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석굴암(慶州石窟庵) 경상북도 경주시 토함산(吐含山) 동쪽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김대성이 창건한 사찰. 암자. 국보.
경주 석굴암 석굴은 경상북도 경주시 토함산 동쪽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김대성이 창건한 사찰 암자이다. 창건 당시의 이름은 석불사였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김대성 개인의 발원에서 시작되었지만 경덕왕의 원찰로서, 또 나라를 수호하려는 국찰로서 경영되었다. 자연석을 다듬어 만든 인공석굴 구조에 본존불상을 중심으로 정교한 계산 속에 배치된 아름다운 불상들은 완벽한 불국토를 연출한다. 종교성과 예술성에서 우리 조상이 남긴 가장 탁월한 작품이자 전세계의 종교예술사에서도 빛나는 유산이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대한불교조계종 11교구 본사인 불국사(佛國寺)의 부속암자이다. 창건 당시의 이름은 석불사(石佛寺)였다. 1995년 유네스코(UNESCO)에서 제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751년(경덕왕 10) 김대성(金大城)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석굴암에 관한 가장 오래된 문헌으로는 일연(一然)의 『삼국유사』 권5 「대성효이세부모신문왕대(大城孝二世父母神文王代)」를 들 수 있다.
그 중에서 석굴암의 창건에 관한 기록을 보면, 김대성은 현세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세우고 전생의 부모를 위하여는 석불사를 세워서 신림(神琳)과 표훈(表訓)을 청하여 각각 머무르게 하였다. 그리고 석불을 조각하려고 큰 돌 한 개를 다듬어 감개(龕蓋: 감실을 덮는 천장돌)를 만드는데 돌이 문득 세 조각으로 갈라졌다. 이에 분노하다가 그 자리에서 잠들었는데, 밤중에 천신(天神)이 내려와 제 모습대로 만들어 놓고 돌아갔으므로 일어나 남쪽 고개에 급히 올라가 향나무를 태워 천신을 공양(供養)하였다고 한다.
석굴암은 신라인의 믿음과 슬기로 만들어진 찬란한 문화의 금자탑(金字塔)이다. 그것은 비단 미학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그러한 걸작을 이룩하게 된 신라인의 민족혼이 내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모은다.
석굴암은 신라인의 신앙의 소산이며, 치정자와 백성이 혼연일치된 민족정신의 응결체이다. 석굴암은 단지 김대성의 개인적인 발원(發願)에 의해서 창건되었다기보다는 거족적인 민족의 발원이었다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석굴암의 사상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몇 가지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첫째, 왜 석굴암이 토함산에 자리잡게 되었겠는가 하는 문제이다. 토함산은 신라오악(新羅五岳)의 하나로서 신라인들에게는 영악(靈岳)으로 존숭받았던 산이다. 토함산은 동악(東岳)으로서, 그 이름과 방위로 보아 일찍부터 용(龍)의 신앙과 결부된 영지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러한 영악에 석굴암이 건립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아래 석굴암 내부 사진들은 석굴암 홈페이지에서 내려 받은 사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