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김민호 목사
부활주일설교.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한복음 20장 24-29절)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의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을 것이며,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될 것이며,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이 끊어질 것이며, 양자의 영을 받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될 것이며,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여 주실 것이며, 어떤 권세자라고 할지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믿음의 자녀들을 끊어 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롬 8장 내용) 할렐루야!
간절한 소망과 부활의 믿음으로 얻은 구원의 확신을 잘 지키고, 끝까지 간직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그날 까지,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시는 00교회 모든 성도되시기를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포함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를 시작으로, 열 한 제자에게 나타나셨고,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적으로 보이기까지(고전 15:6) 하셨습니다. 기록상으로는 대략 11번쯤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부활의 몸을 보여주셨습니다. 한 두 사람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한다면, 그 증언은 신빙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에, 그 목격자들이 순교를 각오하고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그 결과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부활하신 예수님이 만난 주인공은 “도마”입니다. 도마를 이야기 할 때, “의심 많은”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닙니다. 지금도 도마를 주제로 설교 하게 되면,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 되도다”라고 하면서, 보지 않고는 도무지 믿지 않았던 대표적인 인물로 도마를 지목해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과연 도마가 의심이 많~은 제자였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분명 도마가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의심했던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지만, “의심이 많~았다”는 이름표를 붙이기에는 개연성이 부족해 보입니다. 또한, 과연 도마만 의심 했느냐를 생각해 볼 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했던 것은 도마뿐만 아니라 모든 제자들이 다 그랬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자신들의 눈으로 보기 전에 믿었던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도마가 의심 많다고 불려지는 것이 참 억울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도마를 만나기 전에 10명의 제자들을 만났던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19-23절) 부활 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 오셨을 때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육체의 모습을 보고도 단 번에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부활하셔서 새로운 영광의 몸으로 변화되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귀신이 아닐까? 헛것을 본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하며 두려워서 벌벌 떨기만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평강이 있으라”는 말씀을 두 번이나(19, 21절) 하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없는 그들에게 (못 박히고 창에 찔린) 손과 옆구리를 직접 보여주자 제자들은 그때서야 기뻐했습니다. 10명의 제자들도,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세요!” 라고 요구하지 않았을 뿐이지, 결국 그들도 상처 자국을 보고서야 믿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상처를 직접 보고 믿기 시작한 10명의 제자들이 도마에게 부활의 소식을 전하자 도마가 말합니다.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25절) 이 말이 과연 의심이 많아서 하는 말일까요? 물론 의심이 내포 된 말이기는 하지만, 의심이 많~아서, 의심에 눌려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너희들 10명(제자들)도 예수님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았다며?, 나도 손과 발의 못 자국과 옆구리의 창에 찔린 상처를 보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예수님이 오시면 나에게도 보여 주시겠지? 안 그러시겠어?” 이런 의도를 가지고 이야기했을 여지가 매우 큽니다. 그렇다면, 도마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이성적이고, 매우 침착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는 반전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도마가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아니면, 다른 제자들처럼 보고 믿을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두 가지 중 하나를 결정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도마의 모습이 곧 우리의 모습이고, 도마의 그 연약한 믿음을 온전하게 회복 시켜 주시는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시라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마음이 의심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장 슬퍼하고 고민해야 할 것은 돈이 없어서도 아니요, 자녀들의 성적이 오르지 않아서도 아니요, 내 능력을 인정받지 못해서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오직 믿음이 약화되어 가는 것을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믿음 없이 살아가는 것을 탄식하고 슬퍼해야 합니다. 내 믿음, 그리고 내 가족의 믿음이 점점 작아져 가고, 사라져 가고, 숨겨져 가고 있는 것을 걱정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믿음을 굳게 붙잡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믿음을 온전하게 세워갈 수 있을까? 하는 간절함과 갈급함을 가지고 날마다 예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믿음이 부족함을 깨닫게 되면, 그 즉시, 온 힘을 다하여 부르짖고, 매달리고 간구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믿음을 채워서, 믿음부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전심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 육신은 장막일 뿐(껍데기 일 뿐), 그 장막이 걷히는 날 우리는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그 때 주님이 우리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네 믿음이 어디 있느냐?” 우리가 십자가를 알고, 예수님을 알고, 말씀과 교회를 가까이 하면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물음에 반드시 대답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것도 아주 철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마지막 심판의 날 주님 앞에서는 오직 믿음이 있느냐, 믿음이 없느냐, 둘 중에 하나만을 판단 받는다고, 제가 누누이 강조하고 반복하여 말씀 드리고 있습니다. 이것 보다 더 중요한 준비는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영생이고, 믿음이 없으면 영벌에 처해 집니다. 대충 믿음, 적당 믿음, 반쪽 믿음, 헛것 믿음은 다 거품 뿐 이며 안개 같이 사라질 것이고,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의 주인, 나의 구원자, 부활의 예수님을 믿는 참 믿음만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위대한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재림하시는 그 날 우리 모두는 부활할 것이며, 우리 앞에는 천국 가는 밝은 길이 펼쳐질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내가 이제 피하였다가 이 다음 내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겠습니까? 주님을 위하여 이제 당하는 수욕(부끄럽고 욕됨)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 주님이 ‘너는 내 이름과 평안과 즐거움을 다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는 두려움 속에서도, “네 믿음이 어디 있느냐?” 주님의 물으심을 가장 두려워하며, 믿음을 저버리는 것보다 죽음을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의심 많~은 사람이 성경의 도마가 아닙니다.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정해야 합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보지도 않았으면서 본 척하고, 믿음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살아왔던 지난날의 위선적인 신앙의 거품을 걷어내야 합니다. 영광의 부활절 아침에 참으로 부끄럽지만, 그러나 진실 된 마음으로, 부활의 주님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였던 도마의 마음을 품으십시오. 못 봤기 때문에 안 믿어진다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보지 못하였으면서도 보여 달라고 떼쓰고, 요청하지 않는 무관심이 더 큰 문제입니다. 부활의 아침에 우리 모두가 간절하게 예수님의 얼굴을 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구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보여주시는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기도 하시고, 구하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도마의 의심과 믿음 없음이 제 마음 상태임을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제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는 저의 연약하고 나약함을 꾸짖어 주시고, 제가 부활의 예수님을 직접 제 두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만남의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못 자국 난 손과 발을 보게 하셔서, 다시는 부활의 예수님을 의심하지 아니하며, 부활의 예수님을 증거 할 수 있는 굳센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부활을 영광을 보여 주시고, 믿음과 성령을 채워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못 자국 난 손과 발을 보여 주시면서, 믿음 없는 우리의 영안을 활짝 열어서 환하게 보게 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00교회의 모든 성도가, “네 믿음이 어디 있느냐?”는 물음에, “제가 두 눈으로 분명하게 보았으니, 부활하신 우리 주님을 확실하게 믿습니다” 자신 있게 대답하심으로, 큰 기쁨과 영원복락의 소망가운데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드레가 지나자 예수님이 다시 제자들을 찾아 오셨고, 함께 있던 도마에게 말씀 하십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27절) 아멘. 예수님께서는 도마가 상처 자국에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말했던 것을 이미 다 아시고, 미리 선수 쳐서 말씀 하신 것입니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도마의 가슴에 천둥소리처럼 크게 울렸을 것이고, 예수님의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의 상처를 마주한 도마의 두 눈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을 것입니다. 압도당하여 숨도 쉬지 못했을 도마의 표정이 상상이 갑니다. 저 같았어도 부활의 예수님이 상처 난 손을 보여 주셨다고 한다면 심장이 멎어 버렸을 겁니다.
예수님이 말씀 하시자 도마는,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라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보지 않고는 못 믿겠다고 의심한 도마의 의심과 불신은 한 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예수님의 상처에 손을 넣어 보겠다는 의지 아닌 의지도 완전히 허물어 졌습니다. 상처에 손을 넣어보겠다는 말은 꺼내보지도 못한 채, 예수님을 주인으로, 하나님으로 인정했습니다. 아마 이 고백을 할 때 도마는 예수님의 발아래 완전하게 무릎 꿇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마의 대답에서 “나와 주님”, “나와 하나님”이 하나로 묶여 있습니다. 예수님이 앞서 말씀 하신 것에 비교해서 보면, 믿음 없는 자는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아니고, 내가 내 자신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아니고, 나는 나,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제 각각인 상태로 떨어져 지내는 사람입니다. 믿는 자만이,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시고,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은, 나와 예수님이 영원히 남남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 세상 살아가면서 겪는 우리의 모든 불행과 근심, 일이 안 풀리고 꼬여 가기만하는 것은,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내가 모든 일의 주인이고,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는 오만과 교만, 그리고 위선적인 행동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도마는 의심을 했지만, 적어도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다, 예수님을 만나서 상처에 손을 넣어보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습니다. 무작정 거부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만날 수 없지만, 보고 만져서라도 믿음을 얻어 보겠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은 전부 우리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도마에게 다시 말씀 하시기를,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29a절)고 하셨습니다. 일견 책망 하시는 모습 같아 보이지만,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한 도마의 신앙고백을 받으시고, “이제 의심했던 과거의 나쁜 기억은 잊어버려라, 그리고 이제부터는 나를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한 지금의 장면만을 영원히 기억하면서 믿음의 삶을 힘차게 살아가라”고 격려 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이어서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29b절) 이 말씀도, “도마 너는 보고 믿었으니 복을 덜 줄 것이고, 앞으로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에게는 더 크고 많은 복을 주겠다”는 뉘앙스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말씀이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라는 권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마 너는 보고 믿었지만, 앞으로 너의 입술을 통하여 복음을 듣는 자들이 보지 않고도 믿는 복을 받게 하거라”라고 부탁하시는 것 같습니다.
본 사람이 증언자가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보지 않고 증언하는 것은 허위 진술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도마와 같은 직접 목격자는 아니지만, 성령께서 보게 하심으로, 깨닫게 하심으로 부활의 주님을 다 만났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믿음으로 고백했고, 그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고 살아가려고 다짐 했습니다. 우리가 부활을 목격한 기적의 주인공이고, 복 받은 주인공들입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믿음 없는 자로 살아가는 우리 가족과 이웃들이, 믿음 있는 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여야 합니다. 그들이 보지 않고도 복을 받을 수 있도록 부활의 예수님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을 믿는 자로 인도하는 것이 우리의 평생 사명이 되어야 합니다.
이 영광스러운 부활의 아침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의 하나님 이십니다!” 도마와 같은 진실한 믿음의 고백을 드리셔서, 더 이상 믿음 없는 자가 아니라, 믿음 있는 자로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것과 같이, 내가 만난 부활의 주님을 세상에 증언하는데 최선을 다하여, 보지 않고도 믿는 자들이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부활의 영광을 받으신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시고,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음으로 고백하오니, 보고도 믿고,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는 강하고 굳센 믿음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부활이요 생명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