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나와 가시미로
― 눈물의 겨울을 지나 희망의 봄으로
삶에는 참 이상한 순간이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캄캄했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느 날 문득 작은 빛 하나가 들어온다.
처음에는 그것이 희망인지도 모른다.
그저 조금 따뜻해진 햇살 하나,
누군가 건네는 차 한 잔,
“괜찮아요.”라는 짧은 말 한마디.
그런 작은 빛들이 하나둘 모여
마침내 사람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보나와 가시미로에게도
그런 봄이 찾아왔다.
보나는 먼 이국땅 중국에서 태어나
한국이라는 낯선 땅으로 건너왔다.
새로운 삶을 꿈꾸며 왔을 것이다.
하지만 타국에서의 삶은 생각처럼 녹록하지 않았다.
십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보나는 가진 것이 많지 않은 곳에서
혼자 아들 가시미로를 키우며 살아냈다.
어머니에게 세상은 때로
가시밭길과 같았을 것이다.
병마까지 찾아왔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약해진다.
그러나 보나는 주저앉지 않았다.
아들을 바라보며 다시 일어났고,
하루를 견디고 또 하루를 견뎠다.
허름한 집.
바람이 스며드는 벽.
오래된 벽지.
생활의 무게가 고스란히 내려앉은 작은 공간.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집을 찾으면
따뜻한 차 한 잔이 있었다.
보나의 미소가 있었다.
힘겨운 사람이 오히려
다른 사람을 위로할 때가 있다.
보나가 그랬다.
자신의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다른 사람에게 미소를 건넸다.
그렇게 보나와 가시미로는
소금창고1004의 이웃이 되었다.
우리는 대단한 것을 해줄 수는 없었다.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내어주고,
고개 숙인 어깨를 토닥여주고,
함께 기도해주는 것.
그러나 돌아보면
그 작은 손길들이 결코 작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는 날에는 함께 울었고,
막막한 날에는 함께 기도했다.
보나의 아픔을 해결해줄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그 아픔을 혼자 견디게 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식이 왔다.
정부 임대 아파트에 당첨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보나의 얼굴에 오랜만에 환한 빛이 번졌다.
“이제 새로 시작할 수 있겠구나.”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이제 정말 봄이 오는구나.
새 아파트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새로 도배한 벽.
깨끗하게 깔린 장판.
환하게 들어오는 햇살.
크지는 않았지만
그곳에는 이상할 만큼 따뜻한 기운이 가득했다.
나는 그 작은 집을 바라보며
한 사람의 삶도 이렇게 새로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집이 새로워진 것만이 아니었다.
삶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그런데 기쁜 소식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보나가 말했다.
“가시미로가 장학금을 탔어요.”
그 순간
어머니의 얼굴에 피어나는 자랑스러운 미소를 보았다.
아들이 잘 자라고 있다는 것.
학교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
착하고 밝은 아이로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있다는 것.
그것은 오랜 세월 고생해온 엄마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었을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저 아이가 바로 엄마에게 주어진 희망이구나.’
어쩌면 보나가 그렇게 많은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도
가시미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시미로에게는
어머니가 세상의 가장 든든한 울타리였을 것이다.
모자는 서로에게
삶을 버티게 하는 힘이었다.
그런데 보나에게는
또 하나의 큰 선물이 있었다.
신앙이었다.
한국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던 중
보나는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보나’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가시미로 역시 세례를 받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보나는 내게 말했다.
“주님께서 계셨기 때문에
제가 여기까지 왔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동안 함께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던가.
얼마나 많은 밤을 견뎠던가.
얼마나 많은 순간
‘이제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했을까.
그런데 이제 보나는
청원기도보다 감사기도를 더 많이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가만히 미소 지었다.
사람은 환경이 좋아져서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속에 하느님이 계심을 알게 될 때
같은 삶도 감사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보나는 그런 이야기도 했다.
예전에는 잘되지 않는 일들을 보며
세상을 원망하고 부모를 원망하기도 했을 것이라고.
그러나 지금 돌아보니
그때의 어려움조차
더 좋은 곳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참 오래 마음에 남는 생각을 했다.
고난의 의미는
그 고난을 지나온 사람만이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때는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는지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 길을 지나왔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새 집을 다시 바라보았다.
깨끗한 벽.
새 장판.
아직 살림살이가 많지 않은 작은 공간.
그러나 나는 그 집에서
무엇보다 먼저 행복을 보았다.
냉장고가 놓이고,
살림이 하나둘 채워지고,
가시미로가 학교에서 돌아오고,
보나가 따뜻한 밥을 차리는 날들.
평범해 보이는 그 일상이
그들에게는 얼마나 귀한 축복일까.
나는 그 집에 서서
조용히 기도했다.
“주님,
여기까지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모자의 마르지 않던 눈물을 닦아주시고
쌓였던 서러움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은 집을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집으로 만들어 주세요.
보나가 이제는
두려움보다 감사로 하루를 살아가게 하시고,
가시미로가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
자신이 받은 사랑을
또 다른 사람에게 나누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그리고 이들이 오늘 받은 축복을
평생 잊지 않게 해주세요.”
나는 그렇게 기도하고
그들의 집을 나섰다.
돌아오는 길에
이상하게 마음이 참 따뜻했다.
생각해보면
소금창고1004가 한 일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우리가 보나의 인생을 대신 살아준 것도 아니고,
그녀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 것도 아니다.
그저 곁에 있었다.
울 때 함께 울고,
기도할 때 함께 기도하고,
기쁠 때 함께 기뻐했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면 충분했는지도 모른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때로 정답이 아니라
자신의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보나와 가시미로에게
우리가 건넨 것은 작은 손길이었지만,
그 작은 손길들이 모여
어느새 한 가족의 삶에
따뜻한 봄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배운다.
사랑은 거창하지 않다는 것을.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는 것.
함께 기도하는 것.
기쁜 날 함께 웃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사람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긴 겨울 뒤에는 반드시 봄이 온다.
눈물의 시간이 지나면
웃음의 시간이 찾아온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때때로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그 봄을 준비하고 계신다.
보나와 가시미로에게
그 봄은 작은 임대 아파트였고,
아들의 장학금이었으며,
기도할 수 있는 신앙이었고,
함께 울어주었던 이웃들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가장 깊은 곳에는
말없이 그들을 붙들고 계셨던
주님의 사랑이 있었다.
나는 믿는다.
오늘도 세상 어딘가에는
아직 겨울을 지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 곁에
작은 촛불 하나만 켜준다면,
따뜻한 차 한 잔만 건네준다면,
손 한 번만 꼭 잡아준다면,
그 사람의 마음에도
언젠가는 봄이 올 것이다.
보나와 가시미로에게 찾아온 봄처럼.
그리고 그 봄의 첫 햇살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닿기를.
그렇게 사랑은 이어지고,
희망은 전해지고,
하느님의 따뜻한 손길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흘러간다.
소금창고1004.
작은 사랑이 모여
누군가의 긴 겨울을 끝내고
다시 봄을 열어주는 곳.
나는 오늘도 그 봄을 믿는다. 🌱
아멘.
첫댓글 행복은 행운이 아닙니다. 고난 끝에 피어나는 작은 감사에서 비롯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