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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 고미숙
“고향을 감미롭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허약한 미숙아다. 모든 곳을 고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상당한 힘을 갖춘 사람이다. 그러나 전세계를 낯설게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완벽한 인간이다.”-신비주의 스콜라 철학자 ‘빅톨 위고’
이질적인 마주침과 신체적 변이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어떤 화려한 여행도 타인에게 과시하기 위한 ‘패션’ 혹은 ‘레저’ 이상이 되기 어렵다.
내가 아는 한 여행이란 이런 수준을 넘기가 어렵다. 하긴, 그런 건 여행이라기보다 관광이라고 해야 적절할 것이다.
『동방견문록』 『걸리버 여행기』, 『이븐 바투타 여행기』, 『돈키호테』, 『을병연행록』 등등.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열하일기』에 견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두 ‘여행’에 관한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이국적 풍광과 습속을 나열하거나 낯선 공간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스토리를 엮어가거나, 기념비와 사적들, 사람들의 이름을 밑도 끝도 없이 주절대거나, 무엇보다 거기에는 ‘유머’가 없었다.
결국 형식이 어떻든 그 텍스트들이 스쳐 지나가는 외부자의 파노라마에 불과했다. 그런 점에서 명실상부한 여행기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열하일기』는 여행기가 아니다.
여행이라는 장을 전혀 다른 배치로 바꾸고, 그 안에서 삶과 사유, 말과 행동이 종횡무진 흘러다니게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흐름 속에서 글쓰기의 모든 경계들, 여행자와 이국적 풍경의 경계, 말과 사물의 경계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도시인들이 보는 전원, 동양인의 눈에 비친 서구, 서구가 발견한 동양. 사실 이런 건 모두 외부자가 낯선 땅을 ‘홀깃’ 바라보고서 자신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내 허상 아니던가.
이 모든 것들이 궁극적으로는 ‘근대주의’라는 목적론의 산물이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들’과의 만남 이후 나는 그간 ‘철의 강령’처럼 지니고 다녔던 ‘근대, 민중, 민족’이라는 척도를 ‘놓아 버렸다’. 마지막으로 ‘문학’이라는 척도까지. 이 모든 것들이 궁극적으로는 ‘근대주의’라는 목적론의 산물이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맑스주의조차도 궁극적으로는 그 ‘필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뼈아프게 확인해야 했다. 근대성에 대한 계보학적 탐색을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이다.
사건의 전말
문체반정이 피 튀기는 정쟁은 아니었으나, 그 파장은 가혹했다. 19세기는 지성사적 측면에선 ‘암흑기’라 해도 좋을 정도로 황량하기 그지없다. 피를 흘리지도, 경제적 제재를 가하지도 않았건만 지식인들은 자기검열을 통해 스스로를 길들여 갔던 것이다.
곰곰히 따져보면, 정조가 아니고는 당시 유행하는 문체가 불온하다는 것을 감지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산림처사로부터 도학적 훈육을 받기에 급급했던 여타 평범한 왕들로서야 무슨 안목으로 시정에 유행하는 문체가 순정한지 타락한지 알아차릴 수 있었겠는가. 그러니 문체반정은 순전히 정조시대의 산물인 셈이다.
문체는 한 시대가 지니는 사유체계 및 인식론의 표현형식이다.
보는 것의 위태로움
“소리와 빛은 외물이니 외물이 항상 이목에 누가 되어 사람으로 하여금 똑바로 보고 듣는 것을 잃게 하는 것이 이 같거든, 하물며 인생이 살아가는 데 있어 그 험하고 위태로운 것이 강물보다 심하고, 보고 듣는 것이 문득 병이 되는 것임에랴.”
타자의 시선으로. 시선은 대상을 보는 주체의 관점에 다름아니다. 이것이 공고해질 경우, 견고한 표상의 장벽이 구축된다. 소중화주의나 ‘레드 콤플렉스’ 등 한 시대를 관통하는 이데올로기 또한 결국은 시선의 문제 아니겠는가.
연암의 패러독스는 무엇보다 시선의 자유로운 이동을 수반한다.
시점변환이야말로 연암이 즐겨 사용하는 기법 중 하나다. 말하자면, 타자의 눈을 통해 조선의 문화나 습속을 바라봄으로써 익숙한 것들을 돌연 ‘낯설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예컨대 조선 사신들의 의관은 신선처럼 빛이 찬란하건만, “거리에 노는 아이들까지도 놀라고 괴이하게 여겨서” 도리어 연극하는 배우 같다고 한다. 또 도포와 갓과 띠는 중국의 중옷과 흡사..”저 중은 어디에서 왔을까” 한다. 유학자보고 중이라니?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은 알지 못한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법이다.
타인의 고루한 편향을 보는 건 쉽다. 그러나 그 시선을 자신에게 비추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므로 자신을 기꺼이 타자의 프리즘 속에서 볼 수 있는 건 고정된 위치를 벗어나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자유에 다름아니다. 연암의 패러독스가 한층 빛나는 건 바로 이런 ‘자유의 공간’에서이다.
원래 추종세력이 원조보다 한술 더 끄는 법.
북벌론은 속이 텅 빈 망상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었다.
결국 “역리와 순리만 있지, 옳고 그른 것은 없”는 법이니, “의리란 때를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내가 이제야 도를 알았다.
‘촛불 사건’? 『열하일기』기 불태워질 뻔한 건 국가제도나 정치적 반대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연암 주변인물에 의해 일어난 일이었다. “권력은 늘 인접한 곳에서 작동한다”고 한 미셸 푸코의 말이 환기되는 대목이다
분명 『열하일기』는 문제적 텍스트다.
어떤 방향에서건 사람들을 자극할 요소들을 무한히 내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악의적 비방이든 애정어린 비판이든 『열하일기』의 진면목을 본 이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18세기를 특이한 연대로 만드는 데 있어 연암은 독보적 위상을 점한다. 연암이 없는 18세기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패관잡기란 ‘시중에 떠도는 까끄라기’ 같은 글이란 뜻으로, 소설, 소품, 기타 잡다한 에세이류가 거기에 해당된다. 요즘으로 치면 베스트셀러 목록을 장식하는 글들에 해당되는데, 당시에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은 것이다.
연산군을 폐위시킨 중종반정이나 광해군을 실각시킨 인조반정, 그리고 문체반정. 조선사를 장식하는 ‘반정’은 이 세 가지가 전부다. 차이는 ‘유혈 쿠테타’와 ‘문화혁명’(?)이라는 점 말고도, 국왕이 직접 나서서 사건을 주도했다는 점.
문체와 통치가 무슨 연관이 있길래 국왕이 손수 검열을 진두 지휘한단 말인가?
사대부들의 사유 및 신체를 이 표상의 범위 안에 묶어 놓는다는 점에서 체제를 유지하고, 지배적 담론을 재생산하는 유효한 장치로 기능. 고(古)란 무엇인가? 중국의 고대이다. 고문이란 그때 완성된 문장의 전범들. 즉 시간적으로는 아득한 옛날, 공간적으로는 저 중원땅을 향하게 함으로써 ‘지금, 여기’를 돌아보지 못하게 만드는 교묘하면서도 집요한 습속의 장치! 그것이 바로 고문이었다.
연암의 문장론. 진실로 능히 옛것을 본받으면서 변화할 줄 알고, 새것을 만들면서도 법도에 맞을 수만 있다면 지금의 글이 옛글과 같게 될 것이다…하늘과 땅이 비록 오래되었지만 끊임없이 생명을 내고, 해와 달이 비록 오래되었어도 그 광휘는 날마다 새롭다…썩은 흙에서 지초가 나오고, 썩은 풀이 반딧불로 화한다.
오히려 연암체의 진수는 대상과 소재에 따라 변화무쌍한 변이 능력에 있다.
연암체가 과연 그러하다. 그의 글은 소설과 소품, 고문과 변려문 등이 자유자재로 섞이는 한편, 천고의 흥망성쇠를 다룬 거대담론과 시정의 우스갯소리, 잡다하고 황당한 이야기들이 공존하고 있다. 그것은 어떤 하나로 분류되는 순간, 그 그물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가 전혀 다른 표정을 짓곤 한다. 순식간에 얼굴을 바꿔버리는 ‘변검’처럼, 그리고 그 변화무쌍한 얼굴들의 각축장이 바로 『열하일기』다.
유머의 나의 생명. ‘스마일(笑笑) 선생’
연암만큼 유머를 정치적으로 잘 활용한 이도 드물다.
빛나는 엑스트라들. 귀밑의 사마귀까지 캐치하는 놀라운 관찰력! 그래서 그들은 별볼일 없는 인물이지만 출현하는 장면마다 강렬한 악센트를 부여한다. 이름하여 ‘빛나는 엣스트라’.
누구든 그렇다. 연암과 함께 움직이면, 혹은 연암의 시선에 나포되면 누구든지 ‘익명의 늪’에서 돌연 솟아올라 그만의 특이성을 분사한다.
이런 진솔함이야말로 연암이 유머를 구사하는 원동력이다.
이런 식의 ‘유영’이 가능하려면 자신을 아낌없이 던질 수 있는 당당함이 요구된다. 자의식 혹은 위선이나 편협함이 조금이라도 작용하는 한, 이런 식의 태도는 불가능하다. 웃음이란 기본적으로 자아와 외부가 부딪히는 경계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프롤로그에서 말했듯이,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웃음이야말로 그 꽃들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이 유쾌한 유머 행각(?)들은 어떤 대상과도 접속할 수 있는 유목적 능력, 혹은 자신을 언제든 비울 수 있는 ‘무심한 능동성’의 소산에 다름아니다. 말하자면 그는 비어 있음으로 해서 어떤 이질적인 것과도 접속할 수 있었고, 그 접속을 통해 ‘흠패인 공간’을 ‘매끄러운 공간’으로 변환할 수 있었다. 그러고는 그 위에서 종횡무진 뛰어놓았던 것이다. 마치 「모던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처럼.
시선의 전복, 봉상스의 해체. 패러독스란 봉상스의 둑이 무너진 틈을 타고 범람하는 앎의 새로운 경지이다.
이런 식으로 연암은 패러독스를 통해 저 높은 곳 혹은 심층에서 놀고 있는 관념들을 표면으로 끌고와 사방으로 분사하게 만든다. 처음엔 그의 궤변에 당혹해 하고 어이없어 하다가도 차츰차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결국엔 설복당하고 만다.
시기하는 마음…이는 곧 견문이 좁은 탓이리라. 만일 여래의 밝은 눈으로 시방세계를 두루 살핀다면, 어느 것이나 평등하지 않음이 없으리니, 모든 것이 평등하면 저절로 시기와 부러움이 없어지리라.
소경의 눈에는 어떠한 위태로움도 보이지 않는데 무엇이 위태롭단 말이요.
보는 것의 위태로움. 그것은 결국 자신의 눈을 앎의 유일한 창으로 믿는 데서 오는 것이다. 감각을 앎의 유일한 원천으로 삼을 때 삶은 얼마나 위태롭고 천박해질 것이가…”소리와 빛은 외물이니 외물이 항상 이목에 누가 되어 사람으로 하여금 똑바로 보고 듣는 것을 잃게 하는 것이 같거든, 하물며 인생이 살아가는 데 있어 그 험하고 위태로운 것이 강물보다 심하고, 보고 듣는 것이 문득 병이 되는 것임에랴.”
‘중화/오랑캐’ ,’조선/청’ 이런 식의 이분법은 지식인들을 맹목으로 만든다. 그래서 청나라가 베푸는 호의에 대해서도 눈을 감게 만든다. 편협한 소중화, 조선/ 호탕하고 유연한 오랑캐, 청.-실제 현실은 이렇게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이 소중화주의에 사로잡히면 잡힐수록 청의 대국적 유연함은 더 한층 돋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18세기 조선의 비극이자 아이러니다.
도그마란 원초적으로 배제와 부정의 메커니즘을 통해서 작동한다. 서구 중세의 ‘마녀사냥’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긍정적 생성을 통해 가치를 계속 증식해 나갈 수 있다면 굳이 이단을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니, 이단이라는 개념 자체도 불필요할 것이다.
문명의 충돌은 언제나 종교를 통해 이루어진다
연암과 다산의 차이? 두 실학자? 유목민과 정주민-연암과 다산은 이토록 이질적이고 상이한 계열의 존재들이다.
“두 사물을 같은 것으로 보려고 마음먹는다면, 어떤 것에서도 비슷한 점을 발견하고야 말 것이다.”
동일성에 대한 집착 혹은 차이를 보지 못하는 무능력, 근대적 합리성의 실체는 이런 것이 아니었을지. 이런 강박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조선 후기는 예기치 않은 목소리들이 웅성거리는 ‘지적 향연’의 장을 우리 앞에 펼쳐 보일 것이다.
연암과 다산의 차이는 단지 그 서곡에 불과할 따름이다.
함께 읽어야 할 텍스트
『열하일기1,2』 (민족문화추진회, 1968)
『나의 아버지 박지원』(박종채,돌베개1988)
『비슷한 것은 가ㅉ다』(정민2000)
『산해관 잠긴 문을 손으로 밀치도다』(홍대용)
『조선의 협객 백동수』(김영호,2002)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1,2,3,』
『노마디즘』(이진경,휴머니스트2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