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飮酒)>(제5수).
-도연명-
마을 안에 엮어놓은 오두막집이지만 수레와 말의 시끄러운 소리가 없다. 그대에게 묻노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요?
“마음이 초연하니 사는 곳이 절로 외지다오.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다가 (허리를 펴니) 편안히 남산이 보인다. 산의 모습은 저녁 되어 아름다운데 새들도 함께 보금자리 찾아 돌아간다. 여기에 진실의 암시가 담겨 있어서 따져서 말하려다 이미 말을 잊었다.
結廬在人境,而無車馬喧. 問君何能爾,心遠地自偏. 採菊東籬下,悠然見南山. 山氣日夕佳,飛鳥相與還. 此中有眞意,欲辨已忘言.
▶ 시인은 서두에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농촌 마을에 얼기설기 짚을 엮어 지은
오두막집에 살고 있는데도 수레와 말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시인이 속세의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아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말이며,
설혹 관리가 찾아와 다시 관직에 복귀할 것을 권해도 전혀 그럴 뜻이 없음을 표명한 것이다.
따라서 마음이 속세와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사는 곳이 어디든 그곳은 외진 곳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시인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에 대한 대답으로 시인은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딴다고 했다.
그가 관직을 내던지고 전원으로 돌아가 직접 농사를 지으며
생활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여느 농부와 마찬가지로 아침에 일어나 밭으로 나가
경작에 열중하다가 해 질 무렵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집에 돌아오면 당연히 휴식을 취해야 하겠지만 시인은 그날 그럴 수가 없었다.
경작지가 넉넉하지 못해 울타리 밑에도 밭을 일구어 작물을 재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침 가을걷이가 한창일 때라 동쪽 울타리 밑에 심어두었던 국화도 수확해야 했다.
따라서 시인이 “국화를 딴다”고 한 것은
감상을 위해 국화를 한두 송이 꺾었다는 말이 아니고,
국화 밭에서 국화를 수확하는 노동을 한다는 말이다.
저녁 무렵 바깥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국화를 따느라
허리를 굽히고 계속 일했더니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파온다.
잠시 쉬려고 허리를 펴니 울타리 밖으로 남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 순간 시인은 힘들게 농사를 지으며 사는 전원생활의 즐거움과 보람을 느꼈을 것이다.
시인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돌아본다.
벌써 황혼이 되어 석양의 정경이 아름다운데, 마침 새들이 짝지어 날아가는 것이 보인다.
시인의 눈에는 저 새들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 광경을 보면서 시인은 아침에 일어나 밖에 나가 일하고
저녁이 되면 보금자리를 찾아 돌아와 쉬는 농부의 생활이 자연의 섭리이며,
따라서 가장 자연스럽고 보람 있는 삶임을 체득했을 것이다.
마지막 두 구절은 시인의 그와 같은 깨달음을 확인시켜 준다. “말을 잊었다”는
표현은 참된 뜻을 체득했다는 말로서, ≪장자(莊子)≫ <외물(外物)>의 “통발은
그 목적이 물고기에 있으므로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고,
올무는 그 목적이 토끼에 있으므로 토끼를 잡고 나면 올무를 잊고,
말은 그 목적이 뜻에 있으므로 뜻을 얻고 나면 말을 잊는다”2)에서 빌려온 것이다.
이렇게 보면 도연명의 이 시는 ‘술 마시는 시’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 시에는 술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으며, 그가 묘사하고 서술한 것은 전원생활과
그 속에 담겨 있는 생활철학이다.
그런데 도연명은 왜 시 제목을 ‘음주’라고 했을까?
이 의문점을 풀기 위해 기원전 1세기경에 초(楚)나라 시인 굴원(屈原,
BC 340?∼BC 278?)의 이름을 빌려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어부사(漁父辭)>를 살펴보자. 조정에서 쫓겨나 초췌한 몰골로 강가를 헤매고 있는
굴원에게 한 어부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소?”라고 묻자,
굴원은 “모든 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나 홀로 깨어 있었기 때문이오”3)라고 대답했다.
여기서 분명 ‘취(醉)’는 ‘비정상적인 상태’에 빠져 있다는 의미를 함유한 말이었는데,
기원후 100년경 후한(後漢)의 허신(許愼)이 유가 경전의 해설을 위해 지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이 글자를 “예의에 어그러짐이 없이
자신의 주량이 한계에 도달한 것”4)이라고 풀이한 이래 음주 행위는 서서히
고대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일상에서 벗어나 정신적인 면에 빠져드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 후 위진(魏晉) 교체기에 사회가 극도로 혼란해지자 죽림칠현(竹林七賢) 중의 한 사람인
유영(劉伶, 225?∼280?)이 <주덕송(酒德頌)>을 지어 술의 미덕을 찬미했는데,
이때부터 중국의 시인들은 술 마시는 행위를 ‘암담한 현실과 개인적인 번민으로부터
빠져나가는 수단’으로 서술하기 시작했다.
도연명이 관직을 내던지고 농사지으며 사는 것을 선택한 동기가
“암담한 현실과 개인적인 번민으로부터 빠져나가 유유자적한 생활 속에서
인생을 사색하는” 데 있었으므로 시의 제목을 ‘음주’라고 붙인 것이다.
이와 같이 도연명의 시는 바로 일상생활에서 깨닫는 철학적 이치와
서정성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다.
각주
- 1) 위진(魏晉)시대 청담가(淸談家)들이 노자(老子), 장자(莊子)의 언어를 모방해 쓴 시.
- 2) “筌者所以在魚, 得魚而忘筌; 蹄者所以在兎, 得兎而忘蹄; 言者所以在意, 得意而忘言.”
- 3) “衆人皆醉我獨醒.”
- 4) “卒其度量, 不至於亂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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