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복령~(1.8km)~46번 철탑~(3.1km)~생계령~(4.4km)~고병이재~(2.5km)~석병산~(1.7km)~두리봉~(4.6km)~삽당령(약18.1km/7시간)
☞ 출발지점 : 강원도 선군 임계면 가목리 산 8-21주변
☞ 차량 대기장소 :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목계리 산 460-84 주변
[백복령] 百卜嶺 780m
백복령은 강릉, 동해, 정선, 3개 시군에 걸쳐 있는 석회암지대로 예로부터 한약재로 쓰이는 백복이 많이 나서 붙여진 이름이다. 소나무를 벌채하면 나무 뿌리에 수액이 응고되어 생성된 것으로 복령(茯笭)이라 하며, 복령 가운데 특히 백복(白茯-흰 분말)이 많이 나는 것을 이름한다고 한다. 정선과 동해를 잇는 42번 국도가 지나고 정선과 강릉을 가르는 마루금엔 '아리랑의 고장 정선'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다.
또한 백복령은 삼척에서 소금이 넘어오는 소중한 길목이었다고 한다.
우리댁의 서방님은 잘났던지 못났던지
얽어매고 찌거매고 장치다리 곰배팔이
헐께눈에 노가지나무 뻐덕지개 부끔덕
세쪼각을 세뿔에 바싹 매달고 엽전 석양
웃짐 지고 강능 삼척으로 소금사러 가셨는데
백복령 구비 부디 잘다녀 오세요
「정선엮음 아라리 중에서」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강릉에 48개, 삼척에 40개의 소금가마가 있었다고 한다.
서해에서 올라오는 남한강의 소금 길은 충북의 단양에서 다시 육지로 올라와 기껏 영월쯤에 닿아 멈추었고, 정선 땅은 올곧게 강릉과 삼척에서 나는 동해의 소금을 의지하여 살았다. 백복령은 바로 그 삼척에서 소금이 넘어오는 소중한 길목이었다. 백복령의 정확한 이름에 대하여는 누구에게 물어도 선뜻 일러주는 이가 없다. 이즈음은 그저 어디든 한결같이 백복령(白伏嶺)이라 쓰는데 『택리지』에는 백봉령(百福嶺)이라 했고, 『증보문헌비고』 「여지고」 편에는 백복령(百福嶺)과 백복령(百複嶺)을 혼용하면서 일명 희복현(希福峴)이라 한다고 덧붙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다만 희복현이란 이름만 보이는 등 명확하지는 않다.
고갯길에 사는 마을 주민들은 백복령을 '뱃복이재'라고 부른다. 고갯마루에서 북쪽 산등성이에 올라가게 되면 둘레가 300-400m 쯤 되는 웅덩이가 있는데 이 웅덩이가 여자들 배꼽에 뜸을 뜬 자리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뱃복이라 부른다는 마을 노인들의 말을 옮기고 있다. '뱃복'은 배꼽의 옛말이다. 카르스트지형에서 나타나는 돌리네의 움푹 파인 웅덩이가 신체의 배꼽처럼 보인다는 데서 유래한 지명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한자다. 한자로 쓰였던 지명은 앞에서 본 것처럼 제법 복잡 하지만 현재에 널리 쓰이는 백복령(白伏領)은 일제 때 지도 제작에 의해 고의든 실수든 잘못 기록되면서 전해 온 것이다. 백두대간보전회에서는 백복령(白福領) 보다는 주민 정서에서도 좋고 택리지에 근거가 있는 흰 봉황의 뜻인 백복령(白鳳領)으로 부르기를 홍보하고 있다.
[자병산] 紫屛山 최초 872.5m
자줏빛 병풍을 드리운 것 같이 아름다운 산이라 하여 자병산이라 했다(붉은 석회암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것). 또한 가물 때에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고 한다.
백봉령에서 서쪽(임계) 방향의 도로를 조금 따라 내려가다가 보면 우측에 석회석 운반 차량 진입로가 있는데, 이 진입로에 설치된 광산차량 바퀴 세척시설의 뒤쪽에 임도가 개설 되어 있다. 이 임도를 따라 능선부로 바로 오르게 된다. 백두대간 산행은 백봉령에서 삽당령까지를 1개구간으로 하는데, '89년도까지만 해도 백봉령에서 자병산(872.5m)으로 올라서 능선을 따라 생계령, 고병(뱅)이재, 석병산, 두리봉을 거쳐 삽당령까지였으나 이 후에 석병산이 석회석 채광지로 전략하여 이 산은 전체가 없어지고 출입이 불가하여 지금은 자병산을 거치지 않고 바로 능선부로 올라서 생계령으로 간다.
산 위로 345kVA 고압선이 지나고 있다.
'보라빛 병풍'이란 의미의 자병산은 수려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으나 '85년부터 국내외 시멘트회사들이 석회석 채석을 시작하며 산 정상부를 완전히 잘라내고 있고 채석이 완료되면 727m로 낮아질 것이라 한다
[생계령] 生溪嶺 640m
생계령은 주위에 도토리 나무가 많아 주민들이 생계를 위해 도토리 열매를 채취하던 곳에서 따온 이름이라 한다. 옥계면 산계리 사람들이 정선 임계장을 보기 위해 넘나들었던 고개로 산계령이라고도 한다. 산계리와 임계면을 잇는 길로, 왼쪽길은 정선군 임계면 방향의 큰피원으로 내려서는 길이고 오른쪽 희미한 소로는 강릉시 옥계면 성황뎅이로 가는 길이다. 예전에는 고개 정상에 주막집이 있었다고 한다.
[등갈산]
[민둥산]
[고병이재] 골뱅이재
강릉 산계리와 정선 임계리를 동서로 잇는 고개.
석화동굴(石花洞窟)은 강릉 옥계면 산계리에 있는 동굴로 절골에 있어 절골굴이라고도 한다. 만덕봉·두리봉·석병산 일대는 약 10만 년 전 고생대에 생성된 석회암지대로 곳곳에 많은 석회동굴이 발달해 있는데, 아직 완전한 탐사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총연장 1,400m에 이르는 거대한 동굴이라 한다.
- 강릉 서대굴
석병산 석회암층(石屛山石灰岩層) 내에 형성된 수직동굴(垂直洞窟)이다. 일명 '범록굴'이라고도 한다. 강원도 기념물 제36호이다. 주굴의 길이는 약 800m이고, 총 연장은 1,500m이다.강릉시 옥계면 산계리 석병산 중복벼랑에 위치한다.
서대굴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동굴로, 약 250m까지는 탐사되었으나 그 이상은 확인되지 않은 상태이다. 동굴은 세로로 땅 속 깊이 뻗어 있으며 주변의 동대굴과 함께 쌍벽을 이루고 있다. 동굴 안에는 작은 공간들이 발달해 있으며 옆면에는 고드름처럼 생긴 종유석과 동굴 바닥에서 돌출되어 올라온 석순, 종유석과 석순이 만나 기둥을 이룬 석주, 그리고 꽃모양의 석화(石花) 등이 둘러싸여 있어 매우 아름답다. 서대굴이 위치하고 있는 산계리 지역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동굴들이 모여 있는 동굴지대로서 동굴들의 형태가 모두 같다. 강릉 서대굴은 동굴 안이 위험하여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에 의한 피해가 없이 잘 보존되어 있다.
[석병산] 石屛山 1055m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과 정선군 임계면 경계에 위치.
석병산은 백두대간이 동해안을 끼고 남하하여 오대산과 황병산을 일구고 청옥산 두타산으로 뻗어 내려가 강릉시 왕산면에 안착한 산이다. 깍아지른 듯 솟아 있는 기암괴석의 바위들이 마치 산아래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석병(石屛)이라 이름 붙여졌는데, 정상에 서면 강릉시가 한 눈에 들어오며 멀찍이 동해의 수평선이 바라보이는 광경이 일품이다.
주위에 만덕봉(萬德峰:1,035 m) ·대화실산(大花實山:1,010 m) ·노추산(魯鄒山:1,322 m) 등이 솟아 있다. 동쪽과 북쪽의 급사면에서는 주수천(珠樹川)의 지류가 발원하고, 서쪽의 완사면에서는 임계천의 지류가 발원한다. 남동쪽 비탈면에 옥계석화동굴이 있고, 생계령 기슭에는 임계 카르스트지형이 있다. 서쪽 기슭으로는 강릉~태백 국도가, 남쪽 기슭으로는 정선~동해 국도가 각각 지난다.
석병산의 정상에서 동쪽으로 내려가면 절골, 황지미골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이 산은 석회암으로 형성되어 석화동굴, 서대굴 등 곳곳에 동굴들이 산재해 있다. 석병산을 일월봉이라고도 부르며, 정상부 우측의 바위벽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리어 있는데, 일월봉의 명칭을 따서 '일월문'이라고 한다. 옥계면 산계리의 절골 산비탈의 석화동굴은 '80년도에 지방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그동안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나 지금은 훼손되어 폐쇄하였다. 산 전체가 석회석을 이루고 있어 능선을 따라 가다보면 땅이 내려앉아 있는 함몰지를 여러 곳 발견할 수가 있다.
돌리네, 일명 쇠곳. 돌리네(Doline)는 빗물이나 지하수에 의해 용해되거나 지반의 함몰로 생간 우묵한 타원형의 지형이다. 이곳의 토양은 붉은 색을 띄는데 이는 석회암에서 탄산칼슘이 용해된 후 철 등 불순물이 남아 산화된 것으로 이러한 토양을 테라로사라 한다.
* 돌리네 : 석회암 지대에서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물에 녹으면서 깔때기 모양으로 패인 웅덩이를 형성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와지 안에서 경작할 수 있는 크기를 돌리네라 부른다. 테라로사라 불리는 토양이 발달하며, 돌리네가 연결된 경우 우발레라 한다. 석회암 지대의 갈라진 틈으로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빗물이 스며들면 석회암의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녹아서 깔때기 모양 또는 작은 양념절구 모양의 오목하게 패인 웅덩이를 형성한다. 크기는 지름 1m 내외에서 100m에 이르는 등 다양하나, 최근의 국제적인 정의(定義)에 따르면 그 와지 저면(底面)에서 경작할 수 있는 토양이 발달할 정도의 크기를 돌리네라고 하기로 하였다. 돌리네의 저면에는 테라로사(terra rossa)라고 불리는 토양이 발달된 곳이 많으며,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다.또한 돌리네가 더욱 용식(溶蝕)되어 인접된 돌리네와 연결되어 좁고 긴 와지를 이루는 경우를 우발레(uvale)라고 한다. 아드리아해(海) 동안의 카르스트 지방, 일본의 야마구치현[山口縣] 아키요시다이[秋吉臺]가 세계적으로 알려졌으며, 한국의 충북 단양(丹陽) 일대에도 매포(梅浦)를 중심으로 하여 다수의 돌리네가 형성되어 있다.
- 석병산 일월문
맞은편 능선에서 바라보았을 때 해와 달처럼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으나, 그 연유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석병산 일월봉 아래에 위치해 있다. 건너편에서 떠오른 달빛이 일월문을 비추면 장관이라고 한다.
[임계]
임계는 인천에서 원주, 정선, 동해로 가는 42번 국도와 부산에서 경주, 안동, 태백, 강릉으로 가는 35번 국도가 만나는 곳으로, 임계장이 유명했다고 한다. 임계장은 예부터 어물이 싼 것으로 유명한데, 어물을 트럭에 싣고 들어 왔다가 더 들어갈 데가 없어 여기서 싸구려로 다 팔아 치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 임계 카르스트 지형
삽당령에서부터 마루금 왼쪽은 깊은 계곡, 오른쪽은 완만한 지형의 카르스트지형이 계속되는데 정선군 임계면의 지명을 따서 '임계카르스트지형' 이라 한다. 카르스트지형('돌리네'지역을 현지 사투리로 '쇠곳'이라 한다)은 빗물이 석회암을 용해하여 지하에 대규모 석회동굴을 만들기도 하고, 함몰지를 만들거나 지하에 하천이 흐르게 되는 구조다.
[두리봉] 斗里峰 1033mm
국토지리정보원과 조선시대에 발행된 지도에 '두리봉(頭理峰)'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실제는 다르다. '두리'는 '둥글둥글하다'는 순 우리말로 '둥근 모습을 한 봉우리'다. 한자어 표기는 우리말 두리봉을 음차한 것에 불과하다.
두리봉 또는 두위봉(斗圍峯)으로 두리뭉실해서 두리봉이라 부른다고 한다.
[삽당령] 삽답령 揷唐嶺 680m
삽당령은 강릉시 왕산면 목계리와 송현리의 분수령으로, 이 고개를 넘을 때 길이 험하여 지팡이를 짚고 넘었으며 정상에 오르면 짚고 왔던 지팡이를 버리고(꽂아 놓고) 갔다 하여 '꽂을 삽(揷)'자를 써 삽답령이 되었다고 전한다. 또 다른 유래는 정상에서 북으로는 대기(大基)로 가는 길과 서쪽으로는 고단(高丹)가는 길로 세 갈래로 갈라지는 삼지창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이 고개는 강희 54년(숙종41년)인 1715년에 개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부(府) 서쪽 60리 정선으로 가는 길'이라 기록되어 있다. 삽당령은 강릉을 적시고 동해로 흘러드는 강릉 남대천, 그리고 남한강 상류인 골지천으로 몸을 섞는 송현천의 발원지기도 하다.
백복령 780m
백복령은 강릉, 동해, 정선, 3개 시군에 걸쳐 있는 석회암지대로 예로부터 한약재로 쓰이는 백복이 많이 나서 붙여진 이름이다. 소나무를 벌채하면 나무 뿌리에 수액이 응고되어 생성된 것으로 복령이라 하며, 복령 가운데 특히 백복이 많이 나는 것을 이름한다고 한다.
고갯길에 사는 마을 주민들은 백복령을 '뱃복이재'라고 부른다. 고갯마루에서 북쪽 산등성이에 올라가게 되면 둘레가 300-400m 쯤 되는 웅덩이가 있는데 이 웅덩이가 여자들 배꼽에 뜸을 뜬 자리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뱃복이라 부른다는 마을 노인들의 말을 옮기고 있다.
우리댁의 서방님은 잘났던지 못났던지
얽어매고 찌거매고 장치다리 곰배팔이
헐께눈에 노가지나무 뻐덕지개 부끔덕
세쪼각을 세뿔에 바싹 매달고 엽전 석양
웃짐 지고 강능 삼척으로 소금사러 가셨는데
백복령 구비 부디 잘다녀 오세요
「정선엮음 아라리 중에서」
자병산 872.5m
자줏빛 병풍을 드리운 것 같이 아름다운 산이라 하여 자병산이라 했다 붉은 석회암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것.
또한 가물 때에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고 한다.
생계령 640m
생계령은 주위에 도토리 나무가 많아 주민들이 생계를 위해 도토리 열매를 채취하던 곳에서 따온 이름이라 한다. 옥계면 산계리 사람들이 정선 임계장을 보기 위해 넘나들었던 고개로 산계령이라고도 한다.
고병이재
다른말로 골뱅이재
강릉 산계리와 정선 임계리를 동서로 잇는 고개.
서대굴
석병산 석회암층 내에 형성된 수직동굴이다. 일명 '범록굴'이라고도 한다.
서대굴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동굴로, 약 250m까지는 탐사되었으나 그 이상은 확인되지 않은 상태이다.
동굴은 세로로 땅 속 깊이 뻗어 있으며 주변의 동대굴과 함께 쌍벽을 이루고 있다. 동굴 안에는 작은 공간들이 발달해 있으며 옆면에는 고드름처럼 생긴 종유석과 동굴 바닥에서 돌출되어 올라온 석순, 종유석과 석순이 만나 기둥을 이룬 석주, 그리고 꽃모양의 석화 등이 둘러싸여 있어 매우 아름답다. .
석병산 1055m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과 정선군 임계면 경계에 위치.
깍아지른 듯 솟아 있는 기암괴석의 바위들이 마치 산아래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석병이라 이름 붙여졌는데, 정상에 서면 강릉시가 한 눈에 들어오며 멀찍이 동해의 수평선이 바라보이는 광경이 일품이다.
석병산을 일월봉이라고도 부르며, 정상부 우측의 바위벽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리어 있는데, 일월봉의 명칭을 따서 '일월문'이라고 한다.
석병산 일월문
맞은편 능선에서 바라보았을 때 해와 달처럼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으나, 그 연유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석병산 일월봉 아래에 위치해 있다. 건너편에서 떠오른 달빛이 일월문을 비추면 장관이라고 한다.
두리봉 1033mm
두리는 둥글둥글하다 는 순 우리말로 '둥근 모습을 한 봉우리'다. 한자어 표기는 우리말 두리봉을 음차한 것에 불과하다.
두리봉 또는 두위봉으로 두리뭉실해서 두리봉이라 부른다고 한다.
삽답령 680m
이 고개를 넘을 때 길이 험하여 지팡이를 짚고 넘었으며 정상에 오르면 짚고 왔던 지팡이를 버리고 갔다 하여 '꽂을 삽자를 써 삽답령이 되었다고 전한다.
또 다른 유래는 정상에서 북으로는 대기로 가는 길과 서쪽으로는 고단가는 길로 세 갈래로 갈라지는 삼지창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