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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vs 현실, 막장스코어는 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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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있다. 예쁘다. 그리고 착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가난 하다. 처음 직업은 보통 그냥 알바인 경우가 많다. 보통 엄마, 아빠 둘중 하나 이상은 없다. 그런데 타고난 재능이 있어 디자이너를 꿈 꾼다. 첫 번째 남편은 바람을 피운다. 크게 상처받고 쫓겨난다. 고 생한다. 그러다가 재벌2세를 만난다. 심지어 잘생기고 참 착한 재벌 2세다. 이 남자 덕분에 착한여자는 자신을 버린 전남편에게 복수할 기회가 생긴다. 이 재벌 2세는 친엄마가 없다.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재벌2세 주변 인물 중 착한 여자의 친엄마가 있을 것이다.
최소 100회 이상을 방영한 드라마의 스토리다. 30분씩 100회, 약 3000분, 50시간의 스토리가 이게 다다. 그리고 이런 스토리의 드라 마가 하루에도 모든 채널을 통하여 최소 5개는 방영되고 있다. 같은 대본에 배우만 바꿔서 나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스토리가 아주 유사 하다. 뻔한 소재에 불륜과 치정극, 출생의 비밀, 우연적으로 알게 되는 커다란 비밀...보통 이런 류의 드라마를 우리는 막장드라마 라 고 부른다.
하다못해 옷도 비슷한 옷은 또 안 사입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드 라마는 똑같은 스토리를 죽어라 보고 있다. 그럼 왜 이렇게 이런 단 순한 구조의 막장드라마가 시청률이 잘 나오는 것일까?
첫 번째로는 판타지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착하다. 그래서 못된 사람이 벌을 받고 착한 사람이 잘 살기를 꿈꾼다. 하지만 현실은 결 코 그렇지 못하다. 뭔가 뒤가 구린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어른이 되어가며 너무 자주 목격한다. 아니 오히려 착하게 사는 사 람들이 대부분 고생하고 잘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된다. 사회생활 을 잘 하려면 온갖 부조리한 세상에 자기자신의 양심을 던져 넣어야 하는 것도 깨닫게 된다.
심지어 자신의 이익이 없는 것에 헌신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러지 말라는 따뜻한 충고(?)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어찌 되었든 정의가 승리하니까...그것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결말 이 나올 때까지 온갖 말도 안되는 스토리가 전개되어도 꾹 참고 본 다. 악역을 마구 욕해가며 드라마의 결말 한 회를 보기 위해 나머지 부분을 참고 견뎌내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회가 끝나고 결국 착한 사람이 잘 사는 장면을 보며 조금의 위안을 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우리나라의 여가, 문화생활여건이 매우 열악하기 때문 이다. 다양한 문화를 즐기고 여가생활을 하는데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드는데 비해 대다수의 사람들은, 특히 결혼한 여성의 경우는 경제적 으로도 여유가 없을뿐더러 육아와 가사, 혹은 직장일 때문에 시간적 여유도 거의 없다. 따라서 외부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TV가 되었고 이 때문에 컨텐츠의 질이 좋던 나쁘던 상관없이 일정수준의 시청률 은 보장되고 그에 따른 광고수입도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싸구려 옷 10벌을 파는 것과 좋은 옷 1벌을 파는 것이 수입은 어차피 비슷 하니까 만들기 쉬운 싸구려 옷 10벌을 만들어 파는 것이 더 편하다 는 것을 방송사들은 잘 알고 있다.
세 번째는 대한민국 여성에 대한 편견이다. 특히 여성에 대해 뭐 든지 남자에 의존하려 한다거나 다른 여성이 잘 되는 것에 질투 한 다는 편견이 그것이다. 남자는 나름 고생하며 살아가는데 여자들은 남자들에 의존해 날로 먹으려 한다는 편견 말이다. 물론 그런 사람 도 있겠지만 이 편견은 의외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 다. 심지어 여성들 스스로도...드라마는 이 부분을 건드린다.
드라마의 여자주인공이든, 악역이든 남자에 의존하는 캐릭터로 만들고 남자는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주는 역할을 보여주면서 편견을 가진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낸다. 사람들은 자신이 생소한 부 분에 대하 접근하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편견 과 비슷한 방향으로 흐르는 드라마에 공감할 수 밖에 없고 이는 높 은 시청률로 이어진다. 여자주인공이 더 고통받을수록 악역의 더욱 못된 짓을 할수록 시청률은 높아진다. 무슨 변태들도 아니 고...
네 번째는 케이블, 종편 채널의 확대이다. 수많은 케이블 및 종 편채널들이 생겨나긴 했지만 아직 컨텐츠가 별로 없는 것이 사실이 다. 그렇다고 방송을 중간에 멈출수도 없으니 시간을 때울 프로그램 이 필요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시간대는 특히 평일 낮시간대인데 그 때의 주 시청자는 대부분 주부가 된다. 케이블 입장에서는 별도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 보다 공중파의 드라마를 사와서 재방송하는 것이 훨씬 이익이 되는 것이고 공중파 방송사 입장에서도 싸게 대충 만들어 놓아도 자신들의 시청률은 물 론 향후 케이블에 재판매 할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의 수입을 올리게 되지 않겠는가?
다섯째는 우리나라 전반의 사회문제 관심의 부족이다. 우리나라 의 많은 사람들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개인의 문제로 치 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좋은 대학에 못가면 그 학생이 단지 공부를 안했기 때문이라 학생을 욕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노력하지 않았 기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의 원인을 사회적 구조에서 찾지 않고 오로지 개인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 다. 100개의 자리가 있는데 1000명이 열심히 노력한다한들 900명은 어쩔 수 없이 밀려나게 되는 현실에서 자리를 1000개를 만들 생각을 하지 않고 밀려난 900명을 비난만 하면 무슨 일이 해결이 되겠는가.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다. 드라마가 어떻게 끝나든 현실 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방송사들은 결코 그러한 시청자들의 현실 따위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로지 시청률과 그에 따라 단가 가 매겨지는 광고수입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드라마에서 정치를 다루고 그것이 현실과 닮아 있다고 해서 드라마의 내용을 저 높은 위정자들이 참고한다거나 하는 일 따위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드라마에서 오는 환상은 변화없는 현실을 괜찮아 보이도 록 만드는 착시현상을 가져오는 마약같은 역할을 할 뿐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희망이 없어 자살을 하고, 누군가는 누군가는 취업이 안돼 좌절하고, 누군가는 문서를 조작하고, 누군가는 갑자기 기억상실증 에 걸렸단다. 이미 대한민국에서 사는 당신은 막장드라마의 주인공 이나 다름없다. 또 보고 싶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