서 아시아 신진 다큐 감독들의 작품을 한눈에 모아 볼 수 있는 부문을 마련한 것이 특징이다.
야마가타다큐멘터리국제영화제와 가장 인연이 깊은 한국의 다큐 감독은 김동원이다. 1991년에 단편 영화 <상계동 올림픽>이 초청된 것을 시작으로 <또 하나의 세상: 행당동 사람들2> <송환> 등이 초청됐다. 2013년에는 김동령과 박경태 감독의 <거미의 땅>이 국제 경쟁 부문에서 국제 경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장르의 경계를 넓힌다,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서 매년 열리는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세계 판타스틱 영화제들 중 최고봉이다. 역사도 오래됐다. 1968년에 판타지와 호러 영화 주간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각종 장르 영화를 모두 포괄하는 역할을 한다. 시체스에서 장르 영화라고 생각하는 영화들의 범위는 무척 넓다. 허우샤오시엔의 <자객 섭은낭>,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찬란함의 무덤>, 켄트 존스의 <히치콕/트뤼포>에 이르기까지 흔히 예술영화라고 구분할 만한 영화들까지도 망라되어 있다.
2015년에는 한국의 장르 영화들 혹은 대중 영화들도 많이 초대받았다. 홍원찬의 <오피스>, 김광태의 <손님>, 박혜미의 <화산고래>, 노진수의 <친절한 가정부>, 유하의 <강남 1970>, 이상우의 <스피드> 등 여러 편이다. 2016년에는 10월 7일부터 16일까지 열릴 예정인데, 한국 장르 영화를 포함한 아시아 영화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일본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의 <크리피>, 홍콩 감독 주성치의 <미인어>, 그리고 한국 감독 김성훈의 <터널>이 거론된다.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2016년에 50주년을 맞은 SF 영화 ‘스타트렉’ 시리즈를 기념하여 특별 행사들을 준비 중이다.
아이들의 눈으로, 즐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즐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가 국내에 잘 알려지게 된 계기는 2016년 국내에서 개봉한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 덕분이다. 이 영화가 국내 개봉 전 즐린의 경쟁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주연을 맡았던 최수인은 최우수 어린이 배우 주연상도 수상했다. 2011년에는 김새론이 주연을 맡았던 <여행자>가 경쟁 부문에 초대받았다. 2013년에는 신수원의 <명왕성>, 김성영의 <후의 게임>, 강이관의 <범죄소년> 등이 초대받은 바 있다.
즐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는 말 그대로 어린이와 청소년을 소재로 삼은 영화들 혹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관객으로 상정한 영화들이 대상인 영화제다. 이런 종류의 영화제로서는 세계 최장의 역사를 지녔고 현재로서도 최대 규모다. 1961년에 체코 즐린 지역의 감독들이 뜻을 모아 시작됐다. 2016년 5월 27일부터 6월 3일까지 열렸던 56회 영화제에는 관객 4만1천 명과 각종 부대 행사 참여 인원 8만4천 명을 합쳐 12만5천 명의 방문객을 유치한 바 있다.
즐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는 프로그램과 심사위원 구성이 흥미롭다. 여러 개의 경쟁 부문으로 나뉘어 있는데, 예컨대 <우리들>은 ‘아이들을 위한 장편영화’ 경쟁 부문에서 수상했다. 각국의 어린이와 청소년을 초대하여 각각 어린이 및 청소년 심사위원단을 따로 구성하는 것도 이색적이다.
내가 애니메이션계의 칸영화제, 안시애니메이션영화제
안시애니메이션영화제는 애니매이션의 칸영화제로 불린다. 매년 6월 프랑스 남부 안시에서 개최된다. 2016년에는 6월 13일부터 18일까지 열렸는데, 83개국에서 230여 편의 작품이 초청됐다.
안시애니메이션영화제는 세계 4대 애니메이션 영화제(안시, 히로시마, 오타와, 자그레브)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녔다. 최초에는 칸영화제 애니메이션 부문으로 출발했으나 1960년에 분리되어 독립적인 행사로 거듭나게 됐다. 독립된 이후 홀수 해에만 개최되다 1997년 이래 매년 열리는 것으로 변경됐다.
1999년 이성강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덤불 속의 재>가 국내 처음으로 ‘단편 애니메이션 비디오 공식 경쟁 부문’에 진출한 바 있고, 2002년에는 역시 이성강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인 <마리 이야기>가 장편 경쟁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2004년에는 성백엽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오세암>이 대상을 수상했다. 2016년에는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 특별전’과 ‘한국 애니메이션의 밤’ 등이 열렸다. MIFA 라는 네트워크 이벤트를 통해 창작자와 제작자, 투자자, 배급업자를 서로 연결해주는 중개의 장을 마련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영화 상영 전 관객들이 종이비행기를 접어 무대로 날리는 작고 정겨운 전통도 있다.
단편영화의 제왕, 클레르몽페랑국제단편영화제
클레르몽페랑국제단편영화제는 프랑스 중부의 도시 클레르몽페랑에서 매년 열리는 세계적인 단편영화제다. 독일의 오버하우젠영화제, 핀란드의 탐페레영화제 등과 함께 세계 3대 단편영화제로 꼽히며 단편영화계의 칸 영화제로도 불린다. 1979년 학생들을 위한 다섯 차례의 시사회 형식인 ‘단편 영화 상영 주간’으로 시작한 이후 1981년까지 유사한 형식으로 진행, 1982년부터는 프랑스 국내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경쟁 부문제가 도입됐다.
대개 1월 말에서 2월 초에 열리는데 2017년에는 2월 3일에서 11일까지 열린다. 부문은 해외 작품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쟁 부문, 프랑스 국내 작품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쟁 부문, 국가별 특별전 등으로 나뉜다. 1986년에 시작한 단편영화 마켓은 세계 최대 단편영화 마켓으로 유명하다. ‘Marche du Film Court’라는 이 마켓은 매년 3,000명 이상의 단편영화 관계자들이 찾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기성 감독이 된 정윤철과 임필성 등의 작품이 이 영화제에 초청된 바 있다. 2016년에는 이영아의 <보일러>, 우경민의 <자니 익스프레스>, 신제민의 <스테이!>등이 초청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