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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12
1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2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4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5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6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7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8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9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10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11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12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34. 현자들의 경배(The Adoration of the Wise Men)
1944. 2. 28.
나의 내적인 목소리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말해주고, 네가 받으려 하는 관상들을 ‘믿음의 복음들’이라고 불러라. 왜냐하면 그것들은 너와 다른 사람들에게 믿음의 힘과 그것의 열매들을 분명하게 말해줄 것이고, 하느님에 대한 믿음 안에서 너희를 견고하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베들레헴의 별
나는 작고 하얀 베들레헴이 한 배의 병아리들처럼 별빛 아래 모여 있는 것을 본다. 두 개의 넓은 길들이 직각으로 교차한다. 길 하나는 읍내 너머로부터 이 읍내를 지나서까지 계속되고, 다른 길은 읍내를 가로질러 가지만, 더 나아가지는 않는다. 좁은 길들이 이 작은 도시 여기저기에 뚫려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도시계획은 흔적도 없다. 길들은 여기저기에 지어져 있는 집들과 지면의 뜻밖의 기복들과 건축자의 변덕들에 적응해 있다.
어떤 집들은 오른쪽을, 어떤 집들은 왼쪽을 향하여 있으며, 어떤 집들은 도로가 꺾이는 구석에 있어 결과적으로 아무런 굴곡 없이 이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이어지는 직선이 아니라 구불구불하게 풀리는 리본처럼 보인다. 이따금씩 장터나 샘으로 사용되는 작은 광장이 있고, 때로는 무턱대고 지은 집들로 인하여 더 이상 아무것도 지을 수 없는 작은 자투리 경사지로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내가 머무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곳에 그런 이상한 작은 광장들 중 하나가 있다. 광장이라면 정사각형이거나 장방형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광장은 꼭짓점이 뭉개진 예각삼각형처럼 보이는 아주 이상한 사다리꼴이다. 삼각형의 밑변들 중 가장 긴 변에 이 마을에서 가장 넓은, 낮고 넓은 건물이 있다. 밖에서 보면 지금은 닫혀 있고 두 개의 대문만이 있는 매끈하고 아무 장식도 없는 높은 담이 여기 있다.
그러나 안쪽 넓은 마당에는 이층에 많은 창문들이 있고, 그 아래에는 짚과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려 있고, 말과 다른 짐승들에게 물을 먹이기 위한 수반들이 있는 마당을 둘러싸고 회랑들이 있다. 촌스러운 회랑의 기둥들에는 짐승들을 매는 고리들이 있고, 한쪽에는 양 떼들과 타는 짐승들을 위한 넓은 헛간이 있다. 나는 이것이 베들레헴의 여관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삼각형의 다른 두 등변들에는 몇 채의 집들이 있다. 어떤 집들은 크고, 어떤 집들은 작으며, 어떤 집 앞에는 작은 정원이 있고, 어떤 집에는 없다. 왜냐하면 어떤 집들의 정면은 광장 쪽을 향하여 있고, 다른 집들은 후면이 광장을 향하여 있기 때문이다.
더 좁은 쪽, 대상들의 숙소 맞은편에는 정면 한가운데에 이층 방들로 올라가는 바깥 계단이 달려 있는 유일한 작은 집이 있다. 지금은 밤이기 때문에 모든 방들이 닫혀 있다. 지금은 심야이기에 거리들에는 아무도 없다.
나는 동방의 하늘이 몹시 아름다운 별들로 가득 차 있는 밤에 빛이 환해지는 것을 본다. 그 별들은 매우 생생하고 무척 커서 아주 가까운 것처럼 보여 나는 벨벳 같은 하늘에서 반짝이고 있는 저 꽃들을 만질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점점 더 밝아지는 빛의 출처를 보려고 눈을 든다.
달도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범상치 않은 크기의 별 하나가 베들레헴의 하늘을 향하여 움직이고 있다. 다른 모든 별들은 마치 자신들의 여왕이 지나갈 때 시녀들이 하는 것처럼 슬그머니 물러나 그 별에게 자리를 내준다. 그만큼 그 별의 광채는 다른 모든 별들을 압도한다. 안에서 하나의 태양이 비추고 있는 것과 같은 거대한 연한 사파이어처럼 보이는 항적이 하늘에서 출발하는데, 우세한 연한 사파이어 색에 황옥들의 황금빛, 에메랄드들의 초록빛, 오팔들의 우윳빛, 루비들의 피처럼 붉은 빛, 자수정들의 부드러운 반짝임들이 그 안에 섞여 있다.
땅 위의 모든 보석들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빠르고 물결치는 움직임으로 하늘을 휩쓰는 항적에 들어 있다. 그러나 우세한 색깔은 그 별의 구체로부터 발산되는 색깔인데, 그것은 베들레헴의 집들, 거리들, 땅, 구세주의 요람으로 내려와 푸르스름한 은색처럼 보이는 천국의 연한 사파이어 색이다.
이곳은 더 이상 가난한 소도시가 아니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이곳은 시골마을보다 더 작지만 말이다. 이곳은 모든 것이 은으로 되어 있는 동화 속의 환상의 도시이다. 샘들과 수조들의 물은 액체 금강석이다.
별은 더 밝은 광채를 내뿜으며 광장의 가장 좁은 쪽에 있는 작은 집 위에 멈춘다. 그 집에 사는 사람들도, 베들레헴의 주민들도 문을 걸어 잠근 채 자고 있기 때문에 그 별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그 별은 그 빛나는 맥동들을 가속하고, 꼬리를 떨며, 하늘에서 일종의 반원을 그리며, 점점 더 빨리 몸을 흔든다. 그리하여 하늘은 그 별에 이끌려가는 별들의 그물망으로 인하여, 마치 그들 자신의 기쁨을 다른 별들에게 전해주려는 듯 가장 우아한 빛깔들로 빛나는 값진 보석들로 가득한 별들로 인하여 더 밝아진다.
그 작은 집은 보석들의 액체 불에 의하여 변형된다. 작은 옥상의 지붕, 우중충한 돌층계, 작은 문은 금강석과 진주 가루를 뿌린 순 은괴와도 같다. 땅 위의 어떤 왕궁도 천사들과 하느님의 어머니에게 쓰이기 위하여 지어진 이 계단과 같은 것을 가지고 있거나 가질 수 없을 것이다. 티 없는 동정녀의 작은 발들, 하느님 옥좌의 발판들 위에서 쉬도록 되어 있는 그 작은 발들은 이 눈부신 흰빛 위에 놓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정녀는 알지 못한다. 그녀는 자기 아들의 요람 곁에서 깨어 기도하고 있다. 그녀의 영혼에는 그 별이 물질적인 것들을 꾸미고 있는 광채를 능가하는 광채들이 있다.
동방박사들의 행렬
간선도로에서 한 행렬이 다가오고 있다. 마구를 단 말들이 사람의 손에 끌려오고, 단봉낙타들과 쌍봉낙타들이 사람을 태우거나 짐들을 싣고 오고 있다. 그것들의 발굽들은 급류의 물이 돌들에 부딪쳐 흐르는 것 같은 소리를 낸다.
그들이 광장에 이르자, 그들 모두가 걸음을 멈춘다. 행렬은 그 별의 비춤을 받아 환상적으로 빛난다. 대단히 호화로운 탈 짐승들의 마구들, 탑승자들의 옷들, 그들의 얼굴들, 그들의 짐들 모든 것이 반짝이고 있는데, 그 별의 빛은 금속들, 가죽들, 비단들, 보석들, 짐승들의 털 빛깔들의 화려함을 증가시킨다. 눈들은 빛나고 입들은 미소 짓고 있다. 왜냐하면 다른 광채 즉 초자연적인 기쁨의 광채가 그들의 마음속에서 빛나기 때문이다.
종들이 짐승들을 끌고 대상들의 숙소로 가는 동안 여행단의 세 사람이 각기 타고 있던 짐승들에서 내린다. 그러자 한 종이 즉시 짐승들을 다른 곳으로 끌어가고, 세 사람은 그 집을 향하여 걸어간다. 그들은 가서 이마를 땅에 대고 엎드려 땅에 입 맞춘다. 대단히 호화로운 그들의 복장이 말해주듯이 그들은 권력자들임이 분명하다.
그들 중 피부색이 매우 짙은 한 사람은 낙타에서 내리자마자 순수한 밝은 비단으로 지어진 화려한 옷(sciamma)으로 몸을 감싼다. 그는 허리에 호화로운 허리띠를 두르고 있는데, 자루가 보석으로 장식된 단검 혹은 검이 거기 매달려 있다.
훌륭한 말들에서 내린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노란색이 우세한 매우 아름다운 줄무늬 옷감으로 지은 옷을 입고 있다. 그 옷은 두건과 끈이 달린 성직자의 겨울옷 같은데, 그 끈은 아주 화려한 자수로 인하여 한 점의 선세공 작품처럼 보인다.
세 번째 사람은 발목을 맨 넓고 긴 바지 위에 헐렁한 비단 셔츠를 입고 있다. 그는 아주 고운 숄을 두르고 있는데, 꽃무늬들이 어찌나 화사한지 그것은 마치 꽃이 만발한 화단과도 같다. 그는 머리에 금강석들이 박힌 작은 사슬로 고정되어 있는 터번을 쓰고 있다.
구세주께서 계시는 집에 경배한 그들은 일어나 대상들의 숙소로 가 종들로 하여금 문을 두드려 그것을 열게 한다.
여기서 환상이 끝난다. 그것은 여섯 시간 후 동방 박사들이 예수께 경배하는 광경으로부터 다시 시작된다.
동방박사들의 경배
지금은 낮이다. 태양이 오후의 하늘에서 빛나고 있다. 세 명의 동방박사들의 하인들 중 한 명이 광장을 가로질러 작은 집의 층계를 올라가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온 다음 여관으로 돌아간다.
세 박사들이 각기 자기 자신의 하인들을 뒤따르게 하고 밖으로 나와 광장을 가로질러간다. 드물게 지나가는 행인들이 점잖게 아주 천천히 지나가는 위엄 있는 인물들을 쳐다본다. 하인이 밖으로 나온 지 족히 15분은 경과했다. 그래서 작은 집에 사는 사람들이 손님맞이를 위하여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
박사들은 지난밤보다 훨씬 더 호화로운 옷을 입고 있다. 그들의 비단들은 빛나고, 보석들은 반짝이고, 훨씬 더 값진 조각들로 뒤덮인 값비싼 깃털장식 다발이 터번을 쓴 사람의 머리 위에서 흔들리며 반짝인다.
한 명의 종이 전체에 상감 세공을 한 궤를 들고 있는데, 그것의 테두리에는 온통 금이 박혀 있다. 두 번째 종은 훨씬 더 정교하게 마감된 순금 뚜껑으로 덮인 아름다운 잔을 들고 있다. 세 번째 종은 역시 금으로 만들어진 넓고 낮은 일종의 암포라를 들고 있는데, 그 뚜껑은 꼭대기에 금강석이 박힌 피라미드처럼 생겼다. 선물들은 무거워 보인다. 왜냐하면 종들 특히 궤를 든 하인이 힘들게 운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 박사가 계단을 올라가 안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길에서 집 뒤에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태양을 향하여 열린 창문을 통하여 뒤쪽의 작은 정원이 보인다. 다른 두 벽들에 문들이 있는데, 집주인들인 남자와 여자가 있다. 몇 명의 소년들과 더 어린 아이들이 그들 사이로 곁눈질한다.
마리아는 무릎 위에 아기를 안고 앉아 있고, 요셉은 그녀의 곁에 서 있다. 그녀는 박사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자기도 일어나 절한다. 그녀는 흰옷을 입고 있다. 목에서부터 발까지, 양어깨에서 가는 손목들까지 감싼 단순한 흰옷을 입은 그녀의 자태는 참으로 아름답다. 몇 갈래로 땋은 금발머리와 감동하여 더 발그레한 얼굴, 그녀의 입이 “하느님께서 당신들과 함께 계시기를” 하고 인사하는 동안에 부드럽게 미소 짓는 눈들은 실로 아름답다. 세 동방 박사는 깜짝 놀라 한 순간 멈칫했다가 앞으로 나아가 그녀의 발 앞에 엎드린다. 그들은 그녀에게 앉기를 청한다.
그녀가 권하는데도, 그들은 편히 앉지 않는다. 그들은 발뒤꿈치에 의지해 무릎 꿇고 있다. 그들 뒤에 있는 세 명의 종들 역시 무릎을 꿇고 문지방 바로 뒤에 있다. 그들은 각기 들고 있던 세 가지 선물을 박사들 앞에 내려놓고 지금 기다리고 있다.
세 현자들이 아기를 응시한다. 아기는 매우 쾌활하고 튼튼한데, 나는 그가 생후 9개월에서 12개월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기 엄마의 무릎 위에 앉아 미소 지으며 작은 새소리와도 같은 맑은 목소리로 재잘거린다.
그는 자기 엄마처럼 온통 흰옷을 입고 있고, 자기의 작은 두 발에 조그마한 샌들을 신고 있다. 그의 옷은 매우 소박한 작은 튜닉인데, 끊임없이 움직이는 발들과 무엇이든 잡으려 하는 포동포동한 손들과 특히 아주 예쁜 작은 얼굴이 그 위로 나와 있다. 그 얼굴에서 두 개의 군청색 눈들이 빛나고, 양 볼에 보조개들을 가진 예쁜 입은 웃을 때면 최초의 작은 치아들을 보여준다. 그의 예쁜 작은 컬들은 어찌나 빛나고 부드러운지 마치 금가루 같다.
박사들 중 가장 연장자가 그들 모두를 대표하여 말한다. 그는 작년 12월 어느 날 밤에 그들은 비범한 광채를 띤 새 별이 하늘에 나타난 것을 보았다고 마리아에게 설명한다. 천체도들은 결코 그 별을 표시하거나 언급하지 않았다. 그 별은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것은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품에서 태어나 복된 진실, 하느님의 한 비밀을 사람들에게 말해주려고 출현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에 주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의 영혼들은 진흙 속에 깊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을 하느님을 향하여 들지 않았고, 그분께서 불의 별들로 천공에 쓰시는 말씀들을 읽을 줄도 몰랐다. 그분께서는 영원히 찬미 받으시기를!
그들은 그것을 보았고, 그것의 의미를 알아들으려고 애썼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허락하는 평소의 짧은 잠을 기꺼이 포기하고, 심지어 음식 먹는 것도 잊고, 황도를 연구하는 데 전적으로 헌신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별들의 결합들, 시간, 계절, 경과한 시간과 천문학적 결합들의 계산으로 그 별의 이름과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것의 이름은 ‘메시아’였고, 그것의 비밀은 ‘메시아께서 우리의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분께 경배하려고 출발했다. 그들 각자는 다른 이들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산들을 넘고, 사막들을 가로지르고, 계곡들과 강들을 따라 밤에 여행하여 팔레스티나 쪽으로 왔다. 왜냐하면 그 별이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구의 다른 세 지점들로부터 그들 각자를 위하여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들은 사해 너머에서 만나게 되었다. 하느님의 뜻이 그들을 그곳에 모아놓으셨다. 그렇게 하여 그때 그들은 함께 나아왔다. 각자 자기 자신들의 언어로 말하는데도 서로를 이해하면서 말이다. 영원하신 아버지의 기적에 의하여 그들은 각 나라의 언어를 알아듣고 말할 수 있었다.
그들은 함께 예루살렘으로 갔다. 왜냐하면 메시아는 예루살렘의 왕, 유다인들의 왕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별은 그 도시의 상공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래서 그들은 가슴이 미어지는 고통을 느꼈고, 자기들이 하느님을 뵐 자격을 잃었는지 자신들을 성찰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양심에 거리낌이 없음을 확신했을 때 자기들이 경배하러 온 유다인들의 왕이 어느 궁궐에서 태어나셨는지 물으려고 헤로데 왕에게 문의했다.
그러자 왕은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을 불러 모아 메시아가 어디에서 태어날 것인지 그들에게 물었고, 그들은 ‘유다의 베들레헴에서’라고 대답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베들레헴을 향하여 왔다. 그들이 성도를 떠나자마자 별은 다시 그들에게 나타났고, 그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하기 전날 밤에는 더 밝게 빛났다. 하늘이 온통 불타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그 광채들로 다른 별들의 모든 빛을 집어삼키며 이 집 위에서 멈췄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 태어나신 아기 하느님께서 여기 계신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지금 그들은 자신들의 선물들을 드리며 그분께 경배하고 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마음 즉 하느님께서 자기들에게 내려주신 은총으로 인하여 그분을 끊임없이 찬미하고, 그들이 거룩하신 인간 몸을 지금 뵙고 있는 그분의 아들도 사랑하기를 결코 그치지 않을 자신들의 마음들을 드리고 있다. 그들은 나중에 헤로데 왕에게로 돌아갈 작정인데, 그 이유는 그 왕도 그분께 경배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임금님께서 가지시기에 합당한 황금과, 한 하느님께 합당한 유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당신의 아기는 하느님이심과 동시에 사람이시기도 하여 불가피한 죽음의 법과 함께 육체와 인생의 쓰라림을 경험할 것이므로 몰약이 있습니다. 저희의 영혼들은 사랑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이런 말씀들을 입 밖에 내지 않고 싶고, 그분의 육체가 그분의 영혼과 같이 영원하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부인, 만일 저희의 저술들과 특히 저희의 영혼들이 맞는다면, 그분께서는 당신의 아드님, 구세주,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결국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세상의 악을 짊어지셔야 할 터인데, 그 죄의 벌들 중의 하나가 죽음입니다. 이 몰약은 그 시간을 위한 것으로서, 그분의 거룩하신 육체가 부패에 굴복하지 않고 그 부활 시까지 그 완전성을 보존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선물로 인하여 그분께서 저희를 기억하시고, 그분의 나라에 들어가도록 그들에게 허락하심으로써 그분의 종들을 구원해주시기를.
그런데 어머니, 당신께서는 저희가 거룩하게 되도록 당신의 아기를 저희의 사랑에 맡겨주시겠습니까? 저희가 그분의 발들에 입 맞추는 동안에 그분의 하늘의 축복이 저희 위에 내리도록 말입니다.”
현자의 말로 인하여 생겼던 공포를 극복하고, 애절한 암시의 슬픔을 미소로 감춘 마리아가 아기를 맡긴다. 그녀가 아기를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의 팔에 안겨주자 그가 아기에게 입 맞추고, 아기의 포옹을 받고나서 다른 두 사람에게 아기를 건네준다.
예수는 웃으며 세 박사들의 가는 사슬들과 옷의 술들을 가지고 논다. 그리고 그는 노랗고 반짝이는 물건이 가득 찬 열려 있는 보석 상자를 신기한 듯이 바라본다. 그는 몰약 그릇 뚜껑의 빛나는 꼭지에 햇빛이 비쳐 생긴 무지개를 보고 웃는다.
그 다음에 그들이 아기를 마리아에게 돌려주고 일어서자 그녀도 일어선다. 가장 젊은 박사가 종들에게 명령을 내리자 그들이 나간다. 그들은 서로에게 절한다. 세 박사들은 잠시 동안 대화를 계속한다. 그들은 차마 이 집을 떠나려고 결심하지 못한다. 그들의 눈에서 눈물이 반짝인다. 마침내 마리아와 요셉의 배웅을 받으며 그들이 문 쪽으로 향한다.
아기가 내려가 세 사람 중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의 손을 잡으려 한다. 이렇게 그가 한 손은 마리아의 손을, 다른 한 손은 박사의 손을 잡고 걷자 그들 두 사람은 아기의 걸음을 인도하기 위하여 몸을 숙인다. 예수는 모든 어린이들과 마찬가지로 불완전한 걸음걸이로 걸으며, 해로 인하여 생긴 바닥의 띠를 자기의 작은 발들로 차면서 웃는다.
그들이 문지방에 이르렀을 때―이 방의 길이는 집 전체의 길이와 같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그는 다시 한 번 무릎 꿇고 예수의 발에 입 맞추며 하직인사를 한다. 마리아는 아기 위로 몸을 숙여 그의 손을 잡아 동방박사 각자의 머리 위에서 축복의 손짓을 하도록 이끈다. 그것은 이미 마리아가 인도하여 예수의 작은 손가락들이 긋는 십자 성호이다.
세 사람은 계단을 내려간다. 행렬이 거기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말들의 장식들이 지는 해의 빛을 받아 반짝이고, 이 이례적인 광경을 구경하려고 사람들이 작은 광장에 모여 있다.
예수가 손뼉 치며 웃는다. 그의 엄마는 아기를 들어 올려 층계참의 넓은 난간에 기대놓는다. 그녀는 아기를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한 팔로 그를 가슴에 안고 있다. 요셉은 박사들과 함께 내려가 그들이 말들과 낙타에 올라타는 동안에 등자를 잡고 있다.
주인들과 하인들은 지금 말이나 낙타에 올라앉자 출발신호가 내려진다. 세 사람은 마지막 경배를 드리느라 그들이 탄 짐승들의 목에 이르기까지 절하자, 요셉도 인사한다. 마리아도 절하고 나서 예수의 손을 이끌어 작별과 축복의 손짓을 하게 한다.
환시의 교훈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자, 이제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오, 자기의 믿음이 죽어가는 것을 느끼는 영혼들아?
동방에서 온 그 현자들은 자기들에게 진리를 확증해주는 것을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초자연적인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천문학적 계산과 엄격하게 정직한 생활로 완전하게 된 그들 자신들의 숙고들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것에 대한 믿음, 즉 지식에 대한 믿음, 자신들의 양심에 대한 믿음, 하느님의 선하심에 대한 믿음을 말이다.
그들은 지식으로 세기들을 통하여 인류가 기다려온 ‘그 별’, 즉 메시아의 별일 수밖에 없는 새 별의 징조를 믿었다. 그들의 양심들로 인하여 그들은 자기들에게 ‘저것은 메시아의 도래를 알리는 별이다’ 하고 말하는 천상의 ‘목소리들’인 그들의 양심의 목소리들을 믿었다. 하느님의 선하심으로 인하여 그들은 그분께서는 그들을 속이시지 않으실 것이고, 그들의 의향이 착하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그들의 목적지에 이르도록 모든 방법으로 그들을 도와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성공했다. 징조들을 연구하기를 좋아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그들만이 그 징조를 알아차렸다. 왜냐하면 그들의 영혼들만이 정직한 목적을 위하여 하느님의 말씀들을 알기를 열망했는데, 그 목적의 요체는 지체 없이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분께 영광을 드린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어떤 개인적인 이익도 추구하지 않았다. 반대로 그들은 수많은 역경들에 직면해야 하고,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어떤 인간적인 보상도 청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기억해주시고, 영원한 삶으로 구원해주시기만을 청한다.
그들이 어떤 미래의 인간적인 보상들에 대한 갈망을 가지기 않기에 길을 떠나기로 결정할 때에도 그들은 아무런 인간적인 걱정을 하지 않는다.
너희라면 수백 가지의 문제점들을 제기했을 것이다. ‘내가 어떻게 다른 언어들을 말하는 나라들과 민족들을 통과하는 그토록 먼 여행을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나를 믿을까, 아니면 나를 간첩이라고 감옥에 가둘까? 사막들과 강들을 건너고 산을 넘는 데 있어 사람들은 나에게 어떤 도움을 줄 것인가? 그리고 더위는? 그리고 고원의 바람들은? 물이 고여 있는 늪지대에 창궐하는 말라리아 열병들은? 그리고 홍수들과 폭우들은? 그리고 생소한 음식은? 그리고 다른 언어들은?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이것이 너희가 추론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추론하지 않았다. 그들은 진실하고 거룩한 대담성을 가지고 말한다. ‘오, 하느님, 당신께서는 저희의 마음들을 읽으시고, 저희가 추구하고 있는 목적을 아십니다. 저희는 당신의 손에 맡깁니다. 저희에게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이 되신 당신의 둘째 위에게 경배하는 초인간적인 기쁨을 주십시오.’
그것이 전부이다. 그래서 그들은 머나먼 인도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분께서 인도라고 말씀하실 때 그분께서는 그곳은 우리의 지도상에서 터키,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페르시아가 있는 남아시아를 가리키신다고 나에게 말씀하신다.
또한 그들은 독수리들의 땅인 몽골의 산맥에서 떠난다. 바람들과 급류들의 포효하는 소리와 함께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고, 빙하들의 광대한 페이지들에 신비의 말씀들을 쓰시는 그 땅 말이다.
다른 한 무리는 나일 강이 발원하여 청록색의 물들이 흘러 지중해의 파란 심장으로 흘러가는 땅에서 떠난다. 산들도, 숲도, 모래도, 바다들보다 더 위험한 메마른 대양인 사막도 그들의 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별은 밤에 그들 위에서 빛나 그들이 자는 것을 방해한다. 사람이 하느님을 찾을 때 자연적인 습관들은 초인간적인 고려들과 필요들에게 양보해야 한다.
그 별은 그들을 북쪽, 동쪽, 남쪽에서 데려오며, 하느님의 기적으로 그들 세 사람을 위하여 한 지점을 향하여 나아간다. 그리고 다른 하느님의 기적으로 그것은 머나먼 여행 후에 그들을 그 지점에 모아놓는다. 그리고 또 다른 기적으로 그것은 성령강림의 지혜를 앞당겨, 그들에게 오직 한 가지 말 즉 하느님의 말만을 하게 될 낙원에서와 같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고 자신들의 말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게 하는 은총을 부여한다.
그들은 별이 사라진 한 순간에만 실망에 빠진다. 그들은 참으로 위대하기 때문에 겸손하여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사악함에 기인한 것이라는 것, 즉 예루살렘의 타락한 사람들이 하느님의 별을 볼 자격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느님을 모시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용서를 청할 각오로 두려워하고 통회하며 자신들을 성찰한다.
그러나 그들의 양심은 그들을 안심시킨다. 그들의 영혼들은 묵상에 익숙해져 있고, 그래서 그들 각자는 항구적인 주의와 날카로운 내성(introspection)에 의하여 세련된 지극히 민감한 양심을 가지고 있다. 그 내성은 그들의 내면을 거울로 만들어 나날의 행동들의 가장 사소한 잘못들이라도 거기 비춰진다. 그들의 양심은 가장 작은 실수에 대해서 뿐 아니라 실수들, 인간적인 모든 것 그리고 자기의 자아의 만족에 대한 최소한의 경향에 대해서도 경고하고 소리치는 선생이자 목소리가 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그들이 이 선생이자 엄격한 거울 앞에 자신들을 비추어볼 때 그들은 그것이 거짓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것이 그들을 안심시키고 다시금 그들에게 용기를 준다.
‘오! 우리 안에 하느님을 거스르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얼마나 감미로운가! 그분께서 그분의 충실한 아들의 영혼을 다정하게 바라보고 계시고, 축복하신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얼마나 감미로운가! 믿음, 신뢰, 희망, 강인함 그리고 인내는 그런 느낌에 의하여 커진다.
지금 당장은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갈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시고, 내가 그분을 사랑한다는 것을 아시며, 틀림없이 다시 나를 도와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모든 행동의 여왕인 올곧은 양심으로부터 오는 평화를 누리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참으로 위대하기 때문에 겸손했다’고 나는 말했다. 이와는 반대로 너희의 생활 안에서는 무엇이 일어나느냐? 누군가가 위대해서가 아니라 더 지배적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의 거만함과 너희의 어리석은 우상숭배로 인하여 그가 권력을 얻게 되기 때문에 결코 겸손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 자기들이 어떤 거들먹거리는 자의 집사들이거나, 어떤 관청의 경비원들이거나, 어떤 소도시의 관료들이거나, 말하자면 그들을 고용한 사람들의 하인들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반신(半神)들처럼 허세부리는 어떤 불쌍한 자들이 있다. 그런 자들은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세 현자들은 참으로 위대했다. 첫째로 그들의 초자연적인 성덕들로 인하여, 둘째로 그들의 지식으로 인하여, 마지막으로 그들의 부유함으로 인하여 그러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낀다. 한 번의 미소로 세상들을 창조하시고, 그것들을 낟알들처럼 흩뿌려 보석 같은 별들로 천사들의 눈을 만족시켜주시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에 비하면 자기들은 땅의 먼지 위의 먼지라고 느낀다.
그들은 자기들이 사는 행성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지극히 다채롭게 만드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에 비하면 자기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낀다. 끝없는 작품들의 무한하신 조각가께서는 그분의 엄지손가락으로 만져 여기 야산들의 원을 두시고, 저기 땅이라는 이 거대한 몸의 척추와 같은 산의 능선들의 골격과 산봉우리들을 두셨는데, 이 몸의 정맥들은 강들이고, 그 세숫대야는 호수들이고, 그 심장들은 대양들이며, 그 옷들은 삼림들이고, 그 베일들은 구름들이고, 그 장식들은 수정 같은 빙하들이고, 그 보석들은 터키옥들과 에메랄드들, 오팔들, 숲들과 바람들과 함께 그들의 주님께 찬미의 대합창을 노래하는 모든 물속의 녹주석들이다.
그들은 지혜의 원천이시며, 그들이 사물들을 보는 두 개의 눈동자들보다 더 강력한 눈들, 즉 사물들 안에서 사람의 손들에 의하여 쓰이지 않고 하느님의 생각에 의하여 새겨진 말을 읽을 줄 아는 그들의 영혼의 눈들을 그들에게 주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에 비하여 자기들의 지혜에 관해서도 자기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물에 관해서도 자기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항성들과 행성들에 금속들과 보석들을 흩뿌려놓으시고,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소진되지 않는 초자연적인 재물을 주시는 우주의 주인의 부와 비교하면, 자신들의 부는 티끌에 불과하다고 느낀다.
그리하여 그들이 유다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마을의 초라한 집 앞에 이를 때 그들은 ‘말도 안 돼’ 하고 머리를 흔들지 않고, 자기들의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고, 무엇보다도 자기들의 마음을 낮추고 경배한다. 저기 저 초라한 벽 뒤에 하느님께서 계신다. 자기들이 뵈올 최소한의 가능성도 결코 가지지 못한 채 그들이 항상 간구해온 그 하느님께서 계신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든 인류의 복지를 위하여, 그리고 ‘자신들의’ 영원한 복지를 위하여 그분을 부른다. 오! 그것은 그들의 유일한 소원이었다. 그것은 더 이상 새벽들도, 황혼들도 없는 삶에서 그분을 뵙고, 그분을 알고, 그분을 소유하는 것이었다.
그분께서는 저 초라한 벽 뒤에 계신다. 여전히 한 하느님의 마음인 한 어린이이신 그분의 마음은 길의 먼지 속에 엎드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우리 주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가장 높은 하늘에서는 그분께 영광, 그분의 종들에게는 평화. 영광, 영광, 영광 그리고 찬미’ 하고 외치고 있는 그 세 사람의 마음을 아실까? 그들은 사랑의 떨림을 가지고 궁금해 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온밤 내내, 그리고 이튿날 오전 동안 가장 열렬한 기도로 자신들의 영혼을 아기 하느님과의 교제를 위하여 준비한다.
그들은 하느님이신 성체(the Divine Host)를 안고 있는 동정녀의 품인 제대를 향하여 너희처럼 인간적인 염려들로 가득한 영혼들을 가지고 가지 않는다. 그들은 침식을 잊는다. 그들이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는 것은 인간적인 허세를 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왕들의 왕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이다. 왕궁들에서 신료들은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는다. 그러니 현자들이 그들의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그 왕에게 가지 않겠느냐? 그 옷을 입기에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겠느냐?
오! 그들은 머나먼 자기들의 나라들에서 그들과 동등한 사람들을 위하여, 그들을 환영하고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여러 번 성장(盛裝)해야 했다. 그러므로 그들이 최고의 왕의 발 앞에 홍포들과 보석들, 비단들과 값진 깃털들을 가지고 엎드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의 작고 귀여운 발 앞에 땅의 직물들, 땅의 보석들, 땅의 깃털들, 땅의 금속들―그것들은 모두 그분의 작품이다―을 놓아 땅의 이 모든 것들이 그것들의 창조주를 공경하는 것은 당연하다. 만일 그 작은 아기가 그들에게 땅바닥에 엎드려 자기의 발걸음들을 위한 살아있는 양탄자가 되라고 명한다면, 그리고 그가 별들을 떠나 먼지에 지나지 않는 그들에게 왔기에 만일 그가 그들을 밟고 지나간다면 그들은 기뻐할 것이다.
그들은 겸손하고, 너그러우며, 위로부터의 ‘목소리들’에 순종한다. 그것들은 새로 태어난 왕에게 선물들을 가져가라고 그들에게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선물들을 가지고 온다. 그들은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니 선물들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이시니 돌아가시지도 않을 것이다’ 하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순종한다. 그래서 그들은 가난한 구세주를 돕는 최초의 사람들이 된다. 곧 도망자가 되어야 하는 그에게 그 금은 얼마나 유익하겠느냐! 머지않아 살해당할 그에게 그 몰약은 얼마나 의미심장한 것이겠느냐! 그의 무한한 순결 주위에서 끓어오르는 사람들의 음란의 악취를 맡아야 할 그에게 이 유향은 얼마나 경건한 것이겠느냐!
그들은 겸손하고, 너그럽고, 순종하고, 서로를 존경한다. 성덕들은 항상 다른 성덕들을 낳는다. 하느님을 향한 성덕들로부터 우리의 이웃들에 관한 성덕들이 파생된다. 존경, 그것은 사랑이다. 가장 연장자가 그들 모두를 대표하여 말하고, 구세주의 입맞춤을 받고, 그의 작은 손을 잡아 인도하는 최초의 사람이 된다.
다른 사람들은 그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늙었고, 하느님께로 돌아갈 날이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참혹한 죽음 후에 그를 볼 것이고, 그가 하늘로 돌아갈 때 다른 복된 영혼들과 함께 그를 따라갈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세상에서 다시 그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은 손의 온기가 주름 잡힌 그의 손에 그를 위한 노자로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질투심이 없다. 반대로 그 나이든 현자에 대한 그들의 존경심은 더 커진다. 그는 틀림없이 자기들보다 더 합당한 자격을 더 오랫동안 갖추었을 것이다. 아기 하느님은 안다. 아버지의 말씀(the Word of the Father)은아직 말하지 않지만 그의 모든 행동은 말이다. 그의 무죄한 말은 찬미받기를! 왜냐하면 그것은 그를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으로 지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내 자녀들아, 이 환상에는 두 가지의 교훈이 더 있다.
‘자기’ 자리에 있을 줄을 아는 요셉의 행동이다. 그는 순결과 거룩함(Purity and Holiness)의 보호자로 거기 있지만, 그들의 권리를 부당하게 가로채지 않는다. 경의를 받고 말을 듣는 것은 예수와 함께 있는 마리아이다. 요셉은 그녀로 인하여 환호하고, 자기가 부수적인 인물이 되는 것을 슬퍼하지 않는다.
요셉은 의인이다. 그는 둘도 없는 의인이다. 그는 항상 의롭다. 이 순간에도 그렇다. 축제의 분위기는 그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는 겸손하고 의로운 채로 남아 있다.
그는 선물들에 기뻐한다. 그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그것들을 가지고 자기의 배우자와 사랑하는 아기가 더 안락하게 살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셉에게는 탐욕이 없다. 그는 노동자이고, 그래서 그는 계속 일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들’, 자기의 두 사랑이 안락하기를 열망한다.
그도, 동방박사들도 그 선물들이 도망치는 데와 망명생활을 하는 데 쓰일 것이며, 그들이 망명지에서 자기들의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재물이 바람들에 흩어지는 구름들처럼 사라질 것이라는 것, 그들은 고객들과 가구 따위의 모든 것을 잃었을 것이고, 그곳에서 그들의 집의 벽들만이 보존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라는 것을 모른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동정녀와 결합하여 육화하셨기 때문에 그분에 의하여 보호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셉은 비록 자기가 하느님의 보호자이고, 하느님의 어머니이자 지극히 높으신 분의 정배의 보호자지만, 하느님의 이 신하들의 등자들을 잡아줄 정도로 실로 겸손하다. 사람들의 지속적인 압제들로 다윗의 상속인들이 그들의 왕실의 재산을 빼앗겼기 때문에 그는 보잘것없는 목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항상 왕의 후손이고, 왕의 예의범절을 가지고 있다. ‘그는 참으로 위대했기 때문에 겸손했다’는 말은 그에 관해서도 말해진 것이다.
친절하고 의미심장한 마지막 교훈은 이것이다.
아직 강복할 줄 모르는 예수의 손을 붙잡고 거룩한 손짓을 인도하는 사람은 마리아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거룩한 몸짓을 하도록 그 손을 인도한다.
예수의 손을 잡고 그것을 인도하는 사람은 언제나 마리아이다. 지금도 그렇다. 지금 예수는 강복할 줄 안다. 그러나 때로 그의 꿰뚫린 손은 지치고 낙심하여 떨어져 내린다. 왜냐하면 그는 축복하는 것이 무익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너희는 내 축복을 망친다.
그때 자기의 입맞춤들로 내 손에서 경멸을 제거하는 분이 마리아이다. 오! 내 어머니의 입맞춤! 누가 그 입맞춤에 저항할 수 있겠느냐? 그분께서는 그분의 가냘픈 손으로, 그러나 거역 못할 사랑을 가지고, 내 손목을 잡고 강복하도록 나에게 강요하신다. 나는 그분의 청을 거절할 수 없다. 그러니 너희는 그분께로 가서 그분을 너희의 변호인으로 만들어라.
그분께서는 너희의 모후이기 전에 내 모후이시며, 너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은 아무도 상상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허용들(allowances)을 만들어낸다. 그분께서는 심지어 아무 말 없이 그분의 눈물, 내 십자가의 기억, 그분께서 나에게 허공에 긋게 하는 십자 성호만으로 너희의 이유를 애원하고 나에게 권유한다. ‘너는 구세주다. 그러니 구원해라!’
소중한 내 자녀들아. 이것이 동방박사들의 광경의 환시 안의 ‘믿음의 복음’이다. 너희 자신들의 유익을 위하여 그것을 묵상하고 모방해라.”
첫댓글 '오, 하느님, 당신께서는 저희의 마음들을 읽으시고, 저희가 추구하고 있는 목적을 아십니다. 저희는 당신의 손에 맡깁니다. 저희에게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이 되신 당신의 둘째 위에게 경배하는 초인간적인 기쁨을 주십시오.’
예수님, 당신 뜻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성모님과 예수님께 제 뜻과 제게 속한 모든 것을 봉헌합니다.
저희와 모든이를 축복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